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삶의 일부.
“……”
내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있으니 철성이 물었다.
“왜요? 놀라셨습니까?”
내 반응이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
“네, 그건 좀 놀랍네요.”
“하하하. 저희 본청 감찰이 생각보다 상당히 멋진 부서입니다.”
그가 크게 한 번 웃더니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
“사실 감찰은 연관되지 않은 부서가 없습니다. 기자들을 만나 기사 수위를 조절하니 홍보나 정보·보안부서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고, 인사나 부서이동에도 관여하니 경무의 행정업무에도 상당부분 영향을 끼칩니다. 또 기본적으로 부서의 장이나 VIP와 직결되는 부서다보니 조직 내 모든 부서들은 감찰에 조금씩 연관이 되어 있을 수밖에 없죠.”
“……”
“그러니 본청 감찰에서 일하게 되면 내가 원하는 부서의 일을 골라가며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행정이면 행정, 수사면 수사. 부서 파워가 세니 그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 덤이지요. 게다가 제가 방금 말씀드렸듯…”
그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경찰 업무를 넘어 개인의 사생활까지 윤택해질 수 있죠.”
“……”
“이런 얘기를 처음 들으면 놀랄 수밖에 없는, 놀라는 게 당연한 부서입니다. 탁경위님이 눈을 감고 본청 감찰에 근무한다고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으십…”
“아뇨, 제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
내가 말을 끊자 신이 나서 얘기하던 철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본청 감찰이 내부 규정만 좌지우지 하는 줄 알았는데, 법까지 좌지우지 하는 것 같아 놀랍다는 겁니다.”
“… 네?”
“아까 말씀하신 민간인 사찰. 그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잖아요.”
“……”
“수사 외의 목적으로 개인의 정보를 조회하고 그 사람을 추적하는 것. 그런 불법행위가 본청 감찰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진다니. 놀랍습니다. 정말 본청 감찰은 규정과 법 위에 존재하는 겁니까?”
철성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뭔가 탐탁지 않은 표정.
“본청 감찰에 근무하는 상상을 해보라고 하셨죠? 저는 그런 곳에 근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근무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루빨리 혁신시켜야할 부서처럼 보이네요.”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그때 휴대폰 진동소리가 들리더니 철성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몇 차례 ‘예.’ 하고 엄숙히 대답한 후 전화를 끊고 내게 말했다.
“저는 일이 있어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게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혹시 연락할 일 있으면 편하게 하십시오. 도움 드리겠습니다. 뭐 감찰에 관심이 생겼다거나, 그럴 때도 전화 주셔도 됩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너무 그렇게 단정 짓지 마세요.”
그가 살짝 미소 짓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며 덧붙였다.
“살다보면 생각과 신념은 수도 없이 바뀌니까요.”
#
이틀 뒤 휴무 날.
이전 야간 근무 때 체포한 특수공무집행방해 건 담당형사가 전화가 왔다.
“이놈들 공집만 네 번째예요. 게다가 이번엔 특수공집이니 무조건 징역 떨어질 겁니다.”
“그렇군요.”
“미친놈들, 소주병을 들고 경찰한테 달려들다니… 그래도 탁경위님 안 다치셔서 다행입니다.”
“네, 고맙습니다.”
“아 그리고 부탁을 좀 드릴 게 있는데…”
그가 말끝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혹시라도 피의자들이 합의를 하러 찾아오면, 웬만하면 안 해주시는 게 낫습니다. 합의를 하게 되면 합의서와 기소의견송치 서류가 같이 검사한테 전달되거든요. 그러면 검사가 ‘피해자와 합의는 했는데, 기소는 해달라고? 뭐야 이거?’하며 싫어하거든요.”
그는 이런 큰 사건은 합의 없이 최대 형량으로 박살을 내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합의는 없습니다.”
그날 피의자들은 체포되어 파출소에 와서도 ‘씨발 짭새 새끼들아! 나 이거 불법 체포로 고소할 거야! 너희 다 뒤졌어!’하며 고함을 치고 행패를 부렸다.
합의를 원했다면 그때 입을 닫고 머리를 숙였어야 했다.
그들에게 두 번 기회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은 뒤.
위이이잉-
곧바로 다시 메시지 수신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해보니.
‘…?’
처음 보는 문구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 < 부고 > 창진경찰서 매천파출소 3팀장 경위 김덕규의 모친 하순남(향년 89세)님께서 2014. 7. 21. (월) 08:15경 노환으로 별세하였기에 아래와 같이 삼가 알려드립니다. 빈소 : 서울시 창진구… ]
*
나는 집 앞에 데리러 온 경수의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가 일러준 대로 검정색 정장을 입었고, 현금도 5만원 챙겼다.
차에서 내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니.
“……”
굳은 표정을 한 덕규가 안쪽에 서 있었다.
나는 경수를 따라 들어가 영정 앞에 두 번 절 한 뒤 덕규와 맞절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덕규가 경수와 내 손을 한 번씩 맞잡았다.
“고맙다.”
나는 손을 잡고 그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슬퍼하는 것은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지도, 목소리를 떨지도 않았다.
내가 예상했던 ‘어머니가 사망한’ 아들의 표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영정에서 물러나 봉투가 놓여진 곳으로 왔다.
경수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현금 갖고 왔지? 이 봉투에 넣고 뒷면에 이름 써. 슬픈 일을 위로하기 위한 돈이야.”
내가 봉투에 돈을 넣고 이름을 쓰자.
“아니아니.”
경수가 새 봉투를 내어줬다.
“가로가 아니고 세로로 써야지. 왼쪽 밑에. 네 소속도 쓰고.”
나는 경수가 쓰는 것을 먼저 보고 비슷한 위치에 세로로 소속과 이름을 적었다.
우리는 봉투를 함에 넣은 뒤 상이 차려져 있는 곳으로 갔다.
앉아 있으니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밥을 내왔다.
“너 장례식장 처음이지?”
경수가 빨간 국에 밥을 말아 한 술 뜨며 말했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거의 똑같았다.
“네, 처음입니다.”
“앞으로 많이 오게 될 거야. 우리 조직은 부서 이동이 잦아서 몇 년 근무하다보면 아는 동료가 엄청 많이 생기거든.”
“그런데 부장님.”
나는 궁금했다.
“팀장님은 별로 슬퍼하시지 않는 것 같은데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통곡하며 엄청 슬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슬퍼하진 않으실 거야. 이만하면 호상이니까.”
“호상요?”
“편안히 잘 돌아가신 편이라고. 충분히 사셨고, 또 특별한 병도 아닌 노환으로 돌아가셨으니까.”
놀라웠다.
죽음에 ‘잘’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니.
“그러면 동료나 지인들이 장례식장에 왜 방문하는 겁니까?”
“응?”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건 슬픔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들었는데, 슬픈 일이 아니라면 위로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지, 아니지.”
경수가 밥을 다 씹어 삼키고 말을 이었다.
“슬프지 않아서 위로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라, 위로 받았기 때문에 덜 슬퍼할 수 있는 거야.”
“…?”
“저기 봐봐.”
경수가 턱짓으로 영정사진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덕규 앞으로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절을 하려고 줄을 서기까지 했다.
“장례식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모두 꺼이꺼이 울지는 않아. 하지만 저들의 발걸음 하나하나, 눈빛과 인사말 하나하나가 모여 엄청난 위로의 감정이 만들어지는 거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의 위로가 말이야.”
방문객들은 하나같이 엄숙한 표정으로 절을 하고 간단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덕규는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지그시 바라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30년 경찰생활하며 만나온 많은 동료와 지인들이 옷을 차려입고 여기까지 발걸음 해주는 것. 팀장님은 그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느끼고 계실 거야. 또 장례식장에선 마땅히 저렇게 위로받아야 해.”
경수가 덕규를 아련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보여도, 가족을 잃는다는 건 굉장히 큰 슬픔이거든.”
그리고는 내 눈을 보고 잠시 멈칫하더니.
“미안하다. 정태 너한테 이런 말 해서.”
“괜찮습니다.”
“아무튼 정태 너도 잘 알아둬. 동료는 그냥 같이 근무나 하는 사람이 아니야. 팀에 소속되고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부터…”
그가 다시 밥숟가락을 들며 덤덤하게 덧붙였다.
“동료는 네 삶의 일부가 되는 거야.”
삶의 일부.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한참 동안 덕규가 절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
며칠 뒤, 야간 근무.
“야 이 사람들아. 나 안 보고 싶었냐?”
모친상 특별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덕규가 출근하자마자 너스레를 떨었다.
상을 당하기 전과 별반 차이 없는 모습.
종민과 국진, 철수와 수호가 차례대로 인사하며 다시금 심심한 격려의 말을 전했다.
덕규는 일일이 그들과 악수하며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서 경수와도 악수했다.
“고생 많으셨죠?”
“고생은 뭘. 덕분에 장례 잘 치렀다. 고맙다.”
“고맙긴요.”
그런 뒤 그가 내게도 악수를 청했다.
“정태야, 너도 와줬더구나.”
“네.”
“너한텐 근무 때도 도움 받고, 장례 때도 위로받고. 참 내가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
근무 때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거고.
경수의 말을 빌리면 동료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건 ‘전국공통규칙’이라고 하던데.
덕규는 왜 당연한 일을 은혜라고 생각하는 걸까.
“좀 이따 신고 없으면 야식이나 시켜먹자. 내가 쏜다!”
그러자 팀원들이 ‘오케이!’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덕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팀장자리로 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으며 내게 계속 말했다.
“정태 너 우리 파출소 온지 얼마나 됐지?”
“5개월 15일 됐습니다.”
“에? 벌써 그렇게 됐어?”
그가 미간을 찡그리며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곧 지역경찰 순환근무 끝나는 거 아냐?”
“맞습니다.”
“하 참.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헤어질 때가 다 됐다고? 시간 참 빨리도 가는구만…”
그렇게 아쉬운 소리를 흘린 뒤.
“그런데 정태 너 그 짧은 몇 개월 동안 너무 많은 사건을 겪은 거 아니냐?”
“그런가요?”
“상황실에서 코드 원이나 제로로 취급하는 사건 중에 안 겪은 사건이 거의 없잖아. 절도에 장물범에 자살기도자 구했지, 강도에 총기까지 사용했지, 또 폭처법 위반에 마약에 집단폭행에 특수공집에…”
손을 하나씩 접던 덕규의 눈이 어느새 휘둥그레졌다.
“이야, 진짜 내가 여태 경찰생활하면서 너처럼 단기간에 중요사건 많이 처리한 직원은 또 처음 본다.”
“……”
“그럼 어디 보자… 아!”
그가 뭔가 생각난 듯 검지를 치켜세우고 말했다.
“음주운전. 이제 음주운전 신고만 처리하면 진짜 웬만한 중요 사건은 다 해보는 거네.”
그리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으악, 퉤퉤퉤.”
바닥에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아이, 요새는 자꾸 뭘 말하면 현실로 이루어지더라고. 혹시 오늘도 재수 없게 음주운전 신고 들어올지 모르니 퉤퉤퉤 하고 치워버려야지.”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딩- 딩- 딩-
신고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헉, 뭐야? 이런 젠장 할 설마…”
덕규의 우려 섞인 목소리 끝에.
– “매천파집 매천 하나, 둘 순마. 음주사고(음주운전 차량 교통사고)입니다! 음주용의자 사고 후 도주 중인 상황. 신속히 현장 공착하세요!”
상황실 직원의 다급한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들었던 모든 전경과 소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