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29
29화. 8XXX 운전자 맞으시죠?
“뭐? 누구?”
경수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쉭-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낚아챘다.
“뭐… 뭐하는 겁니까!”
“이것도 압수하는 겁니다.”
“뭐요!?”
“아까 블랙박스 때와 마찬가지로 범행 중 또는 범행 직후의 범죄장소에서 긴급을 요할 때는 영장 없이 압수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지원 온 광현파출소 직원에게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이 휴대폰 돌려주지 마시고, 통화목록 가장 상단에 있는 이 번호로 위치추적 요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음주운전 피의자 연락처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남자, 도주하려 하면 즉시 체포하셔도 됩니다. 죄명은 특가법 위반, 도교법 위반, 범인도피죄,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죄입니다.”
“…?”
“저희는 운전자 추적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곧장 앞으로 뛰어가며 경수를 돌아봤다.
“고부장님. 같이 가시죠!”
“차타고 안 가고?”
“피의자도 두 발로 도주했습니다. 차로 추적하면 도주경로를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아아… 오케이.”
경수가 부리나케 내 뒤로 따라붙었다.
나는 계속 뛰어가며 무전기를 들었다.
– “관제센터 여기 매천 하나입니다. 음주용의자 차에서 내려 도보로 도주 중인 상황입니다. 용의자는 20대 후반의 여자, 인착(인상착의)은 키 165 몸무게 55…”
내가 그녀의 인상착의를 쭉 설명한 뒤 덧붙였다.
– “매천초 정문 인근 CCTV 사독해서 용자 포착되면 도주로 구연(연락)바람. 도주 시간은 약 10분에서 5분 전.”
– “칠팔!”
무전이 끝나자 경수가 물었다.
“일단 따라오긴 했다만, 누가 범인이라는 거야?”
“아까 저희가 순찰차 창문을 열고 차량을 찾아다닐 때, 순찰차 반대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던 여자입니다. 아마 직업은 병원 간호사일 겁니다.”
“헉. 직업까지 파악했다고?”
“음주운전 채혈 과정과 협약 병원까지 알고 있는 직업군은 흔치 않거든요.”
처음 차를 발견했을 때.
나는 남자의 진술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내 눈치를 보며 호흡측정이 아닌 채혈을 하고 싶다고 더듬더듬 말하는 것.
그건 마치 방금 외운 문장을 겨우겨우 내뱉는 수험생의 모습 같았다.
이어서 매천병원이 아닌 기산병원으로 가자고 했을 때.
순찰차 창밖으로 얼핏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목소리 뒤엔 그녀의 외형까지.
그녀는 채혈한 피의 압수절차를 설명하며 누군가에게 기산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정황상 그 누군가는 분명 조수석에 있던 남자.
그녀가 그에게 채혈을 요구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 모든 추리의 과정을 설명하니 경수가 입을 쩍 벌리며 물었다.
“그럼 아까 그 남자 죄명 말한 것도…”
“신고자의 말대로 그 여자가 음주운전 피의자가 맞습니다. 남자는 피의자의 뺑소니와 음주운전을 방조했으니 각각 특가법과 도로교통법 위반, 피의자의 도주를 도왔으니 범인도피죄, 자신이 운전자인 척 연기하며 수사상 혼란을 줬으니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합니다.”
“허 참… 너 몇 번 이러니까 이제 기도 안 찬다 야. 그런데, 남자가 왜 피의자 죄를 대신 뒤집어 써 주는 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내 대답 뒤로 무전이 들려왔다.
– “관제센터입니다. 매천 하나 근무자가 말한 용의자 사독되었습니다. 매천로19길 남쪽 끝에서 오른쪽 광현로로 들어갔습니다. 이하 불상.”
– “지방청 상황실입니다. 용의자 위치추적 값도 광현로 인근으로 사독됩니다!”
매천로19길 끝에서 오른쪽이면 50m앞 골목이다.
위치추적 값도 거기라면 용의자는 분명 그 근처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속력을 내 달렸다.
“그 여자 혹시 광현로 근처에 자기 집이 있는 거 아냐? 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 하는데.”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달리는 것, 경수가 저렇게 걱정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음주운전자의 음주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선 반드시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운전자가 집에 들어가서 냉장고에 있는 소주를 들이키고는 ‘술은 방금 마신 건데요? 운전 당시엔 안 마셨어요.’라고 해버리면 혐의를 입증할 수가 없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안고 광현로 골목에 들어선 순간.
“하, 다행이다.”
경수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광현로 근처는 온통 불이 꺼진 가게, 혹은 공터였다.
사람이 사는 주거지는 없었다.
“집도 아닌데 피의자가 왜 이리로 왔을까? 순찰차 보고 막무가내로 도주한 건가?”
“아뇨, 목적 없이 오진 않았을 겁니다. 피의자는 전화로 동승자를 교사하여 범죄를 위장할 정도로 치밀한 성격이니까요. 제 생각엔 피의자는 아마…”
내가 골목 안쪽 불빛이 비치는 곳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기 있을 거 같네요.”
“편의점?”
24시 편의점.
나는 그곳을 가리킴과 동시에 다시 그리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출입문을 열고 안쪽 주류 코너로 들어가.
탁-
이제 막 냉장고에서 소주병을 꺼내 뚜껑을 따려고 하는 여자의 손목을 잡아챘다.
“뭐… 뭐하는 짓이에요!?”
“계산도 안 하고 곧바로 소주를 드시려고요?”
“……”
“선생님.”
그리고는 내가 그녀의 입술 위 점을 보며 물었다.
“8XXX 소나타 운전자 맞으시죠?”
베이지 원피스에 사각 안경. 키와 몸무게.
점 외에 다른 인상착의도 일치한다.
내가 봤던 그녀가 맞다.
얼굴이 벌겋고 눈이 충혈된 걸로 봐서 이미 술에 꽤나 취한 상태인 것 같았다.
“무슨 소리에요!”
“이름은 윤지영 씨고요. 조수석에 있던 남자 분 휴대폰 통화목록에서 봤습니다.”
“……”
“근무표에 데이, 나이트라고 적혀있는 걸 보니 간호사가 맞으시군요. 그래서 채혈 절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 거예요.”
“…!”
내가 눈짓으로 그녀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화면엔 교대 근무가 적혀 있는 모바일 스케줄표가 떠 있었다.
여자는 황급히 휴대폰을 감췄다.
“… 무슨 말씀하시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그 반지, 남자 분이 끼고 계셨던 것과 같은 반지군요.”
내가 이번엔 그녀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두 분. 결혼을 약속하셨죠?”
“……”
“차 기어봉 앞에 청첩장이 쌓여있던 걸로 봐서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으셨고요.”
당황하는 표정.
이어 ‘이거 놔요!’하며 손을 뿌리치려는 그녀를 계속 단단히 붙잡아 둔 채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지영 씨는 음주 뺑소니를 저지른 후 혐의를 벗을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생각한 끝에 차에서 내려 본인은 도주, 신랑이 될 남자친구에게 죄를 덮어씌우기로 결정했죠.”
그녀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음주사고 관련 지식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도주하며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경찰관에게 채혈을 요구하라고, 채혈은 꼭 매천병원이 아닌 기산병원에서 하라고. 그래야 담당자가 영장을 발부받아 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영 씨는 남자친구가 벌어놓은 그 시간 안에…”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이었다.
“채혈한 피를 바꿔치기하려 했겠죠.”
“…!”
“알코올이 가득한 피를 정상 피로 말입니다.”
사망사고가 아닌 이상 영장은 즉시 발부되지 않는다.
경찰의 신청, 검사의 청구를 거쳐 판사가 신중히 발부하는 것이기에 영장 발부까지는 최소 하루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지영은 그 시간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그렇게 해 음주 혐의를 벗어나게 되면 남자친구는 뺑소니 혐의만 받게 되겠죠. 음주 뺑소니와는 달리 단순 뺑소니는 피의자와 합의만 하면 벌금 정도로 끝날 수도 있는 범죄이니, 이렇게 기를 쓰고 음주 혐의를 벗어나려 한 겁니다.”
“……”
“그렇다면 왜.”
내가 목소리에 힘을 주고 계속 말을 이었다.
“굳이 남자친구에게 그런 일을 시켰을까요? 간호사인 본인이 채혈을 당하고, 또 피를 바꿔치기하는 게 더 수월했을 텐데요. 아니, 그전에. 형을 낮추려 했으면 보행자를 충격한 직후 차에서 내려 합의를 보는 게 나았을 텐데요. 왜 지영 씨는 굳이 혐의를 피해 도주한 뒤 남자친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을까요?”
“……”
“결혼식은 해야만 했으니까.”
그녀의 눈에 조금씩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지영 씨가 음주 혐의를 받는 순간,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니까요. 왜냐하면.”
나는 생각을 집중해 순찰차 창문 너머로 들었던 피의자의 음성을 다시 상기했다.
스치며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
그 문장 전체를.
– ‘영장 없이는 압수 못한다니까. 기산병원으로 가. 난 이번에 걸리면 감옥가야 돼. 오빠가 도와줘.
“음주 전력이 있는 집행유예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서 신랑이 될 남자친구도 토 달지 않고 곧장 죄를 덮어쓰겠다고 했겠죠. 결혼식 날 아내가 구치소에 있는 상황은 원치 않았을 테니까요.”
“흐… 흡…”
다리가 풀린 여자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더니, 흐느끼며 말했다.
“식은 꼭 올려야만 했어요. 결혼식 날 제가 참석하지 못하면… 저희 가족과 친척들, 남편의 가족과 친척들한테 할 말이 없…”
“당신의 그 얕은 생각 때문에 피해자는 다리가 불구가 되었을 수도, 자칫하면 사망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리시는군요.”
내가 차가운 어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
“경찰관이 뒤쫓아 오는 걸 확인한 지영 씨는 계획이 틀어진 걸 알았을 겁니다. 그래서 이 편의점으로 들어와 소주를 들이키려 한 거죠. 소주를 마셔버리고 나면 혈중알코올농도를 측정해봐야 음주운전 당시 음주여부를 알아낼 수 없으니까. 당신은 끝까지 혐의를 숨기고 증거를 인멸하려 했던 겁니다.”
나는 수갑을 꺼내.
“지영 씨는 이미 도주를 했고 증거까지 인멸하려 했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고려할 필요도 없이.”
곧장 그녀의 손목에 걸었다.
“당신을 특가법 위반, 도교법 위반,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교사 혐의로 현행범체포합니다. 변호사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수 있어요. 체포적부심 청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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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이름이 뭐예요?”
며칠 전 있었던 음주 뺑소니 사건을 얘기해주자 앞에 앉은 청년이 질문공세를 해댔다.
“나이는 몇 살이에요?”
피의사실을 그대로 얘기할 수 없어, 각색해 뭉뚱그려 얘기했더니 궁금증이 폭발한 모양.
“남자랑은 얼마나 사귀었대요?”
“자세한 건 얘기할 수 없습니다. 검사가 기소하기 전에 수사정보와 피의사실을 발설하면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거든요.”
“……”
내 건조한 대답에 그가 질문을 멈췄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이 청년의 이름은 이정우.
은빈의 남동생이다.
오늘은 내 요청으로 은빈이 정우를 데리고 나왔다.
“그…”
정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처벌 수위를 낮추길 바랐다면, 여자 분이 사고 후 내려서 경찰과 119를 부르고 합의를 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그에 관해서도 자세히 얘기할 수 없습니다.”
“……”
다시 잠깐의 정적 후.
“그럼 그 여자는 어떤 죄에 해당하는 거예요?”
“뺑소니로 특가법위반, 음주운전으로 도교법위반, 남자에게 수사 교란을 지시했으니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 교사에 해당합니다.”
“… 남자는요?”
“남자는 뺑소니와 음주운전을 방조했으니 특가법위반과 도교법위반의 방조. 거기에 범인도피죄와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되죠.”
“아…”
“질문 끝났습니까?”
“… 네?”
“그럼 이제.”
내가 잠시 말을 멈췄다 덧붙였다.
“제가 묻고 싶은 걸 질문해도 될까요?”
지금 헤어진다고 끝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