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32
32화. 형사자격.
새로운 사람을 처음 마주한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빠르게 그를 스캔했다.
나이는 사십대 중반.
키는 나보다 조금 작은 180 정도. 몸무게는 110~120kg.
짧은 머리. 짙은 눈썹. 사나운 눈. 코와 턱 밑에 수염.
그리고 저 팔 둘레.
팔 둘레는… 내 허벅지만한 것 같은데.
그렇게 순식간에 외형을 쭉 훑고는.
“안녕하십니까. 매천파출소에서 형사과로 오게 된 경위 탁정태입니다.”
치헌의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이어 그가 뒤편 책상을 가리키더니.
“그리고 이쪽은 우리 팀 오정록 경장이랑 이지환 순경.”
팀원들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우리 팀 온 걸 환영해요.”
볼이 쏙 들어갔을 정도로 마른 정록과.
“안녕하십니까. 팀 막내 이지환 순경입니다.”
퉁퉁한 인상의 지환.
“탁정태 경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들과 간단히 인사한 뒤 치헌의 안내에 따라 내 자리로 갔다.
그가 팀장 바로 옆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정태 네 자리다. 부팀장 자리.”
“부팀장이요?”
“우리 팀에 경위가 너 밖에 없잖아. 그러니 네가 부팀장이지.”
“아…”
“형식상 직위만 그렇다 뿐이지 너한테 중책 맡길 일 없으니 부담가질 필요 없어. 짐 갖고 온 거 있으면 네 자리에 풀어.”
“네.”
나는 갖고 온 책과 연습장, 최신 판례 프린트들을 책꽂이에 꽂았다.
내 책상 너머로 다른 팀 팀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공문을 뽑아 팀장에게 요약 보고하는 직원,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앉혀놓고 조서를 받고 있는 직원. 구석에서 서류를 한 가득 복사하며 어딘가 바삐 전화하고 있는 직원.
파출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너 여기 어떻게 오게 된 거냐.”
팀장 자리에 앉은 치헌이 다리를 꼰 채 질문해왔다.
하지만 난 곧장 답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번 인사에 대해선 절대 발설 금지다.’
안득이 어제 전화로 그렇게 당부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어떻게 말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정이 있었습니다.”
“참나. 과장이랑 똑같이 얘기하는군.”
그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신기한 게, 웃어도 그의 얼굴은 험악해 보였다.
“뭐, 이미 우리 팀에 왔으니 그 전 과정은 됐고.”
그가 의자를 당겨 내게 더 가까이 왔다.
“아마 밖에서 나에 대한 좆같은 소문을 많이 듣고 왔을 거야.”
욕까지 하니 사나운 기운이 더 짙어졌다.
“뭐 사람을 두드려 팬다느니, 부하직원들이 무서워서 오줌을 지린다느니 하는 소문 말야. 그거 다 개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
그리고는 옷에 꽉 끼어 터질 듯한 팔을 슥슥 매만지며 물었다.
“실제로 보니까, 나… 그렇게 험악하진 않지?”
“아뇨. 외모는 험악합니다.”
이런 대답이 나올지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치헌은 잠시 멈칫하다가.
“뭐야!?”
버럭 화를 냈다.
정록과 지환도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에 아랑곳 않고 말했다.
“하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습니다.”
“… 응?”
“속이 험악한 사람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 뭐야 이거? 칭찬이야, 씹는 거야? 하 참나.”
치헌이 한 차례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뭐, 네 심정은 이해한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건 어쩔 수 없으니까.”
“……”
“아무튼 난 함부로 부하직원 막 다루고 그런 사람 아냐. 오히려 정태 너처럼 업무역량 뛰어난 직원들은 좋아하고 존중해.”
그가 나에게 칭찬을 했다.
“과장이 네 서류 보여주면서 칭찬을 어찌나 하던지.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는데 서류보니까 알겠더라. 너 잘하긴 하더라.”
“감사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이 신기한지 정록과 지환이 미어캣처럼 그를 힐끗거렸다.
“앞으로 힘 합쳐서 팀 잘 한번 이끌어나가 보자.”
“알겠습니다.”
“아 참. 그런데.”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고경수 경사? 이 직원은 우리 팀에 발령이 난 거야, 안 난거야?”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서장님과 과장님은 발령을 허락했지만, 고경수 경사가 형사과 오길 거부하면 강제발령 내지는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고경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 정말. 과장도 모른다고 하고. 인사이동 당일까지 발령이 났는지 안 났는지도 모르면 담당 팀장은 어떡하란 말이…”
치헌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려던 찰나.
끼익-
다다다다다-
키가 큰 남자가 사무실 문을 열고 후다닥 뛰어오더니.
“안녕하십니까!”
치헌의 앞에 와서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이번에 형사 5팀 발령받은 고경수 경사입니다.”
*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네, 네. 당연하죠. 하하…”
치헌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경수는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늦은 것 때문에 무슨 소리를 들을까 긴장을 많이 한 모양.
치헌은 경수와 통성명을 한 뒤 정록과 지환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다시 경수를 보며 말했다.
“정태는 내 첫인상이 굉장히 험악하다고 하던데.”
“허억!”
“경수 너는 내 첫인상이 어떠냐?”
경수가 손등으로 땀을 막 닦아대며 대답했다.
“괴… 굉장히 선한 인상이십니다.”
“지랄하네.”
“… 예?”
“내가 살다살다 선한 인상이란 말은 처음 들어본다. 경수 넌 속이 시커먼 놈이구나.”
“아, 아니. 저는 진심으로…”
“정태가 속이 험한 놈보다 겉이 험한 놈이 낫대. 경수 너보단 내가 낫다 야.”
“아, 하하하…”
“아무튼 인사는 이쯤하고.”
치헌이 목을 가다듬고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정태, 경수. 너희는 앞으로 나와 한 조로 근무한다. 원래 조장 조원이 2인 1조로 근무하고 팀장은 각 조에 지원을 나가는 식으로 근무하지만, 너흰 수사경과도 없고 형사 업무도 처음이니까 내가 일도 가르쳐줄 겸 같이 다니는 거야.”
“알겠습니다.”
형사, 경제, 지능, 사고조사 등 직접적으로 수사를 도맡아 하는 부서에 들어가기 위해선, 조직 내 시험을 쳐서 ‘수사경과’라는 자격을 따야 한다.
예외로 수사경과 없이 수사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있긴 하지만, 경수와 나처럼 수사에 대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발령 오는 경우는 없다.
“우리 형사과에선 배당사건, 인지사건 이렇게 사건을 나눠. 배당사건은 지구대·파출소에서 발생보고나 검거보고를 올린 뒤 그것을 형사과 내 팀 별로 할당한 사건을 말하고, 인지사건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범죄를 인지해서 수사하는 걸 말해. 형사는 배당사건만 할 수도, 인지사건만 할 수도 없어. 배당은 배당대로 받고 인지에도 신경을 써야 해.”
배당사건과 인지사건.
경찰대에서 들어본 적 없는, 처음 듣는 실무 단어였다.
난 치헌의 말을 하나하나 머리에 새겼다.
“그 외에도 본청이나 지방청, 언론이나 타기관에서 지시 혹은 요청해 수사에 착수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상황마다 업무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때 가서 설명해줄게.”
“네.”
“이제부턴 킥스(경찰업무처리시스템)와 더 친해져야 할 거야. 간단한 보고서만 올리던 지구대·파출소와는 달리 범죄인지서, 피의자신문조서, 피해자 및 목격자 진술조서, 수사결과보고 등 킥스로 작성해야 할 서류가 훨씬 많아지니까.”
사건 관련자들을 대면해 신문 및 진술 조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사결과를 보고하는 것.
초동조치를 주로 하는 지역경찰 업무와는 확실히 색깔이 달랐다.
“사건을 배당받으면 피의자와 피해자, 참고인을 서에 출석시켜 조사를 진행하면 돼. 출석하지 않을 시엔 체포영장 발부받아서 데리고 오면 되고. 현장에 나갈 일이 있으면 ‘형사동차’로 불리는 승합차를 타고 나갈 거야. 왜 너희가 무전용어로 ‘형 둘’ 하고 부르는 거 있잖아.”
“네.”
“또 알아야 할 게 많긴 한데. 내가 최대한 가르쳐 줄 거지만 모든 부분을 다 케어 할 수는 없어. 모르는 게 있으면 ‘범죄수사규칙’을 참고하면 돼. 책은 내가 좀 이따가 줄게.”
“알겠습니다.”
치헌은 형사 업무 전반을 세세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나는 그것을 얼른 흡수해 몸에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각자 앞에 놓인 컴퓨터 켜서 킥스 로그인부터 해보…”
그렇게 계속 설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 “아아-”
책상 위 무전기에서 무전이 들려왔다.
– “형둘(형사동차 혹은 형사당직) 1137번 실종 건 공착둘치(도착해서 조치.)”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정록이 궁시렁거렸다.
“아이고, 좀 이따 참고인 출석하기로 했는데.”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치헌에게 말했다.
“팀장님. 새로 오신 직원 분들 아직 업무에 익숙하지 않으니, 저랑 지환이가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아냐.”
치헌이 정록을 멈춰 세웠다.
“정록이 넌 사무실에 있다가 참고인 오면 조서 받아. 나랑 정태, 경수가 갔다 올게. 업무는 직접 구르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르니까.”
오늘은 우리 팀이 당직인 모양.
치헌이 경수를 돌아봤다.
“경수, 승합차 운전 가능하지?”
“네? 어어어.”
치헌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차키를 던졌고, 경수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았다.
“정태 너는 무전기랑 수갑 챙기고.”
“네.”
“형사동차로 가자.”
그렇게 나는 형사로서 첫 사건을 맡게 되었다.
*
잠시 후, 형사동차 안.
경수가 운전대를 잡고 치헌이 조수석에,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실종 사건은 사실 형사가 할 일이 별로 없어.”
차 안에서 실종사건에 대한 치헌의 설명이 이어졌다.
“의경 한두 제대가 나와서 수색하는 게 전부니까. 보통 한두 시간 안에 변사체, 혹은 단순 가출인으로 발견돼.”
나도 의경부대 의무복무를 해봤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됐다.
“변사는 대부분 자살이라 변사발생보고를 하면 되고, 가출인은 가족에게 인계해주면 끝이야.”
경수도 중간중간 네, 네 하고 대답하며 치헌의 말을 경청했다.
핸들을 두 손으로 잡고 어깨를 바짝 세우고 있는 걸 보니 아직까지 긴장을 많이 한 모양.
“사실 실종 업무는 여청 소관인데, 지금 본청에서 실종사건을 형사과로 넘기려고 업무분장을 새로 하는 중이라 일선 서에서도 형사가 현장에 나가는 경우가 많아. 실종이 납치감금 등 강력사건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서라는데, 사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
내가 의경부대에 있을 때도 그런 경우는 없긴 했다.
“뭐 설명은 이쯤 하고. 나 궁금한 거 좀 물어보자.”
치헌이 갑자기 고개를 운전석 쪽으로 돌렸다.
“경수 넌 왜 형사과에 오겠다고 한 거냐?”
“네, 네!?”
“정태는 그 전부터 과장이 많이 언급하기도 했고, 서류 봤을 때 수사에 관심도 많고 소질도 있는 것 같은데. 경수 네 이름은 내가 어제 처음 들었거든? 갑자기 왜 형사과로 오겠다고 한 거야?”
“아, 저 그게…”
경수가 당황한 듯 괜히 핸들을 쥐었다 펴댔다.
그도 과장으로부터 인사에 대해 함구하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너도 정태처럼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거냐?”
“아, 네 뭐… 하하…”
“그럼 넌 잘 하거나 잘 아는 분야가 뭐야?”
“… 네?”
“수사에는 대부분의 지식이나 능력이 도움이 돼. 사건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니까. 서류 보니 정태는 현장을 보는 눈썰미가 좋은 것 같고. 경수 너는 어떤 분야에 장점을 가지고 있지?”
“자… 장점요? 음, 그게…”
경수는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는 왜 바로 말하지 못할까?
그가 잘 아는 분야는 너무나도 명확한데.
입만 뻥긋거리는 경수를 가만히 지켜보다 답답해진 나는.
“여자요.”
경수 대신 대답을 해줬다.
“… 뭐?”
치헌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뒤를 돌아봤다.
“여자요. 여자에 있어선 고부장님이 박사입니다.”
내 대답에 경수는 ‘야! 정태 너 이 씨…’하고 속삭이듯 소리치며 룸미러로 눈을 부라렸다.
나는 그에 아랑곳 않고 계속 말했다.
“때문에 아마 여성관련 범죄를 처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고부장님은 일반 남성들에 비해 여자를 훨씬 더 잘 알고, 또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아…”
잠시 동안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던 치헌은.
“뭐, 내가 이걸 물어보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 둘 다 수사경과 없다고 쫄아서 형사업무 소극적으로 하지 말고, 각자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적극적으로 수사에 임하라고.”
“아, 네…”
“형사사건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하고 또 해결되니까, 각자의 장점이 분명히 도움이 되는 데가 있어. 그러니 형사자격 달았으면 자신 있게 수사해. 경수 지금 너처럼 쫄아있을 필요 없어. 알겠냐?”
그러면서 치헌이 커다란 손으로 경수의 어깨를 탕탕 쳤다.
칠 때마다 경수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아, 알겠습니다.”
“그래. 전공이 여자라… 앞으로 잘 한번 지켜보겠어.”
치헌의 그 말을 끝으로.
끼익-
차는 현장에 도착했고.
“내리자.”
우리는 차에서 내려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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