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36
36화. 세상이 마치 파도 위에 떠있는 것처럼.
“솔깃할 만한 소식이라니, 뭡니까?”
“특진에 관련된 소식이네.”
“특진이요?”
치헌이 놀라 되묻자 안득이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답했다.
“매년 경찰서별 특진 인원이 내려오잖아. 그런데 희한하게 창진서만 지난 2년 연속 우리 형사과에서 특진이 안 나왔어.”
“그랬죠.”
“아마 지방청 놈들이 돈 보따리 갖다 주는 직원들만 승진시키느라 티오 계산을 잘못했겠지.”
“……”
“그래서 올해는 지방청에서 눈치가 보였는지 창진서 형사과에 별도의 특진 티오를 하나 내려주겠다는 거야.”
“오호.”
“단, 경정이나 경감 특진은 어렵고. 경위, 경사, 경장 특진 중에 하나를 내려준다는데.”
안득이 슬그머니 경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왕 티오 땡기는 거 경위 특진을 땡기는 게 안 낫겠어?”
“…!”
“경사, 경장 땡기긴 아깝잖아. 뭐 경장, 순경 직원들한텐 미안한 소리지만.”
경찰 계급은 순경, 경장, 경사.
경위, 경감, 경정, 총경.
경무관, 치안감, 치안정감, 치안총감 순이다.
“게다가 우리 형사과엔 순경이나 경장 없는 팀도 있어서 경장, 경사 특진 가져오기엔 형평성도 맞지 않아. 하지만 경사는 각 팀마다 한 명 이상씩 다 있지.”
이어 안득은 두 손을 모아 깍지 끼고 턱 밑에 붙이며.
“아마 장팀장, 탁경위, 고경사 정도의 조합이면 이 특진 가져갈 확률이 아주 높을 거 같은데.”
경수에게 노골적으로 물었다.
“고경사. 어떻게, 경위 달 자신 있어?”
“네!? 하하하…”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 경수.
그런 그에게서 자신감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수사경과도 없이 날려 오듯 형사부서로 왔으니 함부로 과장 앞에서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왜일까.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허, 이 친구. 지금 무려 특진을 얘기하는데 맥없이 실실 웃기나 하고.”
나는 그의 볼에 붙인 반창고를 보며 오전에 처리한 납치 사건을 떠올렸다.
구두 로고로 피해자의 인상착의를 추리하고 자신감을 얻어 씨익 웃던 모습.
배림동 건물에서 호기롭게 앞으로 나가 유리창을 살피던 모습.
유리창을 뚫고 나온 칼에 크게 다칠 뻔 한 그 찰나의 순간.
이어 직장생활에 대해, 은빈과의 만남에 대해 조언해주던 그의 모습까지.
“기회가 왔잖아. 경위 달 자신 있어, 없어?”
“음, 그게…”
그 생각 끝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자신 있습니다!”
크게 육성을 내뱉었다.
“… 응?”
“저는 장팀장님과 함께 앞으로 고경수 경사와 한 조로 근무합니다. 고경수 경사 사건이 곧 제 사건이죠. 같이 열심히 해서 고경사 특진시켜낼 자신 있습니다.”
“오…”
안득은 나를 보고 옅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경사가 좋은 조원을 뒀구만 그래. 아니, 계급이 높으니 조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어 그가 치헌을 돌아봤다.
“장팀장. 내가 따로 불러서 이런 말 하는 의도는 잘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서류 칠 때 고경사 활약에 살이라도 하나 더 붙이고 하라고 그러는 거야. 그런 정성이 모이면 나중에 공적이 훨씬 커 보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는 경수의 실적이 곧 형사 5팀의 실적이니 치헌과 내 인사고과에도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다른 팀 팀장들한테도 내일 이 내용을 다 말하긴 할 거야. 불공정 경쟁을 해선 안 되는 거니까.”
“네.”
“하지만 이렇게 자세히 말하진 않을 거야. 오늘 고경사 첫 날부터 다쳐서 내가 마음이 좀 쓰이기도 했고, 또 내가 볼 때 형사 5팀이 가장 특진에 부합한 팀 같아서 미리 신경을 좀 써 주는 거야.”
“네, 감사합니다.”
치헌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경수도 따라 숙였고, 그걸 보고 나도 따라 목례를 했다.
그러자 안득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그리 알고. 오늘 중범죄자 잡는다고 고생했어. 다들 퇴근해서 푹 쉬어.”
“네,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치헌의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방에서 나왔다.
“이야-”
나오자마자 치헌이 경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경수 너 오늘 볼 베인 거, 이제 하나도 안 아프겠다?”
“네?”
“과장까지 신경 써서 너 특진시켜 주려고 하잖아.”
“아… 그래도 될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어허이, 참.”
경수의 대답에 치헌이 어깨동무를 풀고 장난스레 그를 노려봤다.
“자신감 좀 가져. 오늘 사건, 네가 반은 해결한 거야. 게다가 우리 팀엔 정태도 있고, 나도 있잖아. 우리가 다른 팀에 특진 빼앗길 거 같냐?”
그러면서 치헌이 괜히 팔뚝에 힘을 주며 강한 척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경수가 어색하게 웃었다.
“절대… 안 빼앗길 거 같긴 하네요.”
“그렇지?”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치헌이 경수의 어깨를 툭 쳤다.
“앞으로 잘 해보자고.”
“어휴, 팀장님. 어깨 칠 때는 살살 좀 부탁드립…”
“엄살 부리지 마, 인마. 자, 오늘 다들 고생도 했고 분위기도 좋고. 게다가 첫 만남이니.”
치헌이 나와 경수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회식 한번 해야지?”
“좋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회식까지 약속한 뒤 좋은 마음을 안고 사무실로 내려가려는데.
위이이잉-
위이이잉-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어어. 받고 천천히 와.”
치헌이 내게 손짓한 뒤 경수와 함께 먼저 내려갔다.
발신자를 보니 02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화면을 터치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탁경위님. 이철성입니다.”
= “……”
본청 감찰 사무실 번호였나.
= “창진서 형사과로 가셨더군요.”
= “네.”
= “왜 본청 감찰로 오지 않으시고.”
그가 섭섭하다는 듯한 뉘앙스로 말했다.
= “말씀드렸을 텐데요. 본청 감찰은 갈 일이 없을 거라고요.”
= “왜요. 규정을 우습게 아는 막무가내 부서라서요?”
= “잘 알고 계시네요.”
= “탁경위님이 고경수 경사 데리고 형사과 들어간 것도 규정을 준수한 인사 같진 않은데요.”
= “……”
잠시 정적 후.
=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뭐 탁경위님 새로운 부서 발령을 축하드릴 겸, 또 저희 부서에 못 오시게 된 것에 아쉬운 소리도 할 겸 전화 드린 겁니다.”
= “네, 알겠습니다.”
= “다음에는 꼭 저희 부서로 와서 같이 근무했으면 좋겠네요.”
=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 “아, 다음에 본청 감찰에 오시는 건 아마…”
철성이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 “‘규정에 따라’ 오시게 될 겁니다.”
= “…?”
= “그럼 문제없는 거죠?”
= “……”
= “그럼 이만. 고생하십시오.”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뉘앙스는 강제 같은데, 말한 내용은 ‘규정에 따라’라니.
나는 가만히 통화내용을 곱씹으며 사무실로 내려갔다.
*
치이이익-
고기를 불판 위에 올리자 맛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모! 여기 소주 한 병, 맥주 두 병 주세요!”
지환이 술을 주문하고 잔을 모은 뒤.
콸콸콸-
소맥을 타기 시작했다.
“자, 여기 있습니다.”
그가 잔을 쭉 돌린 뒤.
“원래 고기 익기 전부터 달려줘야 제 맛 아니겠냐?”
치헌이 잔을 들었다.
그에 팀원들도 다 같이 잔을 들었다.
“오늘 다들 고생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잔을 부딪친 뒤 다들 고개를 꺾고 소맥을 털어 넣었다.
그런데.
“우엑!”
치헌이 잔을 비우자마자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거 왜 이렇게 써? 지환이 너 소주 왜 이렇게 많이 탔냐?”
“조절 한다고 했는데…”
“완전 그냥 소주잖아!”
술이 확실히 쓰긴 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경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가 한 번 타볼까요?”
“그래. 다음 잔은 경수 네가 타라.”
병을 건네받은 경수가 잔을 모으고는 소주를 조금씩 따랐다.
그 뒤 맥주병 입구를 엄지손가락으로 막고 마구 흔들더니.
치이이이익-
현란한 손놀림으로 잔에 맥주거품을 뿜어냈다.
“와-”
그 광경에 치헌과 팀원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이미 몇 번 본 광경이지만, 다시 봐도 신기했다.
“자 드셔보시죠.”
“오케이. 자, 이번엔 우리 팀에 새로 온 정태와 경수를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첫 잔을 마신 뒤 채 1분도 되지 않아 다음 잔을 들이켰다.
“캬. 경수야! 이거 죽인다.”
“괜찮죠? 하하.”
정록과 지환도 ‘크- 맛있다!’하며 목 긁는 소리를 냈다.
확실히 경수가 탄 소맥이 깔끔하고 시원했다.
하지만 두 잔을 연거푸 마신 탓에 술기운이 확 올라왔다.
“하, 정말 다행이에요.”
지환이 집게를 들고 고기를 뒤집으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걱정했거든요. 저희 형사과는 기피부서이다 보니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고.”
지환은 형사부서가 근무일수도, 업무량도 많아서 직원들이 잘 오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이어 정록이 말했다.
“게다가 새로운 직원이 두 명이나 온다고 하니, 분명 둘 중에 한 명은 징계 맞았거나 이상한 사람이 올 거다, 이렇게 생각했었죠. 그런데 이게 웬걸.”
그가 겉절이를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멋진 분들이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니까요. 뭐, 탁경위 님은 파출소 계실 때부터 유명했고. 오늘 서류 보니 고부장님도 장난 아니시던데요?”
“맞아. 진짜 두 분 다 형사 해본사람처럼 수사하시더라고.”
그렇게 정록과 지환이 웃으며 말을 주고받았다.
훈훈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한 잔을 더 마셨고, 경수는 다시 술을 탔다.
눈앞이 조금씩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사실.”
이번엔 치헌이 입을 열었다.
“정태, 경수 너희 들어올 자리 비우려고 우리 팀 기존 직원 두 명을 강제발령 냈었거든. 걔들 둘 다 곧 육아휴직 예정이라 뭐 큰 타격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외부요인으로 인해 발령이 나는 건 당사자에게 별로 기분 좋은 일이 아냐. 팀장인 나도 마찬가지고.”
“……”
“하지만 정태랑 경수 너희가 이렇게 열심히, 또 잘 해주니까 내가 마음이 놓여. 적어도 그전 직원들한테 미안한 마음은 훨씬 적어졌다고.”
오늘 오전 조선족 피의자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사나운 호랑이였던 치헌.
그가 이제 완전히 긴장을 풀고 자기 무리를 보듬어주고 있었다.
“고기 다 익었습니다. 한 잔 하시죠!”
지환이 외치고 또 우리는 술잔을 들었다.
정신이 어지러웠다.
머리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몸은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내 손은 이미 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고 있었다.
나는 또 잔을 비웠다.
“크-”
이제 팀원들이 내뱉는 ‘크-’소리도 나에겐 커다란 진동으로 다가왔다.
귀가 울릴 때마다 눈앞은 더더욱 흐려졌다.
세상이 마치 파도 위에 떠있는 것처럼 넘실거렸다.
“아, 그런데 경수야.”
치헌이 경수를 불렀다.
“너 솔직히 말해봐. 내 첫인상 어땠냐?”
“첫인상요?”
“그래. 선해 보인다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
나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노력하며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경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아, 괜찮으니까 얼른 말해봐. 나 처음 봤을 때 어땠냐?”
“하하. 그게…”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였다.
내 속에 술이 있는 건지, 술 속에 내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손과 발이 멋대로 움직였고.
마침내 입마저.
“바위.”
내 통제를 벗어났다.
“커다란 바위 같았어요. 팀장님은.”
“응? 바위?”
뜬금없는 내 대답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떻게 보면 지명수배자 같기도 했고.”
“… 뭐?”
“1번 지명수배자 있잖아요. 강도살인 용의자. 악마같이 생긴 사람.”
“뭐 인마!?”
치헌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
험악한 기운을 감지한 정록이 불쑥 튀어나와 내게 물었다.
“저! 저랑 지환이는 어땠는데요? 처음 봤을 때.”
“연필이랑 지우개.”
“… 네?”
“얇은 오반장님은 연필. 퉁퉁한 지환 씨는 지우개.”
“푸하하.”
내 말을 들은 치헌이 굳은 인상을 풀고 정록과 지환을 비웃었다.
아무래도 사물에 비유된 그들보다 사람에 비유된 자신이 낫다고 생각한 모양.
그는 ‘크큭. 이 학용품 같은 새끼들.’하며 팀원들을 놀려댔다.
“탁경위님. 그럼 고부장님은 첫인상이 어땠어요?”
지환이 내게 물었다.
“고부장님은… 처음엔 좀 경박스러웠죠.”
내 말에 팀원들이 다시금 실소를 터뜨렸다.
경수는 ‘에이 경박이라니.’하며 장난스레 입을 비죽였다.
지환이 다시 내게 물었다.
“하하하.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좆같아요.”
“…?”
일순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은 커다란 침묵이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세상 모든 것을 잠재워버릴 듯한 침묵.
내 눈꺼풀에 잠이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도 입은 계속 움직였다.
“겪어본 적 없어서 그게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고부장님은 그냥 족같아요.”
“야, 정태야. 아무리 장난이라도 말이 너무 심하잖냐.”
치헌이 나를 타이르는 소리가 귀를 스쳤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내 온몸은 통제를 벗어나 점점 뒤로 기울었다.
“고부장님은 이제 정말 제게…”
마침내 나는 눈을 감고 등받이에 몸을 누인 채 고개를 뒤로 꺾었다.
그 상태로 나는 마지막 말을 흘린 뒤.
“가족. 가족 같아요, 고부장님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증거의 불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