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증거의 불발견.
다음날 창진서 형사과 사무실.
“어, 정태 출근 일찍 했네?”
“안녕하십니까. 고부장님은 더 일찍 오셨네요.”
출근하니 사무실엔 경수만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다.
“술은 좀 깼냐?”
“네. 머리는 괜찮은데, 속이 안 좋습니다.”
“크크큭. 정태 너도 약한 구석이 있었구나.”
“어제는 어떻게 됐습니까?”
“응? 기억 안 나냐?”
끼익-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어이. 좋은 아침.”
“안녕하십니까.”
“와, 두 분 다 엄청 일찍 오셨네요.”
치헌과 정록, 지환이 차례로 들어왔다.
치헌이 책상에 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경수. 어제 정태 집에 잘 데려다줬지?”
“물론입니다.”
“하, 그냥 길바닥에 버려버렸어야 하는 건데. 그래야 술버릇을 고치지.”
치헌이 장난 섞인 표정으로 날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계급 높다고 15년차 선배한테 좆같네 마네, 아주 대단한 경찰간부 나셨어.”
“네?”
“너 한 잔만 더 마셨으면 나보고도 욕했겠다?”
그리곤 잠시 멈칫하더니, 벽에 붙은 지명수배자 명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아니다. 너 이미 나한테 욕했잖아! 내가 저런 흉악범을 닮았다고??”
“무슨 말씀이신지…”
“어허. 모른 척까지??”
모른 척이 아니다.
어제 일은 부분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특히 소맥 네 잔째를 마신 뒤로는 전혀 기억이 없다.
눈을 떠보니 집에 누워있었는데, 아마 경수가 데려다준 듯했다.
내가 멀뚱히 눈을 뜨고 있으니.
“크크큭. 장난이야, 장난 인마.”
치헌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웃는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보고 경수도, 정록도, 지환도 실실 웃어댔다.
저들은 무슨 감정을 느끼며 저렇게 웃어대는 걸까?
나는 가만히 그들의 웃음을 바라봤다.
“… 하 참. 장난쳐도 웃질 않으니. 앞으로 무서워서 장난치겠냐?”
치헌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어제 경수한테 들어보니 너 쉬는 날엔 맨날 범죄 다큐멘터리나 최신 판례집 본다며?”
“맞습니다.”
“그러니깐 이렇게 로봇처럼 표정이 하나인 거야. 근무할 때도 항상 흉악한 범죄자들이나 보고 머리 아픈 법조문 찾아가며 수사하는데. 집에서까지 그러고 있으면 그건 사람 사는 게 아니지.”
주변에서 팀원들이 ‘맞아요. 맞아.’하며 맞장구를 쳤다.
“쉬는 날엔 바람도 좀 쐬고, 누구랑 어디 풍경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좀 그래. 그렇게 머리를 쉬어줘야 너도 웃으면서 즐겁게 경찰생활 할 수 있어.”
바람, 풍경, 맛있는 것.
나는 그 단어들을 머리에 새겼다.
“우리는 수사하는 기계가 아니야. 결국 경찰도…”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 이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한 뒤.
“자, 잡설은 이쯤하고.”
치헌이 장난스런 표정을 삭 거두면서.
“일하자.”
오늘 근무가 시작되었다.
*
오전엔 어제 검거했던 조선족 피의자 조사를 마무리 지은 뒤, CCTV자료들을 받아 추가로 수사보고를 작성했다.
치헌의 말대로 피의자의 범죄시인이 있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조금씩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땐 치헌이 잘 도와주었다.
이에 더해 나는 경찰대에서 배운 지식으로, 경수는 수년간 쌓아온 각종 노하우로 부족한 부분을 커버했다.
우리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수사결과보고서와 의견서까지 작성을 마치고는 신병과 서류를 검찰로 송치했다.
이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점심시간이 다 지난 뒤.
“오후엔 절도현장 한번 나가보자.”
모니터 화면을 보며 치헌이 말하자 경수가 물었다.
“형사에선 절도 금액이 적으면 수사 실익이 없다고 꺼린다던데. 피해액이 얼만데요?”
“약 사천 만원.”
“헉.”
“게다가 침입절도야.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집에 침입해서 장롱 안에 있던 비상금과 화장대 위 장신구를 털어갔대.”
대화를 들으니 자연스레 머릿속에 현장이 그러졌다.
“침입절도는 강력범죄에 준해서 처리하는 거 아닙니까?”
“오. 경수 잘 알고 있네.”
“꼭 검거해야겠네요.”
“뭐, 범죄자는 누구든 검거해야겠지만, 일반절도보단 침입절도범을 잡는 게 임팩트가 크긴 하지.”
이어 치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경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어제 일어난 사건이고, 지금 과수반에서 현장감식 거의 다 마쳐간다고 하니까 지금 바로 가보자.”
“네, 알겠습니다!”
*
형사동차를 타고 도착한 현장은 창진서 관내 한 빌라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치헌은 주변 CCTV부터 확인했다.
“이 빌라 쪽을 비추는 방범용 CCTV는 없네. 빌라 입구에 있는 것도 오른쪽 건 불이 안 들어오는 거 보니 꺼져 있나봐. 출입구 쪽은 무방비상태야.”
이어 우리는 출입문이 열려 있는 빌라로 들어갔다.
1층엔 방염복을 입은 과수반 직원들이 있었다.
내가 그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창진서 형사 5팀 탁정태 경위입니다. 감식 다 끝나가나요?”
“거의 다 끝났습니다.”
“현장 들어가 볼 수 있을까요?”
“네, 여기 덧신과 장갑. 마스크 끼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표시된 증거물들은 꼭 피해 다니시고, 집 안에 들어가실 땐 바닥에 놓인 ‘현장통행판’을 꼭 밟고 지나다니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우리는 과수반 직원에게 받은 장비를 착용하고 빌라를 올라갔다.
올라가는 중에도 다른 과학수사 요원들이 빌라 복도와 계단 바닥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아마 특정 족적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발생장소는 4층 주인세대였는데, 문 앞엔 50대 정도로 보이는 부부가 서 있었다.
그들도 덧신에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내가 여자에게 물었다.
“혹시 이 집 주인이십니까? 절도피해 당하신?”
“네, 맞아요.”
“안녕하십니까. 이 사건 담당형사 탁정태라고 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남자는 박홍식, 여자는 정수영라고 답했다.
“피해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내 질문에 수영이 허공을 쳐다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어제 아침에 저는 운동을 나가고 저희 남편은 출근을 한 사이에 도둑이 들었나 봐요. 장롱 안에 제가 비상금으로 놔뒀던 현금 3천 만원 정도가 싹 사라졌어요. 화장대 위에 있던 팔찌랑 목걸이도 전부 없어졌고요. 팔찌랑 목걸이들도 합치면 한 천 만원 될 거예요.”
“피해품들은 모두 그 자리에 있다가 어제 아침에 없어진 게 확실한가요?”
“확실해요. 제가 어제 운동 나가기 전엔 있었으니까요.”
“방금 비상금이라고 하셨는데, 그럼 현금이 정수영 씨 본인 소유란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남편 분도 거기 비상금이 있는 줄 모르셨고요?”
“남편은 몰랐을 거예요. 한 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알았겠지만, 이 사람이 제 장롱을 열어볼 일은 없으니까요. 또 제가 따로 돈을 모으는 줄은…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그 말에 옆에 있던 홍식이 눈을 흘기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게 은행에 넣어놓지 뭔 지랄을 한다고 나 몰래 돈을 모아? 내가 생활비, 용돈 넉넉하게 안 준 게 뭐 있어?”
“… 미안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비상금은 필요할 거 같아서…”
주눅이 든 아내의 말을 듣고 홍식이 쯧쯧 혀를 찼다.
이어 그가 나를 돌아보더니 공손히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형사님. 어찌됐건 돈 꼭 좀 다시 찾아주십시오. 돈이랑 장신구 합이 사천인데, 적은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지만 피해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
뚱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내가 물었다.
“돈과 장신구가 없어진 걸 안 것은 언제입니까?”
“어제 오전 10시쯤, 아내가 운동 갔다 와보니 없더랍니다. 저는 회사에 있다가 전화를 받고 알았습니다.”
“아내 분이 운동 나간 시간, 그리고 선생님이 출근한 시간은 언제입니까?”
“저희는 항상 같이 나갑니다. 빌라 앞에서 아내는 운동을 하러, 저는 출근을 하러 각자 흩어졌죠. 그때가 오전 7시 50분쯤이었으니, 도둑은 한 8시에서 10시 사이에 들었다고 봐야겠죠.”
진술을 들으며 나는 습관처럼 두 부부의 외형을 살폈다.
파마머리를 한 수영과 장발에 안경을 쓴 홍식.
수영은 운동을 한 덕인지 나이에 비해 자세가 곧았고, 목소리에 힘도 있었다.
반면 홍식은 다리가 불편한지 엉거주춤하게 서서 손으로는 벽을 짚고 있었다.
“아, 그리고.”
홍식이 계속 말했다.
“도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창문이요?”
“네.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창문이 열려 있었다고 했거든요. 방충망까지 모두요.”
“그렇군요. 현관문을 통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 같다는 거죠?”
“현관을 통해선 들어올 수 없었을 겁니다. 현관 비밀번호는 저와 아내밖에 모르거든요.”
“자녀분도 모릅니까?”
“하나 있는 아들은 필리핀에 있습니다. 공부하러요.”
“그렇군요. 그럼 이 집에 드나들 만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죠?”
“네, 없습니다.”
“혹시 최근에 원한을 산 사람은 있습니까?”
내 질문에 수영과 홍식이 차례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현장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형광등은 다 꺼져 있었고, 구석구석에 과수반 직원들이 설치한 듯한 조명 몇 개만 은은하게 집을 비추고 있었다.
증거를 찾기 위해 빛을 차단한 것이다.
바닥엔 ‘현장통행판’이라고 적힌 플라스틱판이 있었다.
증거가 훼손되지 않게 징검다리처럼 밟고 다니는 판이다.
판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가니, 옷가지가 바닥에 마구 흩어져 뒤진 흔적이 역력한 안방이 보였다.
이제 막 감식이 끝났는지 과수반 여직원 한 명이 방에서 장비를 들고 나왔다.
이번엔 경수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창진서 형사 5팀 고경수 경사입니다. 혹시 감식 끝났습니까?”
“네, 방금 끝났습니다.”
“뭐 좀 나오는 거 있나요?”
나는 치헌과 경수가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방에 들어가 곳곳을 살펴봤다.
먼저 장신구가 있었던 화장대 위와 서랍부터.
“화장대 근처에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족적이 발견됐어요. 피해자 부부의 신발 사이즈는 각각 235, 275인데, 뜬금없이 250사이즈의 운동화 족적이 나왔죠. 그 족적은 열린 창문의 벽과 창틀까지 이어졌고요.”
귀로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현장 정보를 머릿속에 넣었다.
그러면서 각종 화장품들이 늘어서 있는 화장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집중해서 현장을 살폈다.
이어 현금이 있던 장롱, 다른 옷장을 포함한 방안의 모든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봤다.
“족적은 전체적으로 조금씩 지워져 있어요. 범인이 일부러 지우려 했는지 조금씩 문질러져 있죠. 하지만 괜찮아요. 창틀에 두 개의 족적이 선명하게 찍혀 있으니까요.”
창틀엔 젤라틴 판으로 찍어내 선명하게 보이는 족적과, 그것을 별도로 표시해 놓은 번호표가 있었다.
그 족적 외에도 방안 곳곳에 흐릿한 족적들과 번호표가 보였다.
나는 그것들이 훼손되지 않게 멀리서 유심히 바라봤다.
족적을 따라 범인이 움직이는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그때.
“반장님.”
밖에 있던 과수반 남직원 한 명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그녀 앞에 섰다.
“빌라 복도랑 계단, 옥상도 감식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잠시 말을 흐리고는 다시 이었다.
“용의자의 족적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네?”
“화장대가 있는 이 방 외에는 빌라 내에 단 한군데도 용의자의 족적이 없어요.”
“그럴 리가요. 범인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도주했을 리는 없잖아요.”
여직원이 당황한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보통 빌라 4층 침입 절도는 옥상에서 배관을 타고 내려와 창문을 열고 침입해 이루어지며, 이 현장도 창틀에 족적이 있기에 창문이 침입로인 줄 알았는데.
옥상과 빌라 복도에 족적이 없다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
하지만 난 오히려 좋았다.
증거의 발견뿐만 아니라 증거의 불발견도 용의자 범위를 좁힐 수 있는 단서가 되니까.
“그럼 일단…”
여직원이 경수에게 다시 말했다.
“저는 청으로 복귀해서 현장의 족적 자료들을 족윤적시스템에 넣어봐야겠어요. 기존 범죄자들 족적 자료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해보면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르니까요.”
“아 그러면.”
이번엔 치헌이 그녀에게 서류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사람들이 아닌지 확인되는 대로 회신 좀 해주시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누구죠?”
“사건 관련해서 그나마 용의자로 추려낸 사람들입니다.”
치헌이 미리 사건을 받고 정보를 좀 모아놓은 모양이었다.
“서류 상단에 나오는 첫 번째 용의자는 여기 건너편 빌라에 사는 남자입니다. 일주일 전 여기 아래층에 사는 여자를 망원경으로 훔쳐보다가 신고가 된 사람이죠. 당시 증거가 없어 내사종결되긴 했는데, 그 용의자는 이전에도 다른 곳에서 ‘훔쳐본다’는 신고를 여러 차례 받은 사람입니다.”
침입 절도를 위해선 현장에 돈과 귀중품이 어디 있는지, 또 평소 창문은 열려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하기에, 이 빌라를 몰래 관찰하는 습관을 가진 그를 용의자로 추리한 건 영리한 추측이었다.
이어 치헌이 서류를 다음 장으로 넘겨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다음 용의자는 이 근처 다른 빌라에 침입절도를 했던 피의자입니다. 일치하면 바로 회신 좀 부탁드립니다. 얘들은 현재 거주지까지 다 파악해놓은 상태라 회신 즉시 검거할 수 있거든요.”
이미 수법을 알고 있는 동종범죄 전과자 또한 유력한 용의자다.
그의 거주지까지 알아놓은 것에서 치헌의 치밀함이 엿보였다.
“알겠습니다. 이분들 족적 정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인해서 바로 알려드릴게요. 빠르면 오늘 내로, 늦어도 내일까지는 일치여부 회신해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어 과수반 직원이 추가 설명을 보탰다.
“족적 외에 다른 흔적은 없어요. 외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나 머리카락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장갑을 끼고 모자를 썼겠죠.”
지문과 모발엔 그렇게 유의를 해놓고 창틀에 족적은 선명히 남겼다라.
머릿속에 흐릿하게 스케치 되었던 그림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럼 저는 이만 청으로 복귀해보겠습니다. 족적 확인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족윤적시스템을 통해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나가면 범인검거와 실체적 진실에 빠르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잠시만요.”
지금은 굳이 그 시스템을 이용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풍경 좋은 곳에 바람 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