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38
38화. 풍경 좋은 곳에 바람 쐬러.
“족적 확인할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에 아랑곳 않고.
“밖에 계신 피해자 분들.”
방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현관 앞에 서있는 수영과 홍식을 불렀다.
“네!?”
“잠깐 안으로 들어와 보시죠.”
“들어가도… 되나요?”
“방염장비 착용하고 계시니 괜찮습니다. 판 밟고 들어오세요.”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수영이 먼저 들어왔고, 홍식은 다리가 불편한지 어기적거리며 조금 늦게 들어왔다.
물론 족윤적시스템을 이용하면 도움이 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질문 하나만 하면 머릿속 그림이 완성될 테니까.
내가 수영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쓰시는 화장품. 이 화장대 위에 있는 게 다인가요?”
뜬금없이 화장품을 묻는 내 질문에 과수반직원들과 치헌, 경수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영도 잠시 벙진 표정을 짓더니.
“네, 그게 다예요.”
대답을 들은 뒤 내가 치헌을 돌아보고 말했다.
“범인 찾았습니다.”
“응?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 치헌.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
한 명만 빼고.
“먼저 이 창틀의 족적에 주목해야합니다.”
나는 좌중을 둘러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과수반 직원 분의 말씀처럼, 방 안에 남겨진 용의자의 다른 족적들을 보면 조금씩 지워져 있지만 이 창틀의 족적은 아주 선명하게 찍혀있습니다. 마치 피해품을 훔쳐 창문을 통해 급하게 달아나느라 깜빡하고 지우지 못한 것처럼요.”
사람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내 말에 집중했다.
“그런데 창밖을 보면.”
내가 창밖을 내다보자 사람들도 창 가까이 모여들어 고개를 빼고 밖을 봤다.
“배관이 생각보다 창에서 멀리 위치해있습니다. 배관을 타고 창에 접근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실제로 배관과 창 사이의 거리는 꽤 멀었다.
배관을 통해 창에 접근하려면 있는 힘껏 점프를 해야 할 정도로.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이 아니고서야 빌라 외벽에서 그렇게 멀리 점프를 할 수는 없었다.
“배관을 이용할 수 없다면 이 창에 접근하는 방법은 옥상 난간에 줄을 걸고, 그 줄을 타고 내려와 접근하는 방법뿐입니다. 하지만 옥상엔 줄을 건 흔적은커녕 용의자의 족적조차 발견되지 않았죠.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결국…”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용의자는 ‘창문을 통해 진입한 게 아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
“그러면 왜 창틀에 이렇게 선명한 족적이 찍혀있을까요?”
다들 놀라는 표정.
그들은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내가 답을 말해주길 기다렸다.
“용의자는 ‘창문을 이용한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겁니다.”
“!!”
“왜냐하면 실제 자신은 몸이 불편해 창문을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방 안에 있던 누군가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창틀에 일부러 족적을 선명하게 찍어 침입로를 창문으로 설정하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자연스레 용의 선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죠.”
이어 내가 바닥에 찍혀 있는 다른 족적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방안에 찍혀있는 조금씩 지워진 족적들. 방안에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을 정도로 치밀한 용의자가 저렇게 어설프게 족적을 지웠을 리 없습니다. 저건 지운 게 아니라…”
내가 어깨를 떨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용의자가 원래 저렇게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
“다른 사람인 척 위장을 하기 위해 사이즈가 다른 신발을 구한 뒤, 자연스런 보폭을 남기기 위해 그 신을 억지로 신고 걸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걸음걸이는 속일 수 없었죠.”
이제 방 안의 사람들도 내가 보고 있는 그를 힐끔거렸다.
“그는 다리가 불편해 창 위에 올라갈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수사에 혼란을 주기 위해선 창틀에 제대로 족적을 찍어야 했죠. 그래서 아마 그는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창틀에 족적을 찍었을 겁니다. 그래서 창틀에만 이렇게 선명한 족적이 남은 거예요.”
“……”
“안 그렇습니까, 박홍식 씨? 아까 들어오실 때 보니 다리를 끌며 걸으시던데.”
“…!”
나는 그의 걸음걸이를 보기 위해 일부러 수영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내 부름에 홍식이 흠칫 놀라더니.
“나… 나는 모르는 일입니다.”
혐의를 부인했다.
나는 화장대 위에 반짝이는 작은 가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펄 가루를 보고도 시치미 뗄 수 있을까요?”
“…?”
“화장대 위에 펄 가루가 있는 게 왜? 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정수영 씨가 쓰는 화장품 중엔 펄 가루 화장품이 없습니다. 그럼 이 펄 가루가 어디서 나왔을까요?”
이어 나는 다른 옷장에서 남성 자켓 하나를 꺼냈다.
“박홍식 씨 옷에서 나온 겁니다. 자켓 카라에 묻어 있는 펄가루랑 화장대의 것이 같은 거예요.”
“…!”
“그리고 이 가루는 장롱 안에도 남아있죠.”
내가 가리킨 장롱 측면 구석에도 작은 가루가 빛나고 있었다.
홍식은 이제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치헌과 경수를 비롯한 직원들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홍식 씨가 어디서 이 펄 가루를 묻혀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루는 박홍식 씨가 화장대와 장롱을 다녀갔다는 증거가 됩니다. 모르는 척 했지만 사실 수영 씨의 비상금 위치도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때 회사에 있었…”
“그 시간에 정말 회사에 계셨는지, 연차를 내거나 외출을 하진 않으셨는지 제가 전화해서 확인해볼까요?”
그는 입을 닫은 채 푸욱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창문을 침입로에서 배제하면서부터 사실상 용의자의 범위는 매우 좁혀졌습니다. 남은 침입로는 현관문 밖에 없고, 도어락 비밀번호를 아는 분은 정수영 씨와 박홍식 씨뿐이니까요. 정수영 씨는 피해자이니, 용의자로 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사람은 박홍식 씨입니다. 거기다 발을 끈 듯한 족적과 이 펄 가루들. 이 모든 추측과 정황이 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
“사실 배우자의 물건을 절도했을 때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가족 사이에 발생한 재산범죄에 대해선 국가의 개입을 자제하려는 취지에서 법에 예외를 두었죠.”
이 규정은 ‘친족상도례’라고 하여,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간의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면제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하고 범인이 아닌 척 연기를 해 공권력을 낭비시키고 수사상 혼란을 주면, 이 절도건과 별개로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로 처벌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
“죄 인정 안 하실 겁니까?”
내가 말하는 내내 어깨를 벌벌 떨고 있던 홍식은 마침내.
“죄송합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죄를 시인했다.
사실 죄를 인정하는 순간, 이 사건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배우자간 절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며, 형사처벌 대상이 아닌 사건에 대해선 경찰이 수사를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박홍식 씨.”
하지만 난 궁금했다.
“왜 돈을 훔친 겁니까?”
“……”
“옥상에는 족적을 남기지 않은 것, 전화 한 통으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회사에 있었다.’는 알리바이 진술 같은 것을 보면, 홍식 씨가 꾸며낸 이 범죄는 굉장히 허술했습니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범죄였다는 거죠. 다시 말해…”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돈이 급했다는 겁니다.”
“……”
“자켓의 펄 가루는 다른 이성에게서 묻혀 오신 것 같긴 하지만, 이성에게 사천 만원이나 되는 돈을 급하게 쓰실 일은 없을 거 같고.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내 말에 마침내 홍식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더니.
“빚을 좀 졌습니다…”
울음 섞인 토로를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도박에 빠져 빚을 조금… 아니 많이 졌습니다.”
“……”
“도박장에 돈 빌려주는 사람들한테 5천 조금 넘는 돈을 빌렸습니다. 상환기일은 다가오는데 돈을 따지는 못해 수중에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한 대로 아내 비상금을…”
그 순간.
짝-!
수영이 홍식의 싸대기를 올려붙였다.
“이 미친 인간아! 나이 먹고 술집 여자 계집질 한 번 씩 하는 건 그래 내가 참아준다. 그런데 뭐? 도박으로 몇 천을 날렸다고!?”
“……”
“그 돈이 어떤 돈인 줄 알어!? 내가 차곡차곡 모은, 나중에 우리 아들 장가보낼 결혼자금이라고! 당신 돈 펑펑 써대는 거 보고 내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생활비 쪼개 조금씩 모은 피 같은 돈이라고! 버는 돈을 모으지도 못할망정 뭐? 도박 빚!? 이 미친 인간아!”
마구 소리치며 울어대는 수영.
그녀를 보면서 나는 ‘부부’와 ‘연인’이 주체가 되는 판례들을 상기했다.
화내고 소리치고 싸우고 눈물 흘리는 그들.
판례집 속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지금 수영과 홍식도 마찬가지.
한편으론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뭔지.
그 모든 단점을 상쇄시킬 만한 장점이, 사랑엔 있는 건지.
아무튼 할 일을 마치 나는.
“절도피해에 대한 보상을 원하시면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시면 됩니다. 도박에 관해선 따로 출석시켜 조사하겠습니다.”
민형사절차를 안내 후.
“팀장님, 고부장님. 서로 복귀하시죠.”
현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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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창진구 내 한 카페.
“이 사람은 열 대나 맞았잖아요.”
오늘도 정우는 내게 질문을 쏟아내고 있다.
“그에 대항해서 상대방을 한 대 정도 때린 건 정당방위 아니에요?”
“정당방위로 보긴 어려워. 정당방위는 말 그대로 ‘방위’하는 행위여야 하거든. 열 대를 맞고 한 대를 때렸다고 하더라도, 때리는 건 공격행위잖아.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공격행위가 정당방위가 되긴 힘들어.”
“아…”
경청하고 있는 정우 옆엔 은빈이 앉아있다.
오늘은 은빈을 통해 정우가 나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내가 보는 판례집을 보여 달라면서.
“그 사람은 억울하겠어요. 열 대 맞고 한 대 때렸는데 쌍방폭행으로 같이 입건되다니.”
“억울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억울함을 보상하기 위해 정당방위 요건을 완화할 수는 없어. 법은 사회질서 유지에 그 목적을 두고 있으니까. 방어권이 아닌 공격권을 합법행위로 인정하는 순간, 아마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지러워질 거야.”
“음, 듣고 보니 또 그럴 것도 같네요. 그런데.”
정우가 두꺼운 판례집을 들고 촤르르 넘기며 말을 이었다.
“한국에 범죄가 이렇게 많이 일어나요?”
“응.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어.”
“그 많은 범죄를 경찰이 다 처리하고요?”
“검찰, 법원과 함께 처리하는 거지만 1차적으론 경찰이 처리한다고 볼 수 있지.”
“오…”
그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제 형 형사라면서요. 그럼 이런 사건들을 가장 가까이서 처리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신기해요. 티비에서만 보던 형사가 제 앞에 있다니.”
“티비엔 항상 형사들이 사건을 잘 해결하는 모습만 나오잖아. 그들과 현실의 형사를 똑같이 생각해선 안 돼. 현실에선 사건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미제 사건도 생기거든.”
“미제요?”
다시 그의 눈이 반짝였다.
“형도 해결하지 못한 사건이 있어요?”
“난 아직 없어. 형사 업무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지만 앞으론 생길지도 모르지.”
“미제사건은 왜 생기는데요?”
“범행동기 또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아요?”
“거의 없어. 현대엔 범인 검거율이 거의 100%에 달하거든. 범죄는 대부분 돈 또는 원한관계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용의자가 금방 추려져. 설령 이런 동기가 없는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다른 증거로 범인을 잡아내면 돼. 과학수사가 발달했고, 곳곳엔 CCTV가 있으니까.”
“그럼…”
그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물었다.
“범행 동기와 증거가 있는데도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
“원한이 있던 사람은 범인이 아니었고, 현장에 범행을 했다는 증거는 있지만 그 증거가 범인을 가리키지 않는 경우요.”
나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생각했다.
그런 경우가 있었는지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경우는 없어. 범행 동기와 증거가 있다면 범인은 반드시 잡을 수 있어. 요즘은 그 둘 중 하나만 있는 경우에도 범인을 검거하는 경우가 많거든. 하지만 만약 정우 네 말대로 동기와 증거를 갖고도 범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라면…”
내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완전히 새로운 발상으로 사건을 다시 풀어나가 봐야겠지. 기존의 생각과 방법으론 찾지 못한 범인이니까.”
“완전히 새로운 발상…”
정우가 나를 또렷이 쳐다보며 덧붙였다.
“형은 못 잡는 범인이 없을 것 같아요.”
“…?”
“기존 수사방식도 잘 알고 있고, 새로운 발상에도 탁월할 테니까.”
그리고는 판례집을 탁 덮었다.
“최대한 빨리 보고 돌려드릴게요.”
“그 판례집. 너 가져도 돼.”
“정말요?”
“응. 난 다 봤거든.”
내 말에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감사합니다.”
하고 옅게 미소 지었다.
이젠 그의 미소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얘기 끝났죠?”
정우 옆에 있던 은빈이 나갈 채비를 하며 내게 물었다.
“네, 끝났습니다.”
“가자, 정우야.”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굳은, 토라진 얼굴이었다.
오늘 그녀와는 전혀 대화를 하지 않았고, 정우가 원하는 대로 판례집도 가져다줬는데.
그녀는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을까?
“다음에도 정우 데리고 나오면 되죠?”
“……”
“아예 정우 번호를 가르쳐드릴까요? 이럴 거면 차라리 정태 씨랑 정우 둘이서 보는 게…”
“아뇨.”
내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다음엔 은빈 씨만 나오십시오.”
“… 네?”
“그리고 그때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물었다.
“저랑 풍경 좋은 곳에 바람 쐬러 가실래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