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39
39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곳.
은빈은 당황한 듯 잠시 멈칫하다가, 내게 물었다.
“풍경 좋은 곳에… 바람 쐬러요?”
“네. 맛있는 것도 먹고요.”
“어딜 가자는 거죠?”
바람, 풍경, 맛있는 것.
이 세 가지를 떠올리니 딱 맞는 장소가 머리에 그려졌다.
“바다 어떻습니까?”
“바다요!?”
‘바다’ 소리에 은빈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다시 표정을 차갑게 바꿨다.
“생각해볼게요. 그런데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요. 되면 연락드리죠.”
말투와 표정, 태도.
그녀는 온몸에 얼음을 두른 듯 차가웠다.
단 한 군데만 빼고.
“저랑 정우는 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 한 군데는 입 꼬리.
그녀의 입 꼬리가.
“네, 다음에 뵙죠.”
미세하게 씰룩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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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야간 근무.
오늘은 우리 형사 5팀이 야간 당직근무를 서는 날이다.
나는 팀원들과 함께 사무실 한 편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인기 아이돌 그룹 ‘블랙 몬스터’의 멤버 김찬혁 씨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버팔로 클럽에서 마약 판매 및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김 씨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김 씨의 혐의에 관련된 증거자료들을 이미 다 수집해놓았으며 곧 기소의견 송치를 할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이야, 감쪽같이 속았네.”
경수가 혀를 차며 말했다.
“김찬혁 저놈 방송에선 그렇게 젠틀한 척, 예의바른 척 하더니. 완전 쓰레기였구만.”
“그러게요.”
옆에 있던 지환도 말을 거들었다.
“공개된 메시지 내용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요. 직접적으로 마약이나 성매매를 언급한 건 아니지만, ‘가루에 취하고 싶으신 분?’, ‘잘 주는 애들로 대기 중.’ 이런 메시지들로 봐선 이미 오래전부터 마약판매랑 성매매를 해왔던 거 같아요.”
“집도 으리으리한 데 살고 차도 슈퍼카만 타고 다니더만. 이유가 있었네.”
“그렇죠. 다 검은 돈으로 산거겠죠.”
“지환이 너 정록이랑 같이 저 클럽 가봤다고 안 했었나?”
“네? 아니에요. 저랑 정록 반장님은 홍대나 몇 번 갔었지, 저 동네는 안 가봤어요.”
정록은 서른 살. 지환은 스물여섯.
경수는 어느새 그들과 말을 놓았다.
나도 그들에게 말을 편히 해도 괜찮다고 했지만, 그들은 내가 계급도 경위인 데다 직위까지 부팀장이라 막 부르기가 그렇다며, 서로 말을 높이자고 했다.
나는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지환이 고개를 돌려 날 보고 물었다.
“탁주임님은 클럽 가보셨어요?”
“안 가봤습니다.”
“역시. 탁주임님은 그런 데 안 어울려요. 쉬는 날에도 판례 보신다고 하시니…”
“……”
“게다가 요즘 클럽에서 저렇게 마약, 성매매 같은 불법도 많이 일어나니 탁주임님이랑은 더더욱 안 어울리죠.”
“그런데.”
이번엔 내가 지환에게 물었다.
“김찬혁 저분이 아무리 유명하다해도 마약 판매 및 유통, 그리고 성매매 알선을 자기가 다 관리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하죠. 연예인은 인기가 많은 사람이지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김찬혁 혼자라면 외국에서 마약 들여오는 것조차 못할 걸요?”
“그럼 도와주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요?”
“배후가 있겠죠. 어마어마한 힘을 가진 사람들. 뭐 국회의원이나 언론인. 검찰 경찰에도 인맥이 있을 테고요.”
“그럼 그 사람들 모두 조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묻자 이번엔 정록이 답했다.
“원칙은 조사해야하는 게 맞죠. 하지만 일개 경찰 수사관들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버팔로 클럽 연계되어 있는 권력자들은 이미 빠져나갈 구멍 다 만들어 놓았을 테고, 경찰 각 부서 과장들과 그 관할서 서장은 권력자들의 입맛에 맞춰 수사를 하라고 지시할 텐데요.”
“그럼 본청 감찰에서 나서서 그런 수사 비리를 없애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당연히 감찰이 나서야죠.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 움직임이 없는 걸 보면, 감찰도 한 패라고 봐야죠.”
“……”
그럼 정말 답이 없었다.
안과 밖을 다 막아놓고 의도된 수사를 하다니.
정록의 말대로라면 배후 세력들이 훨씬 악질의 범죄자들인데.
그들은 정말 잡을 수 없는 걸까?
“그래도 이번엔 혹시 몰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경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조직 내 청렴경찰의 마지막 희망, 유관우 청장이 경찰 명운을 걸고 수사하겠다고 나섰으니까.”
티비엔 정복을 입고 정갈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중년 남자의 사진이 나왔다.
명찰에 적힌 이름은 유관우.
어깨엔 치안감을 상징하는 큰 무궁화 두 개가 달려있었다.
날카로운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전체적으로 다부진 인상이었다.
내가 경수에게 되물었다.
“청렴경찰의 마지막 희망이요?”
“그래. 어쩌면 유관우 청장은 대한민국에 하나 밖에 없는 ‘청렴한’ 초 고위 경찰간부인지도 몰라. 완전 올곧은 성격이거든. 저 사람한테 불의와 타협은 없어. 상대가 권력자이든 뭐든 그냥 법으로 밀어버리지.”
“아…”
“서울 경기에서 발생 후 기소된 고위공직자 비리 사건은 거의 다 유관우 청장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돼. 마음만 곧은 게 아니라 실력도 출중하다고 볼 수 있지.”
나는 티비 화면을 보며 그의 외모와 이름을 머리에 새겼다.
“아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갑자기 경수가 손으로 티비 화면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쟤들 너무 부럽다.”
유관우 청장 사진에 이어 티비엔 손님들이 들어 찬 버팔로 클럽의 모습이 나왔다.
젊은 남녀들이 주먹하나 들어갈 공간만 띄워둔 채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경수는 티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도 잘 놀 줄 아는데… 저렇게 놀아본지가 언젠지 이제 기억도 안 나네.”
이어 그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 축 늘어뜨리더니, 허공을 보고 외쳤다.
“아, 나도 클럽 가고 싶다!”
그때.
끼익-
저벅- 저벅-
사무실 문이 열리고 웅장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클럽 가고 싶으면 가야지. 내가 보내줄게.”
치헌이 우리 앞으로 왔다.
그의 손엔 서류뭉치가 들려 있었다.
경수가 자세를 똑바로 하고 그에게 대답했다.
“하하. 보내주셔도 못 갈 거예요. 나이 제한에 걸려서.”
“우리 창진서 관내 ‘쿠잔’이라는 클럽은 마흔까지 입장 된다는데?”
“에? 정말입니까?”
“응. 방금 질서계장한테 듣고 왔거든.”
“질서… 계장님한테요?”
“어. 그리고 바로 오늘.”
치헌이 목소리 끝에 힘을 주고 말하면서.
탁-
경수 책상 앞에 서류 뭉치를 하나 던졌다.
서류 상단엔 [창진서 형사계, 질서계 ‘쿠잔클럽’ 합동 수사계획] 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 팀이랑 질서계 직원들이 같이 그 쿠잔 클럽을 덮칠 거야.”
“헉!”
“프린트 따로 다 해왔으니 눈으로 보면서 내 설명 들어.”
치헌이 프린트 요약본을 하나씩 나눠줬다.
갑자기 클럽을 덮치겠다니.
나는 형사계와 질서계가 연계해서 수사할만한 상황들을 머리에 그려봤다.
“쿠잔클럽은 우리 창진서 내에서 그렇게 유명한 클럽은 아니야.”
프린트를 다 돌린 후 치헌이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곳’이지. 그게 뭘 뜻하겠냐?”
그의 질문에 지환이 답했다.
“몰래 각종 불법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죠.”
“그렇지. 일단 첩보 들어와 있는 건 성매매야. 클럽 2층 VIP 공간에서 파티형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거야.”
“파티형 성매매요?”
“어. 서류 다음 장 넘겨 봐봐.”
서류를 한 장 넘기니 버팔로 클럽 2층 VIP 공간 내부 구조를 그려놓은 평면도가 나왔다.
내부 구조는 마치 패션쇼장처럼 되어 있었다.
가운데 쭉 걸어 나올 수 있게 길쭉한 무대가 있었고, 그 양 옆으로 동그란 테이블들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하, 나도 질서계장한테 얘기 듣고 깜짝 놀라긴 했는데. 요새는 이 씨발놈들이 어떻게 성매매를 하냐 하면…”
열이 받는지 치헌이 후, 하고 한숨을 한 차례 내뱉고는.
평면도가 그려진 서류를 앞으로 내보이며 볼펜을 들고 먼저 테이블을 가리켰다.
“이 테이블엔 초대된 VIP들이 앉아. 혼자 온 놈은 혼자, 또 무리지어 온 놈들은 두 명, 세 명이 앉기도 해. 걔들 앞엔 테이블마다 색깔이 다른 장미들이 여러 개 놓여 있는데 이 장미 하나가 현금 백만 원을 의미한대.”
“백만 원이요?”
“성매매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이야.”
“헉…”
놀라는 경수를 뒤로하고 치헌이 이번엔 볼펜으로 무대를 가리키며 계속 설명을 이었다.
“이 무대로 성매매 여성들이 한 명씩 걸어 나와서 1분간 쇼를 펼쳐. 야한 옷을 입고 나와서 음란한 자세를 보여준다던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 대. 이때 VIP 고객들이 그 여성이 마음에 들면 무대 위로 장미를 던지는 거야. 100만원을 시작으로 성매매 경매를 부치는 거지.”
“이런 미친…”
“A테이블에서 장미 하나를 던지더라도 B테이블에서 두 개를 던지면 B테이블 사람이 그 여성을 차지하는 거야. 이런 식으로 경매를 부치면 몇 백만 원은 우습게 넘어간대. 이러니 전국에 내로라하는 성매매 여성들이 이쪽으로 다 몰리고, 또 유흥 좋아하는 돈 많은 VIP들도 이쪽으로 몰리는 거야.”
치헌은 여자 연예인 지망생이나 레이싱 모델들도 쇼걸에 포함되어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들은 팀원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욕을 흘렸다.
나도 이런 식의 성매매 유형은 처음 들어봤다.
파티형 성매매라니.
사람을 경매에 부치는 일을 어떻게 파티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테이블엔 장미뿐만 아니라 농구공만한 황금마차도 있어.”
“황금마차요? 그건 뭡니까?”
“올인. 이 여자는 오늘 내 여자이니 장미를 그만 던지라는 뜻이야.”
“그럼 돈을 얼마 지불해야 하는데요?”
“여자가 부르는 데로 준대. 질서계 첩보로는 최대 삼천까지 부른 여자가 있대.”
“헐. 하룻밤에 삼천이요?”
“그래. 정말 미친놈들이지. 이 황금마차는 황금마차로 밖에 막을 수 없어. 나는 저 여자가 마음에 드는데, 저쪽에서 황금마차를 던졌다? 그럼 나도 황금마차를 던져야 한다는 거야.”
“황금마차랑 황금마차가 붙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1:1로 단 1회 경매에 들어가. 단 한 번의 입찰로 끝나는 경매. 그래서 황금마차끼리 붙으면 입찰금이 천만 원이 넘어갈 때도 꽤 많대.”
“와… 진짜 상상도 못할 곳이네요.”
정말 상상도 못했던 말의 연속.
“팀장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궁금한 게 생겼다.
“말씀하신 내용은 전부 성매매 관련이고 성매매는 질서계 주관으로 처리하지 않습니까? 저희 형사과랑 합동으로 수사를 계획했다면 성매매 말고 다른 범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리 큰 범죄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부서끼리 접점이 없으면 합동수사를 하지 않는다.
만약 치헌이 말한 대로 성매매만 저렇게 큰 규모로 일어났다면, 창진서 질서계는 다른 경찰서 질서계나 지방청 혹은 본청 질서계에 지원요청을 했을 것이다.
형사과에 합동수사를 요청했다면 형사부서에서 처리하는 범죄가 추가로 연루되어있다는 뜻인데.
아니나 다를까.
“정태. 좋은 질문이야.”
치헌이 손가락을 탁 튕기고는 서류를 몇 장 뒤로 넘기며 물었다.
“성매매 장소에서 주로 발생하는 범죄가 뭐겠냐?”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