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4
4화. 스스로는 낼 수 없는 자국.
경찰대 졸업 후 2년 동안은 의경 소대장으로 병역 대체복무를 했다.
부관과 중대장 직을 맡고 있는 직원들은 이렇게 넉넉한 월급을 받으며 편안히 지내는 군 생활이 어디 있냐며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뒤에선 이런 경찰대 특혜를 욕하는 듯했다.
4년 뒤인 2018년부턴 이 복무 혜택이 없어진다는 뉴스기사가 나왔다.
소대장 복무는 실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점호와 체조를 하고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다.
매일이 지루하고 따분했다.
시위 현장에 나가 죽창을 맞고 최루가스를 마시는 경험도 했지만,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재미없는 부대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규정대로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덕분에 FM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별명도 결국 욕이었다.
길고 긴 병역 대체복무가 끝난 뒤에야 마침내.
[매천파출소]
지역경찰 업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순환보직’이라고 해서, 병역을 마친 경찰대 졸업생들은 6개월간 의무적으로 지구대나 파출소에 근무해야 한다.
오늘은 파출소 첫 출근 날.
경비부서를 떠나 이곳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수사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조금 흥분된 상태로 파출소 출입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매천파출소로 발령받은 경위 탁정태입니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어깨에 힘을 바싹 주고 거수경례를 했다.
의경제대에서 밥 먹듯 하던 거였다.
“……”
파출소 안엔 사람이 여섯 명 있었는데, 그 누구도 경례를 받아주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중년 경위 중에는 벌써부터 나를 시기의 눈빛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대에서 한철이 짓던 것과 같은 표정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키가 큰 직원이 쪼르르 내 앞으로 뛰어나왔다.
“아이고, 직원끼리 거수경례는 안 해도 돼요.”
그리고는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내민다.
“반가워요. 고경수 경사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손을 내리고 그와 악수했다.
큰 키에 쌍커풀 없이 길게 빠진 눈, 날렵한 턱선.
사람들이 말하는 미남의 기준에 부합하는 외모였다.
나이는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 정도.
악수를 하는 잠깐 사이에도 그는 괜히 웃고 추임새를 넣어댔다.
촐랑거리는 행동을 보니 다른 팀원들과는 다르게 밝고 쾌활한 사람 같았다.
다르게 말하면 경박스럽다고 할 수도 있고.
“이야, 자알 생긴 엘리트가 들어오셨네에. 좋아 좋아.”
그가 내 외모를 칭찬했다.
그러고 보니 나와 그가 서로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키가 좀 더 작을 뿐.
“탁경위 순환보직 기간 동안 나랑 한 조가 될 거예요. 이를테면 멘토 같은 거죠. 계급은 내가 낮긴 하지만. 하하하.”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하하. 제가 아는 게 없어서 가르쳐드릴 게 있을는지 모르겠네요. 자, 여기는 우리 팀장님이신…”
그때부터 경수가 팀원들을 쭉 소개시켜줬다.
전부 하나같이 나와 눈을 잘 못 마주쳤다.
그렇게 어색한 인사가 끝난 뒤.
“근무복 가져 왔죠?”
“여기 있습니다.”
“오늘 소장님은 연가라 자리에 안 계시니, 환복하고 나랑 관내나 한 바퀴 돌까요?”
“알겠습니다.”
근무복을 갈아입고 나와서 곧장 순찰차를 탔다.
차 안엔 신고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 경광등 스위치박스, 차량용 무전기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임용 2년차지만 실제 순찰차 내부는 처음 봤다.
“사무실 분위기가 썰렁하죠?”
운전대를 잡은 경수가 말을 걸어왔다.
“탁경위를 경계해서 그래요. 나이 많은 선배들은 경찰대라고 하면 일단 싫어하거든. 자기들은 30년 세월을 바쳐 겨우 경위 계급장을 얻었는데, 젊은 사람이 같은 계급장을 달고 나타나니 샘이 나는 거지.”
샘이 난다라.
역시나 그들도 한철처럼 날 시기하는 건가.
“그래도 난 탁경위 좋게 봐요. 거수경례하는 경찰대생은 처음 봤거든. 첫 날부터 건들거리고 예의 없이 구는 애들도 많은데 말이에요.”
“경례 계속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딱 봤을 때 괜찮은 사람 같았다 이런 말이에요.”
괜찮은 사람.
잘 생겼다는 말에 이어 그 말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탁경위는 머리가 워낙 좋으니 파출소 업무는 금방 배울 거예요. 부족하지만 내가 열심히 가르쳐 줄게요.”
“감사합니다.”
그때.
딩 딩 딩-
네비게이션에서 종소리가 울리더니 무전이 들려왔다.
– “매천 하나 순마 1189번 사건 둘치.”
– “칠팔(알겠다.)”
매천 순찰차 관할에 1189번 신고가 접수되었으니 조치하라는 말이었다.
네비게이션엔 신고 내용이 현출되어 있었다.
‘누가 우리 집 문을 자꾸 열려고 해요.’라는 신고였다.
“어휴, 대낮부터 어떤 미친놈이 술을…”
경수가 볼멘소리를 하며 신고 위치로 차를 돌렸다.
“이런 신고는 99프로 주취자예요.”
“주취자요?”
“술이 떡이 돼서 남의 집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고 막 문을 열려고 하는 거죠.”
그럴 듯한 추측이었다.
그는 어떻게 신고내용만 보고 곧바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걸까?
“파출소만 15년 정도 근무하다보니 이제 신고 내용만 봐도 현장이 훤히 보여요. 이건 그냥 주취자를 귀가시키기만 하면 끝나는 신고예요.”
“간단하네요.”
“딱 보면 척 하고 알아내는 거. 어찌 보면 경찰은 법지식보다 이런 센스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죠. 판검사랑 다르게 우리는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다루는 사람들이니까.”
센스는 감정의 영역이다.
경수에겐 간단하지만 나에겐 복잡한 영역.
“이 빌라 3층이에요.”
어느새 순찰차는 현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빌라 3층으로 올라갔다.
“응? 아무도 없네? 알아서 집에 갔나보다.”
현장에 주취자는 없었다.
경수는 그가 술이 깨서 자진귀가 했을 거라며 신고자만 만나보고 철수하자고 했다.
문을 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신고자 집 문고리가 헐거워져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20대 초반의 여성이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매천파출소 고경수 경사입니다. 신고하셨죠?”
“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신고자의 얼굴과 팔이 보였다.
“문 열려고 했던 분은 안 보이네요.”
“그러게요. 다른 데로 가셨나 봐요.”
“아마 주취자일 겁니다. 술에 취해서 집을 잘못 찾아온 걸 거예요.”
“아, 네.”
“다른 피해는 없으시죠?”
“네, 괜찮아요.”
“그럼 저희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경수는 간단하게 질문을 마치고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 저기 경찰관님 발 좀… 치워주실래요?”
지역경찰 15년 경력의 경수도 놓친 게 있었다.
나는 문틈 사이에 발을 넣고 비켜주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장.
“지…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신고자의 팔을 붙잡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녀의 팔에 꽉 쥔 듯한 손자국이 나 있었다.
“헉. 탁경위님!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여성 신고자의 팔을 이렇게 잡으시면…”
계단을 내려가려던 경수가 뛰어오더니 펄쩍 뛰며 나를 뜯어말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그대로 붙잡은 채 말했다.
“자기 팔을 자기가 잡았을 땐 엄지가 바깥으로 향하는 손자국을 낼 수가 없어요.”
“… 네?”
경수가 의아하다는 듯 되물으며 여자의 팔을 살폈다.
왼팔에 엄지가 바깥으로 향한 손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왼손으로 왼팔을 잡은 손자국.
스스로는 낼 수 없는 자국이었다.
“이 문을 열려고 했던 사람.”
정말 오랜만에.
“지금 이 집 안에 있죠?”
머릿속 색깔과 도형들이 마구 살아 움직였다.
센스가 빛을 발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