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정신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
우리는 병원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피해자가 있다는 병원 8층에 내리자 굳게 닫혀 있는 철문이 나왔다.
“여기 7, 8층은 폐쇄병동이야. 출입이 자유롭지 않지. 중증 환자들은 함부로 밖에 내보낼 수 없거든.”
치헌이 태연하게 말하고는.
띵동-
철문 옆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삐익-
철컥-
거친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
문 앞 복도를 돌아다니던 환자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다들 장시간 씻지 않았는지 머리엔 기름기가 가득했고, 환자복도 여기저기 얼룩이 져 더러워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멍한 눈을 하고 꺼구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매우 느리고 불안정해서, 다들 좀비 같았다.
그 중 한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팔을 붙잡고 말했다.
“치… 친구가 오기로 했어요. 가… 같이 가볼래요?”
“친구요?”
“우… 우주선을 타고 곧 날아올 거예요. 저… 기 하늘 위로…”
“… 네?”
이어서 또 다른 사람이 내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부산에 있는 제 동생이 위험해요! 지금 당장 가봐야 해요!”
“무슨 일입니까? 동생이 위급하다고 연락 왔어요?”
“아뇨, 제가 직접 봤어요.”
“… 예?”
“내가 직접 보고 들었다고요! 지금도 보고 있어요! 보세요. 동생이 파도에 휩쓸리려고 하잖아요!”
그가 허공을 가리키며 막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환자분!”
덩치 좋은 남자 보호사 한 명이 와서 그를 뜯어말렸다.
가슴에 새겨진 이름은 김현철.
“이분들 형사에요 형사. 일하러 오신 거니 방해하지 마세요.”
“혀… 형사요?”
형사소리를 듣더니 그들이 슬금슬금 우리를 피했다.
현철이 나를 보고 말했다.
“저분들 심한 망상장애 때문에 저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말하는 것들이 다 망상이었다니.
저 정신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치헌이 현철을 보고 물었다.
“혹시 아까 저랑 통화하신 분입니까?”
“아, 네 맞습니다.”
치헌이 미리 병원에 연락을 해놓은 모양.
“말씀드린 사건 피해자 김백만 씨가 8층 병실에 입원해 있다고 하던데, 몇 호실에 있죠?”
“아, 그거 방금 전에 제가 다시 확인해보니까…”
보호사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김백만 씨 어제 저녁에 7층으로 병실 이동하셨더라고요. 출동하셨던 지구대 경찰관 분이 용의자로 지목받는 보호사랑 같은 층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아, 그 심천호 보호사가 8층에 근무하나보죠?”
“네, 맞습니다.”
“지금 근무하고 계시나요?”
“네, 지금 있어요.”
“그럼 그 보호사부터 한 번 만나보죠.”
“이쪽으로 오세요.”
현철이 앞장서고 우리가 뒤따라갔다.
그를 따라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경수가 그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입원하는 곳입니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요. 뭐 조현병, 분노조절장애, 망상장애 같은 병명으로 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코올중독으로 오죠.”
“아, 술 때문에요?”
“네. 정신을 가장 빨리, 또 쉽게 망가뜨리는 게 술이거든요.”
“아. 그런데…”
경수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병동에서도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누가 몰래 갖고 들어온 거 아닙니까?”
“몰래 가지고 들어온 게 아니라 밖에서 먹고 온 거예요.”
“네? 여기는 폐쇄병동 아닌가요?”
“폐쇄병동 환자들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은 외출을 할 수 있어요. 나가서 술을 먹고 들어오는 게 문제긴 하지만.”
“헉.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러 왔는데, 술을 먹는다고요? 못 먹게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외출은 법적으로 보장된 환자들의 권리에요. 그렇다고 보호사가 환자 외출할 때마다 일일이 따라붙어 술 못 먹게 감시할 수도 없고요. 그저 병원에선 술을 마시고 복귀한 환자들에게 외출 2주 금지 같은 패널티를 줄 뿐이죠.”
이건 환자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문제였다.
이런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아마 환자들은 평생 병을 고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의 말이 이해되기도 했다.
경찰도 구속영장이 기각된 피의자를 일일이 따라다니며 감시하지는 못하니까.
“저희 병원은 5, 6, 7, 8층 이렇게 운영되는데 위층으로 갈수록 증상이 심각한 환자가 있다고 보면 돼요. 그래서 7, 8층은 폐쇄병동이죠. 폐쇄병동 환자들 중 절반은…”
그가 침을 질질 흘리며 맹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환자들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런 상태라고 보시면 돼요. 술, 불안, 망상 같은 것들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 사람들이죠. 저분들은 사실 완전한 치료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거나 아주 더디게 나아질 뿐이죠.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현철이 다시 다른 쪽 환자들을 보며 눈짓했다.
똑바로 서서 초롱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수근덕거리는 이들.
그들은 외관상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저런 상태죠. 뭐 저 사람들은 괜찮네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저런 사람들이 더 무서울 수도 있어요. 술이 들어가거나 분노에 휩싸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거든요. 작년엔 다른 환자의 두 귀를 물어뜯어버린 환자도 있었어요.”
“헉…”
징그러운 상상을 한 듯 표정을 찡그리는 경수.
그에 반해 현철은 덤덤한 표정으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기괴하고 끔찍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듯했다.
의사가 피에 익숙해지고, 경찰이 범죄에 익숙해지듯.
그도 이곳 환자들의 만행에, 환자들의 아픈 상태에, 환자들의 측은한 미래에 대해 무뎌진 듯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현철을 따라 들어간 곳은 8층 카운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의 직원이 앉아 있었다.
카운터 전면은 모두 플라스틱 유리로 되어 있어서 복도를 다 볼 수 있었다.
“천호. 여기 형사님들 오셨어.”
현철이 말하자 남자가 뚱한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봤다.
가슴에 새겨진 이름은 심천호.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그도 현철만큼 덩치가 좋은 보호사였다.
그가 치헌을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제 경찰관들 왔다 갔는데, 또 왜 오셨어요?”
“그분들은 지구대 경찰관이고 저희는 담당 형사입니다. 잠시 이야기 좀 가능할까요?”
천호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뒤편 탈의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문을 닫고 치헌이 그에게 말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시겠지만, 수사할 때 동종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기 때문에 심천호 씨한테 별도의 진술을 좀 듣고자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하, 예전 일을 왜 또 끄집어내서… 뭐 마음대로 하세요. 전 결백하니까.”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어제 일어났던 김백만 씨 강도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진술하셨던데, 맞나요?”
나는 그들이 얘기하는 동안 문 상단에 난 유리창으로 카운터 쪽을 둘러봤다.
뚫려있는 전면으론 복도를 지나다니는 환자들이, 그 안쪽엔 카운터에 배치되어 있는 온갖 물건들이 보였다.
“네, 전혀 모릅니다.”
“어제 사건 당시 김백만 씨가 강도 범인을 ‘보호사’로 지목했는데. 알고 계시나요?”
“그 술주정뱅이 말을 믿으세요?”
“술주정뱅이라서 어제 수갑 찬 사람 없이 다음날인 오늘 저희가 병원에 찾아 온 겁니다. 원래 같았으면 강도사건 났을 때 무조건 현장에서 범인 찾아 체포하게 되어 있어요. 피해자가 허튼 소리 할 확률이 다분해서 강도가 아닌 절도에 준해서 사건처리 했기 때문에 이렇게 온건하게 수사하는 겁니다.”
치헌이 들고 있는 서류에 죄명은 강도로 되어 있지만, 참고사항엔 ‘심신상실 상태에 가까운 피해자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말해 본인 망상에 젖어 아내에게 허위의 강도 피해사실을 말한 후 신고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폭행은 다른 데서 당했을 수도, 돈은 또 다른 곳에서 단순 분실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는 거죠?”
“네. 최근엔 김백만 환자 분 복도에서 잠깐씩 마주친 게 다예요. 말도 안 섞었다구요.”
그렇게 그들이 한창 대화하고 있는데.
“저기.”
내가 끼어들었다.
“저기 CCTV화면 보이는 모니터요. 오른쪽 맨 아래 CCTV는 왜 꺼져있는 거죠?”
9분할 되어 CCTV화면을 비추는 컴퓨터 모니터.
9개의 CCTV 중 오른쪽 맨 아래 것만 꺼져 까만 화면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아, 그게…”
여태 당당히 진술하던 천호는 내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원장님이 끄라고 했습니다.”
“네? 원장님이요? 무슨 이유로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한 2주 전에 갑자기 보안시설 관련 직원들 부르더니 저쪽 CCTV만 오프시켰어요.”
이상했다.
CCTV를 굳이 끄라고 지시할 이유가 있을까?
“여기가 어딜 비추는 CCTV인데요?”
“그게…”
그가 다시 한 번 머뭇거리더니.
“비품… 창고입니다.”
더듬거리며 답했다.
그러자 치헌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비품창고면, 지난 번 심천호 씨가 피의자였던 그 사건이 발생한 장소 아닙니까? 안에 환자 데리고 들어가서 협박해서 돈 뜯어냈던?”
“… 네, 맞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진짜 오해인 게, 정말 이번 사건과 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CCTV도 단순히 원장님 지시로 꺼진 건데. 하필 저 자리에 CCTV가 꺼져서 제가 또 오해받는 것 같…”
“일단 심천호 씨는 따로 서로 한 번 출석요청 하겠습니다. 참고인조사 받으러요. 그때 본인 혐의 없음을 잘 진술해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그리곤 경수를 돌아보고 말했다.
“경수야. 지금 당장 과수반 오라고 해. 비품창고 감식 해봐야겠다. 너 저기 CCTV 꺼진 공간이랑 비품창고 앞에 서서 다른 사람들 못 오도록 막고 좀 있어. 과수반 올 때까지.”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어제 원장 허락받아서 CCTV자료 협조해주기로 했다고 하니까 여기 직원 분들한테 얘기해서 8층 CCTV자료 전부 다 받아놓고.”
“넵.”
현재 피해자가 강도 피해를 실제로 당했는지, 당했다면 어디서 당했는지 하나도 나온 게 없지만.
만약 정말 강도피해를 당했다면 CCTV가 꺼진 저 비품창고에서 당했을 확률이 높다.
누가 들어가고 나갔는지 영상으로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장소니까.
동시에 과거 저 장소에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 심천호는 이번 사건의 더더욱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치헌이 나를 돌아봤다.
“정태 너는 나랑 피해자가 원래 입원해 있었던 8층 병실 들렀다가, 7층에 피해자 만나러 가보자.”
“네.”
천호에게 곧 조사날짜를 정해 연락을 주겠다고 안내한 후, 나와 치헌은 탈의실을 나왔다.
보호사에게 물어보니 어제까지 피해자 김백만 씨가 있었던 호실은 803호.
우리는 그쪽으로 향했다.
두 개의 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