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45
45화. 두 개의 진술.
복도를 지나 병실로 들어가니.
“안녕하세요.”
세 명의 사람들이 각각 침대에 앉아 있었다.
침대는 총 네 개였으며 오른쪽 안 침대가 비워져 있었다.
아마 그곳이 피해자 김백만의 자리였던 듯했다.
“누구? 누구?”
우리가 들어가자 왼쪽에 있던 환자가 침대에서 내려와 이쪽으로 걸어왔다.
병상에 붙은 그의 이름은 이진석.
고개를 계속 흔들흔들 거리고 초점이 일정하지 않은 걸 보니 상태가 영 좋지 않은 듯했다.
“저희 형사예요 형사.”
“형사? 형사?”
치헌이 대답해주자 그가 헤벌쭉 웃으며 계속 같은 단어를 반복했다.
그를 지나쳐 안쪽을 보니 노인 환자 하나가 침대에 앉아 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이름은 배영태.
그는 돋보기 너머로 우리를 힐끔 보더니 다시금 신문을 읽었다.
그런데.
“… 뭐지 이 사람은.”
그는 이상하게도 신문을 거꾸로 놓고 읽고 있었다.
“정상인 한 분 계시는 줄 알았더니, 역시 아니네. 진술 듣긴 글렀군.”
그 단편적인 모습 하나로 그는 자신의 기이함을 다 말해주고 있었다.
치헌이 아쉬운 소리를 흘리던 그때.
“형사라고했지여?”
맞은편에 있던 환자가 우리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보호사한테 갔다 왔지여? 내가 다 봤어여.”
통통하고 피부가 하얀 40대 남자가 침대에 앉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이름은 홍지호.
그는 입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발음이 좀 새는 것 같았고 말투도 이상했다.
그래도 문장을 구사하는 걸 보니 이 방에서 그나마 정상인 축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네. 어제까지 여기 있었던 김백만 씨 아시죠? 그 분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혹시 김백만 씨가 누구한테 맞는다거나 돈을 뺏기는 모습을 본 적 있습니까?”
“보진 못했어여. 근데 아마 보호사들이 그랬을 거예여. 예전에도 그랬어여.”
“전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것과 별개의 사건이에요. 저희는 어제 일어난 김백만 씨 사건에 대한 단서나 증거를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보호사들은 전혀 그런 적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어요. 현재 관련 증거도 전혀 나오지 않았고요.”
“저번에도 처음에는 안 그랬다 그랬어여. 보호사들은 다 거짓말쟁이에여.”
그러자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진석이.
“보호사 나쁜 놈. 보호사 나쁜 놈.”
또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번에 돈 뺏긴 게 진석이예여. 심천호 보호사가 얘 돈 뺏었어여.”
“보호사 나쁜 놈. 보호사 나쁜 놈.”
병원 환자들 중에서도 중증 환자에 속하는 진석에게 폭행과 협박을 가해 돈을 빼앗은 건, 죄질이 상당히 안 좋긴 했다.
지호가 계속 내게 말했다.
“보호사들 믿지 마세여. 원장한테 거짓말로 보고해서 우리한테 진정제도 막 놔여.”
그가 주사바늘 때문에 피멍이 들어 있는 팔을 보여줬다.
그걸 보며 정신병원 의사와 보호사가 골치를 썩이는 환자에게 진정제를 과다 투약해 사망케 했다는 판례가 생각났다.
지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진실이라면 수사에 착수해 진위를 밝혀내야 했다.
…
하지만 지금은.
“… 그러니까 김백만 씨 사건 목격한 사람 없다는 거죠?”
내가 맡은 사건에 집중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지만 다들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들 인적사항만 받고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를 기재하며 다시금 병실 전체 전경을 머리에 담았다.
마지막에 진석의 인적사항을 파악할 땐.
“형사님. 철푸덕 하면 돈이 와르르. 철푸덕 하면 돈이 와르르.”
그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우리는 캐비넷에 있던 그의 신분증을 보고 얼른 주민등록번호를 적은 뒤, 병실을 나왔다.
진석은 우리가 나간 뒤에도.
“철푸덕 하면 돈이 와르르. 철푸덕 하면 돈이 와르르.”
계속 우리 등 뒤에 대고 헛소리를 했다.
“거참. 아 나도 와르르 벌고 싶은데, 형사들 그렇게 돈 많이 못 벌어요. 헛소리 그만하고 좀 들어가셔.”
치헌이 고개를 돌려 소리치고 나서야 그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휴, 여기 오래 있다간 나까지 돌아버리겠다.”
치헌이 몸서리를 치며 우리는 7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초인종을 눌러 폐쇄된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물어보니 백만의 병실은 701호.
그곳에 들어가니.
“안녕하십니까.”
‘김백만’이름표가 붙어 있는 병상 앞에 남자 보호사와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신고자인 김백만의 아내인 듯했다.
그리고.
“창진서 형사 5팀 탁정태 경위입니다. 김백만 씨 되십니까?”
침대엔 짧은 머리의 중년 남자가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채로 누워있었다.
왼쪽 눈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입술도 터져 있었다.
그는 형사소리에 당황했는지 멍한 눈으로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 대신.
“맞아요, 김백만 씨.”
옆에 있던 보호사가 답했다.
그가 중년 여자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원래 폐쇄병동은 외부인 출입이 잘 안 되는데, 김백만 씨 어제 피해당하신 것도 있고 병실도 옮겨야 해서 아내분이 잠시 오셨어요.”
그가 여자를 돌아보고 말했다.
“필요한 조사 끝나면 퇴실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호사가 나가고.
“신고자 분이신가요?”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네, 제가 신고했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황은정이요.”
“잠시 밖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네.”
나는 백만에게 안정을 취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은정을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김백만 씨와 법적 혼인관계입니까?”
“아뇨, 혼인신고는 안 했어요.”
“그럼 왜 신고하실 때 아내라고 하셨습니까?”
“사실상 혼인관계나 마찬가지니까요. 이 병원에서 만나 몇 년째 연애를 했고, 또 같이 살기도 했고요.”
“이 병원에서 만났다고요?”
“네. 저는 경증 환자라 치료 끝나고 퇴원한지 오래 됐어요.”
그때 옆에 있던 치헌이 ‘정신병원에선 남녀 환자가 왕왕 연애를 하며, 잠시 퇴원했을 때 같이 살면서 사실혼관계가 되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사회에선 배제 당하던 사람들이 병원에선 동질감을 느끼며 연인사이로 발전한다는 것.
동거하며 몇 년간 가전가구를 함께 쓰는 등 사실상 혼인관계가 유지되면 법적으로도 사실혼 관계로 보니, 은정이 자신을 백만의 ‘아내’라고 소개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계속 질문했다.
“남편 분이 강도피해를 당했다고 신고하셨죠?”
“네. 맞아요.”
“김백만 씨가 자기 입으로 그렇게 진술하던가요?”
내 질문에 은정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왜 남편 분이 강도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이거보세요.”
은정은 자기 가방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더니 펼쳐보였다.
“남편 수급비 통장이에요. 매달 20일에 나라에서 백만 원 가까운 수급비가 들어와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남편이 수급비가 입금되는 즉시 현금으로 빼서 찾아가는 거예요. 마치 기계같이 20일에 돈 들어오면 싹 다 빼버리고, 다시 다음 달 20일에 돈 들어오면 또 싹 다 빼버리고. 그 전엔 안 그랬거든요. 필요한 만큼만 빼 썼지.”
사정을 들어보니 백만은 나라에서 생계비를 지원받는 수급자인 듯했다.
통장엔 20일에 수급비가 입금된 내역, 또 몇 시간 뒤 출금된 내역이 찍혀있었다.
입금과 출금은 같은 방식으로 몇 달째 반복되었다.
그녀는 병원건물 1층에 은행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어, 폐쇄병동 환자들도 출금하러 가는 것은 허용된다고 했다.
출금 후 환자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1층 입구에 있는 병원소속 경비원이 이를 차단한다고.
“그런데 제가 병원에 한 번씩 와서 그때 찾은 돈 어디 있냐고 물어보면 항상 다 썼다고 하는 거예요. 뭐 하는 데 다 썼냐고 물으면 외출 나가서 술 먹는데 다 썼대요. 처음엔 뭐 그런가보다 했죠. 여긴 술에 돈을 다 날려버리는 사람들이 널렸으니까요. 하지만.”
그녀가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어제는 뭔가 느낌이 이상했어요. 일단 얼굴이 저렇게 엉망이 되었길래, 어쩌다 그랬냐고 물으니 얼버무리며 대답을 제대로 안 해요. 뭐 그것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분노조절장애 환자들과 시비가 붙으면 눈이 밤탱이가 되고 입술이 터지는 건 여사니까. 그런데 제가 이해가 안 되는 건.”
그녀가 잠시 말을 끊었다 이었다.
“또 수급비를 다 써버렸다는 거예요. 어제가 21일이었잖아요.”
어제는 8월 21일이었다.
“제가 어쩌다보니 21일에 맞춰서 병원에 찾아오게 됐는데, 아니 돈을 출금한 바로 다음 날에 왔는데도 돈을 다 써버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 싶어 계속 물어보니까 나중엔 대꾸를 아예 안 해요. 그래서 무슨 사달이 났다 싶었죠. 분명 누구한테 맞고 돈을 뺏긴 거다. 누가 이 사람을 해코지하고 강도짓을 했다 이렇게 생각했죠. 그래서 신고를 한 거예요.”
은정은 혹시나 해서 보호사들에게도 물어봤으나, 그들도 언제 싸움이 났는지 모른다 했다고.
병원 내에서 워낙 싸움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보호사들은 멍이 생기는 정도의 싸움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말 속에 피해자의 피해호소나 직접적 피해사실 진술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충분히 강도를 의심해 볼만 했다.
설령 강도가 아니더라도, 백만의 얼굴을 저렇게 만든 폭행 또는 상해 사건에 대해서라도 조사가 필요했다.
“진술 잘 들었습니다. 저희가 남편 분과 대화 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하지만 대화가 좀 어려우실 거예요.”
“진술하기가 불편한 상태인가요?”
“원래 같은 말을 반복하고 혼잣말을 하는 증상이 있긴 했는데, 저 정도로 심하진 않았거든요. 어제부터 증상이 훨씬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일단 한 번 진술을 들어보죠. 은정 씨는 잠시 밖에 계십시오.”
“네.”
“아, 그리고.”
내가 통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통장은 저희가 김백만 씨께 물어보고 임의제출 받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나는 은정에게 통장을 건네받은 뒤 701호 병실로 들어갔다.
백만은 여전히 누워서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김백만 씨. 사건 담당 형사입니다. 진술 하실 수 있겠어요?”
“……”
“저는 김백만 씨에게 도움을 드리러 온 사람이지 해코지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도움을 주러왔단 말에 그의 눈이 잠시 흔들리더니.
“피해당하신 게 있으면 진술을 해주세요. 진술이 힘드시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것도 가능합니다. 제가 질문하면 답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끄덕-
그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말은 알아듣는 듯했다.
나는 곧장 질문을 시작했다.
“몇 달 전부터 수급비가 입금된 날 꼬박꼬박 돈을 찾아가셨는데, 그 돈 왜 찾아가신 거예요?”
“수… 술 마시러. 수… 술 마시러.”
이제 그는 말도 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흔들흔들 거리며 어눌하게 말을 반복하는 걸 보니, 위층의 진석과 증상이 비슷한 듯했다.
“그럼 그저께 찾으신 돈도 술 먹는 데 다 쓰신 거예요?”
“예… 예…”
“그런데 그저께랑 어제는 외출을 안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술을 마시는 데 돈을 씁니까?”
“……”
내 질문에 그는 다시 입을 닫더니, 고개를 점점 더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무언가 불안하고 초조해보였다.
내가 계속 질문했다.
“선생님 돈을 누가 훔쳐갔습니까?”
“……”
“아니면 누가 협박이나 폭행을 해서 강제로 가져갔습니까?”
“……”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 고개를 떨어댔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치헌이 입을 열었다.
“김백만 씨. 자꾸 진술 안 하고 그러면 본인한테 오히려 안 좋을 수가 있어요. 돈을 뺏겼으면 뺏겼다, 잃어버린 거면 잃어버린 거다, 말을 해줘야지. 괜히 수사 인력 낭비시키는 것도 거짓신고나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요.”
그 말에 백만은 점점 더 세게 고개를 휘저어대더니.
“보… 보호사.”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며 진술했다.
“보, 보호사가… 해, 했다고…”
“……”
고개를 떨어대며 눈물 흘리는, 그러면서 어눌한 말을 반복하는 모습.
좀처럼 볼 수 없는 기이한 장면이었다.
“보, 보호사가… 해, 했다고…”
그는 계속 울면서.
“보, 보호사가… 해, 했다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보호사가 김백만 씨 돈을 강제로 가져갔어요?”
“그래 이 씨발놈아! 그래 이 씨발놈아!”
눈을 치켜뜨고 버럭 욕을 해댔다.
욕을 할 땐 뭔가 모르 게 그의 표정에 그가 아닌 사람이 들어있는 듯했다.
“그래 이 씨발놈아! 그래 이 씨발놈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치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정태야. 오늘은 이만 가고, 나중에 진정 좀 하고 상태 좋아지면 다시 와서 진술 들어보자. 오늘은 안 되겠다.”
“네, 알겠습니다.”
불안한 상태에서 진술을 강요하는 것은 조사에 도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피해자에게 더 큰 정신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나는 그의 통장을 가져가겠다고 안내한 뒤 인사했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
간다는 말에 그는 흥분이 조금 잦아든 듯했다.
“김백만 씨 충분히 안정을 취하신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렇게 병실을 나가려는데.
“스브스브스브…”
백만이 무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치헌은 그것을 무시하고 그냥 나가버렸으나.
“스브스브스브…”
“…?”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스브스브스브….”
저 혼잣말은 백만이 내뱉은 말 중 가장 의미 있는 진술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귀를 기울여 좀 더 자세히 저 작은 중얼거림을 들었다.
“했다 그래 스브스브스브… 했다 그래 스브스브스브…”
“…!”
역시나 맞았다.
백만이 했던 두 개의 진술.
울음을 토하듯 내뱉었던 두 개의 진술.
그 두 개의 진술은 각각 다른 문장이 아니라.
“보호사가 했다고 그래 이 씨발놈아! 보호사가 했다고 그래 이 씨발놈아!”
자신이 누군가에게 협박당하며 들었던 하나의 문장이었다.
숨겨진 것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