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46
46화. 숨겨진 것 뒤에.
경수가 비품창고를 과수반에 인계한 뒤, 우리는 사무실로 복귀했다.
“CCTV는 최대 2주밖에 저장이 안 된대서 2주치만 받아왔어요.”
들어오자마자 경수가 들고 있던 USB를 컴퓨터에 꽂으며 말했다.
그에 치헌이 답했다.
“어, CCTV는 보통 2주 정도 저장 돼. 일단 그 기간 내 자료들로 혐의 밝혀봐야지. 일단 난 정록이랑 지환이가 쓴 집폭 서류 좀 봐야하니까, 경수랑 정태 너희 둘이 CCTV 반반씩 나눠서 좀 보고 있어.”
“알겠습니다.”
지금은 피혐의자를 밝혀내지도 못했고 피해자의 진술도 듣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CCTV를 보는 것 외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나는 별도의 USB에 경수가 받아 온 CCTV분량의 반을 받아 곧장 내 컴퓨터에 꽂았다.
그렇게 나와 경수는 한동안 CCTV에 집중했다.
“하, 이번 사건은 시간이 좀 걸리겠는데? 일일이 CCTV 다 보고, 참고인들 출석해서 진술 들어봐야 하…”
“아뇨.”
내가 경수의 말을 끊었다.
“오늘 안에 용의자 추리고 혐의 밝혀낼 수 있습니다.”
“… 응? 어떻게?”
나는 머릿속에 범행 당시 현장을 그려봤다.
병원에서 보고 들었던,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단서들.
그 단서들이 어우러져 그림을 점점 선명하게 스케치했다.
“일단 이 통장 출금시간.”
나는 먼저 임의제출 받은 백만의 통장 출금시간부터 확인했다.
“20일 18시 50분에 출금을 했습니다. 이 시간 전후로 피해자가 있었던 803호를 비추는 3번 카메라를 확인해보면.”
나는 CCTV영상 시간을 18시 40분 정도로 맞춘 뒤 백만이 사건 전 입원해 있던 803호 앞을 비추는 카메라를 확인했다.
잠시 후 백만이 슬금슬금 병실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가 출입구로 가면서 카운터에 있는 보호사에게 통장을 흔들어보였다.
은행 ATM기에 갈 것이니 철문을 열어달라는 표시인 모양.
“18시 45분 경, 이렇게 피해자가 출금을 위해 8층 출입문으로 나갔다가.”
그리고 몇 분이 지난 후.
“18시 53분 경, 출금 후 이렇게 돌아오죠.”
손엔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은 걸 보니 현금과 통장을 다 주머니에 넣은 듯했다.
“화면이 선명하지 않아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이땐 적어도 피해자의 눈에 큰 멍이 있진 않았습니다. 걸음걸이도 비교적 일정하고요. 아직 폭행 피해를 당하기 전이라는 말이죠.”
이때만 해도 그는 얼굴이 말끔했고 정상인처럼 보행했다.
“신고자인 아내가 피해자의 상처 난 얼굴을 확인한 건 다음 날인 21일 오전 11시. 남편을 보러 병원에 방문했을 때입니다. 그러니 피해자가 얼굴에 폭행피해를 당한 건 돈을 출금하고 병실에 들어온 20일 18시 53분부터 다음 날인 21일 11시 사이라는 거죠.”
“오호. 그럼 그 사이 시간대 먼저 확인하면 되겠네.”
“맞습니다. 부장님이 이 시간대에 5, 6, 7, 8번 카메라 확인해주시죠. 피해자모습 나오는 장면으로요.”
“오케이.”
나는 803호 병실 앞과 복도 중앙을 주로 비추는 1, 2, 3, 4번 카메라를,
경수는 복도 사이사이와 비품창고 주변을 비추는 5, 6, 7, 8번 카메라를 살폈다.
“20시 05분… 22시 13분… 02시 47분… 03시 58분…”
나는 백만이 병실에서 나오는 시간을 다 기록했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지 그는 새벽에도 간헐적으로 계속 밖을 기웃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8층 병동 내 꽤 많은 환자들이 시간에 관계없이 복도를 돌아다녔다.
심지어 그들은 새벽에 장시간 이야기를 하고, 간식을 먹기도 했다.
그들에게 취침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듯했다.
보호사들이 카운터에서 나와 돌아다니며 환자들에게 들어가 취침하라고 하는 듯했지만, 환자들은 전혀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창 영상을 확인하고 있던 중.
‘…!’
드디어 특이점을 발견했다.
“04시 40분.”
“응?”
“병실로 들어오는 피해자의 걸음걸이가 달라졌습니다. 현저히 느려졌고 또 비틀거려요. 게다가 배랑 얼굴을 부여잡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때 폭행을 당한 거예요.”
내가 경수를 돌아보고 말을 이었다.
“피해자는 04시 20분에 병실을 나가 04시 40분에 폭행을 당한 채 돌아왔어요. 나갈 땐 왼쪽 복도로 나갔으니…”
“비품창고 쪽이네!”
“맞습니다. 그 시간대 피해자 나오는 장면으로 확인 좀 해주십시오.”
“오케이. 803호에서 비품창고 쪽 복도면, 어디 보자.”
경수가 잠시 모니터에 집중하더니.
“7번 카메라야. 흠, 그런데 이 7번 카메라에 비친 영상들이 전부다…”
그가 말끝을 흐리고는 다시 이었다.
“사람들 머리 밖에 안 보여. 비품창고 쪽으로 딱 돌아 들어올 때 머리 쪽만 보이는 각도야.”
“괜찮습니다. 그 시간대 피해자 나오는 영상 한번 찾아보시죠.”
“어, 잠시만.”
경수는 다시 모니터에 집중하더니.
“이 사람 같은데?”
영상을 멈추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가 서류상에 나와 있는 피해자의 사진과 영상 화면을 비교하며 말했다.
“새벽 시간대라 복도에 간접등 밖에 안 켜놔서 영상이 더 흐릿해. 그래도 머리스타일이나 얼굴 형태 보니 피해자 맞는 것 같네.”
“피해자가 폭행당하기 직전 7번 카메라를 지나갔네요.”
“그렇지. 그리고 7번 카메라를 지나 8번 카메라를 확인해보면…”
그가 잠시 8번 카메라를 빨리 감기로 확인하더니.
“엥, 8번 카메라는 안 지나갔네? 그 말은…”
“7번과 8번 사이, 작동하지 않는 9번 카메라가 위치한 사각지대.”
“비품 창고 쪽에 계속 있었다는 말이잖아?”
우리는 마치 합을 맞춘 것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비품창고는 기역자로 꺾인 복도 코너에 위치하고 있으며, 7번 8번 카메라는 창고로 향하는 각 복도 일부만을 비출 뿐 코너를 비추진 않았다.
코너에 있는 카메라는 9번 카메라.
이 9번 카메라가 꺼져 있으니 비품창고와 코너는 사각지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7번 카메라를 살펴보니 04시 39분경 피해자가 병실로 돌아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러니 피해자는 04시 20분경 병실을 나와 사각지대에 약 20분 정도 머물다가, 폭행을 당한 채 다시 병실로 돌아온 것이다.
경수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적어도 폭행이 발생한 시간대는 이 시간대가 맞는 것 같은데. 대체 누가 그랬는지, 또 폭행뿐만 아니라 강도피해까지 이 사각지대 안에서 발생한 게 맞는지도 밝혀내야 하잖아. 하, 그건 어떻게 밝혀낸담.”
“감식자료 참고해서 종합적으로 살펴보죠. 과수반에서 감식 결과는 언제 통보해준답니까?”
“아, 감식!”
경수가 손가락을 탁 튕기고는 다시 마우스를 잡았다.
“감식 끝나면 현장 사진을 내 메신저로 보내준다고 했는데.”
그리고 내부망 메신저를 켜 파일수신함으로 들어가더니.
“오, 사진 왔다!”
과수반 직원으로부터 받은 이미지파일을 열었다.
“와 뭐가 되게 많네.”
첫 번째 사진은 창고 내 불을 끄고 옅은 빛을 비춰 찍은 족적 사진이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족적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이에 더해 정체모를 물건이 놓이고 떨어진, 조금씩 끌린 자국들.
사진 밑에는.
‘다수의 족적이 있으나 강도사건 관련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족적 발견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환자들 대부분 같은 종류의 슬리퍼를 신고 있고, 이마저 샤워실에 갔다 오면 바뀌는 경우가 많아 족적 주인을 특정하기가 곤란합니다.’
라는 과수반 직원이 멘트가 적혀 있었다.
이어서 다음 사진을 보니.
“와 그래도 과수반에서 정리 잘 해주셨네.”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 추정되는 족적’이라는 제목으로 족적을 다시 한 번 추려낸 사진이었다.
그림판으로 별도의 작업을 해 족적을 표시해놓았다.
경수의 말대로 과수반에서 세심히 신경을 써 주었다.
나는 그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며 사진 속 현장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이건 비품창고 바로 앞 복도네”
다음 사진은 창고 앞을 감식한 사진이었다.
여기도 복도를 그냥 지나간 것을 제외하고 비품창고로 향한 족적들만 따로 추려 표시를 해놓았다.
그런데.
“하, 이렇게 봐가지곤 이걸 어떻게 수사에 써먹어야 할지 전혀 모르겠…”
“잠시만요.”
뭔가 익숙한 느낌의 족적이 있었다.
“여기 창고로 걸어가는 두 개의 족적이요.”
“응.”
“다른 족적들은 다 한 명 씩 따로 찍혀 있는데, 이 족적들은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습니다.”
“그게 뭐 어쨌는데?”
“그리고 이 두 개의 족적 사이 공간을 보면 굉장히 좁습니다. 이건…”
나는 누군가와 함께 걸었던 날을 상기했다.
걸으며 모래사장에 발자국을 남겼던 그날.
“둘이 어깨를 겹쳐서 걸어간 겁니다.”
“…?”
“팔짱을 꼈거나 어깨동무를 했다는 말이죠.”
“팔짱이나… 어깨동무?”
“부장님. 아까 피해자 모습이 나온 7번 카메라 영상 다시 한 번 띄워주십시오.”
경수가 곧장 영상을 띄웠다.
“여기 보이십니까?”
내가 볼펜으로 피해자의 오른쪽 목 옆 불쑥 솟은 어깨를 가리켰다.
“어깨가 왜 이렇게 솟아있어? 아니다. 뭔가를 둘러 멘 건가?”
“아뇨, 손입니다.”
“…!?”
피해자의 어깨 위에 저 흐릿한 무언가.
명확히 식별하긴 어렵지만 저건 분명.
“피해자의 어깨에 누가 손을 얹어 어깨동무를 한 채 걸어가고 있는 거죠. 카메라엔 보이지 않지만 피해자 옆에 한 명이 더 있었던 거예요.”
“…!!”
“그 후 20분 동안 피해자는 사각지대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다시 말해 피해자와 이 손의 주인은…”
내가 다시 두 개가 나란히 찍힌 족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대로 비품창고로 들어갔을 확률이 높다는 거죠.”
“!!”
“돌아올 땐 부상 상태였으니, 아마 비품창고 안에서 폭행을 당했을 겁니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리저리 날리던 선들이 제자리로 모이며 선명한 그림을 그려갔다.
다음에 할 일들, 그 다음에 할 일들이 머릿속에 마구 솟구쳐 올랐다.
“부장님. 저 손 주인 바로 좀 찾아주십시오.”
“오케이, 알았어. 이야, 이거 진짜 하루 만에 잡겠는데?”
덩달아 의욕이 생긴 경수가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리고 나도.
‘돈이 나오는 장면을 찾아야 돼.’
곧장 내 모니터에 집중했다.
이제 폭행을 한 범인의 단서는 잡았다.
하지만 그 범인이 돈을 뺏는 강도 범행까지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돈. 돈에 관한 단서를 잡아야 한다.
병원에서 유일하게 돈에 관한 진술을 한 사람.
그 사람이 묘사한 장면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한참동안 영상을 살펴본 끝에.
‘!’
결정적인 장면을 찾아냈다.
그 장면은 누군가가 ‘철푸덕’ 넘어지며 돈을 ‘와르르’ 쏟는 장면이었다.
시간상, 정황상 그는 범인임이 틀림없었다.
내가 경수를 돌아보고 이 사실을 알리자.
“부장님, 범인 찾았습니다.”
“범인 찾았어!”
동시에 그도 손의 주인을 발견했다며 영상 화면을 보여줬다.
“오! 정태 너도…”
그가 찾은 범인과 내가 찾은 범인이 동일인물이였다.
정말 단 몇 십 분의 CCTV 분석만으로 범인을 찾아낸 것이다.
“와 설마 했더니 진짜 하루 만에 범인 잡아버렸…”
“부장님 여기 보십시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내가 경수에게 눈짓하며 돈이 쏟아져 있는 내 영상화면을 가리켰다.
“헐. 뭐야 이거…”
그러자 경수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범인이 들고 있는 돈이 너무 많잖아?”
쏟아진 현금은 한 명에게 뺏은 것 치곤 그 액수가 너무 많았다.
얼핏 봐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돈.
“이거 설마…”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니라는 겁니다.”
“…!”
“김백만 씨 외에 또 다른 피해자가 있었던 거예요.”
숨겨진 것 뒤에, 또 숨겨진 것이 있었던 것이다.
‘후…’
오랜만에 흥분이 기준치를 넘어섰다.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졌다.
“하, 이거 일이 갑자기 엄청 복잡해졌네. 범인 잡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운 빠지게…”
“기운 빠질 거 없습니다.”
“…?”
“오히려.”
내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의욕이 솟구치지 않습니까?”
모두 이 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