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이단아.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몇몇 기자는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아, 그게…”
윤정수 기자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직… 제대로 된 취재를 못했습니다. 새로운 소식이 나오면 전해드리려고…”
“혹시 ‘쿠잔’ 클럽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네?”
“최근 저희 창진경찰서 관내에서 대규모 성매매는 물론 마약까지 발견된 클럽입니다. 윤기자님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요.”
사전에 검색해보니 그는 마약과 성매매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 취재하는 기자였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그는 마약·성매매 관련 기사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 몰랐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는 줄은…”
“이제라도 알았으니 당장 취재하셔야겠네요. 원래 그런 사건엔 담당조사관보다 기자 분들이 더 열성이니까요.”
“……”
“버팔로 클럽과 쿠잔 클럽. 그 배후가 누구인지, 또 담당조사관들의 수사는 어느 정도까지 진행되었는지 꼭 좀 취재를 부탁드립…”
그때.
“자!”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깨엔 세 개의 무궁화.
그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탁정태 경위 근무시간 관계로 오늘 인터뷰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기자 분들 모두 돌아 가주세요.”
그의 말에 윤정수 기자는 이때다 싶어 부리나케 정문을 빠져나갔고,
그를 따라 다른 기자들도 우르르 철수했다.
기자들이 다 가고 나서야 앞에 선 남자가 나를 돌아봤다.
“탁경위님.”
그는 경무과장 박상준.
그가 전에 보지 못했던 엄숙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
1시간 뒤, 형사계 사무실.
“하, 서장님 어찌나 속상해하시던지.”
치헌이 팀원들을 앞에 두고 교철의 성대모사를 했다.
“‘증태야! 거기서 그런 질문을 하면 우짜노! 경찰은 우째든동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해선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게 상책인 거 모리나!’ 하면서 거의 우는 시늉을 하시더라고.”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나는 치헌과 함께 서장실에 불려갔다.
교철은 ‘어제까지만 해도 정태 니 덕에 하늘을 나는 것 같디, 지금은 고마 가시방석으로 내려 앉아뿟다.’라며 내 발언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쉬워가 칸다 아쉬워가. 어쨌든 어려운 사건 처리하고 기자들 질문에 답변 한다고 욕봤다.’라며 격려해주었다.
“그래도 난 속이 다 시원하더라. 맨날 기자 새끼들만 우리 경찰 곤란하게 하다가, 기자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통쾌하던지.”
서장실에서 나와서는 곧장 안득이 있는 형사과장실로 갔다.
안득도 ‘요즘 자네가 연일 활약을 해대니 이런 인터뷰까지 하네. 대단해.’하며 나를 북돋아주면서도, ‘다음부턴 미리 나랑 상의를 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언론을 이용해보자고.’하며 나름의 주의를 줬다.
“게다가 정태 네가 뭐 없는 말 했냐? 걔들 버팔로 터지고 그 김찬혁인가 하는 연예인 찍어 밟은 뒤로부터 조용했잖아. 기자 놈들도 뭔가 속으로 켕기는 게 있는 거지.”
그렇게 한창 치헌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거, 우리 창진서 형사과에도 연예인이 한 명 나오겠어요.”
옆에서 누군가 치헌에게 말을 걸어왔다.
대머리에 볼에 큰 점을 달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박규만.
형사 6팀장이다.
“이거 보세요.”
그가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이쪽으로 내보였다.
화면엔 뉴스 기사 제목들이 쭉 떠 있었다.
[창진서 탁정태 경위, 단 두 개의 족적만으로 정신병원 강도사건 용의자 검거.]
[수사도 1등, 외모도 1등 탁정태 형사. 서울 시내 클럽 마약·성매매 게이트 취재 촉구.]
[당당한 정의의 사도 탁정태 형사. 강도에게 총 쏴도 문제없어. 파출소 시절 총기 발포는 적법한 일.]
[경찰대 수석 졸업생 탁정태 경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여자 친구 없습니다.’ 탁정태 경위, 수사브리핑 현장서 공개 구혼.]
단 하나도 거짓이나 과장이 포함되지 않은 기사가 없었다.
규만이 계속 말했다.
“탁주임 파출소 시절부터 지역신문에 기사 나면서 하나 둘 씩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이번 브리핑에서 이렇게 큰 이슈를 만들었으니 이제 아주 스타가 되시겠어.”
“……”
“그런데 기자들은 알려나 몰라. 탁주임과 형사 5팀은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고경사 승진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한다는 걸.”
“뭐요!?”
그 말을 듣고 치헌이 버럭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팀장님. 지금 무슨 말 하는 겁니까?”
“아니, 뭐 자리에서 일어날 것까지야…”
치헌의 기세에 규만이 잠시 움찔하더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까놓고 얘기해봅시다. 장팀장님 요즘 그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뭡니까? 전엔 안 그러셨잖아요.”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해 경찰생활 해왔습니다. 요즘 유난히 큰 사건이 연이어 들어왔을 뿐입니다.”
“내가 궁금한 게 바로 그거예요. 큰 사건이 그렇게 많이 들어왔는데, 왜 5팀 혼자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아등바등 하냐고요.”
두 사람의 언쟁에 양 팀 팀원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6팀 팀원 중에는 강상민 경사도 보였다.
몇 달 전 무도 시간 때 내게 유도 기술을 가르쳐 줬던 아시안게임 유도 동메달리스트.
그가 멀뚱히 양 팀장들을 쳐다봤다.
“이번 정신병원 사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7, 8층 병동을 합치면 총 피의자가 5명에 피해자가 열 명이 넘었어요. 게다가 피해액도 여죄수사까지 합치면 수십억에 달했죠. 이런 중대 사건은 두 개 팀 이상이 합동 수사해야 하는 거 모릅니까?”
“피의자와 피해자가 그렇게 많이 늘어날 줄 몰랐습니다. 수사 도중 갑자기 수가 불어난 겁니다.”
“어쨌든 그걸 인지하는 즉시 저희 팀에 지원요청을 하셨어야죠. 왜 안 하셨습니까? 5팀 혼자 공적을 독차지하고 싶었습니까!?”
“박팀장님.”
치헌이 순간 표정을 차갑게 바꾸고 규만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붙인 채 조용히 속삭였다.
“팀장 자리에 있으면 말을 가려서 하실 줄 알아야지,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됩니까?”
“……”
“그래, 나 솔직히 경수 승진시키려고 열심히 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팀장 당신은 강상민 경사 승진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
“강상민 경사 승진 빌미로 실적 올리는 척 하면서, 그거 싹 다 당신 공적 만들어서 경정 심사승진하려는 거잖아.”
규만이 아무 말을 못하고 눈 밑을 벌벌 떨었다.
“자기 새끼 이용하려는 팀장이 자기 새끼 위해주는 팀장 욕하는 거, 웃긴 일 아닙니까?”
“……”
“이번엔 팀원들 앞에서 쪽 팔지 말라고 이렇게 얘기하지만, 다음엔 저도 말 좋게 안 나갑니다. 주의해주세요.”
그들이 속삭이는 소리는 워낙 작아서 아마 다른 팀원들은 아무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들었다.
입모양과 소리에 집중하니 치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다 들렸다.
치헌은 한 발짝 물러나더니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 팀에 정록이랑 지환이가 집폭 사건 하나 맡고 있는 게 있습니다. 나랑 정태, 경수도 배당되어 있는 짜잘한 사건들 몇 개 쳐내고 이 사건에 합류할 건데, 그때 상황보고 지원요청 하도록 하죠.”
“…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책상에 앉아.
“자, 다들 수사브리핑은 잊어버리고.”
우리 팀원들에게 말했다.
“다음 사건들 빨리 쳐내자고.”
#
같은 시각, 경찰청 본청 지하주차장.
= “네. 수사브리핑 내용이랑 기사들 봤습니다.”
철성은 검정색 승용차 안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 “그따위 브리핑을 열도록 그냥 놔두면 어떡해!? 자네는 알고 있었을 거 아냐! 본청 감찰에서 사전에 차단했어야지!”
= “창진서 황교철 서장은 본청 감찰 말을 들을 인물이 아닙니다. 관할서 서장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해버리면 아무리 저희 감찰이 힘을 쓴다 하더라도 막기가 힘들죠.”
= “이런 젠장 할…”
그가 통화하고 있는 인물은 공수훈 경찰청 차장.
경찰조직 서열 2인자였다.
=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충분히 수습할 수 있는 정도의 이슈입니다. 버팔로 클럽 관련 배후 의혹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고, 이번에 쿠잔이라고 하는 클럽이 새로 이슈가 될 것 같긴 한데, 그건 한시호 기자에게 연예인 기사 하나 터뜨리라고 해서 잘 막아보겠습니다.”
= “한시호 그 인간, 김찬혁 기사 하나 터뜨린 것만 해도 생색을 엄청 내던데. 또 부탁하면 들어주겠어?”
= “안 들어주곤 못 베길 겁니다. 한기자가 저희 앞에선 갑인 척 해도, 어쨌든 한 배를 탄 동지니까요.”
= “흠…”
수훈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 “그런데 그 탁정태라는 인간. 정말 우리 일 믿고 맡길 만한 인물 맞아? 너무 이단아 느낌이 나던데.”
= “그래서 더 꼭 맞는 인물입니다.”
= “이단아라서… 더 꼭 맞다고?”
= “폐쇄적인 저희 경찰 조직 내에서 이단아는 미친놈으로 통합니다. 저희가 찾는 역할이 ‘미친개’이니 미친놈에게 맡기는 게 적합하겠죠. 사실 저희 조직에 ‘개’는 널렸습니다. ‘미친’놈을 찾기가 힘들죠.”
= “… 그래?”
= “유관우를 잡으려면 보통 이단아로는 턱도 없을 겁니다. 탁정태 경위 정도는 되어야 하죠.”
= “… 자네가 그 정도로 확신에 찬 모습은 처음 보는구만.”
= “확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철성이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 “징계 위원회 때 위원들을 기세로 압살해버리는 직원은 처음 봤거든요.”
= “……”
= “본청 감찰의 면전에 대고 본청 감찰을 욕하는 직원도 처음 봤고요.”
잠시 정적 후.
= “탁경위 본청 감찰 발령 내는 건 어떻게 되어가나?”
= “염려하지 마십시오. 판은 다 짜놓았습니다. 의심이 많은 인물이라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칠 겁니다. 시간을 두고 지켜보시죠. 그 시간은 한시호에게 벌라고 하고요.”
= “… 그러는 수밖에 없겠군. 아무튼, 고생 좀 해줘.”
= “알겠습니다. 때가 되면 제가 탁정태 경위 다시 한 번 찾아가겠습니다.”
= “알겠네.”
= “들어가십시오.”
그렇게 전화가 끊어졌다.
#
치헌과 규만 사이의 언쟁이 끝난 뒤.
나와 치헌, 경수는 밀려있던 자잘한 사건들을 하나씩 쳐냈다.
단순 폭행 건은 전화로 처벌의사를 물은 뒤 내사종결하기도 하고, 죄가 되지 않는 사건들은 불기소의견 송치나 자체 종결, 피의자가 미성년자로 확인된 사건들은 여청으로 이관시켰다.
“오케이. 정태, 경수 너희가 워낙 일 배우는 게 빠르니 진짜 하루 만에 다 쳐내버렸네.”
그렇게 모든 사건을 쳐낸 뒤.
“내일 바로 정록이 지환이랑 같이 집폭사건 수사하면 되겠다. 오늘은 이만 퇴근하자.”
“알겠습니다.”
사무실을 나와 퇴근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저벅- 저벅-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버스를 타러 정류장 쪽으로 걷는데.
“탁정태 경위님.”
“…!?”
어디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얼른 고개를 홱 돌리니.
“이쪽으로 와서 제 옆에 붙으세요.”
우측 골목에 모자를 쓴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뜬금없는 장소에 뜬금없는 인물.
외관상 범죄자의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그 궁금증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그 쪽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옆에 다다르자.
“자연스럽게 걸으세요. 이 길을 따라.”
그렇게 우리는 골목길을 함께 걸었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저는 경기북부청 정보과 정환태 경감입니다.”
“경기북부청이요?”
내가 되묻자 그가 모자를 살짝 들어 얼굴을 내비치며 대답했다.
“유관우 청장님 지시로 왔습니다.”
제수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