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
5화. 센스가 빛을 발할 때.
내가 묻자 신고자는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무… 무슨 말이에요? 어서 돌아가세요.”
“단순 주취자가 문을 열려고 했다면 문고리가 저렇게 훼손되지 않았을 겁니다.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훼손되었다는 건, 문고리를 잡아당긴 손에 분노가 담겨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신고자 분의 팔까지 세게 쥐어 잡았죠.”
이어서 나는 현관에 있는 남자 신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신발의 주인이 신고자 분의 팔을 이렇게 만든 거 아닙니까?”
“그, 그건…”
“통계상 범죄피해를 당했을 때 관련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그러지 않은 것보다 피해 회복에 훨씬 큰 도움이 됩니다. 설령 피해를 준 가해자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지인이나 남자친구라 하더라도 말이죠.”
“…!”
“폭행은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가 피해호소를 하셔야 이곳을 범죄 현장이라 단정 짓고 수사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
“피해호소 하세요. 그러면 저희가 안으로 들어가서 피의자 검거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주취자 신고가 폭행 신고가 되었다.
다른 직원들이 봤다면 ‘또라이가 또 나서네’하며 나를 욕했겠지만, 나는 이 현장이 폭행, 그 중에서도 연인 간 폭행 현장이라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오실 필요 없어요.”
방 안쪽에서 20대 남자 하나가 걸어 나왔다.
“걔 팔, 제가 그랬어요. 문도 제가 열었고요.”
내 옆에 있던 경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와 신고자, 방 안의 남자를 번갈아 보더니.
“이, 일단…”
남자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잠깐 파출소로 가시죠.”
#
파출소에서 둘의 얘기를 들어보니 연인 간 폭행이 맞았다.
사소한 문제로 다투던 중, 여자가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자 열 받은 남자가 집으로 찾아갔다는 것.
남자는 감정이 격해져 여자의 팔을 세게 잡아 당겼다고 하였다.
처벌을 원치 않아 형사사건 처리는 하지 않았지만, 피해자 신변보호를 요청하여 담당부서로부터 관리조치 받을 수 있게 하였다.
단순 주취자의 소행인 줄 알고 철수해버렸다면 안에서 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와, 팀장님. 탁경위 대박 아닙니까?”
그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경수가 호들갑을 떨며 아까 전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주취자인 줄 알고 그냥 철수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탁경위가 발로 신고자 집 문을 탁 막는 겁니다.”
“……”
“그리고는 신고자 팔을 보면서 범인이 안에 있는 거 아니냐고 막 그러는데 순간 소름이 막 돋더라고요.”
“소름 같은 소리하고 있네.”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경수의 얘기를 듣고 있던 김덕규 팀장이 입을 열었다.
“파출소 첫 출근한 애 데리고 나가서 제대로 리드도 못하고 끌려 다녔다고 자랑하는 거냐?”
“아이고, 팀장님 끌려 다녔다는 게 아니라…”
“신고 내용이 바뀌었으면 무전부터 해야지, 기본 적인 것도 못해놓고 뭘 잘했다고 떠들고 있어!? 어차피 사건 처리도 안 할 거 왜 일을 키워가지고…”
“안 되겠다. 잠시 대피를…”
덕규의 꾸지람이 계속되자 경수는 날 데리고 흡연장으로 나왔다.
“담배 펴요?”
“안 핍니다.”
그가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에휴 우리 팀장 한 번씩 왜 저러나 몰라. 잘 한 걸 그냥 잘했다하면 되지. 심보하고는…”
그리고는 ‘저러니 머리가 다 빠지지.’하고 덧붙였다.
덕규는 정수리까지 머리털이 없었다.
“팀장이 괜히 나 뭐라고 하면서 탁경위도 까려고 하는 거 같은데 너무 마음 쓰지 마요.”
“괜찮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괜히 젊은 경위 들어왔다고 샘이 나서 그러는 거예요. 원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리고는 담배연기를 위로 내뱉었다.
담배 피는 데 나는 왜 데리고 나왔을까.
“아깐 진짜 멋있었어요.”
이 말을 하려고 부른 거였나.
“손 모양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예요?”
“범죄수사학 강의 때 배웠습니다.”
“크, 경찰대 강의가 좋기는 좋구나.”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담배를 길게 빨았다.
“고경사님.”
나도 그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었다.
“네?”
“아까 순찰차에서 경찰관은 지식보다 센스가 더 중요하다고 하셨죠?”
“그랬죠.”
“그 말, 틀린 거 같습니다.”
“……”
“이번 신고 현장에서 범죄수사학 강의 때 배운 지식이 없었다면 그냥 단순 주취자 신고로 종결을 해버렸을 겁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신고자가 또 다른 피해를 입었을 수도…”
말을 하던 중간 아차 싶었다.
내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고 의경제대 중대장이 항상 충고를 했었는데.
또 버릇처럼 말하고 만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오케이. 인정.”
내가 사과를 하려는데 경수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담뱃불을 껐다.
“맞아요. 오늘 탁경위가 없었으면 신고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뻔했죠.”
“……”
“하지만 두고 봐요.”
그가 흡연장에서 나와 파출소로 들어가며 덧붙였다.
“센스가 빛을 발할 때도 있을 거예요.”
#
다음 날, 야간 근무.
“어제 안 섭섭했어요?”
순찰차에 타며 경수가 묻는다.
“뭐가 말입니까?”
“탁경위 첫 근무 날인데 회식을 안 했잖아요.”
“그게 섭섭할 일입니까?”
“에이, 그래도 환영식을 안 하면 섭섭하지.”
“여태껏 환영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그러자 경수가 나를 보더니 장난치듯 말했다.
“어허- 우리 탁경위님. 사랑을 못 받고 자라셨구나.”
“……”
내가 아무런 대답을 안 하자.
“반응이 왜 이래? 농담이에요 농담. 어휴, 진지해서 농담도 못 하겠네.”
하며 내 어깨를 툭 친다.
“딱 기다려 봐요. 우리 팀장은 기분파라서 또 좋은 일 있으면 흥이 확 돋으니까, 그때 내가 회식하자고 얘기해볼게요.”
“안 그러셔도 됩니다.”
“에이, 내가 불편해서 안 돼. 처음 만난 사람하고는 술 한 잔 딱 하고 근무를 해야 한다고요.”
나는 살면서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
해롭다는 걸 알면서 왜 마신단 말인가.
“아무튼 오늘도 파이팅하자고요.”
그리고는 경수가 순찰차를 출발시키려는데.
딩 딩 딩-
신고가 들어왔다.
– “매천파집, 매천 하나 둘 순마 2376번 둘치. 절도 사건이니 신속히 공착바람.”
– “칠팔(알겠다.)”
절도 사건이 터졌으니 매천파출소 관내 모든 순찰차는 빨리 현장에 도착하라는 말이었다.
신고내용은 ‘주차된 차 문을 당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였다.
“관제센터 신고겠네.”
경수의 말을 듣고 신고내용을 다시 보니 CCTV 관제센터에서 접수된 신고가 맞았다.
“차량털이 하는 놈이 있나 봐요. 차 문을 당기는 순간 절도미수거든.”
“차 안에 뭐가 있는 줄 알고요?”
“블랙박스나 네비게이션. 심지어 다시방에 있는 잔돈이라도 훔치려고 그러는 거죠. 길에 세워져 있는 차 문을 다 당겨보고 다니는 거예요. 열리는 게 있으면 싹 다 털어가죠.”
“그럼 피해액이 아주 크지는 않겠군요. 차 안에 고가의 귀중품이 있을 확률은 적으니.”
“그렇죠. 근데 우리 조직 내에선 어쨌든 절도를 되게 큰 범죄로 보기 때문에 이렇게 절도 신고 들어오면 순찰차를 최대한 많이 동원시켜요. 현장에서 범인을 잡으면 표창을 주기도 하고요.”
얘기하는 새에 순찰차는 현장에 도착했다.
경수는 어제 덕규한테 혼났던 것이 생각났는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무전기부터 들었다.
– “매천 하나 순마 공착(도착). 도보로 골목 순찰 예정.”
– “칠팔.”
– “용의자 인착(인상착의) 나오면 바로 구연(연락)해주세요.”
– “칠팔. 관제센터에서 영상 사독(확인) 중에 있습니다. 현재는 화면이 어두워서 인착 식별 안 되는 상황.”
아직 용의자 인상착의는 확보가 안 된 모양이었다.
우리는 용의자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CCTV 인근 골목을 수색하기로 했다.
“범인들은 경찰을 보면 움찔하거나 몸을 홱 돌려버려요. 사람들 행동을 유의해서 잘 살펴봐요.”
“알겠습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골목은 스산했다.
몇 분 동안 사람 한 명 보지 못하다가 겨우 동네를 돌아다니는 장년의 남자 한 명을 발견했다.
경수가 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시간이 늦었는데 어디 가세요?”
“집에 가지. 근데 무슨 일 있어?”
“이 근처에 무서운 놈이 하나 돌아다니고 있거든요. 얼른 집에 들어가세요.”
“어이쿠, 그래? 빨리 들어가야겠네.”
“집이 어디신데요?”
“저기 뭐야. 이쪽으로 5분만 걸어가면 나오는 그…”
경수가 어르신이 가리키는 쪽을 보더니 얼른 대답했다.
“그린 꽃집이요?”
“아, 그래그래. 그린 꽃집.”
“맞은편에 큰 서점 있고?”
“그렇지. 거기.”
말을 들어보니 동네 주민인 듯했다.
겉으로 보이는 물증도 없고 의심스러운 점도 없었다.
그렇게 친절히 맞장구를 쳐주던 경수는.
“그런데 어르신.”
갑자기 표정을 차갑게 바꾸더니.
“사실 이 동네엔 꽃집이랑 서점이 없어요.”
“…!”
장년의 남자에게 다가가 쏘아붙였다.
“혹시 이 주변에서 차 문 당기고 다녔습니까?”
법대로 다 하려면 경찰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