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1
51화. 가루가 되어 버릴지도.
“오, 그러고 보니 인상착의가 동일하잖아?”
치헌과 팀원들은 뒤늦게 각 피혐의자들이 동일 인물임을 인지한 듯했다.
내가 계속 정우에게 말했다.
“사건이 발생한 위치는 어디야?”
“영선초등학교 인근 공원이었어요.”
영선초등학교 인근 공원이면.
내가 본 CCTV 영상 속 장소와 멀지 않은 곳이다.
“너 폭행하고 나서, 그 사람들 어디로 갔는데?”
“공원 입구에서 우측으로 난 골목을 따라 걸어갔어요.”
난 그 이동 동선과 내가 여태 파악했던 CCTV상 그들의 이동 동선을 겹쳐 떠올리며 목적지를 예상했다.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떠오른 그들은 한 곳을 향해 걷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가면서 ‘가자. 애들 모일 시간 다 됐어.’라고 하는 거 보니, 어딘가 모일만한 장소에 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불량한 행색의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이라면 제 생각엔…”
모일만한 곳.
머릿속 피혐의자들은 걷고 걸어서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우의 눈을 쳐다보며 내가 피혐의자들이 멈춰선 곳을 말하던 그때.
“영선 시장 뒤편 폐건물!”
“아마 영선시장 뒤쪽에 있는 폐건물이 아닐까…”
정우도 동시에 나와 같은 곳을 말했다.
“……”
나와 정우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고, 치헌과 팀원들은 같은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정적 후.
“바로 영선 시장으로 가봐야겠어.”
“네.”
나는 뒤돌아 베드를 빠져나왔다.
병실 문 앞엔.
“……”
아까보다 조금 표정이 나아진 은빈이 서 있었다.
을왕리 이후 오랜만에 보는 그녀.
내가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은빈 씨.”
“네?”
지난 번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얼굴은 토라져 차가운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울어서 발개진 눈을 하고 무언가 기대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다음부터는.”
내가 그녀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저한테 전화할 게 아니라 119나 112에 바로 신고하십시오.”
“……”
“그게 피해자도 가장 신속히 구호하고 범인도 최단시간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아시겠습니까?”
“… 네.”
그렇게 조치사항을 안내해준 뒤.
“팀장님. 영선시장으로 가시죠.”
병실을 나왔다.
*
5분 뒤, 형사동차 안.
– “형육장(형사 6팀장), 여기 오장입니다.”
– “여기 육장.”
치헌이 규만에게 무전을 했다.
– “영선시장 뒤편 폐건물 있는 골목길 압니까?”
– “칠팔(네, 또는 알겠다.) 알고 있습니다.”
– “CCTV 사독(확인) 결과 피혐의자들 그쪽으로 다녀갔을 가능성이 있어요. 지금 형둘(형사동차 근무자)이 둘치(조치) 중인 특수상해 건과 동일 피혐의자들 같습니다.”
– “아, 칠팔. 그럼 영선시장 뒤편 골목길에서 일면(만남)하면 되겠습니까?”
– “칠팔. 형둘도 그쪽으로 구동(이동) 중입니다. 형사 육장은 등원(경찰관) 몇 명 데리고 옵니까?”
– “강상민 등원 한 명입니다.”
– “… 칠팔.”
치헌이 무전을 끊자마자 욕을 해댔다.
“박규만 이 쫌생이 새끼. 지원해주겠다고 큰소리 떵떵 칠 땐 언제고 뭐? 강상민이 하나 데리고 온다고? 에라이.”
현재 우리가 CCTV로 확인한 집단폭행 피혐의자만 7명.
숫자만 딱 맞춰 지원해준 셈이다.
게다가 정록과 지환은 다른 차를 타고 정우가 폭행을 당한 영선초 옆 공원에 갔다가 합류하기로 해서, 현재 형사동차에는 나와 치헌, 경수 이렇게 세 명 뿐이다.
“얘네들 친구 만나러 폐건물 쪽으로 간 거라며. 그럼 피혐의자가 몇 명이 더 있을지 알 수 없는데. 그럼 수갑 부족해서 다 체포하지도 못한다고.”
오늘 피혐의자들을 만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만난다면 경찰관 다섯 명은 부족한 숫자였다.
“이건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 공적에 밥숟가락만 얹겠다는 거야. 얍삽한 새끼…”
그렇게 욕을 흘리던 치헌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내게 말했다.
“야, 정태야. 근데 넌 제수씨한테 너무 차갑게 대하는 거 아니냐?”
“…?”
“생판 모르는 신고자한테도 그렇게는 안 하겠다. 너 나가고 제수씨 혼자 뻘쭘하게 서 있길래 경수랑 내가 얼마나 달래줬는지 아냐?”
“신고 절차를 모르는 것 같아 알려준 것뿐입니다.”
“그래, 그건 아는데. 같은 말을 하더라도 따뜻하게 해야지. 그렇게 차갑게 하면 되냐 이 말이야. 그것도 남도 아니고 제수씨한테.”
말의 온도를 어떻게 조절하라는 걸까.
“폭행 상해 이런 거, 우리 형사들한텐 익숙하고 지겨운 일이지만 일반인들한텐 평생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야. 막상 그 일이 일어나면 당황해서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할지 모른다고.”
평생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그러니 다음부턴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 줘.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치헌은 그렇게 말을 마친 뒤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 “형 육장. 형둘은 영선시장 거의 다 공착(도착) 해갑니다. 육장은 공착 몇 분 남았습니까?”
– “공착 2분 전.”
– “칠팔. 육장은 시장 옆 폐건물 골목 북편으로 진입하세요. 저희는 남편으로 진입합니다. 길이 하나이니 양쪽에서 틀어막고 진입하자고요. 혹시 피혐의자들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 “칠팔.”
잠시 후, 형사동차는 영선시장 옆 폐건물 골목 남편에 다다랐다.
“일단 근처에 차댈 곳 있나 봐봐. 여기 시장 차들 다녀야 하니까 막으면 안 돼.”
“알겠습니다.”
그렇게 경수가 운전대를 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폐건물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멈추세요!”
끼익-!
내 외침과 동시에 경수가 브레이크를 콱 밟았다.
“팀장님 저기요!”
내가 가리킨 곳엔.
“저 새끼…!”
검정색 모자에 딱 달라붙는 프로티, 왼쪽 팔등에 긴 상처가 난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형사동차 경광등을 보자마자.
다다다다다-
다시 골목 안으로 냅다 뛰었다.
“피혐의자잖아! 내려서 잡아!”
철컥-!
치헌과 나는 동시에 차에서 내렸다.
치헌이 앞으로 뛰면서 뒤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경수야! 너는 차 대놓고 와!”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치헌이 골목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는데.
“씨팔 어디로 간 거야?”
피혐의자는 벌써 자취를 감춰버렸다.
치헌은 걸음을 멈추고 곧장 무전기부터 들었다.
– “영선시장 뒤편 골목에서 피혐의자 발견됐습니다! 형 육장 현장 공착했습니까? 피혐의자 골목 안으로 도주, 북편 입구 빨리 막아야 합니다!”
– “칠팔, 일분 전 공착해서 강상민 등원이 북편으로 진입했습니다. 육장은 현재 차량 주차 중.”
– “아, 칠팔. 강상민 등원, 피혐의자 주변 건물에 숨었을 수도 있으니 샅샅이 수색하면서 안쪽으로 구동(이동)하세요.”
이어 칠팔, 하는 상민의 무전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그가 제시간에 도착해서 피혐의자의 도주로는 막았다.
이제 건물 수색만 잘 하면, 피혐의자를 잡을 수도 있다.
그렇게 주변을 세심히 살피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장팀장님.”
“어, 상민아.”
생각보다 금방 상민을 만났다.
그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치헌이 그에게 말했다.
“다 살펴봤어?”
“네, 여기까진 피혐의자 안 보였습니다.”
“우리도 못 봤는데. 그럼 남은 건물은…”
우리 셋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마지막 남은 한 건물.
수색하지 않은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들어 가보자.”
치헌이 그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드르륵- 드르륵-
“…!”
그 건물 지하에서 무언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반사적으로 몸을 팍 낮췄다.
치헌이 검지를 입에 갖다 댄 채 조용히 말했다.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뒤따라와. 갑자기 튀어나와 공격할지도 모르니 조심하고.”
그렇게 치헌이 앞장서서 우리는 그 건물 지하로 천천히 내려갔다.
지하 1층에 도착해 슬며시 문을 여니.
“… 뭐야?”
우려했던 공격은 전혀 없었고, 지하실 중간 즈음에 피혐의자가 떡하니 서 있었다.
그는 낭창하게 서서 우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빠르게 스캔했다.
지하의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얼핏 봐도 100평은 넘는 듯했다.
곳곳에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고 담뱃재가 가득한 걸 보니 이곳을 일종의 아지트로 오랫동안 사용한 것 같았다.
빛이라곤 벽에 걸린 몇 개의 흐릿한 랜턴이 전부였다.
“무슨 고딩도 아니고. 왜 이딴 데서 뺑이를 치고 있는 거야?”
치헌이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스윽-
스윽-
뒤쪽 기둥에서 피혐의자 일행 두 명이 더 나왔다.
그들의 손엔 각각 각목과 소주병이 들려있었다.
“오 다른 피혐의자들도 있었네. 잘 됐다. 한 번에 다 검거하면 되겠어. 그런데 손에 그건 뭐야. 어쩌자고. 싸우자고?”
치헌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 상대 잘못 골랐어. 옆에 이 아저씨는 유도 엄청 잘하는 아저씨고. 나는 너희 한방에 가루 만들 수 있는…”
스윽-
스윽- 스윽-
그가 말하는 도중 뒤에서 열 명이 넘는 일행이 더 튀어나왔다.
내가 영상으로 봤던 피혐의자들도 모두 다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쪽수가 좀… 많네. 근데 뭐야. 진짜 고딩이었어? 이런 씨팔.”
이어 치헌이 훈계하듯 그들을 다그쳤다.
“강원도에서 고딩들이 군인 패서 죽였다는 뉴스 보고 강원도 고딩들 참 대단하다 했었는데, 우리 관내 고딩들도 대단한 놈들이네. 야 이 새끼들아. 어디 불량스럽게 몰려다니면서 사람 다구리 치고 있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말이야.”
“아저씨 우리 언제 봤다고 반말이에요?”
“… 뭐?”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고. 짜증나게.”
검정 모자를 쓴 피혐의자가 띠꺼운 표정으로 치헌에게 대꾸했다.
나는 무전기로 지원을 요청하려 했지만, 지하라 송신이 끊겨 무전이 되지 않았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반말 할 만하니까 하지 이 새끼야. 네가 잘못한 건 생각 안 하고 어른들 반말하는 거나 꼬투리 잡으면 안 되지.”
“새끼, 새끼 하지 마세요. 경찰이 함부로 새끼 새끼 거려도 돼요?”
“너한텐 해도 돼 이 새끼야. 그리고 내가 너희 욕하는 거보다 너희가 범죄 저지른 게 훨씬 더 나쁜 거야. 네 친구들 열심히 공부할 때 너희는 그런 짓하고 다니면…”
“아 꼰대같이 말 존나 많네.”
피혐의자가 틱틱거렸지만 치헌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그들을 달랬다.
“아저씨가 너희 위해서 하는 소리야. 일단 인적사항 부르고, 경찰서 잠깐 가자. 그리고 그 각목이랑 소주병 내려놔. 너희 그걸로 경찰관 때리면 죄 엄청 커.”
그의 말에 이어 내가 죄명을 설명했다.
“다중이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서 공무집행을 방해하면 특수공무방해로 처벌을 받습니다. 이 죄를 범해 공무원을 상해에 이르게 하면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에요. 벌금형이 없이 바로 징역이라는 말입니다. 진정하시고 손에 든 것 내려놓으세요.”
“소년원 갔다 오면 좋죠 뭐.”
내가 경고했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그가 한 말이 진심임을 알고 있다.
청소년 범죄에 관한 연구 자료가 기억났다.
비행 청소년들은 보호처분과 소년원 경험을 일종의 훈장으로 생각한다고.
그가 다시 치헌에게 말했다.
“비키세요. 집에 가야 하니까.”
“안 돼. 너희 다 범죄자야. 경찰서 가야돼. 경찰서 안 가고 도주하려고 하면 체포할 수밖에 없어.”
“그럼 체포하시든가.”
드르륵-
저벅- 저벅-
그들이 각목을 바닥에 끌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허-”
치헌이 손바닥을 앞으로 펴고 그들을 다시 막아섰다.
그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마지막 기회야. 조용히 인적사항 불고 경찰서 가자. 아님 체포한다.”
“집에 가게 나오라니까요 아저씨?”
그들이 치헌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때.
“이 좆만한 새끼들이.”
치헌의 동굴 같은 목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그 살기에 일순 피혐의자들도 행동을 멈췄다.
“상민아.”
치헌이 어깨를 빙빙 돌리며 상민에게 말했다.
“작년 집폭 때 너 조폭새끼들이랑 한 따까리 해봤지?”
“네.”
“오늘도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이어 상민도 목을 좌우로 젖히며 몸을 풀었다.
“정태야.”
이어 치헌이 나를 불렀다.
“과잉방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예외 요건이 뭐였지?”
그의 질문에 내가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입니다. 소주병을 들고 위협하는 피의자를 상대로 정도를 초과한 방위행위를 했던 피해자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네. 야간인데다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떼로 달려들려고 자세잡고 있고, 소주병까지 들고 있는 상황이니까. 이때는 정도를 초과한 방위행위가 인정된다는 거지? 공격행위로 볼 수 있는 방위행위까지 말이야.”
“…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때.
다다다다다-
“팀장님 저 왔습니… 허걱!”
경수가 지하로 뛰어 들어오다가 피혐의자들의 수를 보고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치헌이 그에게 말했다.
“경수야, 밖에 고개 내밀고 무전으로 지원 요청해.”
“네? 아, 네, 네!”
경수가 무전요청을 한 뒤.
“무전 끝났냐? 그럼 문 걸어 잠가.”
“네?”
“문 잠그라고. 그리고 혹시 우리가 놓치는 애들 있으면 네가 거기 막고 서 있다가 곧장 체포해.”
“아… 네, 네. 알겠습니다!”
지시를 끝낸 치헌이 앞을 돌아봤다.
“난 기회 줬어. 너희들이 그걸 걷어 찬 거야. 너희들 한 명도 빠짐없이 다 경찰서로 간다. 알겠냐?”
위험한 상황이었다.
박살이 나 버릴지도 모르니까.
…
물론 우리가 박살나는 것이 아니라.
“이 귀여운 놈들. 뭐, 이왕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저들이 박살나 가루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배림동에서 문을 주먹으로 부숴버린 괴력의 장치헌.
유도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강상민.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그들과 함께.
“드루와 이 양아치 새끼들아.”
유도 겨루기 자세를 잡고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하려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