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내가 하려던 말.
“하…”
검정모자를 쓴 피혐의자가 한숨을 쉬며 치헌의 앞에 다가와서는.
“새끼 새끼 하지 말라니까 이 아저씨가 진짜 씨발!”
휘익-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퍼억-!
“으허억!”
콰당탕탕-
치헌의 주먹이 조금 더 빨랐다.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난 방금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를 느껴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내지른 거야.”
그것을 시작으로.
“씨발, 야 덮치자!”
“죽여!”
“밟아버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다다다-
쉬시식-
슉- 슉-
퍼버벅-!
열댓 명이 달려드는 발걸음 소리, 각목과 주먹이 날아드는 소리가 지하실 안을 꽉 채웠다.
우리는 출입구 쪽으로 최대한 위치를 당겨 좁은 길목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도록 했다.
“어휴, 애새끼들이 진짜 멋도 모르고 덤벼드네.”
치헌은 무더기로 달려드는 숫자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너는 말랐으니까 살짝.”
퍽-
“으억!”
“너는 덩치 크니까 좀 세게.”
빠악-
“아악!”
전혀 당황하지 않고 피혐의자들을 하나씩 때려 눕혔다.
물론.
퍼억-
치헌이 맞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땐.
“이 새끼가 어디서 어른 머리를 때리고 있어?”
퍼어억!
“……”
신음도 못 흘리고 나가떨어지도록 패버렸다.
옆에 있던 상민도.
“손 들어오는 거 다 보인다, 다 보여.”
부드럽게 그들의 손을 피해 꺾어 잡고는.
훽-
“…?!”
철퍼덕-!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나도 그를 따라.
휘휙-
우드드득-
“아아악!”
덤벼오는 이들을 꺾고 업어 치면서 제압했다.
경찰대 이후로 오랜만에 해보는 유도 기술.
합법적 과잉방위 범위 내에서 실전으로 써먹는 기술들은 너무나 짜릿했다.
나는 그 사이에도 틈틈이.
“그만하세요! 폭행이 계속될수록 죄는 더 중해집니다!”
경고를 날렸다.
하지만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쨍그랑-
와장창-
곳곳에 소주병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빠박- 팍!
퍼버벅-
“엑-”
“으헉!”
다행히 그건 치헌과 상민이 상대의 팔을 제압한 후 병이 땅에 떨어져 나는 소리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에 드러누운 피혐의자 수는 점점 쌓여갔고.
터덕- 쿵.
마지막 피혐의자가 쓰러진 것을 끝으로 지하실에 정적이 흘렀다.
뒤에 남은 서너 명의 일행들은 입술을 벌벌 떨며 두 손을 위로 들고 완전히 항복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후, 끝인가?”
치헌이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때.
“팀장님! 뒤 조심하세요!”
쓰러져 있던 피혐의자 한 명이 깨진 소주병을 집어 들고 치헌에게 달려들었다.
“이 씨발새끼야!”
치헌이 차마 고개도 돌리기 전, 그 찰나의 순간에.
다다다다다-
휘익-
파박-!
쿠당탕탕탕-
“컥-”
저쪽에서 경수가 달려와 그대로 그의 몸뚱아리에 날아 차기를 꽂아버렸다.
“괜찮으세요, 팀장님?”
“어휴, 경수 너 아니었으면 대가리에 구멍 날 뻔했다.”
그렇게 상황이 다 정리되고 난 뒤.
언제나 그렇듯.
벌컥-
다다다다다다-
– “이산 하나, 둘, 셋 공착.”
– “도양 하나 둘도 공착해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한 타이밍 늦게 지원 병력들이 도착했다.
그들의 선두엔 박규만 팀장이 있었다.
그는 우리 셋을 번갈아 돌아보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장팀장 괜찮습니까? 앰뷸런스 불러야 할…”
“아뇨, 다른 건 됐고.”
치헌이 느긋하게 눈을 껌뻑이며 지원 병력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갑이나 좀 빌려주십시오.”
#
잠시 후, 창진서 형사계.
“김창민이가 누구야?”
“저요.”
“너 이쪽으로 오고, 또 이수찬이는?”
“저요.”
“수찬이 너는 창민이 뒤에. 그리고 수찬이 뒤에는 지성이. 야, 황찬석. 넌 자필 진술서 이따위로 쓸래!?”
열 명이 넘는 피의자가 들어찬 형사계 사무실은 시끌벅적했다.
통증을 호소하는 몇 명은 지구대 경찰관들을 동행해 병원으로 가고, 나머지 피의자는 모두 데려온 것이다.
게다가.
“어휴, 우리 애가 그럴 애가 아닌데요, 형사님.”
“이런 일로 오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학생들의 부모까지 온 턱에 더 정신이 없었다.
미성년자를 형사입건 할 시에는 부모에게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아들이 체포되었단 소식에 부모들이 허겁지겁 경찰서로 쫓아온 것이다.
그중에는.
“아 애들이 잘못했으면 얼마나 잘못했다고 수갑을 채워요!?”
자기 아들이 잘했다고 소리치는 부모도 있었다.
경수가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님. 우리 경찰관들 몰골 한 번 보십시오. 애들 열 명이 넘게 소주 병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성인이었으면 바로 구속감이에요.”
“……”
경수의 말대로 치헌과 상민, 나의 팔과 얼굴엔 긁히고 까인 상처들이 나 있었다.
하지만 피혐의자들의 얼굴이나 몸엔 거의 상처가 없었다.
우리가 그들의 신체에 최대한 상처가 안 생기도록 노력한 덕이다.
달려드는 피혐의자를 다치지 않게 제압하는 것, 그것은 그냥 제압하는 것보다 열 배는 더 힘든 일이다.
이어 치헌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부모님들은 나눠드린 신병인수인계서 쓰고 밖에 나가 잠시 대기하세요. 필요한 조서만 쓰고 애들 다 보내드릴 테니까요.”
그러자 부모들이 한숨을 내쉬며 우르르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우리는 맘 놓고 조서를 칠 수 있었다.
“이름.”
“김창민이요.”
“주민등록번호.”
“980915… 그 다음은 잘… 모르겠어요.”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피의자들은 형사계 사무실만 오면 온순해진다.
폭발하던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눈치를 보며 묻는 말에 잘 대답한다.
정록의 말에 따르면 형사계 사무실엔 그런 ‘기운’이 흐른다고 했다.
“98? 98이면 몇 살이야.”
“고1이요.”
“고1? 너 이 새끼 왜 다른 애들보다 한 살 어려? 선배들이랑 있었던 거야?”
“네… 죄송합니다.”
사실 피의자가 미성년자이면 보통 여청으로 부서를 이관하는 게 맞지만, 그들이 저지른 특수공무방해 피해자가 형사과 직원들인데다 애초에 모든 수사를 형사과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형사 5팀과 6팀이 맡아 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조서 작성을 다 마친 뒤.
“부모님들 안으로 들어와 보세요.”
치헌이 피혐의자 부모들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이 다 들어오자 치헌이 말했다.
“피혐의자들 대부분 혐의를 인정하고 조사에 성실히 임했기 때문에 아마 재조사가 필요하진 않겠지만.”
그가 말을 끊고 몇몇 아이들을 돌아봤다가 다시 이었다.
“공동폭행, 공동상해, 특수공무방해를 모두 저지른 피혐의자들은 다시 소환될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아까 얼핏 들으니 이깟 일로 왜 체포까지 하냐고 소리치시는 분이 있던데.”
부모 중 한 명이 고개를 숙였다.
“피혐의자들 성인이었으면 지금 바로 유치장 입감, 구속영장 신청, 기소 후에도 구치소에 계속 있다가 징역 떨어진 후 그대로 교도소 직행했을 겁니다. 체포부터 징역살이까지 몇 년간 면회로만 자식 얼굴 봐야할 뻔 했어요.”
“……”
“그래도 저희 형사들끼리 얘기해서 범죄사실 최대한 덜 자극적으로 썼으니 부모님들도 집에 가서 학생들 교육 단단히 시켜주세요.”
그러자 부모들이 전부 ‘감사합니다!’를 복창하며 마구 허리를 숙여댔다.
“애들 데리고 돌아가세요.”
그 뒤에도 부모들은 연신 허리를 숙여대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들이 다 나가고 난 뒤, 정록이 귀를 파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나이 어린 게 벼슬이네요. 무기 들고 경찰관 패놓고 구속도 안 되다니.”
“됐어. 우리가 일방적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과잉방위까지 했으니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어.”
“아무튼 저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팀장님.”
“현장 갔다 온다고 늦은 건데 뭘. 게다가 하도 순식간에 일어나서 너희 빨리 왔어도 같이 대응 못했을 거다. 자, 아쉬운 소리 그만하고.”
치헌이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수사보고 칠 게 많다. 얼른 마무리하자.”
“네!”
그렇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데.
“아참. 정태 너는.”
치헌이 나를 다시 불렀다.
“병원에 다녀와라. 일은 우리한테 맡기고.”
“병원에요?”
“제수씨 걱정하고 있을 거 아냐. 가서 애들 다 잡아 족쳤다고 전해.”
“굳이 갈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전화로…”
“아 거참. 가서 얼굴보고 소식 전하라고. 따뜻한 말로 아까 차갑게 군거 만회도 좀 하고.”
그러면서 그가 형사동차 키를 휙 던졌다.
“얼른 다녀와.”
#
잠시 후, 형사동차 안.
나는 운전해 병원으로 가면서 치헌이 했던 말을 상기했다.
‘사람 맘 상한 거 되돌리는 데는 골든타임이 있다고. 그 시간 지나버리면 맘이 단단히 굳어서 영영 못 돌릴 수도 있어.’
그가 그 말을 할 때 다른 팀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두들 내가 잘못했으며, 얼른 사과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은빈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었다.
내 말과 행동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생각하니 미안했다.
의경부대에서, 또 경수에게 ‘당신은 틀렸다.’라고 말한 뒤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또 그녀가 기분 상하는 게 싫었다.
치헌의 말처럼 그녀는 내게 ‘찌릿찌릿한 쾌감을 전해준’ 사람이니까.
내게 좋은 느낌을 전해준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해선 안 된다.
나는 사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을왕리에서, 또 병실에서 했던 내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
정우가 다친 상황이니 그녀는 지금도 울고 있거나 굳은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도 얼른 사과를 해서 그녀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끼익-
그렇게 병원에 도착해 병실로 올라가 문을 여니.
“어? 정태씨!”
“…?”
은빈이 옅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활짝 웃으며 즐거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보다 훨씬 나아진 얼굴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얼굴.
베드에 누워있던 정우도 내게 손을 흔들었다.
은빈이 내게 물었다.
“왜 다시 왔어요?”
“범인 잡았습니다. 그거 알려드리려고요.”
“헉, 정말요!?”
그녀는 깜짝 놀라며 입을 틀어막고 기뻐하다가.
“이건 왜 이래요?”
내 팔의 상처를 가리키며 걱정스런 얼굴을 했다.
“다쳤습니다. 피혐의자들 수도 많았고 무기도 들고 있었거든요.”
“네에!?”
그녀는 다시금 깜작 놀라더니 가까이 다가와 내 팔을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괜히 제가 연락해서 정태 씨 다치게 한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절 다치게 한 건 피혐의자들이지 은빈 씨가 아닙니다.”
“어쨌든 제 전화 받고 그 현장으로 가신 거잖아요.”
그녀가 날 올려다보더니 눈을 글썽이며 말했다.
“미안해요.”
“……”
내가 하려던 말을 그녀가 해버렸다.
왜인지 그 말을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저랑 정우는 정태 씨 덕에 많이 위로받았는데, 정태 씨가 다치니 마음이 아파요.”
“위로를 받았다고요?”
내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와 당황스러웠다.
“아까 정태 씨 팀장님이라는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자기는 피혐의자 손등에 상처가 있는 줄은 몰랐다고. 그건 정태 씨만 아는 거고, 정태 씨가 여기 왔기 때문에 범인을 알아낼 수 있었던 거라고.”
“……”
“게다가 이렇게 다칠 정도로 몸을 던져서 하루 만에 범인을 잡아주니까 마음이 놓이기도 하면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사실 저보다는 저희 팀장님이랑 6팀에 강상민 경사가 더 고생을…”
“고마워요 정태 씨.”
그녀는 어느새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그녀.
미안하다고 했다가 이번엔 다시 고맙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가슴 안쪽이 간지러웠다.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형.”
이번엔 정우가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간지러운 느낌은 점점 커졌다.
동시에 은빈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커졌다.
그녀와 정우는 내게 이렇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니.
간지러움과 미안함은 어지러이 섞여들며 알 수 없는 감정을 만들었다.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전달할 사항은 다 전했으니…”
나는 가슴을 벅벅 긁어대며 마지막 멘트를 한 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드르륵-
다다다다-
도망치듯 병실을 빠져나왔다.
#
다음 날.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노크한 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
금주희 과장이 날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태야! 여긴 웬일이니? 상담 날짜도 아닌데?”
나는 문을 닫은 뒤 그녀를 보고 말했다.
“선생님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모기에게 겨울을 가르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