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3
53화. 모기에게 겨울을 가르치는.
“물어볼 거?”
주희는 처음엔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 뭐가 궁금하니?”
씨익 웃으며 흥미롭다는 듯 표정을 바꿨다.
나는 그녀 앞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요즘 이상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상한 일?”
주희는 음, 하며 말을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
“외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거니, 네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는 거니?”
“……”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제가, 제가 계속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음, 그래? 예를 들면?”
나는 그때부터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일들을 설명했다.
자살기도자를 구한 것부터 시작해서, 정우를 만나 처음으로 ‘사람’에게 흥미를 느낀 일.
대뜸 안득에게 ‘고경사 승진시킬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뒤, 그날 회식자리에서 경수를 가족이라 말하고 뻗어버린 일.
저도 모르게 은빈에게 바다에 가자 제안하고, 그녀와 팔짱을 끼고 걸은 일 같은 것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상한 감정들도 느꼈어요.”
“이상한 감정?”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요. 대부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으니까요.”
“그 감정들이 불쾌했니?”
“…?”
생각해보면 불쾌하진 않았다.
경수를 승진시키겠다 말할 때 느꼈던 뜨거운 감정도.
은빈이 팔짱을 껴 올 때 느꼈던 그 찌릿한 감정도.
또 어제 정우의 병실에서 느꼈던 그 간지러운 감정도.
“불쾌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쾌감이 일기도 했죠.”
“그럼 피할 필요는 없는 감정이네.”
주희의 결론은 단순했다.
부정적 감정이 아니니 피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내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께름칙해요.”
“……”
“이전에 저는 항상 계산된 행동을 하고 예측된 결과를 맞이했었는데, 요즘은 결과부터 저질러놓고 뒤늦게 원인을 생각할 때가 많아요.”
주희는 턱을 괴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뗐다.
“그래서 이전의 삶은 즐거웠니?”
“… 네?”
“예측 가능한 삶. 즐거웠냐구.”
…
생각해보면 이전의 삶은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명확하고 계획적이고 덜 불안하긴 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물론 수사해 범인을 잡아내면서 즐거움을 느끼긴 했지만, 오로지 그때뿐이었다.
수사 외엔 일상의 그 무엇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요즘이 더 즐겁지 않니?”
그녀의 말대로 최근에 느낀 낯선 감정들은 내게 색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그 즐거움은 숨겨진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드러나 있는 것들에서 왔다.
굳이 숨겨진 걸 파 뒤집을 필요가 없었다.
세상엔 즐거움이 널려 있었는데, 내가 여태 그것들을 보지 못한 것이다.
“… 맞아요. 요즘이 더 즐거운 것 같습니다.”
“당연한 거야. 즐거움은 대개 예측하지 못한 것에서 오거든.”
저 말은 좀 놀라웠다.
이제껏 무언갈 예측하지 못하면 불안하고 위태롭다고만 생각했는데.
오히려 거기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니.
“계획되지 않은, 완벽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거. 그거 아주 정상적인 거야. 오히려 너무 완벽한 게 비정상이지. 완벽과 정상은 동의어가 아니야. 차라리 반대말이라고 하는 게 맞지.”
완벽이 비정상이었다니.
“그러니 가끔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낯선 감정을 느끼는 거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거 되게 인간적이고 멋진 거야.”
멋지다는 말보다 ‘인간적’이라는 말이 더 와 닿았다.
“마음이 즐거운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좋아. 충동에 모든 걸 맡길 필요는 없지만, 즐겁지 않은 예전 방식에 얽매여 있는 것도 미련한 거야. 계획과 충동, 완벽과 실수가 섞여있는 삶이라야 비로소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저 행복이란 단어는 아직까지 아득해보였다.
내가 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항상 말했지. 감정이 결여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처방이 뭔지.”
“이성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래. 아마 최근에 정태 너한테 ‘낯선 즐거움’을 가장 많이 선사해준 사람은 팔짱을 꼈다던 그 여자 분이 아닐까?”
은빈 씨?
그녀가 내게 찌릿한 즐거움을 준 건 맞지만.
“은빈 씨와 저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닙니다. 사귀지도 않는 걸요.”
“사랑엔 명확한 시작점이 없어. 사귀는 순간 사랑 시작! 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야.”
“……”
“어쩌면 정태 넌…”
주희가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이미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행복에 이어 사랑.
가장 낯설고 생경한 단어들이 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것들이 날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니.
정신이 몽롱했다.
나는 멍한 눈으로 아무 말도 않은 채 주희를 가만히 쳐다봤다.
“… 내 말 잘 따라오고 있니?”
“… 네?”
“마치 모기에게 겨울을 가르치는 기분이네.”
“……”
나는 얼른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우리가 대화했던 내용들을 상기했다.
그녀의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답답하고 찜찜했던 마음은 다 풀린 것 같았다.
하지만 갑자기 새로운 것들을 너무 많이 받아들인 탓일까.
“조금 어지럽네요.”
“그래, 오늘은 그만 하자.”
“네.”
그리고는 내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
“안 물어보세요?”
“뭘?”
“늘 하는 마지막 질문이요.”
나는 부모님이 보고 싶냐고 묻는 그녀의 고정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거.”
그녀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앞으론 안 물어도 될 것 같아.”
“…?”
“수고했어. 가도 좋아.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찾아와.”
그렇게 나는 그녀의 흐뭇한 미소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수고하셨습니다.”
방을 나왔다.
#
며칠 뒤, 창진서 4층 강당.
“에휴, 이제 추석도 다 지났고. 올해도 다 갔네.”
옆에 앉은 치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그를 돌아봤다.
“아직 세 달이나 남았는데요?”
어느덧 9월 말.
하지만 올해가 다 갔다고 하긴 이른 것 같은데.
“내일 모레면 10월이잖아. 10월이 실적 수합하는 마지막 달이니까, 이제 대충 올해도 다 마무리 된 거나 마찬가지지.”
“실적 수합이요?”
“그래. 우리 조직은 10월까지 실적을 수합해 승진자를 정하거든.”
“아…”
“그래서 11월은 전화와 청탁의 달이 되는 거지.”
“전화와 청탁의 달이요?”
내 물음에 치헌이 다리를 꼬며 답했다.
“특별승진자랑 심사승진자 발표는 보통 12월에 하거든. 그래서 실적수합이 끝난 10월이랑 12월 사이 11월은 각 지방청 인사담당자한테 전화가 쏟아져. 어디 김경장이 우리 조칸데 좀 잘 봐 달라, 어디 박경사가 우리 고등학교 후배다, 같은 전화. 좀 더 나가서는 돈 보따리가 오가기도 하고.”
“금품수수는 비리 아닙니까?”
“비리인 걸 걔들이 모르겠냐. 그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승진하려고 암암리에 거래가 다 이루어진다고. 작년에도 말이야, 내가 그렇게 조선족 다 때려잡아놨더니 씨팔 승진은 엄한 놈 시키고 이 개새끼들…”
치헌이 욕을 흘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어째 그의 팔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뭐, 지나간 얘기는 됐고.”
치헌이 이쪽을 보고 목소리를 좀 줄여 말했다.
“과장이 말한 경위 특진, 이대로라면 우리 팀이 가져갈 확률이 높아. 다른 팀이랑 실적이 비교도 안 되게 차이난다고.”
조선족 납치 사건과 쿠잔 클럽 감금 및 성매매·마약 사건, 그리고 정신병원 강도사건까지.
이슈가 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은 모두 우리 팀이 맡긴 했다.
그 사이사이 자잘한 사건들까지 합치면, 다른 팀보다 월등히 실적 점수가 높을 것이다.
치헌의 말에 내 왼쪽에 앉은 경수도 눈썹을 들썩이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제는 실수만 조심하면 돼. 징계만 안 먹으면 경수 경위 다는 건 따놓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네.”
“다들 마지막까지 파이팅 해보자.”
“알겠습니다.”
그렇게 치헌이 말을 끝맺음과 동시에.
“안녕하십니까-!”
강단에 남자하나가 올라왔다.
오늘은 정기교육이 있는 날이다.
교육 주제는.
“서울청 과학수사대에 근무하는 최주환 경위입니다. 반갑습니다.”
과학수사다.
작은 박수소리와 함께 주환이 강의를 시작했다.
“다들 근무하고 교육까지 오느라 피곤하실 텐데, 짧게 20분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다시 작은 환호 소리.
그와 동시에 전면 스크린에 혈흔과 족적이 있는 현장사진이 떴다.
“현장엔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족적으론 범인의 이동방향뿐 아니라 몸무게, 걸음걸이, 심지어 나이까지 추정할 수 있고요, 혈흔으론 흉기가 들어간 각도, 공격 방향, 시신의 이동여부까지 알 수 있죠.”
이어서 머리카락과 지문, 침과 정액 같은 증거들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그 다음으론.
“저희 과학수사요원들은 이런 현장을 관찰해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증거들을 수집합니다. 과학수사를 오래한 분들은 빠른 시간 안에 유용한 정보들을 금방금방 캐치해내죠.”
각종 증거분석 자료들이 나왔다.
3분의 1 지문을 가지고 용의자를 특정한 것, 최첨단 장비를 가지고 바닥에 빛을 비춰 족적을 관찰하는 모습, 타액과 땀을 수집하는 장면까지.
“하지만 정말 뛰어난 과학수사요원들은.”
다음 사진은 3D로 현장을 시각화 한 이미지였다.
마네킹 형태의 범인과 피해자가 나왔고, 범인이 칼로 피해자의 배를 찌르고 있었다.
“현장을 재구성합니다. 모든 증거들을 수합해 머릿속에 현장을 떠올리고 그대로 시각화하죠. 마치 동영상을 찍어놓은 것처럼 뇌에서 범죄 현장이 재생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시각적으로 보이는 증거뿐만 아니라 범행 동기, 범죄자의 감정까지 캐치할 수 있게 돼요.”
그 말을 들은 치헌이.
“참나.”
조용히 혀를 찼다.
“머릿속으로 현장을 시각화한다고? 무슨 공상과학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리고는 나를 슥 돌아보더니.
“… 뭐 영 틀린 소리는 아닐 수도 있겠다.”
입을 쩝 다시고는 다시 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20분이 흐른 뒤.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의가 끝났다.
“아이고, 이제 사무실 내려가서 또 일해보자.”
“저기, 팀장님.”
강당을 나가 사무실로 가려는데 경수가 치헌을 붙잡았다.
“저랑 정태는 소회의실에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소회의실? 거긴 왜?”
“매천파출소 때 팀장님 오늘 퇴임식이거든요.”
“아, 그래? 그럼 나도 같이 가보자.”
“팀장님도요?”
“그래. 너희 팀장하던 선배님인데 나도 가봐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 얼른 차에 가서 꽃다발 좀 가지고 올게요.”
*
잠시 후, 2층 소회의실.
상석에는 오랜만에 보는 덕규가 정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옆에선 황교철 서장이 축하의 말을 전했다.
“우리 김덕규 선배님은 91년 9월에 순경으로 임용하시어 만 33년이란 세월을 우리 경찰 조직에, 나라에, 국민에 헌신하셨습니다.”
전면에는 퇴임을 축하한다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고 화환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각 부서 계장들 몇 명도 행사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파출소 같은 팀으로 근무했던 종민과 국진, 철수와 수호의 얼굴도 보였다.
교철의 축사가 한참 동안 이어진 뒤.
“선배님의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가 앞으로 나와 덕규에게 꾸벅 인사한 뒤 악수했다.
계급을 떠나 퇴임하는 직원을 ‘선배’로 칭하며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것이다.
이어 덕규가 앞에 있는 사람들과 쭉 악수를 하고는.
“어? 경수야! 정태야!”
우리를 돌아보더니 이쪽으로 냅다 달려왔다.
“너희가 여기 웬일이야!?”
“웬일은요. 팀장님 퇴임하시는 데 와봐야죠. 여기 꽃 받으시죠. 축하드립니다, 하하.”
“이야~ 고맙다 야!”
덕규가 꽃을 받아들고는 우리를 덥석 안았다.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어서.
“경수랑 정태 데리고 있는 장치헌 팀장입니다. 선배님, 퇴임 축하드립니다.”
“아, 그래요. 아이고 든든한 팀장을 뒀네 우리 경수 정태가.”
치헌과도 악수를 나눴다.
그렇게 서로 최근의 근황을 물으며 이야기하던 중.
“내가 너희 소식은 귀가 닳도록 들어. 아니 어떻게 대한민국 범죄자들은 우리 창진서 형사 5팀이 다 때려잡는 것 같아.”
“하하하, 최근에 사건이 좀 많긴 했죠.”
“그래, 얼마 전에 뉴스 나온 정신병원 사건하고. 또 뭐 했다더라?”
그의 질문에 경수가 여태 처리한 사건들을 쭉 설명해줬다.
그러자 덕규가 다시 한 번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너희는 몇 년 치 형사 일을 한두 달 만에 다해버렸네.”
“하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이제 하나만 더 해보면 정말 사건이란 사건은 다 해보는 거네.”
“하나만 더 해보면요?”
경수가 묻자 덕규가 검지를 펼쳐들며 답했다.
“살인. 살인사건을 아직 안 해봤잖아. 살인사건을 처리해봐야 진짜 형사라고 할 수 있지.”
“어휴, 팀장님. 그런 소리 마십시오. 살인사건나면 서 전체 비상 걸리고 난리일 텐데…”
그때.
벌컥-!
갑자기 소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팀장님!”
정록이 치헌을 보고 소리쳤다.
“방금 살인사건 터졌답니다! 빨리 현장 가보시죠!”
수사중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