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수사중독자.
“뭐? 살인!?”
치헌이 놀라 소리치자 앞에 있던 교철도 덩달아 외쳤다.
“장팀장! 팀원들 댈꼬 얼릉 가봐라!”
“네, 알겠습니다!”
치헌은 부리나케 나가려다 잠시 멈칫하고는 덕규를 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선배님. 퇴임 축하드립니다. 저는 지금 나가봐야해서요.”
“아… 네, 네. 본의 아니게… 미안합니다.”
치헌은 그 말을 듣지도 않고 뛰쳐나가버렸고.
“팀장님, 축하드려요. 연락드릴게요.”
“어, 그래 경수야… 미안하다.”
경수도 쌩하고 나가버렸다.
이어서.
“축하드립니다.”
“그래 정태야. 매번 이래서 참 내가 미안한 마음 뿐…”
나도 얼른 소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내 등 뒤로 ‘미안해-! 응!?’하는 덕규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
– “사건번호 1427번 연살(살인)입니다! 현장 공착(도착)한 파집(파출소) 등원(경찰관)들은 폴리스라인 설치, 현장 보존하고 둘기(대기)바랍니다.”
– “칠팔!”
– “형 둘(형사동차 근무자)도 신속히 공착해서 현장 상황 소고(보고)바람.”
– “칠팔.”
현장까지 가는 동안 무전이 끊이질 않았다.
가장 중한 범죄인 살인사건이 터졌으니 창진서는 물론 서울청까지 비상이 걸린 것이다.
경수는 그 어느 때보다 차를 빨리 달려.
끼익-
금방 현장에 도착했다.
다른 차를 끌고 온 정록과 지환도 형사동차 바로 뒤에 차를 세웠다.
피해자가 사망한 곳은 아파트 13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폴리스라인 앞에 서 있는 파출소 직원들, 그 안쪽으로 방염복을 입고 있는 과수반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치헌이 그쪽으로 다가가며 먼저 파출소 직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형사 5팀장 장치헌입니다. 피해자 인적사항 나왔습니까?”
“네, 나왔습니다.”
대답을 들은 치헌은 곧장 경수를 돌아봤다.
“경수야. 피해자 인적사항 받아놨다가 현장 사진이랑 같이 6팀에 강상민 경사한테 보내. 변사발생보고서랑 부검 영장 쳐야하니까.”
“알겠습니다.”
이번 사건도 저번 집단폭행 건처럼 5팀과 6팀이 합동수사를 하게 되었다.
5팀은 현장출동, 6팀은 사무실에서 필요한 서류와 영장을 치기로 했다.
치헌은 복도와 계단 천장을 살피고는 정록과 지환에게 말했다.
“정록이 너는 여기 아래위로 계단에 CCTV 있는지 확인해서 바로 영상 받고, 지환이 너는 엘리베이터 CCTV 바로 확보해.”
“넵!”
“알겠습니다!”
대답한 뒤 정록과 지환은 경비실 쪽으로 내려갔다.
당황스러울 수 있는 살인사건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치헌은 매우 침착하게 업무를 지시했다.
확실히 형사 팀장다운 포스가 있었다.
이어 그가 과수반 직원을 돌아봤다.
“과수반에서도 일찍 나오셨군요.”
“아, 네. 아무래도 살인이니 되는 인원들끼리 급하게 나왔습니다. 현장 보존하고 통행판이라도 깔아야 하니까요. 저희 팀장님도 곧 오실 겁니다.”
말하는 태도를 보니 과수반 막내들인 듯했다.
“저희 들어가 봐도 되겠습니까?”
“네. 방염장비 착용하시고 판 밟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치헌, 인적사항 기록을 마친 경수가 덧신과 머리 망,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찰칵- 찰칵-
피해자의 시신이 있는 장소는 안방이었는데, 안방 문 앞에서 과수반 직원 한 명이 카메라를 들고 현장 사진을 찍고 있었다.
판을 밟고 안방 앞으로 가보니.
“허억!”
침대 헤드에 반쯤 기댄 채 누워 있는 피해자의 시신이 있었다.
파출소 시절 자살한 변사체는 많이 봤지만 살인 피해자의 시신은 처음 본 경수가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그에 반해 난 별 동요 없이 찬찬히 현장을 살폈다.
피해자의 몸 여기저기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다.
뒷목을 찔려 목 뒤쪽 벽에 혈흔이 퍼져있었고, 가슴에도 열군데 정도 칼자국이 있었다.
피해자는 자려고 했었는지 파자마를 입고 있었고, 손 옆에는 티비 리모컨이 고이 놓여 있었다.
나는 방안의 모든 상황을 유심히 살펴 머리에 담았다.
그리고 방문 옆엔.
“혹시 신고자이십니까?”
방범장비를 착용한 여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치헌이 그녀에게 묻자.
“네… 맞아요.”
“피해자의 아내 분이시죠?”
“… 네.”
많이 놀랐는지 그녀는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하고 겨우 대답했다.
치헌이 간단한 위로의 말을 전한 후 물었다.
“저는 이 사건 담당형사 장치헌이라고 합니다. 몇 가지 여쭤볼 건데 진술 가능하시겠습니까?”
“네… 얘기할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조금 진정하시고 천천히 답변해주시면 됩니다.”
그 말에 신고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후, 후 하고 심호흡을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선아에요.”
“남편 분은요?”
“석현승이요.”
“자녀는 있으신가요?”
“아뇨, 없어요.”
치헌은 그들의 인적사항을 묻고 받아 적었다.
나는 그들이 대화하는 동안 거실과 부엌, 다른 방들을 살폈다.
모든 가구와 물건들의 배치, 각도, 모양, 오염까지 전부 다.
“사망한 남편을 발견하신 게 언제입니까?”
“아까 오후 세시쯤에요. 제가 강원도에 갔다가 돌아 와보니 이 상태였어요.”
“강원도요?”
“네. 어제 친구를 만나러 강릉에 갔다가 오늘 돌아왔거든요.”
그 말을 듣고 치헌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이선아 씨,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시고. 저희 형사들은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모두 조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아 씨는 피해자와 가장 관련이 깊은 분이기 때문에 사건 당시의 행적에 대해서 명백히 조사를 해야 합니다. 혹시 강릉에서 만난 친구 분이 선아 씨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수 있습니까?”
“네. 가능해요.”
“좋습니다. 친구 분 성함과 연락처를 좀 알 수 있을까요?”
“이름은 이진주. 연락처는…”
치헌은 그녀의 인적사항과 그들이 갔던 장소들을 메모했다.
그동안 경수는 안방에 들어가 사진을 찍었고, 나는 계속 주변을 관찰했다.
“그럼 남편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입니까?”
“어제요.”
“어제 몇 시입니까?”
“아침 열 시쯤이요.”
“그때 남편은 뭘 하고 있었습니까?”
“술에 취해 자고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같이요.”
“친구들하고 같이요?”
치헌이 묻자 선아가 촉촉한 눈을 닦으며 계속 말했다.
“네. 전날 신랑 친구들이 저희 집에 와서 술을 마셨거든요. 처음엔 조금 마시다가 각자 집에 간다고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다들 취해서 저희 집에 자고 가게 됐어요.”
“친구는 몇 명이 왔습니까?”
“두 명이요.”
“두 분 다 남자입니까?”
“네. 남자예요.”
“그럼 어제 선아 씨가 집을 나올 때, 이 집 안엔 남편 분과 친구 두 명이 함께 있었겠네요?”
“네, 맞아요.”
“선아 씨가 나가고 난 뒤 이집에 드나든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알기론 없어요.”
“그럼 남편 분 사망 추정 시간에 이 집에 있었던 사람은 그 두 명의 친구 분들이네요?”
“… 맞아요.”
“혹시 남편 친구 분들 이름이랑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이름은 박지병, 김준흠이고 연락처는 지병 씨 거밖에 몰라요.”
“아, 그러면 잠시만요.”
치헌이 잠시 대화를 멈춘 뒤 경수를 돌아봤다.
“경수야. 과수반 직원분이랑 같이 피해자 휴대폰 먼저 좀 확인해봐. 박지병, 김준흠 이 사람들 연락처 알아내서 지금 당장 서로 출석요구 해. 싫다고 하면 체포영장 발부해서라도 데리고 와야 돼. 피해자 사망 추정시간에 이 집에 있었던 사람들이야.”
“네, 알겠습니다.”
이어 치헌이 계속 선아에게 물었다.
“혹시 그저께 술자리에서 피해자와 그 친구 분들 사이에 이상한 낌새 같은 건 없었나요?”
“이상한… 낌새요?”
“뭐 자존심 상하는 말을 했다거나, 아니면 언성을 높이고 싸웠다거나 하는 일요.”
“……”
치헌의 질문에 선아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살짝 다툼이 있긴 했어요.”
“누구와 말입니까?”
“신랑이랑 준흠 씨랑요.”
“어떻게 다퉜죠?”
“신랑이 술에 취해서 일용직으로 근무하는 준흠 씨를 무시하는 듯한 말을 좀 했어요.”
“뭐라고 말했습니까?”
“아직까지 노가다나 하고 있으니 넌 결혼이나 하겠냐, 하는 식으로요.”
치헌은 그 말을 그대로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엔 서로 욕을 하고 말다툼을 했어요. 하지만 금세 잠잠해졌어요.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조금 신경전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폭행은 없었고요?”
“네. 주먹질을 하진 않았어요.”
“음,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메모를 하던 치헌이 고개를 들고 말을 이었다.
“지병 씨의 연락처는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
“… 네?”
“아까 준흠 씨 연락처는 모르고 지병 씨 연락처만 알고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아, 그건…”
선아가 우물쭈물하며 무언가를 대답하려던 찰나.
“우리 아들 집 앞에서 와 이카고 있는교?”
현관문 밖에서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우리 아들 집인데 못 드가긴 뭘 못 드가는교? 촌에서 서울 올라오느라 디 죽겠구만, 나오소.”
“안 됩니다.”
“아 나오라카이께네!”
그 소리를 듣고 선아가 밖으로 뛰어 나갔다.
“어머님.”
“어 야야. 여 순사들이 집을 틀어막고 와이카고 있노?”
“그, 그게… 오빠가…”
“현승이가 와?”
“그게…”
선아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쨍그랑-
덜그럭- 덜그럭-
유리용기와 냄비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모친이 충격을 받고 들고 있던 무언가를 떨어뜨린 모양.
이어서.
“우… 우리 아들한테 뭔 일 났나?”
“……”
“으잉? 대답해봐라!”
피해자 모친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지 파출소 직원들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하며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찾았습니다!”
부엌에서는 과수반 직원의 외침이 들렸다.
바닥을 살피고 있는 걸 보니 주목할 만한 족적을 찾은 모양.
“제 3자의 침입 흔적이 있습니다! 양말흔이 아니라 신발을 신고 여기까지 들어왔어요!”
현관에선 울음소리.
부엌에선 과수반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안방에선 경수가 지병, 준흠에게 출석을 요구하며 전화하는 소리.
치헌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기 바빴다.
“아이고, 정신없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그러다가 나를 보고는 말을 멎었다.
“얘 왜이래? 정태야! 정신 차려!”
그는 눈을 감고 손을 벌벌 떨고 있던 내 몸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하…’
그래도 떨리는 손이 멈추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솟구치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사실 난 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현장에 너무 집중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내가 처음 본 범죄 다큐멘터리는 살인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그때 느꼈던 그 소름끼치는 떨림이 지금 그대로 전해져왔다.
영상으로만 보던 살인사건 현장에 내가 실제로 와 있는 것이다.
“정태야!”
치헌이 뺨까지 때리고 나서야 나는 겨우 눈을 떴다.
“야, 괜찮냐?”
치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지만, 그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저 현관의 울음소리, 과수반 직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경수의 전화소리가 너무나도 명확하게 내 귀에 날아와 꽂혔다.
각각의 소리가 따로 들려오는 게 아니라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들려왔다.
남들은 아수라장이라고 말할 이 공간이, 내겐 콘서트홀 오케스트라 같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연주는 내 귀를 타고 뇌로 들어가 범인의 형상을 만들었다.
나는 멍한 눈으로 빈 벽을 쳐다보며 여태 본 것과 들은 것들을 겹치는 작업을 했다.
본 것들이 들리기도 하고, 들었던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서로 마구 뒤엉키며 벽에 멋진 그림을 만들어냈다.
“벽보고 뭐하는 거야? 너 지금 괜찮은 거 맞아?”
“시각화요.”
“… 뭐?”
“오늘 과학수사 강의 때 들으셨잖아요. 현장을 시각화하라고.”
며칠 전 주희와 상담을 하면서 낯선 즐거움을 받아들이겠노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것이.
“밑그림은 대충 다 그렸어요.”
여태 내가 수사해오면서 느끼던 쾌락을 포기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 쾌락, 이 미칠 듯한 흥분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제 채색만 하면 됩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수사중독자니까.
예쁜 색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