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예쁜 색깔로.
“뭐? 채색?”
치헌이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그에 대답하지 않고 곧장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서울청 상황실이죠? 사건번호 1427번 살인 건 관련해서 공조요청 좀 부탁드리려고요.”
원하는 정보를 얻으려면 상황실 공조가 필요했다.
내가 전화하는 사이 경수가 안방에서 밖으로 나왔다.
“팀장님. 박지병 씨랑 김준흠 씨 모두 지금 서에 출석한답니다.”
“아, 그래? 그럼 지금 서에 바로 들어 가봐야겠네.”
그리고 정록과 지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더니.
“팀장님. 복도랑 엘리베이터 CCTV 영상 파일 다 확보했습니다.”
“오케이.”
팀원들의 보고를 다 받은 치헌이 과수반 직원을 돌아보고 말했다.
“저희는 서에 들어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장 감식 끝나면 내부망 메신저로 사진 자료 좀 보내주십시오. 창진서 형사 5팀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범행도구를 아직 못 찾았는데, 혹시 감식 중에 발견되면 그것도 따로 연락을 해주십시오. 사체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의사한테 사체검안서 저희 사무실로 팩스 한 장 넣어달라고 말 좀 전해주시고요.”
과수반 직원의 알겠다, 라는 대답과 동시에.
탁-
나도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각자 맡은 일을 완벽하게 끝낸 우리는.
“이선아 씨 데리고 서로 들어가자.”
형사동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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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형사계 사무실.
“어, 벌써 왔습니까?”
사무실로 들어오는 우리를 보고 박규만 6팀장이 놀라서 물었다.
치헌이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답했다.
“네, 좀 빨리 끝났습니다.”
“뭐 우리가 도와줄 건 없습니까?”
“지금 당장은 없고, 현장에 제 3자의 족적이 발견되었다는데. 좀 이따 과수반에서 연락 오면 그 족적 주인 누군지 수사 좀 해주십시오. 다른 관련자들은 5팀에서 다 조서 받을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발생보고서랑 영장은 다 쳐놨습니까?”
“다 해놨지요. 사체검안서만 오면 검에 보내면 됩니다.”
“곧 팩스 올 겁니다. 전화해서 한 번 더 독촉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살인사건이니 진행 빨리빨리 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전화 한 번 해보죠.”
그때.
“6팀장님.”
내가 한 마디 더 보탰다.
“피해자가 칼에 찔려 사망한 게 맞는지, 다른 사인은 없는지 그것부터 미리 전화로 알려달라고 해주십시오. 수사에 필요한 정보라서요.”
“… 알겠네.”
내가 지시하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규만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기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저기… 형사계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왔는데요.”
남자 두 명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선아가 그들을 보고 치헌에게 말했다.
“남편 친구들이에요. 왼쪽이 준흠 씨, 오른 쪽이 지병 씨.”
“아.”
그 말을 듣고 치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오시죠.’하고 안내한 뒤, 경수와 나를 돌아봤다.
“경수는 이 끝에서 김준흠 씨 조서 받고, 정태 너는 조사실 들어가서 박지병 씨 조서 받아. 이선아 씨는 내가 받을게. 정록이랑 지환이는 계속 CCTV 영상 확인하고.”
“잠시만요, 팀장님. 그 전에.”
내가 치헌에게 말했다.
“이 분들 휴대폰부터 모두 제출 받아 디지털 포렌식 의뢰부터 하시죠.”
“엥? 벌써 포렌식을?”
“사안이 중대한 살인사건이고, 이 분들은 사건과 밀접한 관련자들이니 어차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음 그렇긴 하지.”
디지털 포렌식.
컴퓨터, 휴대폰을 포함한 디지털 장치에서 발견되는 자료를 복구하고 조사하는 법과학을 말한다.
치헌은 잠시 고민하더니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건이 집 안에서 일어났으니, 그 당시 집 안에 있었던 사람, 그리고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선 디지털 포렌식 절차가 필수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선아 씨, 박지병 씨, 김준흠 씨 휴대폰 좀 제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자의로 제출해주시면 가장 좋습니다. 못 주시겠다고 하면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로 받는 수밖에 없습니다.”
치헌이 설명하자 모두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내놓았다.
그가 휴대폰을 지환에게 주며 말했다.
“지환아. 지방청가서 요 휴대폰만 얼른 맡기고 와라. 내가 전화해놓을게. 맡기기 전에 메시지랑 통화목록, 사진첩 확인해서 참고할 만한 거 사진 찍어놓고.”
“알겠습니다.”
대답한 뒤 사무실을 나서려고 하는 지환을.
“이반장님.”
내가 다시 붙잡았다.
“포렌식 할 때 최근 한 달 이내 삭제된 전화·문자 내역부터 먼저 복원을 좀 해달라고 하십시오.”
“한 달 이내 삭제된 전화·문자 내역이요?”
“네. 이렇게 복구할 자료를 짚어주면 포렌식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지환이 사무실을 나간 뒤.
“박지병 씨. 이쪽으로 오시죠.”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조사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짧은 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는 지병.
나는 마주 앉은 그에게 인적사항을 물은 뒤, 사건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박지병 씨는 석현승 씨와 어떤 관계인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관계입니다.”
“지병 씨는 이틀 전 김준흠 씨와 함께 석현승 씨의 집에 간 게 맞나요?”
“맞습니다.”
“그때 그 집 안엔 누가 있었나요?”
“현승이와 현승이 와이프, 저랑 준흠이 네 명이 있었습니다.”
“집 안에서 뭘 했습니까?”
그는 선아와 했던 것과 비슷한 진술을 했다.
같이 술을 마셨고, 현승과 준흠이 다퉜다는 것.
그 뒤엔 자신은 준흠과 함께 거실에, 현승과 선아는 안방에서 잤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에 선아 씨가 밖으로 나갈 때까지 세 분은 모두 자고 있던 게 맞습니까?”
“맞습니다.”
“잠에서 깨고 나서 혹시 현승 씨와 준흠 씨가 또 다투진 않았습니까?”
“……”
“사체 왼쪽 눈 위가 조금 부어 있던데. 혹시 준흠 씨가 폭행한 건 아닌가요?”
치헌과 경수는 보지 못했겠지만, 나는 사체의 눈 위가 살짝 부어 있는 것을 봤다.
외관상 거의 티는 나지 않았지만, 외부에서 물리적 힘이 가해지지 않고서는 날 수 없는 상처였다.
지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 맞습니다. 현승이랑 준흠이가 또 다시 싸웠고, 준흠이가 주먹으로 현승이 얼굴을 한 대 쳤습니다. 하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그 뒤엔 제가 준흠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와 각자 귀가했으니까요.”
“현승 씨의 집에서 나온 건 몇 시쯤입니까?”
“어제 낮 열두 시쯤일 겁니다.”
“그때 지병 씨와 준흠 씨 두 분 다 나왔다는 말이죠?”
“네.”
“그럼 그 뒤엔 집에 현승 씨 밖에 남지 않았겠네요.”
“그렇죠.”
“현승 씨 집에서 나온 뒤에 곧장 귀가를 한 게 맞습니까?”
“저는 바로 집에 갔습니다. 준흠이 저 놈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시 서류의 문장을 정리한 뒤 다시 물었다.
“그럼 지병 씨와 선아 씨는 어떤 관계입니까?”
“네?”
“선아 씨가 준흠 씨 연락처는 모르지만 지병 씨 연락처는 알고 있다고 하던데. 두 분이 따로 연락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지금 사건에 가장 깊이 관련되어 있는 분들의 관계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겁니다. 두 분이 따로 연락하신 적이 있습니까?”
“……”
지병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있기는… 있습니다.”
“어떤 용건으로 연락을 하셨죠?”
“뭐 그냥… 안부 정도 묻고 그런 거요.”
“두 분이 따로 만나신 적은 있습니까?”
그가 다시 한 번 멈칫하더니.
“만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커피 한 잔 정도 한 게 다예요. 형사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절대 아닙…”
“만나서 어떤 얘기를 하셨습니까?”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그냥 서로 안부를 묻고, 뭐 일상적인 얘기 하고…”
“두 분이 만나서 범행을 모의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단 말이죠?”
“네? 범행 모의라뇨!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그가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알겠습니다. 지병 씨는 최근에 현승 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 없습니다.”
“현승 씨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언제 입니까?”
“어제 집에서 나온 뒤로는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약 40분 정도 더 필요한 질문들을 마친 뒤.
“수고하셨습니다.”
끼익-
조서 작성을 마치고 조사실 문을 열고 나왔다.
치헌과 경수도 조서 작성을 거의 다 마쳐가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 오자, 경수가 의자를 쭉 밀어 내게 오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김준흠 씨가 석현승 씨랑 다툰 게 맞대. 다음 날 아침에 선아 씨가 밖으로 나가고 나서도 서로 언성 높이고 싸웠다는데?”
“때리진 않았답니까?”
“뭐?”
“사체 왼쪽 눈 위에 부어오른 상처가 있었거든요.”
“헐 진짜? 때렸다는 말은 안 하던데?”
“박지병 씨는 김준흠 씨가 피해자를 때리는 걸 봤다고 하던데요.”
“헉.”
경수가 입을 막은 채 다시 자리로 가더니 서류 인쇄 버튼을 누르고 다시 내게 왔다.
“박지병 씨, 다른 말은 없었어?”
“이선아 씨와 따로 연락하는 사이랍니다.”
“에!?”
“만나서 커피도 마신 적이 있다네요.”
“뭐야? 불륜이야?”
“그 이상은 진술하지 않았습니다.”
경수는 의심쩍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작성 받고 있는 이 조서들은 분명 수사에 도움이 되며 절차에도 필요한 서류들이 맞다.
내용 또한 의심해볼 만한 정보들이 많으며, 범행과 직접 연관이 될법한 진술도 꽤 있었다.
하지만.
“자, 세 분 다 각자 조서 읽어보시고 내용 다 맞으면 마지막 장 아래에 날짜, 성함 쓰시고 사인해주세요.”
내가 알고 싶은 정보는 따로 있었다.
남들이 보면 이 세 건의 조서를 받음으로써 수사에 상당한 진척이 있다고 판단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현장에서 그린 밑그림은 아직 전혀 채색이 되지 않았다.
“장팀장님.”
그들이 서류를 살펴보는 동안 규만이 치헌을 뒤로 불러 조용히 얘기했다.
“자세한 건 부검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외관상 칼에 찔린 것 외에 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는답니다. 칼에 찔려 죽은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래도 살인이니 부검은 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네. 사체검안서 곧 보내준다고 하니 검에 영장 신청할게요.”
“알겠습니다.”
그들이 작게 속삭였지만 나는 다 듣고 있었다.
현장 정황상 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밖에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의사를 통해 소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외관상 다른 특이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칼에 찔려 사망한 것이 맞다.
이제야 내가 원하는 정보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 확인했어요. 여기 맨 밑에 사인하는 거 맞죠?”
“네, 맞습니다.”
그리고 선아, 지병, 준흠이 진술조서 말미에 사인을 하는 그 순간.
“…!”
머릿속 밑그림이 예쁜 색깔로 물들었다.
살해할 마음을 굳게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