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살해할 마음을 굳게 먹고.
“서명 다 하셨으면 엄지에 인주 찍고 조서마다 간인할게요.”
사인을 마친 뒤 우리는 조서를 반으로 접어 각 진술자에게 간인을 받았다.
간인 받은 서류를 다 모은 뒤, 나는 선아의 진술조서를 살펴봤다.
치헌이 나와 경수에게 말했다.
“조서를 다 받긴 했는데, 서로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으니 대질조사를 해봐야할 것 같다.”
“아뇨.”
나는 조서를 보며 덤덤히 대답했다.
“대질 할 필요 없습니다.”
“…?”
그와 동시에.
띠리리리리-
위이이이잉-
치헌과 내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우리는 각자 전화를 받아 잠시 동안 통화를 했다.
치헌이 전화를 끊고 말했다.
“지환이 전환데, 가져간 휴대폰 디지털 포렌식 중이래. 그리고 포렌식 전에 자기가 휴대폰을 한번 살펴봤는데…”
치헌이 목소리를 낮춰 지환이 말한 내용을 설명해줬다.
이어 한참 동안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던 정록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오더니.
“팀장님. CCTV 영상 다 봤는데요. 좀 이상한 게…”
영상을 분석한 내용을 설명했다.
그들이 말하는 모든 내용들이 채색된 내 밑그림과 일치했다.
정록의 설명이 끝난 후에는.
“장팀장님.”
규만이 이쪽으로 와 치헌에게 말했다.
“현장에서 발견되었다던 제 3자의 족적이요. 주인 찾았습니다. 택배기사라네요. 일주일 전쯤에 냉장 보관해야 하는 택배를 배달하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 사망한 피해자의 요청으로 도어락 열고 부엌 냉장고까지 들어온 거랍니다. 과수반 직원 통해 피해자가 집 비밀번호를 택배기사에게 전달한 내용도 확보되었고요. 당시 발목까지 끈을 묶은 컨버스화를 신고 있었는데, 배달이 급해 그냥 신발을 신고 얼른 들어왔다 나갔답니다.”
“그럼… 그 택배기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겠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과수반 직원에게 또 다른 외부인의 족적이 발견되면 연락을 달라고 해놨습니다. 그럼 저희가 또 바로 수사를 해보겠…”
규만이 계속 설명을 이어나가던 그때.
“범인은 외부인이 아닙니다.”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피해자와 잘 아는 사이죠.”
“…?”
“그리고 그 범인은 지금 저희 사무실 안에 있고요.”
“!!”
사무실 안의 모두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채색은 거의 다 끝났다.
나는 태연하게 내 머릿속 그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최초 사건현장에 도착했을 때, 피해자의 사체는 침대 헤드에 반쯤 뉘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다리엔 이불이 덮여 있었죠. 살인 피해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편안한 자세로 있었던 겁니다.”
일을 하고 있던 다른 팀 직원들도 고개를 돌려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혈흔을 보면 사체가 옮겨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편안한 자세 그대로 살해를 당한 것이죠. 몸에 저항흔도 거의 없었던 걸 보면, 피해자는 범인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살해당할 줄은 몰랐다.’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이었다.
“범인은 외부인이 아니라 피해자의 지인이었던 겁니다.”
설명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다시금 놀라 입을 벌렸다.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경수는 이 안에 범인이 있을 거라 확신했는지, 슬금슬금 문 쪽으로 가 도주로를 차단했다.
“피해자와 친한 범인이 슬그머니 접근해서 갑자기 살해한 거예요.”
“그렇다면…”
책상 위에 있던 진술조서를 살펴보며 규만이 내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며 물었다.
“피해자를 폭행했다던 김준흠 씨가 범인일 확률이 높지 않나? 피해자와의 갈등이 명백히 확인되었고, 싸우긴 했지만 친한 친구사이니까.”
“폭행한 사람과 살인한 사람은 동일인이 아닙니다.”
“… 응?”
“상처의 방향이 다르거든요.”
이어 나는 출동 당시 찍어놓았던 사체 사진을 들고 설명했다.
“눈 위쪽 측면에 난 부은 상처. 이건 팔을 크게 휘둘러서 주먹으로 때린 상처입니다. 왼쪽 눈에 상처가 있으니, 상대는 오른 손을 휘둘러 때렸겠죠. 쭉 뻗은 게 아니라 휘둘러 때린 타격은 대개 자신의 주손을 사용합니다. 그러니 피해자를 폭행한 사람은 오른손잡이라고 봐야겠죠. 하지만.”
내가 사체의 자상(칼 등 날카로운 것에 찔려 입은 상처)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목 뒤와 가슴에 있는 자상은 모두 사체의 오른 편에 나 있습니다. 그러니 피해자를 칼로 찌른 사람은 왼손잡이죠.”
그 말에 방금 전 진술조서에 왼손으로 사인을 한 사람이 손을 떨기 시작했다.
“김준흠 씨가 피해자를 폭행했는지 안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준흠 씨는 칼로 피해자를 찌른 사람이 아닙니다. 아까 보니 오른손으로 사인을 하더라고요.”
그제야 규만이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사체 상처에 주목해보면.”
내가 다시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범인이 미리 칼을 준비한 채 슬그머니 피해자에게 접근해 살해한 걸 보면, 애초에 범인은 피해자를 살해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또 저항을 최소화하려면 일격에 피해자를 살해해야 했겠죠. 그렇다면 이 상처들 중 가장 먼저 생긴 상처는…”
내가 손으로 사체 한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뒷목일 겁니다. 목에는 단 1회, 가슴에는 10회의 상처가 난 걸로 봐선 급소인 목에 먼저 깊숙이 한 방을 찌른 후 가슴을 마구 찔렀을 확률이 높습니다.”
내 설명이 적나라하다고 생각했는지 몇몇 직원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그에 별 반응 없이 계속 설명했다.
“그럼 이 목을, 목 중에도 뒷목을 어떻게 피해자가 알아채지 못하게 찌를 수 있었을까요? 제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나는 말을 멈추고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받이를 안았다.
그리고는 왼손에 펜을 쥐고 의자 머리 받침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범인은 피해자를 안고 있다가 찌른 겁니다.”
“!!”
“침대 위에 있는 피해자의 몸에 올라와 포옹을 하며 시선을 돌린 채 목을 찌른 거예요. 용의선상에 있는 인물 중 이런 자세로 피해자와 포옹을 했을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내가 치헌의 책상 앞에 앉은 여자를 보며 말했다.
“아내인 이선아 씨죠.”
선아의 왼손이 더 크게 벌벌 떨렸다.
그녀가 오른손으로 왼손을 꽉 부여잡고는 나를 돌아봤다.
“무… 무슨 소리에요? 그때 저는 강원도에 있었다니까요?”
“그게 가장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사체가 편안히 누워 있는 모습과 목뒤의 상처를 보자마자 선아 씨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선아 씨는 그때 강원도에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바로 강원청에 공조요청을 해 선아 씨가 강릉에서 만났다는 이진주 씨 휴대폰 번호를 위치추적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
“위치추적 결과, 이진주 씨가 강릉 시내 식당과 카페를 드나든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강릉서 형사들이 식당과 카페 CCTV를 입수해 영상을 확인해보니 이진주 씨는 어떤 여성과 함께 다니고 있었더군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성의 인상착의가.”
내가 휴대폰 화면에 사진을 띄워 앞으로 내보였다.
강릉서 형사에게 받은 CCTV 영상 캡처본이었다.
“선아 씨와 똑같았습니다. 키와 체형이 비슷한 것은 물론 지금 입고 계신 옷과 신발까지요.”
주황색 가디건에 청바지, 흰색 신발.
지금 선아의 모습과 정확히 같은 모습이었다.
선아가 사진을 보며 당당히 말했다.
“보세요. 그렇게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는데 왜 저를 범인으로 모시는 거예요!?”
“이상한 점이 있었거든요.”
“…?”
“여기 다음 사진을 보면.”
내가 사진을 한 장 넘겨 다음 사진을 보여줬다.
“카페에서 선아 씨로 보이는 여자 분이 카드로 결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선아 씨 휴대폰엔 이때의 결제 내역이 전송되지 않았어요. 선아 씨는 카드결제를 할 때마다 내역을 휴대폰으로 전송하도록 설정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에 대해선 치헌이 옆에서 설명을 보탰다.
“저희 직원이 선아 씨 휴대폰을 확인해 본 결과, 메시지 수신함에 다른 결제내역은 있지만 강릉에 있었다고 진술한 시간 때엔 단 한 건의 결제 내역도 문자로 전송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진첩에도 강릉에서 찍은 사진 같은 건 없었어요.”
이어 정록도 입을 열었다.
“이선아 씨가 강릉을 가기 위해 집에서 나온 이후, 엘리베이터나 계단 CCTV에 이선아 씨의 모습이 촬영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선아 씨는 집을 나온 이후 엘리베이터를 타지도,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지도 않았다는 말입니다.”
“……”
입을 닫은 채 썩은 표정을 하고 있는 선아에게 내가 계속 말했다.
“그러니 강릉서에서 보내온 저 영상 속 여자는 선아 씨가 아니라, 선아 씨처럼 꾸며낸 여성이었던 겁니다. 실제 선아 씨는 강릉에 간 적이 없죠.”
“……”
“선아 씨 집이 있는 13층 계단엔 CCTV가 없습니다. 대신 12층과 14층엔 있죠.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으면 집에서 나오는 준흠 씨나 지병 씨에게 발각이 되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선아 씨는 결국 12층에서 13층으로 이어지는, 혹은 13층에서 14층으로 이어지는 그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겁니다. 거기서 준흠 씨와 지병 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귀가하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살인을 한 거죠.”
앞에 있던 지병과 준흠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선아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왜 선아 씨는 남편을 살해했을까요? 그리고 강릉에서 선아 씨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 이진주 씨는 선아 씨가 살인을 저지를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
“저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휴대폰 통신비 납부고지서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미리 프린트해 둔 통신비 납부고지서를 들어 보였다.
“과수반 직원이 피해자의 휴대폰 정보를 확인하던 중, 현장에 있던 휴대폰 외에 피해자의 명의로 또 다른 휴대폰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휴대폰 고지서는 집으로 송달되었지만, 다른 휴대폰 고지서는 이렇게.”
내가 고지서의 주소 부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남편 분의 회사로 송달이 되었죠. 저는 곧장 피해자 휴대폰 통신사에 의뢰해 두 번째 휴대폰의 통화 및 문자 송수신 내역을 받아 봤습니다.”
현장에서 서로 들어오던 중, 과수반 직원의 전화를 받고 나는 곧장 6팀 팀원들에게 부탁해 영장을 친 후 통신사에 통화·문자 내역을 요구했다.
“그 결과.”
나는 그 내역이 나오는 다음 서류를 펼쳐 들었다.
“이렇게 하나의 번호에 집중적으로 전화와 문자를 많이 한 내역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화번호의 주인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이선아 씨의 알리바이를 제공한 이진주 씨였죠.”
그 말에 선아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고.
사무실에 있던 다른 직원들은 헉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뭐가 어떻게 돼 가는 거야?’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수백 통의 전화와 문자. 게다가 별도의 휴대폰을 만들어 아내 분 몰래 연락을 이어온 걸 보면…”
나는 최대한 비슷한 사례의 판례들을 떠올리며 그 둘 사이를 정의했다.
“피해자와 이진주 씨는 불륜관계였던 겁니다.”
고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