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우리 이대로.
“엥? 널 증인으로 신청하라고?”
경수가 무슨 소리냐는 듯 눈썹을 치켜떴다.
나는 덤덤히 답했다.
“증거는 이미 다 준비되어 있지만, 제가 재판장에 한 번 서야 할 것 같아서요. 이 재판에서 제 3자인 제가 설 수 있는 곳은 증인석밖에 없습니다.”
그 말에 잠시 정적 후, 경수가 물었다.
“네가 왜… 재판에 서야하는데?”
“재판은 법적 다툼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판결을 하는 판사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싸움입니다. 이 말싸움, 즉 토론에는 토론에 특화된 사람이 있어야 하거든요.”
“토론에 특화된 사람?”
그의 물음에 내가 태연히 답했다.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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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창진구 내 한 중국집.
“주문하시겠습니까?”
오늘 나는 은빈, 정우와 함께 중국집에 와 있다.
정우가 퇴원 기념으로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했고, 은빈이 그 식사자리에 나를 초대했다.
나는 잠시 메뉴판을 보다가 직원에게 말했다.
“저도 짜장면 먹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주문 넣을게요.”
그러자 은빈이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오늘 제가 사는 거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도 돼요.”
“…!”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선생님, 잠시만요.”
점원을 다시 불렀다.
“탕수육이랑 깐쇼새우도 같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 말에 은빈이 멍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 정우한테 안부 안 물어봐요?”
정우와 나를 번갈아보며 내게 물었다.
“안부요?”
“어깨는 괜찮냐, 수술은 잘 됐냐 이런 인사말이요.”
“당연히 수술이 잘 됐으니 퇴원한 거 아닙니…”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정우를 쳐다봤다.
“… 어깨는 괜찮아?”
“네. 의사 선생님 말로는 나이가 어려서 뼈가 잘 붙을 거래요. 재활 잘하면 금방 회복될 거라고도 했고요.”
“다행이야.”
내가 답하자 은빈이 ‘다. 행. 이. 야.’하며 기계 같은 음성으로 내 말을 따라했다.
내가 저렇게 로봇처럼 말을 한다고?
“정태 씨는 요즘 별 일 없어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별 일 있습니다.”
“네? 무슨 일이요?”
“고경수 부장님 재판을 준비 중입니다.”
“재판이요!?”
그 질문에 나는 경수가 고등학생 피혐의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한 일에 대해 설명했다.
내 말이 끝나자 은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떡해요. 괜히 저 때문에 경수 씨 피해보시는 거 아니에요?”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가 현장에 출동해 피혐의자들과 대치한 건 은빈 씨 탓이 아닙니다. 경찰에게 수사는 당연한 일이고 그 사건은 저희 배당이었으니까요. 어차피 해야 할 수사였습니다.”
“……”
“게다가 이 재판으로 피해 볼 일은 전혀 없습니다.”
그 말에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고소를 당하고 재판에 가는 거면… 피해가 있지 않나요?”
“고부장님이 한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과잉방위였습니다.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정우가 입을 열었다.
“형이 준 판례집 보니까 정당방위는 인정이 잘 안되던데요?”
“그건 당시 피고인의 행위가 정방방위에 해당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재판에서 다툼을 잘 하지 못해서 그런 거야. 고부장님은 그 두 경우 다 해당사항이 없으니 정당방위가 인정될 거야.”
“이미 벌어진 행위가 정당방위라는 건 그렇다 쳐도, 재판에서 다툼을 잘 할 거라는 건 어떻게 장담하는 거죠?”
그 물음에 내가 잠시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우리 팀 모두 재판 준비 열심히 하고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물끄러미 정우를 바라봤고.
정우는 수긍하듯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은빈이 다시 내게 물었다.
“그럼 첫 재판은 언제에요?”
“1차 공판은 어제 했습니다.”
“네? 벌써 했어요?”
그때부터 나는 여태 있었던 재판 준비 과정과 어제 열렸던 1차 공판에 대해 잠시 동안 설명했다.
요 며칠 치헌과 나, 정록과 지환은 경수의 재판 증거자료를 수집하고 추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안득은 판사출신 변호사를 구해 경수에게 붙여주었고, 그가 말했던 대로 수임료는 매우 적게 받았다.
경수는 본인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재판을 잘 준비했고, 곧 첫 재판이 열렸다.
1차 공판은 사실상 다툼이라고 할 것이 없다.
판사는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검사는 공소사실 요지를 진술한다.
변호인은 그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 부인하는지 말하고, 판사는 변호인의 의견이 피고인의 의견과 동일한지 확인한다.
이어 검사가 증거를 신청하고, 피고인과 변호인이 어떤 증거를 동의하고 어떤 증거를 부동의 하는지 결정한다.
검사는 피고 측에서 부동의한 증거의 증명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에 맞는 증인을 판사에게 신청한다.
피고 측도 필요한 증인을 신청한다.
판사는 다음 공판 기일에 증인을 신문하기로 하고 1차 공판을 종료한다.
1차 공판 당시 검사가 말한 공소사실 요지는.
‘피고인은 지난 9월 15일 20시 30분경 서울시 창진구 영선시장 뒤편 폐건물 지하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던 고소인 황모씨의 어깨 부위를 발로 폭행하여 좌측 슬관절 전방십자인대를 파열케 함으로써 10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가하였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부인할 수도 있었지만, 인정했다.
사실 그대로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정당방위임을 주장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준비한 전략이었으니까.
이어 검사가 증거를 신청했을 때도, 검찰에서 단독으로 작성한 서류를 빼놓고는 모두 동의했다.
경찰에서, 즉 우리 형사 5팀이 작성한 서류들을 증거 부동의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 양측의 필요한 증인들을 신청한 뒤 첫 공판은 마무리되었다.
설명이 다 끝나자 은빈이 내게 물었다.
“그럼 정태 씨가 말한 다툼은 언제 하는 건데요?”
“2주 후에 열리는 2차 공판에서 합니다. 서로 신청한 증인을 신문하면서요. 저도 고부장님 증인으로 출석합니다.”
“헉 진짜요? 긴장되겠다.”
“전혀요.”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식사 나왔습니다.”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다.
윤기가 흐르는 까만 짜장면.
오동통한 탕수육과 깐쇼새우.
배가 고팠던 터라 나는 곧장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시작했다.
짜장면은 맛있었고, 탕수육과 깐쇼새우도 훌륭했다.
나는 잠시 동안 눈이 돌아가 아무 말 없이 먹기만 먹었다.
“맛있어요?”
은빈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말을 걸어왔다.
“맛있습니다.”
“누가 보면 퇴원은 정태 씨가 한 줄 알겠어요.”
“……”
“훗, 농담이에요. 많이 먹어요.”
은빈은 정우와 자신의 짜장면을 차례로 비비고 이제 막 식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면을 둘둘 말아 입에 쏙 넣더니 눈을 감고 ‘음~’하고 몸을 떨며 씨익 웃었다.
을왕리 때 가리비를 먹으며 짓던 그 표정이다.
그녀가 음식들을 쭉 한차례 맛보고는.
“원래는.”
다시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랑 점심을 먹기로 했었거든요. 근데 부모님이랑은 저녁에 먹자고 하고 정태 씨 부른 거예요. 잘했죠?”
“잘했습니다.”
“그런데 정태 씨 불러놓고도 사실 오지 않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
“별다른 용건 없이 부르는 거 싫어하잖아요, 정태 씨는.”
그 말에 나는 음식을 씹다 말고 잠시 동안 가만히 은빈을 바라봤다.
그녀의 말대로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우가 퇴원하는데 왜 그것을 기념하는 식사자리를 열어야 하며, 내가 왜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하는 지 의문을 가지면서.
하지만 오늘은 왜일까.
그냥 이 자리에 나오고 싶었다.
내게 찌릿한 감정을 전해준 이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아무튼 이렇게 정태 씨가 나와 줘서 전 좋아요. 덕분에 밥도 더 맛있는 것 같고요.”
은빈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저도 좋아요 형.”
정우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나는 그들을 번갈아보며.
“저도 좋습니다.”
덤덤히 답했다.
말투는 덤덤했지만 또 다시 가슴 안쪽이 조금씩 간지러워졌다.
난 이번엔 이 느낌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느껴보기로 했다.
좋았다.
수사할 때 느끼던 그 큰 쾌감이 잘게 쪼개어져 은은하게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혹시 미소 짓고 있는 은빈과 정우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뉴스에서 정태 씨랑 팀원 분들 나오는 거 봤어요. 경수 씨랑 그때 그 덩치 좋은 팀장님.”
그 후엔 일상적인 얘기가 이어졌다.
“정태 씨, 혹시 민경언니 기억나요? 저희 첫 소개팅 때 같이 봤었던 언니. 그 언니도 정태 씨 팀 나오는 뉴스를 봤나 봐요. 그런데 그 언니가 뭐라는 줄 알아요?”
나와는 상관없는, 예전이라면 시답잖게 들렸을 얘기.
그런 얘기들이 지금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별다른 용건 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일상 얘기는 잔잔한 음악소리처럼 내 귀를 감쌌다.
“··· 또 어제는 은행에 이상한 고객이 왔었어요. 아니 소득이 없는데 대출을 해달라고 떼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녀를 점점 더 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녀가 일상에서 느꼈던 감정들. 또 그런 감정을 묘사하는 말투와 표정 하나하나를 보며 내 안의 은빈이라는 그림이 예쁘게 채색되었다.
대화 주제가 바뀌면 그녀의 색깔은 노란색에서 보라색으로, 보라색에서 다시 하늘색으로 바뀌기도 했다.
은빈에 이어 정우도 자신의 일상을 말했다.
옆 환자의 방구소리, 병원 간호사들의 친절함, 자신의 어깨 상태의 진전 같은 것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단 한 순간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다 마무리 되고.
“아, 잘 먹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내가 은빈을 보고 살짝 목례했다.
“잘 먹었습니다.”
“에이 정태 씨. 너무 그렇게 깍듯하게 인사하지 하지 마요. 안 친한 사람 같이 보이잖아요.”
“……”
“게다가 신세는 저희가 정태 씨한테 졌는걸요.”
“… 신세요?”
“정태 씨 아니었으면 정우 퇴원하자마자 조사받으러 경찰서에 불려 다니면서 저는 저대로, 정우는 정우대로 또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옆에서 정우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식사는 좀 약소한 거 같으니 다음에 또 제가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이들과 또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평소라면 신세졌다고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며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았을 테지만,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좋습니다.”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게 더 즐거울 것 같았으니까.
동시에 나도 은빈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찌릿한 감정은 내가 그녀에게 받기만 했지 준적은 없는 것 같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그녀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나는 가만히 주희와의 상담내용을 떠올렸다.
‘즐거움은 대게 예측하지 못한 데서 오거든.’
‘즐겁지 않은 예전 방식에 얽매여 있는 것도 미련한 거야.’
그녀의 말이 다 맞았다.
내가 은빈으로부터 느낀 찌릿한 즐거움은 모두 예측하지 못한 데서 왔다.
그리고 오늘 느꼈던 즐거움도 예전의 나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이 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무튼 오늘 즐거웠어요. 정태 씨, 재판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했죠?”
예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그녀에게 낯선 즐거움을 선물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외로 답은 금방 나왔다.
내가 꼭 다시 해보고 싶었던 그것.
그걸 하면 될 것 같았다.
“정태 씨 볼일 보러 가셔도 돼요. 저희도 가볼게요.”
“아뇨, 오늘 저 안 바쁩니다.”
“…?”
“은빈 씨.”
나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그 행동을 했다.
“팔짱 좀 껴도 되겠습니까?”
“네!?”
나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스윽-
그녀의 팔 사이로 손을 넣어 팔짱을 꼈다.
이전에 그녀도 내 허락 없이 팔짱을 끼고 들어왔고, 그 덕에 낯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은빈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이어서 나는 이전의 나였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원치 않았지만 그녀는 원했던 것.
나 스스로 걷어 차버린 과거의 낯선 즐거움들에 대해서.
나는 생각한 끝에.
“은빈 씨, 우리 이대로.”
넌지시 그녀에게 말했다.
“목적지 없이 좀 걸을까요?”
완전히 찢어발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