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61
61화. 가장 명확한 선례.
내가 증인석에 서자 판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증언으로 인해 자신의 범죄사실이 밝혀지는 사정이 있다면 증언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선서하세요.”
“허위의 증언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을 것을 맹세합니다.”
내가 선서한 후.
“변호인. 신문 시작하세요.”
신문이 시작되었다.
치우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증인은 현재 피고인과 같은 형사 팀에 근무하고 계시는 경찰관이죠?”
“네.”
“본 재판에서 논하고 있는 사건 당시에 피고인과 같이 현장에 출동하셨고요?”
“네.”
“또한 방금 증인으로 이 자리에 나왔던 황찬석 군의 피신조서를 직접 작성하셨다고요?”
“맞습니다.”
사건 당일 찬석의 피의자신문조서는 내가 작성했다.
“이 사건 고소인인 이전 증인은 경찰관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로 인한 고통 때문에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아 조서작성 당시 피해사실을 진술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은.”
내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고소인이 경찰관에게 얻어맞았다는 진술은 사실입니다.”
“……”
“꽤 많이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대치가 한동안 이어졌으니까요.”
장내가 술렁였다.
검사 측도 아닌 변호인 측 증인이 피고인의 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니 충격을 받은 모양.
“하지만.”
내가 목소리에 힘을 주고 다시 말했다.
“모두 합법적 범위 내에서 가한 물리력입니다.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죠.”
“정당방위라는 주장이군요.”
“네. 피고인을 포함한 모든 경찰관들의 행위는 다 정당방위였습니다.”
내가 잠깐의 틈을 두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피신조서 작성 당시 고소인의 몸과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는 진술은 완전한 거짓입니다.”
“완전한 거짓이요?”
“네. 고소인은 술에 취해있지도 않았고 몸이 많이 아픈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조사 당시 아주 또렷한 정신으로 진술했죠.”
“그 사실을 증명할 자료가 있습니까?”
그 질문에 나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앞으로 내보였다.
“이건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최초로 몸 상태를 체크했던 구조대원 및 병원 간호사가 쓴 진술서입니다. 진술에 따르면 피해자의 몸에서 술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으며 확인된 상처도 경미한 타박상 정도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의 있습니다!”
검사 측에서 큰소리가 나왔다.
“저 진술서는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증거자료로…”
“이의 제기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진술서는 제 증언의 참고자료로만 쓸 뿐 증거로 제출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
“이것 말고도 피고인의 정당방위를 입증할 자료는 많습니다.”
나는 검사의 말을 끊어버린 뒤 다시 변호인과 판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증거로 채택된 경찰수사자료를 보면 고소인을 제외한 14명 피혐의자 중 13명의 피신조서에서 공통된 내용이 나옵니다. 피혐의자들 모두 ‘곧 들이닥칠 경찰들을 폭행하기로 합의 후’ 폐건물 지하에서 경찰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겁니다.”
내가 말하자 판사가 제출된 서류를 뒤적거려 피신조서를 훑어봤다.
“그렇다면 피혐의자들은 모두 폐건물 지하에 경찰이 들이닥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긴데. 이 정보는 누구로부터 전달받은 것일까요?”
“…?”
“영선시장 골목길 끝에서 저희들과 마주쳤던 피혐의자로부터 전달받은 겁니다.”
“…!”
“또 다른 증거자료 중 제가 작성한 수사보고를 보시면 영선시장 폐건물로 들어가게 된 경위가 나옵니다. 그곳엔 검정색 모자에 딱 달라붙는 프로티를 입고 왼쪽 팔등에 긴 상처가 있는 피혐의자를 마주친 뒤, 그를 따라가다가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피혐의자가 바로…”
내가 방청석에 앉은 찬석의 팔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고소인 황찬석 군이죠.”
재판장 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찬석은 상처 난 팔을 슬그머니 감췄다.
나는 앞을 보고 몇 마디 덧붙였다.
“찬석 군의 인상착의는 별도 사건에서 인지한 특수상해 건 피해자 이정우 군과의 진술과도 일치했습니다. 따라서 황찬석 군은 사건 당일에 발생했던 특수상해와 특수공무방해를 모두 주도한 인물이 되는 거죠. 뒤에서 구경만 하던 방관자가 아니라요.”
“……”
내 말에 변호인이 아무 말을 않은 채 잠시 동안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사전에 합의를 하고 모의연습까지 한 진술인데도 불구하고 적응이 안 되는 모양.
하긴 검사보다 더 검사처럼 쏘아붙이며 진술하는 증인은 처음 봤을 것이다.
“아… 그럼 다음으로…”
문득 정신을 차린 변호인이 서류를 훑으며 다음 질문을 찾고 있을 때, 내가 다시 말했다.
“나머지 진술은 검사님 반대신문 때 하겠습니다.”
“…?”
“본 재판은 피고인의 무죄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해내야 하는 자리니까요.”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해내지 못한다면, 피고인은 굳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은 자동으로 무죄가 되는 것. 이것이 무죄추정원칙의 골자다.
내 말에 변호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상입니다.”
판사에게 목례 후 자리로 들어갔다.
판사는 나와 수사서류를 번갈아 보며 흠, 하고 한숨을 내쉬고는.
“검사님, 반대신문하세요.”
재판을 계속 진행시켰다.
검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증인석 앞에 나왔다.
“증인. 주신문 때 증인이 진술한 내용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소인이 주장했던 내용으로 돌아와 보면, 결국 고소인은 사건 당시 그 현장에 있기만 했을 뿐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소인을 상대로 피고인이 폭행을 행사해 상해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는 분명 위법한 법집행 아닙니까?”
“방금 고소인이 사건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신 거죠?”
“…?”
“폭행은 하지 않고 그 현장에 있기만 했다는 거잖아요.”
“…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만.”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검사라는 사람이 어찌 이리 허술한 신문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할 때가 왔다.
“이전 주신문 때 저는 고소인 외 13명의 피혐의자 피신조서를 언급하며 그들이 분명 ‘경찰을 폭행하기로 공모’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설령 고소인이 실제 폭행을 행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범죄 공모에는 가담한 것이 됩니다. 피혐의자들과 현장에 함께 있었고, 소주병을 거꾸로 잡은 오지 지문이 묻어 있는 등 폭행을 준비한 정황은 여실히 드러나니까요. 따라서 고소인은 실제 폭행 여부에 상관없이…”
나는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특수공무방해의 공모공동정범이 되는 겁니다.”
“…!”
“공모공동정범은 범죄를 실행하지 않은 자도 실행한 자와 똑같이 처벌되는 거 아시죠?”
공모공동정범이란 2인 이상의 자가 범행을 공모하여 그 공모자 가운데 일부만 범죄를 실행한 경우, ‘실행행위를 하지 않은 자’도 공동정범이 된다는 이론이다.
쉽게 말해 찬석이 폭행을 안했다고 치더라도, 이미 공모에 가담하고 현장에 있었다면 폭행한 것과 똑같이 처벌을 받는다는 얘기다.
내 말에 검사가 발끈했다.
“공모공동정범이라뇨! 그게 얼마나 성립되기 어려운 줄 아십니까? 범죄에 있어서 지위나 역할, 지배 내지 장악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공동의 가공사실이 인정되어야만…”
“본 사건과 함께 처리된 공동폭행, 특수상해 건에서 고소인 황찬석 군은 매번 무리의 맨 앞에 서서 폭행을 주도했습니다. 특수상해의 경우 친구들은 뒤에 세워두기만 하고 자신만 폭행을 행사했죠. 이런 정황으로 봤을 때 찬석 군의 범죄에 있어서 지위나 장악력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봐야합니다.”
“……”
“게다가 특수공무방해 때는 경찰관을 보자마자 도주, 경찰관이 온다는 사실을 다른 피혐의자들에게 알림으로써 범죄에 가장 결정적이고 적극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범죄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한 거죠. 이런 찬석 군이 공모공동정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말에 검사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을 씹어댔다.
하지만 나는 이에 그치지 않고 더 퍼부었다.
“게다가 황찬석 군 증인신문 때 변호인이 재생 요청했던 동영상 자료. 그 자료에 나오는 10대 남성의 목소리는 황찬석 군의 목소리가 맞습니다.”
“그건 이미 고소인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증언한 내용입니다!”
“여기.”
내가 태연히 검사의 말을 받으며 가방에서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당시 바디캠을 촬영하며 황찬석 군을 태워줬던 파출소 경찰관이 형사계에 전송하려고 찍은 근무수첩 사진입니다. 보시면 황찬석 군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습니다. 자신의 순찰차에 태우면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를 파악한 것이죠. 찬석 군이 그 순찰차에 타지 않았더라면, 이 경찰관이 찬석 군의 인적사항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요?”
“……”
“그러니 아까 바디캠에 녹음 되었던 목소리는 찬석 군의 목소리가 맞는 겁니다. 폭행을 안 한 게 아니라 해놓고 안 했다고 거짓 진술을 한 거예요.”
“그 녹음사실 만으로 고소인이 폭행을 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겠죠. 고소인이 그냥 해본 말일지도 모른다, 저 녹음 파일이 고소인의 폭행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게 검사님의 주장 아닙니까?”
“……”
검사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영상에 나오는 고소인의 목소리로 알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있죠. 적어도 고소인에겐 ‘경찰을 폭행할 의도’는 있었다는 겁니다. 그가 실제로 폭행을 했다면 특수공무방해의 정범, 폭행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모공동정범이 되는 거죠.”
“……”
“따라서 고소인은 법을 위반한 범법자가 되는 거고, 이에 대항하여 행사한 경찰의 폭행은 정당방위가 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내 말을 듣고 검사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더니 마지막 발악을 했다.
“정당방위, 정말 어이없는 주장입니다. 방위행위가 아니라 직접적인 폭행을 해놓고 정당방위라니요!”
“말씀드린 모든 증거를 기반으로 당시 현장에서 제가 목격한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고소인이 깨진 소주병으로 저희 장치헌 팀장님을 폭행하려 하는 것을요.”
“…!”
“저는 그때 ‘팀장님, 조심하세요!’하고 소리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저와 팀장님 사이 거리는 멀었고, 다가갈 타이밍도 놓친 상태였으니까요. 그때 마침 피고인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고, 그대로 고소인을 걷어 차 팀장님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피고인이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경찰관이 직접적 폭행을 하는 것은…”
“그에 대해선 이미 증거로 제출된 서류에 다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당시 경찰관이 행사한 물리력은 과잉방위였고, 그 과잉방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요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고 말이죠. 그때 상황과 아주 유사한 경우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도 있습니다. 따로 자료를 안 드려도 검사님이라면 알고 계실 겁니다. 유명한 판례니까요.”
“……”
“당시 현장에서 경찰관의 대처는 완벽했습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될 것이 없었죠.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무기를 버리라는 명령을 2회 밖에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때 피혐의자들에게 소주병과 각목을 내려놓으라는 명령은 치헌이 한 번, 내가 한 번 총 두 번 밖에 하지 않았다.
“만약 무기를 버리라고 한 번 만 더 말했었다면.”
내가 검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총을 쏴도 됐을 텐데 말이죠.”
“뭐… 뭐라고요!?”
“그러면 경직법상 총기사용 요건에도 맞아떨어지니 38권총을 사용했어도 됐다는 말입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고작 고등학생한테 총기사용이라뇨! 만약 총기를 사용했다면 증인은 바로 징역행입니…”
“아뇨. 기소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제가 직접 겪은 사례를요.”
“…!?”
사실 이번 재판의 다툼은 과거 내 징계위원회에서의 다툼보다 쉬웠다.
징계위원회 때는 정당방위에다 총기사용에 대해서까지 해명을 해야 했지만,
이번엔 정방방위에 대해서만 무죄를 증명하면 됐으니까.
“이번 재판, 피고인 무죄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명확한 선례는.”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피의자에게 총을 쏘고도 정당방위로 기소조차 되지 않은 경찰관. 탁정태 저 자신입니다.”
즐거운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