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즐거운 얘기.
재판장 내에 정적이 흘렀다.
검사는 입을 닫고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는 아마 더 이상 나를 신문하지 못할 것이다.
법조인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었을 내 정당방위 사례를 그가 모를 리 없을 것이고, 지금 재판에는 내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영향력 있는 선례니까.
나는 건조한 표정으로 계속 그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검사가 눈을 질끈 감으며 뒤돌더니.
“… 이상입니다.”
판사에게 목례를 하고 자리로 들어갔다.
이어서 판사가.
“양측 더 물어보고 싶은 것 있습니까?”
하고 물었고.
“… 없습니다.”
“없습니다.”
검사와 변호사가 대답했다.
판사가 앞을 보고 말했다.
“그럼 증인신문을 마치겠습니다. 증인은 자리로 돌아가도 좋습니다.”
나는 다시 방청석으로 돌아와 앉았고, 치헌은 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판사는 변호인에게 더 하고 싶은 절차가 있냐고 물었고, 변호인은 없다고 했다.
“증거는 모두 채택하여 증거조사 하겠습니다. 증거제출하세요.”
판사의 말에 검사가 수사기록을 법원직원에게 전달하고, 법원직원이 이를 다시 판사에게 전달했다.
“검사님, 증거요지 진술하세요.”
“경찰 및 검찰에서 작성한 피해자 진술, 피해자의 진단서 등이 있습니다.”
“살펴보겠습니다.”
그 후 잠시 동안 판사가 증거들을 훑어본 뒤.
“증거조사를 마쳤습니다. 검사님 구형하십시오.”
판사의 말에 검사가 일어나 나를 한 번 흘겨보고는 입을 열었다.
“피고인은 경찰관으로서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절차를 준수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을 남용하여 미성년자에 불과한 고소인에게 직접적 폭행을 가해 10주의 가료를 요하는 상해를 입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일절 사과 없이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등 죄를 뉘우치지 않으므로 그 죄질이 매우 불량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피고인에게 벌금 1천만 원을 선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검사가 다시 자리에 앉은 뒤엔.
“변호인. 최후변론하세요.”
치우가 일어섰다.
“피고인의 행위는, 고소인이 깨진 소주병으로 피고인의 동료를 폭행하려 했던 부당한 침해를 방지하려는 행위, 즉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됩니다. 재판과정에서 증거 및 증인신문으로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방위임이 모두 증명되었고, 고소인과 검사 측 증거 논리의 오류까지 확인되었으므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가 자리에 앉았다.
이제 재판의 모든 과정이 끝나고.
“피고인.”
마지막 절차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법원에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하세요.”
판사의 부름에 여태 계속 가만히 있던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나오면서 방척석에 앉은 우리를 슥 훑어봤고, 치헌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응원을 했다.
여태 치헌을 비롯한 팀원들은 열심히 증거를 모으며 재판준비에 기여했다.
변호사는 모은 증거를 정리해 제출하고 재판 전략을 세우는 데 이어 전관예우의 후광으로 판사에게 무언의 압박을 넣는 등 자기 몫을 다 했다.
나 또한 증인신문에서 내 할 몫을 다 했다.
이제 경수가 제 몫을 할 차례다.
그리고 그의 몫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다.
“저기 앉은. 탁정태 경위.”
그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 동료가 증인신문에서 다른 피의자에게 총을 쏜 적이 있다고 말했죠? 그때 그 피의자는 칼을 들고 제 머리를 내리찍으려하고 있었습니다.”
장내에 작게 동조의 탄성이 일었다.
“그때 탁정태 경위가 피의자에게 총을 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
“저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에 대해 탁정태 경위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청중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탁경위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야 했습니다. 위원들은 왜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지 않고 총을 쐈냐며, 다친 피의자는 어떻게 할 거냐며 그를 꾸짖었습니다. 모든 법적 요건을 다 갖추고 한 발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탁경위에게 계속해서 책임을 씌우려 했습니다.”
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덤덤히 그의 말을 들었다.
“다행히 탁경위는 훌륭한 답변으로 징계와 기소를 면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무 중 무기를 사용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다른 대부분의 경찰들은 감봉 이상의 중징계를 받습니다. 정당한 법집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를 위한다는 구실로, 또는 언론에 보여주기 식으로 경찰관에게 억지 책임을 씌우는 거죠.”
“……”
“탁경위가 위원들에게 막 공격을 당할 때, 저는 오히려 그들에게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럼 그때 탁경위가 총을 쏘지 않고 내가 칼에 맞아 죽었어야, 그게 옳은 일인가요? 하고 말입니다.”
경수가 청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때 제가 죽었어야 했나요?”
청중들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수가 더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본 재판에서 다루고 있는 특수공무방해 현장에서 제가 고소인을 발로 차 막지 않았더라면, 저희 팀장님은 머리가 크게 찢어지는 중상해를 입었을 겁니다. 저희 팀장님은 제게 가족 같은 분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의 가족이 그런 위기에 처했다면,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
“그 짧은 상황에 정당방위 요건을 고려해 최소한의 방위행위로 날아오는 소주병을 막을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청중이 다시금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수 없었을 겁니다. 저처럼 상대를 발로 차서라도 가족을 구했겠죠. 그게 정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수가 점점 목소리를 키웠다.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 행하는 과잉방위 행위를 법에서 정당방위로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판사를 돌아봤다.
“법원에서 판결을 내릴 때 ‘일반인의 평균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판사님은 방금 일반인의 평균적인 시각이 어떤지 두 눈으로 잘 확인하셨을 겁니다.”
판사는 입을 앙 다문 채 경수의 말에 집중했다.
“제가 당시 현장에서 한 행동은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으며 일반인의 상식으로 봐서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행동입니다.”
“……”
“부디 이번 재판 제게 무죄를 선고하여 주시어…”
그가 어조를 바꿔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판사님의 자녀가!”
“…!”
경수는 눈을 크게 뜨는 판사를 뒤로하고 이번엔 검사를 돌아봤다.
“검사님의 형제가!”
“…!”
이어 다시 청중을 돌아보고는.
“여기 있는 여러분의 가족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도!”
동정 호소와 다짐을 섞어 놓은 듯한 표정과 말투로 얘기했다.
“우리 경찰관들이 정당방위로써 피의자의 폭력행위를 막고 적극적인 법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판사와 검사를 포함한 장내 모든 사람들이 경수에게 완전히 빨려 들어가 집중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말이 끝났는데도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보고 있었다.
경수는 그 적막 속에서.
“이상입니다.”
진술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로써.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2차 공판이 끝났다.
*
“고생하셨습니다.”
법원을 나온 치헌은 치우에게 먼저 인사한 후.
“이야, 경수!”
경수에게 어깨동무를 해 목을 끌어안았다.
“너 뭐야? 말을 왜 이렇게 잘해 오늘?”
“하하. 연습대로 한 건데요 뭘.”
경수가 웃으며 대답하고 날 돌아보더니.
“고맙다 정태야.”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재판을 준비할 때 나는 이성과 논리로는 검사를 무너뜨릴 자신이 있었다.
그들의 예상 주장에 대한 모든 대응책을 마련해 법과 판례로 찍어 누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감정으로 판사의 마음을 훔칠 자신은 없었다.
감정은 아직까지 내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역할은 경수에게 맡겼다.
경수는 예상보다 훨씬 잘해주었다.
준비한 최후 진술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잘 말했음은 물론, 진술할 때 표정과 목소리를 적절하게 바꿔가며 재판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진술에 매료되었고, 무죄를 선고해달라는 그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나 또한 그의 진술을 들으며 감정호소의 위대함에 대해 실감했다.
나는 내 증인진술보다 그의 최후진술이 훨씬 더 훌륭했다고 생각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짧게 그의 말을 받은 뒤.
“선고가 언제랬지?”
치헌이 다시 경수에게 물었다.
“2주 후, 11월 30일이요.”
“그때까지 마음 좀 졸이겠네.”
“에휴. 이제 할 거 다 했으니 잊어버리려고요. 저랑 주변 분들도 모두 최선을 다 했으니까 결과는 나오는 대로 겸허히 받아들여야죠 뭐.”
그 말을 듣고 내가 옆에서 말했다.
“오늘 법정에서의 다툼은 완벽히 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판례에선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기 때문에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재판과 기존 판례 데이터로 무죄 받을 확률을 가늠해보면…”
내가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50퍼센트 정도 됩니다.”
“뭐? 50퍼 밖에 안 된다고?”
치헌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법리로 따지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마지막에 고부장님이 최후진술을 잘 하셨으니 판사의 마음이 저희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을 것 같습니다.”
감정의 영역은 내가 계산해낼 수 없다.
50퍼센트에서 조금 더 높은 정도의 확률.
그것이 내가 계산한 최종 무죄선고 확률이다.
이어서 내가 계속 말했다.
“만약 유죄가 선고된다면 즉시 항소해야합니다. 항소할 때 준비해야 할 추가 증거로는…”
“야, 정태야.”
설명을 이어가려는데 경수가 내 말을 끊었다.
“항소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
“…?”
“나 지금 재판 준비하느라 거의 유체이탈 상태거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
“이제 재판얘기는 그만하고 즐거운 얘기하자. 즐거운 얘기.”
경수가 풀이 죽은 상태로 그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면 그가 기운이 없을만했다.
그동안 그는 재판 당사자로서 모든 준비과정에 참여해야 했고, 감찰에도 몇 번이나 불려 다녀야 했다.
게다가 일은 일대로 해야 했으며, 경위 특진 관련 실적수합 및 서류도 준비해야 했다.
최근 몇 주간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나는 어깨가 축 쳐져 있는 경수를 즐겁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얘기.
뭐가 있을까.
‘…!’
고민을 해보기도 전에 바로 답이 나왔다.
“부장님.”
“응?”
“얼마 전에 은빈 씨 만나서 대화하다가 나온 얘긴데요.”
그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분야.
“혹시 주민경 씨 기억나십니까?”
“주민경 씨? 그때 너랑 더블데이트 할 때 은빈 씨랑 같이 나왔던 여자 분 아니야?”
“맞습니다. 그 주민경 씨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부장님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데요?”
연예인을 만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