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연예인을 만난 듯.
“뭐!? 민경 씨가 나를?”
예상했던 대로 경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중국집에서 은빈과 정우를 만났던 날, 은빈이 얘기했다.
뉴스에 정복을 입고 나오는 경수를 보며 민경이 다시 한 번 경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고.
“네. 더블데이트 땐 사실 저 때문에 그 자리에 더는 있을 수 없었답니다. 다시 연락하기도 애매했다고 하네요.”
그러자 경수가 내 어깨를 퍽 치며 환히 웃었다.
“거봐! 그때 나랑 민경 씨 느낌 좋았다니깐!? 그래서, 언제 보자는 거야?”
“……”
방금 전까지만 해도 풀이 죽어 울상이었는데, 금세 이렇게 기운이 살다니.
확실히 여자 얘기하길 잘 한 것 같았다.
“여기.”
내가 휴대폰 화면을 그에게 보여줬다.
“은빈 씨한테 받은 민경 씨 연락처입니다. 재판 끝나면 연락 한 번 해보시죠.”
“어허, 재판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지.”
“…?”
“여자가 신호를 줬잖아.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겠어?”
“… 가야죠.”
“그렇지.”
경수가 형사동차 쪽으로 먼저 걸어 나가며 덧붙였다.
“오늘부터 퇴근하고 턱걸이랑 팔굽혀펴기 좀 해야겠다. 몸 펌핑 좀 시켜야지.”
그런 경수의 뒷모습을.
“하…”
치헌이 아련하게 쳐다봤다.
내가 그를 보고 물었다.
“부럽습니까?”
“응.”
#
2주 후, 창진서 여성청소년과장실.
“저희 부서에서 해야 할 일인데 형사 5팀에서 하게 되어 저도 괜히 미안하네요.”
뚜렷한 이목구비에 시원한 미소의 중년 여인.
박해미 여청과장이 나와 치헌, 경수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방청에서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거절할 수도 없고.”
“……”
치헌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저께 경수의 최종 선고가 나왔다.
결과는 무죄.
법원은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는 모두 경수를 얼싸안고 자축을 했고, 안득과 교철도 사무실까지 찾아와 격려를 해주었다.
무죄 판결과 동시에 [청소년 범죄 타도], [청소년 특수공무방해 사건, 경찰관의 진압은 ‘정당방위’]와 같은 제목으로 기사가 몇 개 올라왔다.
기사엔 나와 경수, 치헌과 강상민 경사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어제는 서울청 홍보담당자가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언론의 물살을 탄 이 때 경찰 이미지를 제대로 향상시켜보자며 우리 팀에 청소년범죄 예방 홍보활동을 요청했다.
원래 청소년관련 업무는 여청과 담당이지만 지방청에서 직접 창진서 형사과를 언급하며 업무지시를 했기에, 상민을 제외한 우리 5팀이 홍보활동을 하기로 했다.
“홍보활동만 해주시면 나머지 서류작성은 저희 여청이랑 지방청 홍보에서 알아서 할 테니 수고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치헌이 짧게 대답하며 목례한 뒤,
우리는 방을 나왔다.
치헌은 방을 나오자마자.
“에라이.”
볼멘소리를 해댔다.
“형사한테 무슨 홍보활동을 하래? 사건 쳐내기도 버거워 죽겠구만.”
“그러게요. 지금 저희 조에 배당된 사건만 50개가 넘는데.”
경수가 입을 쩝 다시며 치헌의 말을 받았다.
실제로 최근 몇 주간 재판을 준비하면서 자잘한 배당 사건들이 많이 밀려 있었다.
“지방청에서 좋은 취지로 추진하는 거긴 하지만, 매일 수사만 하다가 갑자기 그 많은 학생들 앞에 서서 홍보활동을 하라니. 나 참 남사스러워서.”
“그래도 뭐 홍보활동이라고 해봐야 교육 간단히 하고 프린트된 자료 나눠준 뒤에 사진 몇 장 찍는 게 전부일 테니, 너무 부담 안 가지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래. 얘기할 일 있으면 정태가 입 좀 털고, 경수 네가 얼굴마담 해. 나는 이번엔 뒤로 좀 빠져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갈 채비를 해서 경찰서 정문 앞으로 나왔다.
이곳에 지방청 홍보 담당자가 우리를 태우러 오기로 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경수는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헐 팀장님, 이거 보셨습니까?”
휴대폰 화면을 치헌에게 내보였다.
“버팔로 사건에 연루된 연예인, 김찬혁뿐만이 아니래요. 그 밴드 보컬 박지석이랑 배우 서지호도 관계가 있대요.”
“참나, 이거 연예계가 완전히 개판이구만.”
“단체 메시지로 수년 간 마약을 관리, 판매 한 정황이 드러났답니다. 마약뿐만 아니라 성매매 여성들도 물건처럼 거래를 했다네요.”
“좆댔네 걔네들. 진짜 티비에 나오는 놈들은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니까.”
버팔로 관련 기사가 또 터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바라던 건 연예인 기사가 아니었는데.
“요즘 연예계가 난리네요. 저번 주에는 빚투, 그 전 주에는 스폰녀 기사 터지더니, 이번 주엔 버팔로 추가 건이라.”
“기자들은 좋아라하겠다 이슈 시킬 건덕지가 이렇게 우수수 떨어지니. 아참 그건 그렇다 치고.”
치헌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너 어젠 어떻게 됐냐?”
“뭐 말입니까?”
“민경 씨인가 하는 분. 어제 두 번째로 만났다며.”
“아 민경 씨요?”
경수가 머리를 털어 넘기며 옅게 웃었다.
“잘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뭐? 사귄다는 거야?”
“네.”
“벌써?”
“벌써라뇨. 처음 만나고 2주 가까이 지났는데요. 정태랑 은빈 씨랑 같이 2대2로 술도 한 잔 하자고 해놨어요.”
그리고는 경수가 나를 돌아봤다.
“정태야, 잘 했지?”
“……”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약속을 잡은 뒤 잘했냐니.
게다가 왜 굳이 술을 마셔야한단 말인가.
내가 아무 말 않고 있자 경수는 입을 비죽이며 고개를 돌렸다.
“이야, 역시.”
치헌이 나와 경수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누구랑은 다르구나! 두 번 만나고 바로 연애라니.”
“어휴 이런 고구마랑 비교하시면 안 되죠.”
“그래그래. 각자 전공분야가 있으니까. 키햐, 무죄 선고에 연애에. 경수가 일이 술술 잘 풀리네. 이제 마지막 단추만 잘 꿰면 되겠다.”
“마지막 단추요?”
경수의 질문에 치헌이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
“모레가 창진서 형사과 경위 특진자 발표일이잖아.”
마침내 경위 특진자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경수 심장이 아주 쫄깃하겠는데?”
“아, 네 뭐. 마음을 비우려곤 하는데, 솔직히 떨리긴 하네요.”
“어허, 마음을 비우다니. 사실상 네가 되는 게 확정인데.”
“하하. 그러면 좋겠지만…”
“오늘 내가 이 학교폭력 예방활동 가는 것도 네 특진 쐐기를 박으려고 가는 거야. 우리 수사 실적에 이런 대외활동까지 추가되면 승진 안 시킬래야 안 시킬 수가 없다고.”
“아…”
“실적 수합기간이 지나긴 했지만, 지방청에서 지시한 만큼 인사담당자들도 다 알고 있을 거야. 이런 활동을 무시할 수가 없다는 얘기지.”
치헌은 특진 때문에 가는 거라고 얘기했지만, 나는 이 홍보활동에 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청소년 범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그 죄질까지 불량해지고 있으며, 이는 별도의 교육과 홍보를 통해 꼭 개선시켜야 하는 문제니까.
그렇게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끼익-
우리 앞에 승합차가 한 대 서더니.
“안녕하십니까!”
운전석에서 처음 보는 직원이 내려 꾸벅 인사를 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안경을 낀 남자.
“서울청 홍보담당 김지철 경사입니다.”
“아, 네. 오늘 저희 데리러 온다고 하셨던?”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는 치헌과 악수한 뒤.
“타시죠.”
뒤에 있는 승합차로 우리를 안내했다.
지철은 우리가 할 홍보활동 안내를 위해 서울청에서 파견된 직원이었다.
차에 올라타자 그가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요즘 창진서 형사 5팀 인기가 대단합니다. 지방청에서도 직원들이 이 팀 얘기밖에 안 해요. 어제는 제가 아는 기자가 한 명 전화가 와서는…”
그의 말이 의미 없는 인사치레라 생각한 나는.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곧장 용건을 물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 아, 일정이요? 오늘은 고등학교 하나, 중학교 하나, 초등학교 하나 이렇게 세 학교를 돌 예정입니다. 먼저 고등학교부터 갈 거예요.”
그 말에 치헌이 인상을 찌푸렸다.
“세 군데나요? 하이고야.”
“형사 5팀 분들 시간내기가 쉽지 않으시니, 이렇게 나와 주셨을 때 뽕을 뽑아야죠. 하하…”
“뭐 홍보계 입장에선 그렇겠네요.”
“가서 크게 하실 건 없고, 그냥 간단한 교육 멘트 뒤에 질문 몇 개 받고 홍보자료 나눠준 뒤 사진 찍고 나오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아, 그런데.”
치헌이 뒷좌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뒤에 인형 탈은 뭡니까?”
“아, 포돌이 탈입니다.”
“포돌이요?”
“조금 이따 초등학교 갔을 때 세 분 중에 한 분이 써주셔야 합니다.”
“예? 탈을 우리가 왜 씁니까?”
“아 그게, 초등학교 홍보 땐 포돌이 탈을 써주는 게 친근감도 느껴지고 좋거든요. 서류 만들어 기안 올릴 때도 포돌이 사진 하나는 꼭 있어야 합니다.”
“하 참나. 별 걸 다 시키네.”
치헌이 한숨을 쉬며 나와 경수를 돌아봤다.
“야. 너희 둘 중에 한 명이 써라. 친근감 느끼려고 쓴다는데, 내가 쓰면 오히려 혐오감만 드니까.”
그에 경수가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쓰죠 뭐.”
“그래. 경수 네가 기럭지가 좋으니 쓰면 멋있겠다.”
그렇게 경수가 포돌이 탈을 쓰기로 하고 잠시 후.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는 학교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치헌에게 말했다.
“그런데 애들이 저희를 좋아해줄지 모르겠네요. 자기들 동급생 팬 경찰관이라고 싫어하진 않을지.”
“그럴지도 모르지. 얘들 나이 땐 친구라고 하면 물불 가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학교 복도로 들어서자.
그들의 우려와는 전혀 다르게.
“와, 탁정태다!”
“그 헐크랑 모델도 왔어!”
마치 인기 연예인을 만난 듯 학생들이 하나 둘 모여들더니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환호를 지르거나 박수를 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앞으로 휴대폰을 들이미는 학생들 때문에 지철은 손을 양쪽으로 펴고 ‘잠시만 비켜주세요!’하며 경호원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헤치고 홍보활동 약속 장소인 1학년 1반에 들어가자.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앉아 있던 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질러댔다.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학생들.
그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가 교탁 앞에 서자 담임 선생님이 좌중을 조용히 시킨 후 우리를 소개했다.
“요즘 언론과 SNS를 뜨겁게 달구고 계신 분들이죠? 오늘 학교폭력예방 홍보활동을 해주실 창진서 형사 5팀 경찰관 분들입니다!”
다시 한 차례 박수소리가 들린 후, 선생님이 우리를 돌아봤다.
“한 분씩 자기소개 해주실래요?”
그 말에 치헌이 먼저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반갑다. 창진서 형사 5팀장 장치헌 경감이다.”
“와아아-!!”
그의 소개에 또 한 번 큰 함성이 쏟아졌다.
누군가 ‘와, 팔 존나 커.’하며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고경수 경사예요. 반가워요.”
경수가 웃으면서 인사하자.
“진짜 모델같애.”
“개 잘생겼어.”
또 다른 찬사가 쏟아졌다.
다음으론.
“창진경찰서 형사 5팀 탁정태 경위입니다.”
내가 앞으로 나가 인사했다.
그러자.
“끼야아아-!!”
“와아아아-!!”
그 어느 때보다 큰 함성이 교실을 뒤덮었다.
옆에서 경수가 귓속말로 ‘정태 네가 유명하긴 한가보다.’하며 속삭였다.
저들은 왜 알지도 못하는 내게 저렇게 큰 환호를 하는 걸까.
교실 밖으론 다른 반 학생들이 창문에 얼굴을 갖다 붙인 채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소개가 끝나자 선생님이 치헌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학교폭력 예방 관련해서 교육하실 게 있으시면 먼저 간단히 할까요?”
“그러죠. 교육은 우리 탁정태 경위가 할 겁니다.”
입 터는 건 내가 맡으라더니, 치헌은 교육 얘기가 나오자마자 자연스레 나를 지목했다.
어제 지방청에서 연락을 받은 터라 아무 준비 자료도 없었지만, 나는 태연히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네, 그럼 탁정태 경위님. 시작하시죠.”
학생들 모두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들의 눈에는 동경과 존중, 기쁨과 감동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저희는 여러분들에게…”
또렷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환호나 받으려고 이 자리에 온 게 아닙니다.”
죽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