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64
64화. 죽을 수도.
환호와 웅성거림이 섞여 있던 교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벙진 눈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6만여 건.”
나는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지난 5년 간 서울에서 일어난 미성년자 범죄 건수입니다.”
며칠 전 봤던 논문 내용을 떠올리며 계속 말했다.
“2천여 건.”
정적은 계속 유지되었고.
“그 미성년 범죄 중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 건수입니다.”
학생들은 나에게 조금씩 더 집중했다.
“35%. 미성년 범죄자의 재범률입니다.”
“……”
“숫자로 얘기하니 감이 잘 안 오시죠?”
이어 나는 교실을 쭉 훑어봤다.
소수의 공통된 특징을 가진 학생들이 보였다.
수동적이고 유약하며,
자기가 앞을 쳐다봐도 되는지, 웃어도 되는지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언제든 복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학생들.
“이 반 에도 두 명 혹은 세 명 정도 있군요.”
“…?”
“청소년 범죄 피해자가 말입니다.”
“…!”
“피해자가 있다는 건 가해자도 있다는 말이죠.”
내 말에 누군가는 놀라 눈을 크게 떴고, 누군가는 다시금 주변 눈치를 살피며 어깨를 더 움츠렸다.
“저는 매천파출소에 근무하던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들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피해자를 괴롭히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21세였던 피해자는 가해자들이 억지로 먹인 닭 뼈 때문에 기도가 막혀 응급실에 실려 갔었죠.”
그 말에 학생들이 동조하며 웅성거렸다.
“검거된 가해자들은 기소 후 재판에 넘겨져 각각 징역 8월~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과거에 저지른 범죄에 대한 혐의가 더 많이 입증되었다면 훨씬 중하게 처벌이 되었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내가 덤덤한 표정으로 아쉽다고 얘기하자, 학생들은 오히려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 사건이 여러분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학생들 모두 입을 닫고 내 답을 기다렸다.
“그만하라는 겁니다.”
“……”
“가해자들은 당장 괴롭힘을 그만두십시오. 범죄가 상습 또는 집단화 되면 죄가 중합니다. 학교폭력은 대부분 상습·집단화 된 범죄들이고, 이는 발각되는 즉시 중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고등학생은 형사미성년자에도 해당하지 않아 처벌을 면할 수도 없습니다.”
형사미성년자는 만 14세 미만의 자로, 책임능력이 없어 죄를 지어도 형사처벌 할 수 없다.
통상 중학교 2학년 정도가 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피해자들도 자신에게 행해지는 범죄를 참는 것을 그만두십시오. 참고 있으면 성인이 될 때까지 괴롭힘이 계속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목구멍에 닭 뼈가 들어가고 기도가 막히는 지경까지 가야 피해를 호소할 겁니까?”
“……”
“연구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보복이 두려워 피해호소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연구 자료를 보면 학교폭력을 고발했을 때 보복을 당할 확률보다, 학교생활이 긍정적으로 개선될 확률이 훨씬 더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깨를 움츠렸던 학생들이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
“억울한 피해를 당하고 있다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부당한 고통을 참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없으니까요.”
“……”
“선생님이 짧게 하시라고 하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뒤로 다시 물러났다.
“……”
갑자기 나 혼자 너무 진지하게 말 한 탓일까.
교육이 끝나고 나서도 학생들은 아무 말을 않은 채 계속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정적을 깬 건.
“뭐야 이 반응은?”
치헌이었다.
그는 앞으로 한 발짝 나오더니.
“자, 다들 박수!”
손뼉을 치며 박수를 유도했다.
그러자.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멋있다!”
“멘트 쩔어요 탁정태 경위님!”
“우리 학교 경찰학 선생님으로 오세요!”
열띤 호응을 해주는 학생들.
얘기한 내용이 잘 전달된 걸까?
교육 뒤엔 질문시간이 이어졌다.
“장치헌 경찰관님. 싸움 잘하세요?”
“한 번 붙어볼래?”
“……”
치헌에겐 주로 힘에 관한 질문이.
“고경수 경사님 키 몇이에요?”
“187.”
“경찰하기 전엔 모델이었어요?”
“뭐 모델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실상은 그냥 키만 큰 수험생이었지. 하하.”
경수에겐 외모에 관한 질문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나에겐.
“탁정태 경위님. 여자 친구 왜 없어요?”
“없으니까 없습니다.”
“뉴스에서 보여줬던 랩 다시 보여주면 안 돼요? ‘맨 앞에 기자님, 두 개의 족적으로 용의자 발견했습니다. 그 옆에 기자님, 그 옆에 기자님. 그 옆에 기자님 에레베레베베베레베… 했던거요!”
“……”
이상한 질문들이 날아 들어왔다.
우리는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을 다 해주었다.
그렇게 질문 시간이 끝나고 학생들과 사진촬영까지 마친 후.
“이상으로 창진경찰서 형사 분들의 청소년범죄 예방 교육을 마치겠습니다.”
마침내 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교실 밖으로 퇴장했다.
학생들은 마지막까지 함성과 박수로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학교를 나와 차를 타자마자 치헌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예상과 다르게 환호해줘서 좋긴 한데, 기 빨린다 야. 안 그러냐?”
그가 묻자 경수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전 재밌는데요? 애들이 에너지가 넘쳐서 저도 힘이 솟는 기분이에요.”
옆에서 나도 답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 너희는 홍보가 체질인가보다. 어휴, 아무튼 다음 학교도 빨리빨리 끝내고 복귀하자.”
그렇게 얘기를 하며 지철이 이제 막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경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가 전화를 받고는.
“네, 고경수입니다. ··· 네!? 헉, 정말요? ··· 아,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끊더니 치헌에게 다급한 투로 말했다.
“하, 팀장님. 큰 일 났어요.”
“왜? 무슨 일인데?”
“특진 서류 중에 빠진 게 몇 개 있대요.”
“뭐!?”
“재판준비랑 같이 하느라 정신없어서 몇 개 빠뜨렸나 봐요. 오늘까지는 내야 한다는데.”
“야! 빨리 서로 복귀해서 얼른 갖다 내. 이런 미친, 그 중요한 서류를 빠뜨리면 어떡해!”
“하, 저희 팀 실적이 너무 많다보니 정리하다가 중간에 몇 개 빼먹었나 봐요.”
“빨리 가서 다시 챙겨서 내!”
“네네. 알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어느새 겉옷을 챙겨 든 경수가 후다닥 차문을 열며 덧붙였다.
“저 먼저 서에 좀 들어 가보겠습니다!”
“그래그래. 얼른 가 얼른!”
그렇게 경수는 나와 치헌에게 인사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그가 가고난 뒤 우리는 지철을 따라 중학교에 갔다가, 초등학교까지 갔다.
초등학교에선 아이들이 시끄러워 제대로 강의를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교육을 모두 마친 후.
“그럼 마지막으로 사진 찍고 끝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사진촬영만 남겨두게 되었다.
지철은 차에서 포돌이 탈과 옷을 가져오더니.
“이거 좀 입어주셔야 하는데…”
우리 쪽으로 내밀었다.
치헌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야 정태야. 저거 네가 좀 써라.”
“싫습니다.”
“뭐? 왜?”
“답답할 거 같아서요.”
“이 자식이, 누군 안 답답하냐!?”
치헌이 인상을 구기자 앞에 있던 지철이 말했다.
“죄송한데… 장팀장님이 좀 써 주셔야할 거 같은데요.”
“예!?”
“탁경위님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탁경위님 얼굴은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치헌은 곧장 욕을 내뱉으려다 아이들 얼굴을 보고는 꾹 참으며 낚아채듯 탈과 옷을 가져갔다.
탈은 그의 머리에 겨우 들어갔고, 옷은 뒤에 지퍼가 아예 잠기질 않았다.
어깨선 밖으로 튀어나온 그의 거대한 팔은 기존의 포돌이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내버렸다.
귀여웠던 포돌이는 우람함을 넘어 난폭해졌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꺄르르 거리며 좋아했다.
“사진 빨리 찍고 끝냅시다.”
치헌의 성화에 우리는 얼른 운동장 조회대로 나가 학교 이름이 보이게 사진을 찍었다.
지철이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하며 여러 각도에서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은 뒤.
“오늘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침내 오늘 홍보활동이 끝났다.
지철은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잠시 교무실에 갔다.
치헌은 곧장 탈을 벗고는 날 쳐다보더니.
“참나.”
피식 웃었다.
“내가 여태 경찰생활하면서 포돌이 탈 써보긴 처음이다. 이 덩치에 포돌이 탈이라니.”
“흉측하네요.”
“… 뭐야!?”
그가 버럭하던 그때.
“아빠!”
뒤쪽에서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빠~!”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지나치더니.
“어? 우리 딸!”
치헌의 품에 쏙 안겼다.
그가 포돌이 옷을 벗다 말고 활짝 웃으며 여자 아이를 안아들었다.
“학교 마친 거야?”
“응. 아빠 이거 뭐야?”
“이거 포돌이야 포돌이. 경찰 인형.”
탈 때문에 땀으로 머리가 촉촉이 젖은 치헌은 어느새 얼굴에서 짜증을 삭 거두고 세상에서 가장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것을 처음 봤다.
“안녕하세요.”
치헌과 그의 딸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또 말을 걸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처음 보는 그녀가 나를 아는 체 했다.
“탁정태 경위님이시죠? 티비에서 많이 봤어요. 우리 남편한테도 많이 들었고요.”
그때 딸을 안은 치헌이 이쪽으로 왔다.
“어, 정태야. 여긴 우리 와이프. 그리고 얘는 내 딸. 수정이. 이 학교 다니거든.”
“형수님이랑 따님이군요. 안녕하십니까.”
“형수님? 음 그래 사모라 하면 너무 나이 많아 보이니까 형수가 낫겠다. 역시 응용력이 좋아 정태.”
그는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나를 소개시켜준 뒤.
“정태야. 우리 사진 좀 찍어주라. 포돌이 탈 쓴 김에 사진이나 좀 남겨야겠다.”
“알겠습니다.”
그가 내게 휴대폰을 건네더니, 그렇게 싫어하던 포돌이 탈을 다시 덥석 썼다.
그리고는 딸과 아내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하트를 그리는 등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나중엔 딸을 안아들고 어깨 위에 올리기도 했다.
탈 안쪽으로 포돌이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을 그의 얼굴이 선했다.
사진을 다 찍은 뒤에 치헌이 탈을 벗고 이쪽으로 왔다.
“야, 정태야.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우리 와이프랑 애랑 같이 점심 먹고 들어가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
그가 고갯짓을 하며 말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뭐야. 왜 또 멍하니 서 있어?”
“신기해서요.”
“응? 뭐가?”
“포돌이 탈 쓰기 싫어하셨잖아요. 그런데 따님 오자마자 활짝 웃으면서 다시 쓰셨어요.”
“아, 탈 이거?”
치헌이 손에 든 포돌이 코를 슥슥 만지며 말을 이었다.
“쓰기 싫지. 남사스럽기도 하고, 또 이 덩치에 안 어울리잖냐. 그런데.”
그가 수정을 돌아봤다.
“딸애가 웃잖아. 좋아하고. 그러면 해야지.”
“딸이 좋아하면 본인이 싫어도 하는 겁니까?”
“그럼. 야, 이런 포돌이 탈 쓰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라고요? 더 싫은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지.”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데요?”
내가 묻자 치헌이 음 하며 고민하더니, 조금 진지한 투로 말했다.
“죽을 수도 있지.”
“…!”
“진짜야. 그게 부모마음이거든.”
놀라웠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을 넘어,
죽을 수도 있다니.
나는 그 충격적인 말을 가슴에 담은 채.
“밥 먹으러 가자.”
포돌이를 따라 학교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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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17시 55분. 형사계 사무실.
“하, 제가 다 떨려요.”
지환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우스로 계속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댔다.
마침내.
“이제 5분 남았네요.”
특별 승진자 발표가 5분 앞으로 다가왔다.
승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