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66
66화. 행동 동기.
내 질문에 철성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가만히 있다가 대답했다.
= “네. 아직 직위공모 중에 있습니다.”
= “궁금한 게 있는데 몇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 “물론이죠.”
= “감찰부서 배정 전에 개인이 인지한 사건도 감찰조사를 할 수 있습니까?”
다시금 잠시 정적 후.
= “원래는 안 됩니다. 담당부서인 저희 직무범죄팀이 인지하고 검토하여 조사에 나서는 것이 원칙이죠.”
= “감찰은 원칙을 쉽게 무시하잖아요. 그럼 가능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철성이 헛웃음을 지었다.
= “하하… 예전부터 탁경위님이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가 잠시 말을 끊은 뒤 다시 이었다.
= “저희 감찰부서는 규정을 무시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규정을 무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들을 조사해 조직을 바로잡는 부서죠.”
= “……”
= “뭐, 부서이동 전 개인이 인지한 사건이라고 해서 무조건 조사를 할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저희 조사팀에서 검토해서 감찰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조사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감찰이 하는 일이니까요.”
이어 그가 넌지시 물었다.
= “인지하신 사건이… 있나보죠?”
= “네, 있습니다.”
= “탁경위님은 저희 감찰부서에 들어와서 그 사건을 조사하고 싶으신 거고요?”
= “… 네.”
철성은 흠, 하며 뭔가를 고민하다가 답했다.
= “좋습니다. 유능한 탁경위님이 인지한 사건이라고 하니 만약 탁경위 님이 저희 부서에 오신다면 제가 해당 사건 감찰조사를 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해보겠습니다.”
= “… 알겠습니…”
= “단.”
그가 내 말을 끊고 얘기했다.
= “탁경위 님도 저희 감찰부서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셔야 합니다. 배당 혹은 인지하는 사건에 최선을 다 해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 “물론입니다.”
= “그럼 어떻게…”
그가 잠시 말을 흐리고는 물었다.
= “저희 부서에 지원하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 “지원하겠습니다.”
= “좋습니다. 공문에 첨부된 지원서를 양식에 맞춰 작성 후 인사요약카드와 함께 제 내부망 메일로 전송해주십시오. 서류검토 후 면접날짜가 잡히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네.”
= “그럼…”
그렇게 대화가 끝나고.
= “곧 뵙겠습니다.”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은 뒤 아까 전 상황들을 돌이켜봤다.
특별승진자 명단에서 경수가 아닌 강상민 경사의 이름을 봤을 때, 나는 꽤나 큰 충격에 휩싸였다.
아마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배신감’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승진자는 경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믿음, 그 믿음을 저버린 조직에 대한 배신감.
배신감 뒤에 찾아온 것 또한 내가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본능적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 감정은 아마 ‘분노’였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안의 분노는 끓어서 넘치거나 터지지 않았다.
그것은 금방 차갑게 식어버렸으며, 나중에는 꽁꽁 얼어붙었다.
나에게 분노는 솟구쳐 폭발하는 감정의 표출이 아니었다.
더더욱 차가운 이성으로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거대한 ‘행동 동기’였다.
나는 여태 이토록 강력한 행동 동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분노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교철에게 쏘아붙이듯 질문했고, 주저 없이 휴대폰을 들어 철성에게 전화했다.
내 머리엔 오로지 지금의 부당함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가만히 앞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스윽-
벽 뒤에서 굳은 표정을 한 경수가 튀어나왔다.
전화할 때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은 걸로 봐선 통화하는 내내 그가 그곳에 있었던 것 같았다.
“정태 너…”
그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본청 감찰로… 가겠다고?”
#
일주일 후. 창진서 정문 앞.
“아직 최종 선발된 게 아닙니다.”
내가 앞에 쭉 늘어서 있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모집인원의 2배수에 선발되었을 뿐입니다. 최종 선발자 발표는 4주 후에 있습니다. 선발되지 않으면 창진서 형사과로 다시 복귀합니다.”
며칠 전 철성과 통화 후, 나는 곧장 직위공모 지원서를 작성해 철성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후 면접을 봤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면접을 마쳤다.
그다음 날 선발자 명단에 내 이름이 적힌 공문이 올라왔고, 다음 주부터 본청으로 출근하라는 발령일자가 떨어졌다.
오늘 발령 전 마지막 형사과 근무를 마친 나는 짐을 싸서 나와 팀원들을 마주하고 있다.
“선발 과정은 저도 봐서 잘 알고 있지만…”
지환이 땅을 툭툭 차며 말했다.
“탁주임님 갑자기 가신다고 하니 뭔가 섭섭하네요. 이대로 완전 헤어질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에 이어 옆에 있던 정록도 입을 열었다.
“탁주임님 덕분에 수사에 재미를 더 붙이고 있었는데, 저도 아쉽습니다.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4주가 참 길 것 같네요.”
“고부장님 재판 준비했던 기간을 생각하면 4주는 긴 시간이 아닙니다. 생각보다 금방 지나가죠.”
“……”
내 무미건조한 대답에 입을 다문 정록 대신.
“하, 나도 불안불안하네.”
치헌이 내게 말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선발된 배수 인원 중에 정태 너보다 잘 할 사람은 없을 거야. 능력으로 치면 이미 네가 뽑히고도 남는다고.”
“……”
“그렇다고 정태 네가 꾀를 부리며 일을 대충할 스타일도 아니고.”
“최선을 다 할 겁니다.”
“그러니 최종 선발자는 너로 이미 확정된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 팀의, 아니 창진서의 보물을 본청 감찰에 내어주게 생겼으니 내가 팀장으로서 아쉬울 수밖에 없지.”
“……”
“하지만.”
그가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내 개인적인 감정으로 팀원의 앞길을 막을 순 없어. 분명 본청은 우리 경찰 조직에서 제일 큰물이고 가장 기회가 많은 곳이야. 내 새끼가 큰물로 나아간다고 하면, 팀장은 응원해주고 축하해줘야 해. 마음 한편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난 진심으로 정태 네 선택 존중하고 응원해.”
“감사합니다.”
“가서 잘 해.”
“네.”
치헌이 아쉬움 섞인 표정으로 내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그의 옆에서.
“정태야.”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경수가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가는 거면, 안 그래도 돼. 승진 그거 안 하면 뭐 어때. 다음에 노력해서 하면…”
“부장님 때문에 가는 게 아닙니다.”
“……”
“숨겨진 부당함을 찾아내 잘못된 걸 바로잡으러 가는 겁니다.”
“……”
잠시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그래, 네 뜻이 정 그렇다면.”
덤덤한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너 응원해. 가서 열심히 해.”
내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야. 완전 헤어질 것처럼 얘기하지는 말고. 너 감찰 가더라도 가끔 불러내서 술 한 잔 씩 할 거니까. 부르면 꼭 나와야 하는 거 알지?”
“네, 알겠습니다.”
“동료는 뭐다?”
“삶의 일부요.”
“그래.”
나는 그의 손을 놓고 정록, 지환과도 한 번씩 악수한 후.
“저는 가보겠습니다. 다들…”
한 발 뒤로 물러나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
3일 뒤.
나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집에서 나왔다.
본청까지 가려면 창진서로 출근할 때보다 지하철을 더 오래 타야 하니까.
복장은 정장을 입었다.
감찰직원은 보통 정장을 입고 근무한다고 철성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중에 내가 정식발령이 나면 정장을 몇 벌 더 구입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지하철에서 내려 본청 정문으로 가니.
“오셨군요.”
철성이 나를 맞아주었다.
고급스러운 금테 안경에 넉넉한 볼살.
그는 면접 때 본 것보다 더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들어가시죠.”
나는 그를 따라 정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경찰조직 최고 기관답게 본청은 건물부터 웅장했다.
건물 높이는 창진서보다 몇 배는 높았으며,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된 외관 상단엔 독수리마크와 함께 ‘경찰청’ 간판이 크게 달려 있었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니 본청 직원들이 여기저기 다니는 게 보였다.
창진서에선 후줄근한 차림의 직원들도 많이 봤었는데, 이곳은 모두 칼 같이 다린 근무복, 또는 정장을 입고 다녔다.
계급장도 대부분 잎사귀가 아닌 무궁화였다.
처음 본 본청의 이미지는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으며 격식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쪽입니다.”
나는 그런 본청의 이미지 따위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었다.
감찰부서의 업무를 익혀 잘못된 걸 바로잡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나와 철성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감찰부서가 있는 층으로 간 뒤, 마침내.
“여깁니다.”
사무실에 도착했다.
“뭐, 본청이라고 해서 사무실이 특별하진 않죠?”
그의 말대로 사무실 전경은 창진서 형사과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크고 정돈된 느낌이 있을 뿐.
저쪽에선 아침부터 감찰대상을 앞에 놓고 서류를 치고 있는 직원도 있었다.
그쪽에 귀를 기울어보니.
“명품 가품들 밀수되는 거, 정말 서장님은 몰랐단 말입니까?”
“몰랐다니까요. 그건 기본적으로 관세청 직원들이 하는 건데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인근 세 개 지구대 대장님들은 관세청과 유착 정황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그 지구대를 관할하는 서장님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계셨다고요? 이것 또한 직무유기 아닙니까?”
“그, 그건…”
경감 조사관이 서장을 쏘아붙이고 있었다.
일선에선 보기 힘든, 아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가 그쪽을 보고 있자 철성이 내게 말했다.
“사무실은 비슷해도 오는 조사 대상들은 급이 다릅니다. 최소 경정부터, 어쩔 땐 경무관이나 치안감들을 조사할 때도 있죠.”
“……”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순경이든 치안감이든 규정을 어겼으면 징계 받아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철성의 말처럼 계급에 상관없이 조사대상은 조사대상일 뿐이다.
이어 그가 손으로 다른 책상 몇 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우리 조사관들 옆에 앉아 있는 직원들이 탁경위 님과 같이 선발된 인원들입니다. 각자 조장을 한 명씩 배정받아 4주간 근무를 할 겁니다. 신고식은 나중에 정식발령 된 인원들만 할 거고요.”
“네.”
“그리고 탁경위님 조장은.”
그가 몇 발자국 더 걸어가더니 의자에 털썩 앉아 빙그르르 돌며 말했다.
“접니다.”
“……”
“아이러니하죠? 본청 감찰엔 절대 오지 않겠다는 탁경위 님의 의견을 두 번이나 직접 들은 사람이 바로 저였는데. 본청 감찰에서 한 조가 되어 근무하다니.”
“……”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왜 생각을 바꾸신 건지.”
그 질문에 나는 잠시 틈을 두고 대답했다.
“그 신념을 넘어서는 행동 동기가 생겼거든요. 아주 강력한.”
“혹시 그 동기라는 게, 탁경위님이 인지하셨다는 그 특별승진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까?”
“… 네, 있습니다.”
내 대답에 철성이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말했다.
“탁경위 님이 생각을 바꾸신 것을 비난하거나 놀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이전에 말했듯 살다보면 생각과 신념은 수도 없이 바뀌니까요.”
“……”
“보아하니 강상민 경사 승진관련해서 비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비리를 저지른 대상을 찾아 잘근잘근 짓밟고 싶으시겠군요.”
“정도를 넘은 처벌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당사자는 잘못한 만큼만 징계를 받으면 됩니다. 제가 원하는 건 부당하게 틀어진 것을 바로잡는 겁니다.”
“……”
내 말에 철성은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탁경위님이 말씀하신 그 사건이요. 주말 동안 저희 부서 사람들과 검토를 해봤는데…”
금요일 오후 직위공모 선발자가 발표된 날.
나는 곧장 철성에게 전화를 걸어 창진서 형사과 특별승진 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철성은 팀원들과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했는데.
“감찰조사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그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환기되는 기분이 들었다.
원하는 조사를 할 생각에 다른 잡생각은 다 잊혀졌다.
철성이 안경을 살짝 올리며 덧붙였다.
“오늘부터 바로 조사시작하시죠.”
핵심부터 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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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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