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67
67화. 핵심부터 쳐서.
“오늘부터 바로요?”
내가 조금 놀라 묻자 철성이 태연히 답했다.
“네. 탁경위 님이 인지한 사건이니 저희 조가 맡아서 조사하죠.”
“그럼 강상민 경사나 박규만 팀장부터 감찰하는 건가요?”
“아니죠.”
철성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옅게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핵심부터 쳐서 내려가야죠.”
“핵심부터요?”
“곧장 서울청 인사담당자부터 조사에 들어갈 겁니다.”
“…!”
“이 사건처럼 형사사건 처리되지 않은, 감찰조사가 먼저 진행되는 사건의 경우 최대한 빨리 치고 들어가야 합니다. 감찰조사는 형사사건 조사와는 달리 강제수사에 어려움이 많아 증거 인멸에 취약하니까요. 쉽게 말해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초반 타이밍’이 중요하죠.”
“……”
“그래서 오늘이라도 당장 수사에 들어가자는 겁니다. 꼬리가 아닌 머리부터 치자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한 말이고요. 자, 그럼 기본적인 업무 내용이랑 참고할 규정들만 알려드리고 바로 출발하죠. 수사 방법은 형사 업무랑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알아야 할 게 있다면…”
“저기.”
내가 그의 말을 끊고 얘기했다.
“감찰 업무와 규정 관련 책자는 주말동안 집에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
“추가로 설명하실 게 있다면 가면서 하면 안 될까요?”
내가 잠시 말을 끊은 뒤 다시 이었다.
“감찰 조사는 초반 타이밍이 중요하다면서요. 그럼 일단 서울청 인사담당자부터 만나보는 게 급선무입니다.”
*
우리는 곧장 사무실을 나와 주차장으로 갔다.
“타시죠. 서울청은 본청 바로 옆이라 금방 갑니다.”
철성이 가리킨 차는 검정색 고급 승용차.
경광등이나 경찰마크 같은 게 없는 일반 대형 세단이었다.
그는 이 세단이 자기 차가 아니라 감찰부서에 지급이 되는 차라고 했다.
중요 임무를 맡고 있어 차도 좋은 차가 나온다며.
나는 조수석에 탑승했다.
“아까 제가 감찰조사는 강제수사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죠?”
운전석에 탄 그가 시동을 걸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건 우리가 하는 ‘기관 내 자체감찰’이 사실 비권력적 조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법적으로 강제성을 보장해주는 정도가 형사조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죠.”
“그래서 강제수사가 어렵다고 얘기하신 거군요. 그럼 영장도 잘 나오지 않겠네요.”
“그렇죠.”
그가 핸들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감찰이란 단어 자체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사실 조사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정하고 혐의를 부인하는 대상자를 만나면 곤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제 수사할 명분을 만들어야죠.”
“명분이요?”
“진술을 청취하며 ‘형법에 위배되는 범죄 행위’들을 밝혀내는 겁니다. 형사사건 할 거리를 만드는 거죠.”
“아…”
“그럼 합법적으로 강제 수사할 명분이 생깁니다. 해당 부서와 연계해 영장 발부, 디지털 포렌식 같은 걸 할 수 있죠.”
감찰조사 대상자는 대부분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있다.
그러니 법적으론 감찰부서의 강제수사권한이 약하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일선 수사부서 못지않은 강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 어려운 일은 다 끝나는 겁니다. 강제수사 권한을 얻었으니 구인해서 조사하고, 규정에 위반되는 사실들에 대해 징계를 하면 됩니다.”
“그렇군요.”
“감찰부서가 좋은 게, 내부규정에 있어선 저희가 경찰·검사·판사의 역할을 다 한다는 겁니다. 조사도, 징계 회부도, 최종 징계도 전부 저희가 관할하죠. 그러니 강제 수사할 발판만 만들어놓으면 대상자들이 벌벌 떨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개기면 징계를 더 세게 때려버린다는 걸 아니까요.”
그가 덤덤하게 얘기했지만 실로 무서운 사실이었다.
내부징계에 있어선 감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거니까.
“그러면.”
얘기를 듣던 중 궁금한 게 생겼다.
“반대로 감찰부서에서 비리를 저지르면 누가 수사를 합니까?”
“……”
“감찰부서 직원들도 경찰관이고, 비리를 저지른다면 감찰조사 대상이 되잖…”
끼익-
내가 질문을 하던 도중 차가 서울청에 도착했고.
“내리시죠.”
우리는 차에서 내려 인사부서가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
잠시 후, 서울청 경무과 사무실 뒤 빈 방.
나와 철성은 서울청 인사담당 직원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
그의 이름은 전경환. 계급은 경감이었다.
나이는 사십대 초반 정도. 더벅머리에 중간 키, 눈이 푹 들어갔을 정도로 마른 체형.
“저희가 온 이유는 알고 계시죠?”
철성이 묻자 경환이 고개를 숙인 채 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 창진서 형사과 특진 건 때문에 오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이의제기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곧장 본청 감찰에서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게다가…”
그가 나를 힐끗 올려다보며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창진서 형사과에서 본청 감찰로 부서이동을 해서까지 저를 조사하러 오실 줄은… 더더욱 몰랐고요.”
나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그의 외형을 쭉 훑어봤다.
그리고는 방 측면의 창가로 가서 창밖으로 보이는 사무실 전경을 눈에 담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철성이 노트북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이번 창진서 형사과 특별승진 건, 승진자 선발 기준이 뭐였습니까?”
“기준이야 당연히 실적이죠.”
“이번 특별승진이 실적에 따른 공정한 결과가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그가 여전히 눈을 치켜 뜬 채 덤덤히 대답했다.
“전경감님이 황교철 창진서장님께 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면 창진서 형사 5팀의 실적이 많이 분산됐다던데, 업무 기여도 측면에서 보면 그렇게 실적을 나누는 것은 부당한 것 아닙니까?”
“10월부터는 실적수합 시즌이라 각 서에서 수합되는 실적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청에선 개개인의 업무 기여도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서류에 기재된 인원을 기준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래도 창진서 형사 5팀 같은 경우 언론에 수차례 노출되는 등 6팀과는 기여도 차이가 꽤나 큰 것 같은데요.”
“……”
“뉴스 안 보셨습니까?”
그 질문에 경환이 잠시 틈을 두고는.
“… 네, 제가 뉴스는 잘 안 봐서요.”
다시 덤덤히 대답했다.
철성이 다시 물었다.
“보통 이름이 같이 올라와도 주공을 선정할 텐데요. 아내·내연녀 합동 살인사건과 청소년 특수공무방해 사건은 주공이 형사 5팀 아닌가요?”
“그 두 사건 모두 5팀, 6팀 합동 수사를 진행한 건이었습니다. 어느 한 팀을 주력으로 다른 팀이 지원을 하는 게 아니라, 두 팀이 같이 수사에 나서고 서류를 쳐 송치까지 같이 한 사건이죠.”
“그래도 실질적으론 5팀이 주가 되어 6팀이 지원을 한 형태로 진행되지 않았습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청에서 그런 세세한 내용까지 파악할 수는 없습니다.”
그 대답에 철성은 음, 하며 잠시 키보드를 두드리고는.
“그럼 다음으로.”
다음 질문을 했다.
“가장 유력한 승진 후보였던 형사 5팀의 고경수 경사가 ‘피고인’신분이 되었단 이유로 승진자 명단에서 제외되었다던데, 맞습니까?”
“맞습니다. 규정상 기소와 동시에 제외됩니다. 명단엔 올라가지만 사실상 배제되는 거죠.”
이어 ‘그러면 왜 미비서류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냐.’는 질문에는 ‘창진서 담당자가 지시한 것이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고 답했다.
철성이 계속 말했다.
“하지만 특별 승진자 발표 4일 전에 고경수 경사는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피고인 신분에서 벗어났는데요.”
“그땐 이미 특진자 선발이 끝났을 때였습니다. 선발은 이미 마치고 발표만 남겨둔 상황이었죠. 고경수 경사 무죄판결 전에 이미 특진자는 정해졌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고경사를 다시 명단에 올려 승진을 고려해봐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 질문에 경환이 하, 하고 한숨을 쉬며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답답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고경사는 이미 10월 초부터 승진자 명단에서 배제되었습니다. 마포서에서 고경사를 기소의견 송치하는 그 시점부터 말입니다. 경찰사건은 거의 100프로 검사가 기소를 하니, 기소의견 송치와 동시에 고경사의 피고인 신분은 예견된 일이었으니까요.”
“……”
“그 후에 실적에 따라 점수가 가장 높은 강상민 경사가 승진된 것입니다. 특진자 발표일은 12월 초였지만, 특진자 선정은 10월 말 올해 실적수합이 끝나는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발표 4일 전 무죄판결 난 고경수 경사를 다시 명단에 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
철성은 가만히 그를 쳐다보며 뭔가를 생각하다가.
“진술 잘 들었습니다.”
다시 입을 뗐다.
“전경감님 내부망 메신저와 메일, 그리고 내선전화 목록을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그건 왜요?”
“전경감님 말만 듣고 ‘아, 저희가 오해했군요.’하고 철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경감님 진술이 진실인지 아닌지 다른 증거들로 밝혀내야죠.”
“참나.”
경환은 이제 답답함을 넘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찰조사 단계에선 컴퓨터 등 통신기기를 강제로 압수하거나 수사할 수 없다는 것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 요청은 거부하겠습니다.”
“왜 거부하시는 거죠? 켕기는 게 있으신 겁니까?”
“더 이상의 진술도 거부하겠습니다.”
“떳떳하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특진자를 선발하셨다면서요. 왜 보여주지 못하는 겁니까?”
“진술 거부하겠다니까요? 아니 그리고.”
그가 목소리를 키워 말을 이었다.
“저한테 뚜렷한 혐의도 확인된 게 없는데 이렇게 이의제기 절차도 없이 본청 감찰에서 바로 조사를 들어오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완전 저를 범죄자로 정해놓고 조사하는 거잖아요 이거!”
“……”
“거기다가 막무가내로 컴퓨터랑 전화까지 까겠다니요. 이거 정말 해도 너무한 거 아닙…”
그때.
“저기.”
내가 그의 말을 끊으며 철성과 그 사이로 불쑥 들어갔다.
그가 흠칫 놀라 고개를 뒤로 쭉 빼며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 네?”
“오늘 몇 시에 일어나셨습니까?”
“… 예?”
뜬금없는 내 질문에 그가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답했다.
“오늘… 6시 40분쯤에요.”
“출근은 몇 시에 하셨는데요?”
“출근은… 7시 50분쯤이요.”
“집은 어디시죠?”
“고양 화정동이요. 그런데 그건 왜…”
“그럼 지하철을 출근하셨겠네요. 차를 타고 왔으면 그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 그렇습니다만.”
그 대답에 내가 창밖 경환의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책상 위엔 외제차 키가 올라와있더군요.”
“……”
“뿐만 아니라 차고 있는 명품 시계와 반지, 목걸이를 보면 전경감님은 과시하길 좋아하는 분 같습니다.”
“……”
“하지만 실상은.”
내가 은박이 묻어 있는 동전 하나를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1인 평균 구매량을 훨씬 웃도는 복권을 사서 한방을 노리는, 허상에 젖은 인간이죠.”
“뭐, 뭐예요!? 이… 이건 어느 틈에…”
“이 방으로 들어오기 전 전경감님 개인 책상위에 놓인 걸 가져온 겁니다. 개인 쓰레기통엔 복권이 수북이 쌓여 있더군요.”
“그… 그건.”
“그리고 그 복권 수만큼.”
내가 이번엔 잉크가 다 닳은 볼펜을 내보이며 말을 이었다.
“다 쓴 볼펜도 많았고요.”
“……”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했던 겁니다. 업무처리를 수기로 할 일은 없으니 메모는 전화를 받으며 했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메모지는 발견되지 않은 걸 보니 어디다 숨긴 모양입니다. 남들이 봐선 안 되는 메모라는 거죠.”
“……”
“과시하기는 좋아하는데 돈은 부족한, 동시에 요직에 있으면서 남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전화를 수시로 받는 사람이라면…”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충분히 비리관련 감찰조사를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무, 무슨 소립니까!? 어떻게 그런 정황만으로…”
“물론 이런 정황만으론 컴퓨터나 전화기를 압수하는 강제수사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내가 잠시 말을 끊은 뒤 이었다.
“이번 특별승진 진행과정 중 형법에 위배된 사실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곧장 형사사건 접수를 하고, 필요하면 영장을 발부받아 강제수사에 나설 수 있죠.”
“형법에 위배되다뇨! 지금 내부 규정에도 위배된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형법에 위배된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열을 내는 그를 내가 가만히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죠? 고경수 경사는 기소의견 송치된 10월 초에 이미 승진자 명단에서 배제되었다고.”
“네, 그런데요?”
“하지만 그 사건, 검사가 최종 기소를 한 건 10월 말입니다.”
“…?”
“그럼 검사 기소 전에 누군가가 고경수 경사의 피의사실 및 사건진행상황을 전경감님에게 발설했다는 말이 되죠.”
“…!”
“검사 기소 전엔 피의자의 피의사실 및 수사정보가 철저히 보호되어야하는 거 아시죠?”
내 질문에 경환이 당황한 듯 눈을 껌뻑거리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허, 참나. 지금 피의사실공표죄를 말씀하시려나본데, 언론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이건 ‘공표’라고 볼 수 없습니다!”
“공표로는 볼 수 없죠. 하지만 ‘누설’로는 볼 수 있습니다.”
“… 예?”
“고경수 경사의 수사정보를 동료 경찰에게, 그것도 ‘특별승진 관리’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서울청 인사담당자에게 전달하여 승진 탈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한 것은.”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이었다.
“형법 127조, 공무상비밀누설죄로 볼 여지가 충분한 것 같은데요.”
표면적 사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