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7
7화. 머릿속 퍼즐들.
“에이 뭐야.”
순찰차에 탄 경수가 네비게이션 화면을 보고는 실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절도 신고라고 해서 뛰어 왔더니, 그 할머니네.”
“그 할머니요?”
화면에 떠 있는 신고내용은 ‘다른 사람이 내 폐품을 주워갔다.’였다.
“아, 우리 관내에 폐품 줍고 다니시는 할머니 중 한 분이 자꾸 다른 할머니 구역의 폐품을 주워가서 자주 신고가 되거든요.”
“아…”
“이런 경우 실질적으로 구역을 따지기도 힘들뿐더러 절도의 고의를 입증하기 힘들어서 그냥 현장에서 화해시키고 종결해버리죠.”
폐품이라면 피해액이 몇 천원에 불과할 것이다.
법적으로 파고들면 절도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형사처벌하기는 어려운 액수다.
잠시 후 신고 장소인 고물상에 도착하니.
“이 할망구가 노망이 났나. 저번에도 옷가지를 싹 다 훔쳐가더니. 이번엔 가스레인지까지 훔쳐가?”
“이 년이 노망이라니! 너 나이 몇 살 쳐 먹었어?”
할머니 두 분이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있었다.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려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든 뒤 녹색 옷을 입은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만 싸우시고요. 할머니 가스레인지를 이 할머니가 훔쳐간 게 맞아요?”
“맞다니까. 내가 그렇게 신고했잖어.”
그녀가 자기 휴대폰을 내보이며 신고한 전화목록을 보여줬다.
“그런데 그거 사실 할머니 가스레인지가 아니라 누가 버린 가스레인지 아니에요?”
“아 글쎄 그게 내 거라니까! 그 전봇대 앞은 내가 폐품을 줍는 구역이라니까?”
“그 구역이 법적으로 정해진 구역도 아니잖아요.”
“뭐시?”
“이 가스레인지의 경우 소유와 점유를 모두 이탈한 물건으로써 사실상 누가 가져가든 형사처벌이 되기는 어렵…”
“이 젊은 양반이 지금 뭐라는겨? 너 지금 저 할망구 편드는겨!?”
“아뇨 편드는 거 아닙니다. 이건 법적으로 절도죄에도, 점유이탈물횡령죄에도 해당하지 않는…”
“편드는 거 맞잖여 지금!”
할머니는 오히려 더 화를 낼 뿐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죄가 되지 않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녀는 왜 내가 상대편을 든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 참. 할머니들 일단 진정 좀 하시고.”
그때 경수가 그녀들 사이로 여유롭게 걸어 나와 녹색 옷 할머니를 보고 말했다.
“어르신. 그렇게 화내면 대화가 안 되잖아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왜 가져갔는지 천천히 이유를 물어보셔야지.”
“저 할망구가 훔쳐간 거라니까!”
“자기 구역인 줄 착각하고 가져가셨을 수도 있잖아요. 저번에 어르신이 칠복이 할머니 구역 선풍기 가져갔을 때처럼.”
“그… 그 얘기가 갑자기 왜 나와!”
“그럼 그때 선풍기 가져가신 거 절도로 사건 처리 할까요? 공소시효 아직 남았는데?”
“……”
“그때 어르신처럼 이 어르신도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얘기나 한 번 들어보자구요. 아시겠죠?”
그의 말에 할머니가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경수는 반대 쪽 할머니에게 물었다.
“어르신은 그 가스레인지 왜 가져갔어요? 폐품 줍는 데 각자 구역이 있는 건 어르신도 알잖아요.”
“모르고 가져갔다니까!”
“모르고 가져가셨으면 사과를 해야지 어르신도 그렇게 화를 내면 됩니까?”
“……”
그 할머니도 시무룩해졌다.
그러자 경수가 양쪽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자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깔끔하게 사과하고 가스레인지 돌려주고 끝내는 게 어때요?”
질문에도 그녀들이 계속 시무룩하게 있자 경수가 목소리에 힘을 주고 말했다.
“아니면 이번 가스레인지 건이랑 저번 선풍기 건 둘 다 절도사건 처리해서 벌금 몇 십 만원씩 물게 해드릴까요?”
“…!”
액수가 거론되자 눈이 커진 할머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 미안하우. 내가 모르고 가져갔어…”
“괜찮여요…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러자 경수가 가스레인지를 이쪽 구루마에서 저쪽으로 옮겼다.
“앞으로는 남의 구역 침범하시면 안 됩니다. 자, 이제 귀가하세요.”
경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들은 총총총 걸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신기했다.
내 말은 전혀 듣지 않던 할머니가 저렇게 고분고분해지다니.
“아휴, 저 할머니들 또 싸웠어요?”
할머니들이 돌아가자 안쪽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가게 사장이 이쪽으로 걸어 왔다.
단발에 파마를 한 중년 여성이었다.
“저 녹색 옷 입은 할머니가 신고했죠? 저 할머니는 돈도 많이 벌어가면서 가스레인지 하나 그냥 주면 되겠구만 그걸 가지고…”
“돈을 많이 벌어간다고요?”
내가 묻자 사장이 고물상 한 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구리선, 그 녹색 옷 할머니가 다 가져온 거예요. 저것만 해도 하루에 십 만원씩은 벌어 가시거든요.”
“저걸 다 그 할머니가 가져왔단 말입니까?”
“네. 지금 3일 째 매일 구리선을 저만큼씩 가져오고 계세요. 저걸 대체 어디서 주워 오시는지…”
나는 그 구리선을 유심히 바라봤다.
구루마에 싣고 온다면 할머니도 끌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양이었지만, 절대 쉽게 모을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저 정도 양의 구리선을 3일 연속 가져왔다라.
머릿속 퍼즐들이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경수의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고물상에서 나와 순찰차에 올라탔다.
“고경사님.”
“네.”
“아까 구리선 보셨죠?”
“네, 봤습니다. 할머니가 별 걸 다 주워오네요.”
“그 구리선, 에어컨 배관입니다.”
“에어컨 배관이요?”
“실외기에 연결된 에어컨 배관 껍데기를 벗겨낸 구리선이에요.”
대학시절 강의를 듣던 중 에어컨 배관 절도 판례가 나왔을 때, 그게 어떻게 생겼나 궁금해서 사진을 찾아봤던 적이 있다.
그 덕에 나는 껍데기가 벗겨진 에어컨 배관 구리선의 모양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데 에어컨 배관은 사람들이 함부로 버리지 않아요. 떼어내려면 전문 기사를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떼어낸다 하더라도 값이 꽤 나가기 때문에 집 앞에 버리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럼 할머니가 배관을 어디서 주워온 걸까요?”
“그게 의문입니다.”
할머니가 배관을 절도했을 가능성은 적다.
그 노쇠한 여인이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실외기에 접근해 공업용 절단기로 배관을 잘라 절취했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구하기도 어려운 배관 구리선을 저렇게나 많이, 게다가 3일 연속 가져오다니.
머릿속 퍼즐들은 더 높이 날아올라 어지러이 엉켜들었다.
“탁경위님이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닙니까? 뭐 폐지 줍는 일 오래 하다보면 어디 아는 사람한테 얻어왔을 수도 있겠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까 이런 의심이 든 즉시 바로 고물상 밖으로 뛰쳐나와 할머니를 찾아다닐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물론 경수처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무죄추정원칙.
내 의심 말고 다른 물증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나는 할머니를 범죄자로 단정 짓지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한 번 피어오른 의심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를 괴롭혔다.
순찰차로 이동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지금은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 “아아.”
그때, 무전이 들려왔다.
– “매천 둘 순마. 소음 건 둘치.”
매천 둘 순찰차에 소음 신고가 떨어졌다.
네비게이션을 터치해 확인해보니 ‘윗층에서 자꾸 그르륵 그르륵 하는 소리가 난다.’는 신고였다.
경수가 그 내용을 보며 말했다.
“오늘 저 소음 신고가 많이 들어오네요.”
“많이 들어왔다고요?”
“아침에 출근해서 접수되었던 신고 목록을 쭉 살펴보니 며칠 전부터 ‘스윽 스윽’소리가 난다, ‘그륵 그륵’ 소리가 난다 하는 신고가 몇 건 접수되었더라고요. 뭐, 전부 다 현장 도착해보니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는다며 종결되었지만.”
“…!”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 퍼즐이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고경사님. 아까 그 녹색 옷 입은 할머니. 자주 보셨다고 했죠?”
“네, 몇 번 봤죠.”
“혹시 그 할머니 가족관계 알고 계십니까?”
“남편 분과 같이 살고 있다고만 알고 있어요.”
“그럼 빨리 이 소음 신고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 네?”
내 말에 경수가 황당하다는 듯 되물은 뒤 말을 이었다.
“소음 신고는 구청 관할이라 저희가 다급하게 지원조치 할 필요 없어요. 매천 둘 순찰차가 조치하도록 놔두면 됩니다.”
“그 신고, 단순 소음 신고가 아니에요.”
답답했다.
경수는 왜 아직까지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걸까?
“그 현장에 에어컨 배관 절도범이 있다고요!”
퍼즐은 이미 범인을 가리키고 있는데!
입증은 CCTV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