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70
70화. 마음에 있는 말.
경수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말했다.
“누구한테 뭘 시켜 볼까나-?”
그리고는 어깨로 민경의 팔을 툭 치더니 눈을 아래로 내리고 그녀와 비밀 텔레파시를 주고받았다.
“잠시만요.”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민경 씨가 번호를 가르쳐준 것 아닙니까?”
“응? 아닌데?”
“분명 제가 봤습니다. 고부장님이 어깨로 신호를 준 다음…”
“어허, 감히 지금 왕을 의심하는가?”
경수가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눈을 부릅뜨고 날 쳐다봤다.
그리고는 이내 표정을 풀고 웃더니.
“걱정 마. 난 처음부터 센 거 안 시켜.”
날 안심시키듯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센 거?
저게 무슨 말일까.
“자, 1번이랑 2번.”
그는 대놓고 나와 은빈을 번갈아봤다.
“10초간 눈 맞추기!”
“…?”
뜬금없는 지시였다.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할 줄 알았는데.
눈을 맞추라니.
너무나 쉬운 지시였다.
“1번, 2번 누구야?”
“1번은 접니다.”
“그럼 2번은?”
내 옆에서 은빈이 천천히 입을 뗐다.
“… 저요.”
돌아보니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있었다.
이전에도 몇 번 본 적 있는 그 붉음.
“오호. 자, 두 분.”
경수는 어느새 가방에서 검정색 파일 하나를 꺼내 나와 은빈의 얼굴 사이를 막았다.
“몸을 돌려 서로 마주보세요.”
“아잇, 잠시만요.”
검정색 판 너머로 은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술 마셔도 돼요?”
“술 마셔도 됩니다. 단, 소주를 맥주잔에 가득 채워서요.”
“에? 그런 게 어딨어요.”
“여기 있습니다. 제가 왕이니까요. 하하.”
그녀는 왜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 할까?
선택지가 눈 맞추기와 술 마시기밖에 없다면.
무조건 눈 맞추기를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 은빈 씨 못 마시겠으면 정태 쪽으로 얼굴 돌리시고.”
판 아래로 은빈의 상체가 돌아가는 게 보였다.
“서로 얼굴을 좀 더 가까이 하세요.”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다가갔다.
이제 그녀와 나 사이 간격은 30cm 정도.
“제가 판을 치우면 10초간 서로 눈을 바라보는 겁니다. 웃거나 눈을 피하면 술을 마셔야 해요.”
그의 설명과 동시에.
“시작!”
판이 치워졌다.
캄캄한 검정색 뒤에 숨어 있던 살색이 나왔다.
내가 맨 처음 본 것은 그녀의 뺨이었다.
불그스름한 살색 뺨.
“10… 9…”
나는 시선을 조금 옮겨 그녀의 입에서 멈췄다.
빨간 입술은 계속 오므렸다 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녀는 왜 입술을 가만있지 못하는 걸까?
“8… 7…”
그 다음은 코.
코는 사다리 같았다.
눈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오똑한 사다리.
“6… 5…”
마침내 눈.
깊고 초롱한 그녀의 눈망울을 나는 가만히 바라봤다.
애프터를 받은 뒤 달려가 예쁘고 매력적이라고 했을 때 날 바라보던.
팔짱을 끼고 목적지 없이 걷자고 했을 때 날 바라보던.
그 눈빛이었다.
이렇게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신기하게도 체온이 올라갔다.
손을 시작으로 팔, 가슴, 목을 타고 와 얼굴까지 따뜻해지더니,
이내 뜨거워졌다.
몸이 달아오르니 기분이 좋았다.
내 안의 낯선 즐거움이 보글보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 감정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내 안에서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감정이 된 것 같기도.
나는 이렇게 조금 더 그녀를 바라보고 싶…
“땡, 그만.”
… 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시간이 끝났다.
왕이 강제로 시킨 일임에도 불구하고 끝나고 나니 아쉬움이 몰려왔다.
“뭐야, 은빈 씨 못 할 것 같다더니. 눈도 깜짝 안 하네요?”
“아이, 아니에요.”
쑥스러운 듯 머리를 넘기며 웃는 은빈.
나는 여전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 모습을 바라봤다.
달그락- 달그락-
그 사이 민경은 젓가락을 걷어 통에 넣고 다시 섞더니.
“자, 다음 왕은 누굴까-요?”
다시 게임을 진행했다.
우리는 젓가락을 하나씩 뽑았고.
이번에는.
“제가 왕이에요!”
은빈이 왕이 되었다.
툭-
나는 경수에게 배운 대로 곧장 그녀의 어깨를 치고는.
슥-
상 아래로 내 번호를 몰래 보여줬다.
“야, 탁정태! 아까 나한테 뭐라 그러더니, 몰래 보여주는 게 어딨냐?”
경수는 비밀행동을 바로 알아챘고.
“어허, 누가 왕 앞에서 큰 소리를 내요?”
은빈은 그를 막아섰다.
이어 그녀가 미소 지으며 경수와 민경을 보더니.
“2번이 3번 볼에 뽀뽀해요.”
곧장 지시를 내렸다.
“뭐야?”
지시를 들은 경수는.
“너무 쉽잖아?”
어이없다는 듯 2번 젓가락을 상에 내려놓고 곧장.
쪽-
민경의 볼에 뽀뽀했다.
“헐, 허무해.”
은빈은 너무 쉽게 끝나버린 지시에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내가 그녀를 다그쳤다.
“너무 쉬운 걸 시킨 것 아닙니까? 물구나무 서기 같은 어려운 걸 시키셨어야죠.”
“에이, 이건 그렇게 하는 게임이 아니에요.”
그 사이 민경이 다시 젓가락을 모아 섞었고.
“자, 이제 마지막 왕게임입니다-”
우리가 하나씩 뽑았다.
마지막 왕은.
“와, 저예요!”
민경이 당첨되었다.
“음…”
그녀는 고민하는 척하며 눈을 아래로 깔고는 경수의 번호를 확인하더니.
“3번이…”
나와 은빈을 번갈아보며 외쳤다.
“1번 입술에 뽀뽀하기!”
“!!”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안 됩니다.”
3번 젓가락을 상위에 놓으며 지시를 거부했다.
“네?”
“의사에 반해서 뽀뽀하는 건 강제추행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경수가 끼어들었다.
“에게. 그럼 내가 민경이 볼에 뽀뽀 한 것도 강제추행이란 건데, 아깐 왜 가만히 있었어?”
“두 분은 사귀는 사이잖아요.”
“연인 간에도 강제추행 성립되잖아.”
“……”
“게다가 은빈 씨 의사가 뭔지 정태 네가 어떻게 알아?”
그가 질문하는 동시에 우리 세 명이 다 같이 은빈을 쳐다봤다.
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왕이 시키는 거니까… 해야죠.”
지시를 받아들였다.
“오케이! 자, 우리 안 볼 테니까 얼른 해. 이제 거부하면 벌주 마시기!”
경수와 민경은 멍석을 깔아준답시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건 가리는 척일 뿐 손 틈을 벌려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
하지만 그들의 시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은빈의 의사가 중요했다.
나는 글라스 잔에 든 소주를 원샷하는 것보다 입술에 뽀뽀를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지만,
은빈이 정말 입맞춤에 거부감이 없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물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 네.”
그녀가 대답하자마자.
스윽-
나는 몸을 돌려 그녀 쪽으로 바싹 붙였다.
“3번이 1번한테 하는 거니, 제가 은빈 씨에게 해야 합니다.”
“… 네.”
“할게요.”
“……”
내가 서서히 다가가자 그녀는 놀란 듯 고개를 살짝 뒤로 빼며 눈을 감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위치를 확인하며 조금씩 더 다가갔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산뜻한 향수 냄새가 전해져왔다.
기분 좋은 향기 덕분에 그녀가 더 예쁘게 보였다.
조금 더 가까워지자 그녀의 숨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편안하지 않은, 불규칙적이고 가쁜 숨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전혀 불편하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강하게 끌렸다.
이제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만 남은 공간.
이 정도 거리까지 오니 그녀의 입술이 단순히 보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느껴’졌다.
입술의 감촉과 온도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조금씩 그려졌다.
그 그림은 향기, 숨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강하게 나를 자극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놀랍게도 저 입술에 ‘닿고 싶다.’였다.
“……”
저절로 숨이 참아졌다.
간지러운 느낌을 느끼기 전, 찌릿한 느낌을 느끼기 전 그 전조 증상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거렸고, 심장은 이미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몸에 찐득한 쾌락이 일었다.
즐거웠다.
지금도 이렇게 즐거운데, 저 입술에 닿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내 머릿속엔 이제 단 하나의 충동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그 충동을 실행하기 위해 그녀의 마지막 공간을 침범했다.
내 충동과 그녀의 그림이 합쳐지고.
마침내 입술과 입술이 맞닿기 직전의 그 순간.
“…!?”
내 신체 일부가 딱딱해졌다.
나는 그 생경한 느낌에 놀라 행동을 멈췄다.
“뭐야뭐야? 닿은 거야?”
민경이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입술은 닿지 않았다.
대신.
‘…??’
딱딱한 것이 점점 거대해지더니.
푹-
은빈의 허벅지에 닿았다.
“…?”
은빈은 조금 놀란 듯 눈을 뜨고 아래를 보더니.
“… 어맛!!!”
깜짝 놀라 뒤로 풀쩍 물러났다.
“뭐야? 갑자기 왜 그러세요?”
그 모습에 경수도 놀라서 은빈에게 이유를 물었고.
“… 헉!”
내 하체를 확인하자마자 그 이유를 알아챘다.
“……”
이 현상.
물론 무슨 현상인지 안다. 보통의 남성이 언제 이렇게 되는지도 알고.
나도 이 현상을 안 겪어본 게 아니다.
아주 가끔씩 아침에 이렇게 되니까.
하지만 여자를 바로 앞에 두고 이렇게 된 적은 처음이다.
내가 느끼던 모든 감정의 총체가 전부 그곳으로 모인 것 같았다.
원리와 원인을 알아도 신기한 건 신기한 것이었다.
내 통제를 넘어서 감정이 요동치는 것도 신기한데,
이젠 신체마저 제멋대로 움직이다니.
나는 이 신기한 현상에 넋이 빠져.
“어머어머. 어떡해.”
“야, 정태야! 엉덩이 뒤로 좀 빼던지, 방석으로 가리던지 좀 해!!”
한참 동안 그 불룩한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
잠시 후.
“잘 먹었어요 경수 씨.”
“하하, 아니에요. 더 좋은 거 사드렸어야 했는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은빈이 혀가 꼬인 말투로 계속 경수에게 말했다.
“2차는 제가 사드리고 싶었는데.”
“아 저도 2차 정말 가고 싶지만, 정태도 내일 출근이고 은빈 씨도 많이 취하신 것 같아서…”
“저 안 취했어요!”
“… 그게 주취자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죠. 하하…”
경수 옆에 있던 민경이 ‘은빈아, 오늘은 이만 들어가고 다음에 또 술자리 만들자.’하며 그녀를 타일렀다.
이어 민경이 나를 보고 말했다.
“정태 씨, 은빈이 집 어딘지 알죠?”
“압니다.”
“집 앞까지만 좀 데려다줘요. 부탁드릴게요.”
“네.”
이어 경수가 내게 인사했다.
“정태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출근 잘해. 다음에 또 한 잔 하자!”
“알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내가 꾸벅 인사하자 그가 입모양으로 ‘화이팅!’하며 소리 없는 응원을 보냈다.
나도 술을 많이 마신 터라 저 응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뒤 헤어졌다.
은빈은 특히 술에 많이 취해 넘어질 듯 위태롭게 걸었다.
내가 그녀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물었다.
“은빈 씨, 택시 탈까요?”
“에이, 바로 앞인데 뭘. 걸어서 가요.”
“여기서 은빈 씨 댁에 가려면 20분은 걸어야 합니다.”
“에이, 금방이에요 금방. 걸어서 가요.”
은빈의 주장대로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하,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신 것도 오랜만이고…”
은빈은 처음 몇 분 동안은 꽤 잘 걷는가 싶더니.
“다음에도 우리 이 멤버 그대로…”
이내 걸음이 흐트러지며 내게 푹 기대어 왔다.
이제 나는 그녀의 팔만 잡아주는 정도가 아니라 몸을 거의 들다시피 부축해 걸어야 했다.
그렇게 걸으며, 아까 경수가 화장실에서 내게 해줬던 말을 상기했다.
‘좀 이따 정태 네가 은빈 씨 집에 데려다 줘. 넘어지려고 하면 좀 잡아주고 그러라고. 술에 취한 이성을 부축해 집에 데려다주는 거, 그거 꽤 낭만적이고 설레는 일이거든.’
그가 그렇게 말했지만.
“……”
난 하나도 설레지 않았다.
무겁고 불편했다.
왜 자신의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걸어가자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앞에 보도블록 튀어나와 있습니다. 발목 조심하십시오.”
싫은데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함을 버티며 반드시 그녀를 집에 안전히 데려다줘야겠다고.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싫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게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술에 취한 탓인지, 분명 싫은 일을 하고 있는데 기분이 좋았다.
“회도 맛있었고, 술도 맛있었고. 아, 그 왕게임. 왕게임도 너무 재미있…”
이어서 불현 듯 경수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네 마음에 있는 말을 그대로 꺼내서 전달해.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 말을 떠올림과 동시에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은빈 씨.”
마음에 있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어설프고 진실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