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74
74화. 수사괴물.
다음 날.
“…?”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철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하직원에게 물었다.
“탁정태 경위 못 봤나?”
“못 봤습니다.”
“설마 어제 그 일 때문에 진짜 출근을 안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요. 조금 늦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날 정태는.
“이런 젠장… 전화도 꺼져있고 뭐하자는 거야!?”
출근을 하지 않았다.
#
다음 날.
철성이 김경위를 보고 물었다.
“뭐야? 오늘도 안 왔어?”
“… 그런 것 같습니다.”
“휴대폰 여전히 꺼져있고?”
“… 네.”
“안 되겠어. 김경위. 차 끌고 탁경위 집에 한 번 갔다 와봐.”
“알겠습니다.”
잠시 후.
사무실로 들어오는 김경위를 보고 철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됐어?”
“집에 가서 벨을 눌러도 응답이 없습니다. 인기척도 없고요.”
“뭐야, 그럼 집에도 없다는 거야?”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문을 뜯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혹시 모르니 창진서 형사과에도 한 번 알아봐!”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정태의 행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하,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날도 정태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그 다음날, 그 다음날도.
“……”
정태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끼익-
내가 감찰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
모든 직원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중 가장 눈을 크게 뜬 사람은.
“탁경위님!!”
철성이었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소리쳤다.
“그동안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난 겁니까! 우리가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압니까!?”
마구 열을 내는 철성에게 내가 덤덤히 말했다.
“집에요.”
“… 예!?”
“집에 있었습니다.”
“집에 있었으면서, 우리 직원이 갔을 때 왜 문을 안 열어줬습니까!?”
“열어주기 싫어서요.”
“뭐요!?”
내 건조한 태도에 부아가 치미는지 철성이 목소리를 더 높였다.
“지금 장난합니까!? 집에 있었다는 거, 거짓말이라는 거 압니다. 우리 탁경위님한테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실종 신고까지 했었습니다. 휴대폰 꺼지기 전 마지막 위치를 조회해보니 집이 아니었다고요!”
“휴대폰만 거기 놔둔 거예요.”
“예?”
“일부러 집에서 좀 떨어진 지하철 물품 보관함에 휴대폰을 넣어뒀습니다. 휴대폰을 들고 있으면 귀찮게 할까봐.”
“귀찮게… 할까 봐요?”
철성이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은 뒤 이를 뻐득뻐득 갈며 말을 이었다.
“무단결근에, 잠적에. 심지어 수사교란까지 했다는 겁니까!?”
“자살암시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수사교란입니까?”
“……”
“실종신고 당시에도 단순 가출인으로 처리되어 당일 한두 시간 의경들과 실종 팀이 수색 후 사건을 종결했을 텐데요.”
철성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소리쳤다.
“지금 그런 절차를 따지자는 게 아니잖아요! 도대체 왜 일주일이나 출근을 안 한 겁니까!?”
“탈락하고 싶어서요.”
“… 뭐라고요?”
더 이상 쓸데없는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철성의 앞으로 다가가 오늘 사무실에 온 용건을 말했다.
“본청 감찰 직위공모에서 저를 탈락시켜주십시오.”
“…!”
놀란 눈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철성은.
“그 이유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여태 일부러 출근을 안 한 겁니까?”
“네.”
“하.”
그가 어이없다는 듯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아주 막 나가시는군요.”
비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며칠 무단결근하면 제가 탁경위님 정식발령 못 내실 줄 아시나보죠?”
“……”
“어디까지나 규정은 ‘4주간 실습 후 최종선발’입니다. 출결 외에도 수사능력, 업무 적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감찰계장이 최종선발을 하는 거란 말입니다. 제가 그때 말씀드렸듯 저는 ‘규정대로’ 탁경위님을 정식발령 낼 겁…”
“감찰의 선발절차 규정을 고려하기 전에.”
내가 그의 말을 끊고 말했다.
“직위공모에 관련된 내부규정의 큰 틀을 먼저 살펴보셔야죠.”
“…?”
“규정상 ‘징계에 회부되거나 징계가 요구되는 자’는 직위공모 대상에서 제외되는 거 아시죠?”
“…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탁경위님은 징계관련 해당사항이 없잖아요.”
“이제 막 생겼죠.”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내가 들고 있던 서류를 앞으로 내보였다.
“행정심판 판례입니다. 개인 사정으로 7일간 부서에 연락 없이 무단결근을 한 경찰관이 자신에게 내려진 ‘감봉 1개월’ 징계가 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한 건이죠. 재판부는 이에 대해 ‘청구인이 무단결근을 함으로써 업무가 미뤄지거나 재배당되는 등 부서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으므로 징계에 부당함이 없다.’며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
“당시 청구인이 개인사정을 이유로 들며 고의로 무단결근 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공무원의 무단결근에 대한 징계는 엄중한 시각으로 판단한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저는 아무런 개인 사정도 없이.”
내가 잠시 말을 끊었다 이었다.
“‘고의’로 일주일 동안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
“따라서 저는 따져 볼 필요도 없이 ‘징계가 요구되는 자’가 되는 것이죠.”
“……”
“내부 규정상 징계가 요구되는 자는.”
내가 다시금 말을 흐렸다가 이었다.
“그 즉시 직위공모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
“규정대로 저를 직위공모 대상에서 탈락시켜주십시오.”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철성.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무단결근으로 직위공모 대상자에서 벗어나는 것.
사실 본청감찰에 지원할 때 이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쨌든 본청 감찰은 내키지 않는 부서였고, 행정심판 판례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생각을 얼른 고쳐먹었었다.
단순히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서를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무단결근을 하는 것 또한 규정에 위배되는 거니까.
허나 본청 감찰의 실체를 알아차린 순간.
더 이상 규정을 운운하며 여기에 묶여 있는 건 미련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규정을 이용해서라도 반드시 여기서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청 감찰은 경찰이 아니라던 교철은 말은, 진실이었다.
“그렇게는…”
멍하니 날 보고 있던 철성이 분이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는 못합니다. 어찌됐건 저는 탁경위 님을 정식발령 낼 테니 행정심판 청구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서 대응해드리겠습니다.”
그가 나름 강하게 나왔지만.
“지금 저를 탈락시키지 않으시면.”
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저는 이번 직위공모 절차에 비리가 있다고 판단, 선발과정에 대해 감찰조사를 신청할 겁니다.”
“뭐요? 감찰조사요?”
“본청 감찰부서에 대한 감찰조사는 타 지방청에서 하더군요. 저는 타 지방청 중에서도…”
내가 잠시 말끝을 흐렸다 이었다.
“경기북부청 감찰계에 조사를 신청할 겁니다.”
“!!”
“제대로 조사를 해주실 것 같아서요.”
깜짝 놀라 말을 멎은 철성.
나는 그에 별 반응 없이 계속 말했다.
“계장님이 가르쳐 주셨듯 감찰조사 과정에서 ‘형법에 위배된 사실’이 밝혀지면 강제수사에 들어가겠죠. 그러면 더 많은 여죄가 밝혀질 수도 있고요.”
“……”
이제 아무 대꾸조차 못하는 그.
“강제수사로 사무실이 다 뒤집어지는 걸 바라시는 게 아니라면.”
나는 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 뒤.
“저를 직위공모에서 탈락시켜주십시오. 당장이요.”
사무실을 나왔다.
*
정문을 나온 뒤.
나는 본청 건물을 뒤돌아보며 짧은 기간 동안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기했다.
철성이 자신의 계략을 위해 날 이용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도 당장 그가 꾸민 짓을 면밀히 조사해 형사처분과 징계를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파악한 것은 죄다 정황뿐이었다.
감잎차의 향, 철성이 징계를 삭감해주면서 주민상 과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는 심증, 공수훈 차장, 한시호 기자와 한 패거리인 것 같다는 심증.
물론 이 정황들로 철성이 나를 본청 감찰로 끌어들인 진짜 이유를 알아낸 것은 맞지만, 이것을 기반으로 무작정 수사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내가 철성에게 속아 관우를 검거하는 공작에 뛰어든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 될 테니까.
내가 직접 조사를 할 필요 없이, 철성에게 내 정식발령을 유도하여 경기북부청 감찰을 받게 하는 수도 있었지만, 이 또한 내키지 않았다.
지금 섣불리 감찰조사에 들어가 버리면 가장 안쪽에 숨겨져 있는 ‘진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본청 감찰에 근무한 그 짧은 기간에만 해도 유관우 청장 공작과 버팔로 클럽 관련 장막이 몇 개나 벗겨졌다.
그 수많은 장막의 맨 안쪽에 뭐가 있는지 밝혀낼 스모킹 건을 찾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나는 이제야 관우가 말했던 ‘때를 기다리라.’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 끝에.
스윽-
뚜- 뚜- 뚜-
나는 안주머니에 넣어뒀던 명함을 꺼내 거기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네, 경기북부청 정보과 정환태 경감입니다.”
= “탁정태입니다.”
아마도 현시점, 내가 찾고자 하는 실체적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세력은.
= “유관우 청장님에게 명함 받고 연락드렸습니다.”
이들일 것이다.
#
다음 날. 창진경찰서 형사계.
“하, 이제 좀 살 것 같다.”
오전 팀장회의를 마치고 온 치헌이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허리를 뒤로 쭉 젖혔다.
“이제 쌓인 사건 어느 정도 쳐내서 숨통이 트이네. 어제까진 우리 진짜 죽어라 일만 한 것 같지 않냐?”
치헌이 묻자 앞에 있던 정록이 목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며 답했다.
“그러니까요. 하, 탁주임님 가고 나서 얼마나 바쁜지. 사건을 쳐내도 쳐내도 끝이 없네요.”
“이런 거 보면 정태가 진짜 괴물이긴 괴물이었어.”
“맞아요 진짜. 수사괴물.”
그렇게 그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헐 팀장님. 박지석 기사 보셨습니까?”
멀리 앉은 지환이 모니터 위로 눈을 빼꼼 내밀었다.
“어? 저번에 그 밴드 보컬 박지석?”
“네. 버팔로 클럽 추가 연루된 박지석이요.”
“걔가 왜?”
“이렇게 기사가 떴어요. ‘경찰, 박지석으로부터 버팔로 클럽 연루된 인물 명단 추가 확보. 고위 공직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에!?”
그 말에 치헌이 의자에서 등을 떼고 똑바로 앉았다.
“그럼 박지석이가 진실을 불기 시작했다는 거야?”
“그런 것 같아요. 와, 이제 배후들 하나씩 밝혀지겠네요.”
“유관우 청장이 진짜 제대로 수사하고 있나보네. 이야, 이거 잘하면 대한민국이 들썩이겠는 걸?”
“아니 그런데.”
지환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
“이런 내용들은 좀 공개하지 말고 기밀로 해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렇게 기사로 내버리면 용의자들이 다 대비할 거 아니에요.”
“그게 막는다고 막아지냐. 우리 조직에 뱀 같은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저도 모르는 새에 정보가 새어나가서 기자 귀에 들어가 버린다고. 피의사실공표죄가 괜히 사문화된 게 아니야. 기소 전이라도 언론에 떠들어대는 건 이제 대부분 용인해주는 추세라고.”
“하, 정말 이 기자 놈들 진짜.”
“그런데.”
치헌이 팔짱을 끼고 말을 이었다.
“저런 큰 사건 수사하면 재미있긴 하겠다. 안 그러냐?”
“어휴, 저는 무서워서 못 할 것 같아요. 제대로 수사해도 보복이 두려울 것 같고, 제대로 수사 못하면 언론의 질타를 맞을 것 같은데…”
지환의 말을 들은 정록도 옆에서 ‘저도 무섭습니다.’하며 맞장구를 쳤다.
“이 쫄보 놈들…”
치헌이 그들을 보며 혀를 한 번 찬 후, 경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수 넌 어때?”
“아 저도 좀 무섭긴 하지만, 좋은 동료들이 도와준다면 재미있게 수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수사는 혼자 못하지. 좋은 동료가 필수야.”
그렇게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끼익-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안녕하십니까.”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들어왔다.
돌아왔구나!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x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