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75
75화. 돌아왔구나!
내가 사무실로 들어가 인사하자.
“어? 정태야!”
“뭐야? 오늘도 창진서에 감찰 나온 거야?”
치헌과 경수가 벌떡 일어나 나를 맞아주었다.
이어 지환과 정록까지.
반가운 얼굴들.
“아뇨, 이제 감찰 조사는 안 합니다.”
내가 그들을 둘러보고는 치헌에게 덤덤히 말했다.
“본청 감찰 직위공모에서 탈락했거든요.”
“… 뭐?”
“창진서 형사과로 복귀명령 받았습니다.”
“헉.”
치헌이 벙진 표정을 짓고 날 바라봤다.
“너…”
탈락했다는 말.
그 부정적인 단어에도 불구하고 그는.
“돌아왔구나!”
활짝 웃으며 팔로 내 목을 감쌌다.
*
그날 저녁. 창진서 인근 삼겹살 집.
치이이익-
맛있는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치헌이 술을 한 잔씩 따라주며 내게 물었다.
“그래, 이제 한 번 설명해봐. 직위공모에 왜 떨어진 거야?”
“일주일 간 출근을 안 했거든요.”
“뭐!?”
나는 그때부터 출근을 하지 않아 감찰 직원이 집까지 찾아온 일, 휴대폰 위치 값 인근 경찰서에 실종신고가 된 일 같은 것들을 설명했다.
은빈에겐 결근 첫날 은행 퇴근시간에 맞춰 근무지에 찾아가, 감찰 업무 때문에 일주일간 폰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언질을 해놨었다.
“아, 그래서 며칠 전에 본청에서 탁주임님 찾는 전화가 왔었군요. 내용은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 일이 있은 줄은 몰랐네요.”
지환이 고기를 뒤집으며 이제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치헌이 그를 다그쳤다.
“야, 그런 전화가 왔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아… 그땐 일이 너무 바빠 정신이 없어가지고 전달을 못해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데.”
치헌이 이번엔 나를 돌아봤다.
“왜 출근을 안 한 거야?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본청 감찰 직위공모의 실체를 알아챘거든요.”
“실체?”
“이철성 계장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를 이용한 겁니다. 직위공모를 가장한 공작을 벌인 거예요.”
“에? 공작!? 무슨 공작?”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정황상 제가 공작이라 판단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감찰조사 중인 수사 기밀이니까요.”
치헌과 팀원들은 그 뒤로도 몇 번이고 내용을 알려달라고 졸랐지만 나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쨌든 네가 이렇게 무단결근까지 해가며 뛰쳐나온 걸 보면, 이번 직위공모가 ‘불순한 의도가 담긴 공작’이었단 건 확신하는 거네?”
“확실합니다.”
“단지 서류상 판명이 안 났을 뿐이고?”
“네.”
“영원히 판명은 나지 않을 거야. 감찰 인간들이 자기 식구 잘못했다고 까발리겠냐? 어떻게 보면 정태 네가 머리 써서 빨리 잘 빠져나온 거야.”
“자, 그럼.”
치헌의 말에 옆에 있던 경수가 술잔을 들고 불쑥 끼어들었다.
“정태 탈락 기념으로 한 잔 할까요?”
“탈락 기념? 그래, 한 잔 하자!”
치헌도 술잔을 들더니 날 보고 외쳤다.
“정태야. 직위공모 탈락 축하한다!”
“탈락 축하해!”
“축하드립니다, 주임님!”
활짝 웃으며 잔을 부딪치는 그들.
나도 같이 잔을 들고 건배를 한 뒤 소주를 입에 털어 넣었다.
탈락이 이렇게 기쁜 일이었다니.
“크, 야 정태야. 너 본청 감찰 간 사이에 얼마나 바빴는지 아냐? 며칠 전엔 어떤 사건이 있었냐면…”
술을 한 잔씩 마신 뒤, 경수가 내게 말했다.
“저번에 그 영선시장 알지? 거기서 어떤 놈이 돈 통에 있던 현금 80만원을 훔쳐 달아난 거야. 하 그런데 그놈 도주로라고 하는 시장 서편 지도를 보니 거기 골목길이 완전 미로 수준이더라고. 그 CCTV 하나하나 까는데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시장 서편이면 큰 도로를 제외한 창진-219, 창진-234 CCTV를 먼저 봤으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 텐데요.”
“……”
내 말에 그가 잠시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 맞아. 창진-234를 지나갔더라고. 이야, 역시 탁정태. 아직 살아있구나!”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저께는 또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이번엔 지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빌딩 2층 계단에서 어떤 사람이 어깨 앞쪽에 칼을 맞았다는 겁니다. 그 피해자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준 지인을 범인으로 지목했고요. 현장 피해자가 서 있던 맞은편 벽엔 피가 일자로 쫙 뿌려져있더라고요. 그런데 건물 입구 CCTV엔 피해자가 지목한 용의자가 드나든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알고 봤더니…”
“자해군요.”
“… 네?”
“찔린 게 아니라 스스로 자해한 거예요. 누군가 피해자 어깨를 앞에서 찔렀다면 맞은편에 길게 핏자국이 형성될 수가 없습니다. 벽에 묻기 전에 가해자의 몸에 묻거든요. 아마 그 사람은 채무독촉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원맨쇼를 한 것으로 보이네요. 사기전과가 있을 수도 있겠어요.”
“……”
내 말에 지환이 놀라 입을 쩍 벌리더니.
“… 맞아요. 신고자는 상습으로 남들을 기망해 돈을 편취하고 갚지 않았던 사기범이었습니다. 사건도 자기가 다 꾸민 짓이고요. 하, 역시 탁주임님…”
경수에 이어 그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크흐. 이제 좀 완전체가 된 것 같네.”
얘기를 듣고 있던 치헌이 목을 긁어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태 이렇게 오니까 뭔가 우리 팀의 빈곳이 팍 채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냐?”
그 말에 모두 ‘맞아요. 진짜로.’하며 맞장구를 쳤다.
“이런 거 보면 어느 부서에서 일하냐보다 누구랑 같이 일하느냐가 진짜 중요한 거 같아. 내가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이 멤버 아니었으면 형사 5팀의 그 많은 실적 어떻게 다 이루어 냈겠냐? 심지어 즐겁기까지 했잖아. 막 스트레스 받은 순간은 거의 없었다고.”
그 말에도 팀원들이 다시금 이구동성으로 동의를 표했다.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 치헌이 이쪽을 돌아보더니 내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하, 정태 너 돌아와서 난 참 좋아. 우리 같이 예전처럼 큰 사건들 척척 쳐낼 생각하니까 짜릿하기도 하고.”
“그 말씀, 진심입니까?”
내 질문에 헤벌쭉 웃고 있던 그가 눈을 껌뻑이며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 응?”
“어느 부서에서 일하냐보다 누구랑 같이 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그리고 큰 사건을 척척 쳐내고 싶다는 그 말씀. 진심입니까?”
“……”
갑자기 진지하게 묻는 내 질문이 당황스러웠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진심이지!”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다른 팀원 분들도 마찬가지신가요?”
내가 묻자 경수와 정록, 지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가 제안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제안? 갑자기 무슨 제안?”
그때부터 나는 한참 동안 무언가를 설명했고, 치헌과 팀원들은 집중해서 내 얘기를 들었다.
얘기가 다 끝난 뒤엔.
“음…”
팀원들이 하나같이 말을 잇지 못하며 내 제안을 고민했다.
“지금 당장 답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시간은 좀 있으니까요.”
내 말에 경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 정태 너 와서 기분은 좋은데. 왜 또 이런 고민을 안겨주는 거야?”
“고민은 천천히 하시고, 며칠 뒤에 있을 즐거운 일이나 생각하십시오.”
“… 응? 며칠 뒤에 있을 즐거운 일?”
의아한 듯 묻는 경수에게 내가 덤덤히 답했다.
“우리 모두가 바라던 즐거운 일이요.”
#
3일 후. 창진경찰서 4층 강당.
“와, 직원들 왜 이렇게 많이 왔죠?”
지환이 강당에 꽉 들어찬 사람들을 둘러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에 치헌이 답했다.
“우리 서 직원들 모두 우리 팀 덕분에 경찰서 성과 S받고 성과금 최대로 땡겼잖아. 다들 우리 팀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아 성과금…”
“그런데.”
치헌도 주변을 둘러보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많이 오긴 했다.”
경찰서 강당이 이토록 붐비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충 인원만 세어 봐도 각 부서 당 한두 명을 제외한 경찰서 전 직원이 모인 것 같았다.
그들이 웅성거리며 저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아.”
강단에서 마이크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진행을 맡은 경무계 직원이 멘트하자 모두 배치된 의자에 앉았다.
앉지 못한 인원들은 뒤쪽에 열을 맞춰 쭉 섰다.
잠시 후.
끼익-
강당 문이 열리더니.
“서장님 입장하십니다.”
교철이 걸어 들어왔다.
그의 등장에 모든 직원들이 허리를 바짝 세우고 차렷 자세를 했다.
그가 직원들 사이를 가로질러 강단 앞에 서자.
“2014 창진경찰서 형사과 특별승진 임용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경무계 직원이 오늘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그 말에 강당 내 모든 직원들의 시선이 맨 앞줄에 앉은 경수에게로 쏠렸다.
정복을 입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경수.
그의 얼굴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식전에 서장님 인사말씀이 있겠습니다.”
진행자가 멘트하자 교철이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대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아, 우리 창진서 직원들 항상 고생이 많습니다. 또 이렇게 많이 참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특진 관련해서 조금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 해결됐고, 다시 공정하게 특진자를 심사해 선발한 것이니 좋은 마음으로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와 철성이 서울청 인사담당자를 감찰 조사한 이후.
곧장 강상민 경사의 승진 임용이 보류되었고, 경무계 인사담당자 교체 후 다시 특진 심사에 들어갔다.
새로운 심사진들은 경수의 승진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 기존 결정을 번복해 경수를 최종 특별승진자로 선정했다.
철성의 공작과는 별개로 나는 감찰에 들어가기 전 바로잡고자 했던 것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강상민 경사와 박규만 6팀장도 자리에 참석해 경수를 축하해주었다.
교철의 말이 끝나자 진행자가 다시 멘트했다.
“이제 특별승진자 임용이 있겠습니다. 고경수 경사는 강단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에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강단 앞으로 걸어갔다.
정복을 입어서 그런지 오늘 그의 외모는 더더욱 빛이 났다.
모델 같은 그의 워킹을 보며 직원들이 조용히 감탄을 내뱉었다.
경수가 앞에 서자 교철이 임명장을 펼쳐 들었고, 곧장 진행자가 임용 멘트를 했다.
“경사 고경수. 위 사람을 경위에 임함.”
이어 교철이 임명장을 경수에게 건넨 뒤.
“서장님께선 승진자에게 새로운 계급장을 달아주시면 되겠습니다.”
앞으로 걸어 나와 직접 경수 어깨의 경사 계급장을 뗐다.
그리고는.
“고경위. 축하한다잉.”
무궁화 계급장을 새로 달아주었다.
“경위 고경수! 감사합니다!”
경수가 큰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경직된 자세임에도 입 꼬리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실룩거리는 걸 보니 기분이 좋긴 좋은 모양이었다.
아닌 척 했지만 경수도 승진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만년 경사 타이틀을 벗고 사법경찰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
“멋지다 고경수!”
“축하합니다!!”
강당 내 모든 직원들이 그의 승진을 축하해주었다.
경수는 뒤돌아 활짝 웃으며 그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렇게 계급장 교체가 끝난 후.
“이것으로 창진서 형사과 특별승진 임용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승진을 축하드립니다.”
다시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지며 임용식이 끝났다.
“고주임, 축하해!”
치헌은 식이 끝나고 가장 먼저 달려가 꽃다발을 전달했다.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축하드려요 주임님!”
“축하해요!”
정록과 지환도 물개박수를 치며 다시 한 번 그를 축하했다.
다른 직원들도 지나가며 모두 한 마디씩 축하 인사를 건넸다.
딸이 팬이라며 사진을 찍어가는 직원도 있었다.
그 뒤에는 나도 그에게 다가가.
“축하드립니다.”
인사를 전하고는.
“어, 그래 정태야. 고맙다 진짜. 다 네 덕분…”
“결정하셨습니까?”
곧장 용건을 물었다.
“… 응? 무슨 결정?”
“삼겹살집에서 말씀드린 거요. 팀장님은 승낙하셨습니다.”
“아, 그거?”
내 질문에 경수가 잠시 멈칫하고는.
“음, 어차피 경위 달면 부서이동 필수로 해야 하니까…”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더니,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오케이! 같이 가자, 광수대.”
숨 돌릴 틈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