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숨 돌릴 틈도 없이.
특별승진 임용식이 끝난 후.
타닥- 탁- 타닥- 탁-
나와 치헌, 경수는 사무실에 앉아 열심히 직위공모 지원서를 작성했다.
지원부서는 서울청 광역수사대.
며칠 전 삼겹살집에서 내가 같이 부서이동을 하자고 제안을 했던 곳이다.
정기 인사 시즌인 1월 중순이 되려면 아직 한 달 정도가 남았지만, 특이하게 광수대 직위공모가 조금 일찍 나왔다.
“정록이 너는 정말 지원 안 할 거냐?”
치헌이 타자기를 두드리며 정록에게 물었다.
“모집 인원이 세 명인데, 저까지 지원해버리면 인원초과잖아요.”
“뭐 어때? 같이 선의의 경쟁 해보는 거지. 다른 서 애들도 지원할 텐데 뭘.”
“에이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서 경사 달아야죠. 올해 실적 좋았으니, 내년에 심사 노려보려고요.”
경사 승진부터는 2년 치 실적을 본다.
정록이 창진서에서 계속 형사생활을 한다면 사실상 내년 경사 심사승진은 따 놓은 셈이다.
“지환이 너는?”
“저도 남겠습니다. 아직 순경이라 지방청 가면 서류 복사만 하다가 일도 못 배우고 나올 것 같아서요. 여기서 경험 더 쌓고 다음 기회에 가던지 하겠습니다.”
지환의 생각도 일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광수대로 가면 규모가 큰 사건을 담당하기 때문에 말단 순경에게 비중 있는 일을 맡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되면 그의 말대로 정말 서류 복사만 하다가 다른 부서로 전출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 만약에 붙으면 너희랑 헤어지는 거니 아쉽긴 하겠지만.”
치헌이 정록과 지환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지원해보겠어. 광수대가 형사의 꿈 아니냐.”
조직 내에선 형사업무를 오래 하는 사람을 보고 광인이라고 부른다.
수사에 미친 자만이 형사를 오래 할 수 있다면서.
그런 광인들이 가장 미쳐 수사할 수 있는 곳이 광수대.
따라서 광수대는 많은 형사들이 꿈꾸는 부서가 될 수밖에 없다.
“저는 그런 형사의 꿈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말을 듣고 있던 경수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경위승진하면 서간 이동 필수로 해야 하고, 우리 팀원들이랑 같이 근무는 하고 싶고 그래서 신청하는 거예요. 하, 그런데.”
그가 나를 힐끗 돌아봤다.
“저희 세 명 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정태가 분명 될 거래서 일단 지원하긴 한다만.”
그에 치헌도 말을 보탰다.
“뭐 밑져야 본전이니 지원해보는 거지. 정태가 무슨 자신감으로 셋 다 붙을 거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은 아주 낮다고 봐야해. 사실 셋 중 하나만 붙어도 다행이지.”
의심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치헌과 경수.
내가 그들을 가만히 쳐다보며 덤덤히 답했다.
“셋 다 될 겁니다. 이번 직위공모에는 공작이 없을 테니까요.”
*
그리고 며칠 뒤.
“헐 진짜 됐어?”
“이럴 수가.”
거짓말 같이.
[ 2014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직위공모 선발 결과 ]
– 창진서 형사과 경감 장치헌
– 창진서 형사과 경위 고경수
– 창진서 형사과 경위 탁정태
세 명 다 광수대 직위공모에 선발되었다.
#
이틀 뒤. 서울지방경찰청 청장실.
“차렷!”
정복을 차려 입은 치헌이 어깨를 바짝 세우고 외쳤다.
“청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똑같이 정복을 차려입은 나와 경수도 큰 소리로 경례를 했다.
“충성.”
우리의 경례를 받아주는 이는 바로 서울지방경찰청장.
기환수 치안정감이었다.
백발에 깊게 패인 팔자주름이 특징인 남자.
그의 어깨엔 3개의 큰 무궁화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바로!”
구호와 동시에 우리 모두 다시 차렷을 한 뒤, 치헌이 큰 소리로 신고했다.
“신고합니다! 경감 장치헌 외 2명은 2014년 12월 23일부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근무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충성.”
환수는 두 차례 경례를 받은 후에야.
“환영합니다.”
인사말을 할 수 있었다.
“전국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형사 분들과 이렇게 함께 근무하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인자한 미소.
그는 정말 기분이 좋은 듯했다.
“비정기 인사라 제 방에서 약소하게 신고식 하는 점, 넓은 마음으로 양해바랍니다. 다치지 마시고 건강 유의해서 잘 근무해주기 바랍니다. 이상.”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차렷! 청장님께 대하여 경례!”
“충성!”
“충성!”
우리가 다시 경례를 했다.
“이것으로 신고식을 마치겠습니다.”
부속실 직원의 멘트를 끝으로 신고식을 마쳤다.
우리는 그의 안내에 따라 청장실을 나가 3층 광역수사대 사무실 옆 소회의실에 앉았다.
그는 광수대장이 이리로 올 것이라고 일러준 후 밖으로 나갔다.
“와 신고식 순식간에 끝나네요.”
경무계 직원이 나가자마자 경수가 손등으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차라리 이렇게 간소하게 하는 게 나아. 고위간부들 다 모아놓고 하면 몇 배는 쫄린다고.”
치헌도 이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몸을 살짝 늘어뜨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야, 제가 광수대에 오다니…”
“감회가 새롭냐?”
“네. 너무 신기하네요. 후, 그런데.”
경수가 손바닥으로 자기 볼을 탁탁 때리며 말했다.
“어제부터 피곤이 가시질 않아요. 그저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그저께 많이 마시긴 했지. 서장이랑 과장이 술 계속 줬잖아.”
“하, 마지막이라고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더니, 정신이 돌아오질 않네요.”
*
이틀 전 공모 결과가 발표 나고 난 뒤.
“최과장, 장팀장. 오늘 내가 쏜다. 저녁에 형사 5팀 집합시키라.”
황교철 서장이 직접 나서 형사 5팀의 마지막 회식을 주도했다.
그날 저녁.
“마지막이니까 마음껏 마시라!”
거한 술판이 벌어졌고.
“갖다 들이 부뿌라!”
쉴 새 없이 술을 들이 킨 덕에 다들 한껏 취했다.
가장 빨리 취한 건.
“하, 증태야. 내가 증말로…”
가장 신나게 마셔댄 교철이었다.
“증말로 고맙다 니한테.”
“……”
“내가 취해가 카는 게 아이라, 내 30년 경찰 인생 중에 지금이 제일 즐겁다. 늙다리는 딴 거 필요 없다. 내 어깨 세아 줄 부하직원 한두 명만 있으마 된다. 아빠가 자식자랑 하듯, 서장도 내 직원 자랑하고 싶다 이 말이다. 내가 요새 니 자랑 얼마나 하고 다니는 줄 아나? 내 동기들이 마 부러버 디질라칸다.”
“… 고맙습니다.”
그가 내게 어깨동무를 해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정태 니 우째 자라 온지 다 안다. 서장이랑 과장은 자기소개서랑 인사내신서까지 다 보니까.”
“……”
“니 피붙이 없다고 절대 우울해 할 필요 없다. 여기 있는 모두가 니 가족이다, 알겠나? 내가 정태 니 아빠고 최과장, 장팀장이 니 삼촌이고 그런 셈이라꼬.”
언젠가 덕규에게도 들었던 말.
조직 내 어른들은 날 비슷한 시각으로 바라봐주는 것 같았다.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이들은 날 가족처럼 대해주는 걸까.
“내 아직 퇴직할라면 몇 달 남았는 거 알제? 지방청 가가 니한테 뭐같이 하는 놈들 있으면 내한테 바로 말해라. 내가 쫓아가가 고마 코를 콱 눌라뿔테니까.”
나는 교철이 진짜 그럴 것 같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이고, 서장님 많이 취하셨습니다.”
이어 안득이 교철을 부축해 옆자리에 앉히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네. 탁경위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 모두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형사 5팀 전원이 다 정말 고생했어. 자네들 노고에 비해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네.”
“아이고,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광수대 가서도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게. 창진서에서 있는 힘껏 도와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득과 치헌이 서로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 뒤에는.
“팀장님. 탁주임님. 고부장… 아니 고주임님.”
정록과 지환이 다가와.
“보고 싶을 겁니다.”
치헌과 나, 경수를 덥석 안았다.
평소 같았으면 치헌이 제일 먼저 팔을 떨쳐냈겠지만.
“나도 너희 보고 싶을 거야. 근데 죽는 거 아니니까 우는 소리 하지 마. 얼굴이야 보면 되지.”
큰 팔로 그들을 같이 안아주고는.
“자, 우리 팀끼리 한 잔 하자.”
다시 건배를 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더 술잔을 기울였다.
*
탁- 탁-
“정신 차리자, 정신!”
그날 교철만큼 술을 많이 마신 경수는 아직까지 정신을 잘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 뺨을 때리며 정신을 깨우고 있는데.
끼익-
소회의실 문이 열리더니.
“안녕하십니까.”
중후한 멋을 풍기는 남자가 들어왔다.
포머드 기름을 발라 뒤로 쫙 넘긴 머리. 단정한 셔츠에 패딩코트.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렵한 눈.
나이는 50대 초중반 정도.
그가 치헌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광수대장 윤치률 총경입니다.”
“경감 장치헌입니다. 반갑습니다!”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던 치헌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그와 악수했다.
치률은 이어서.
“고주임님이군요. 듣던 대로 인물이 좋으시네요.”
“경위 고경수! 감사합니다.”
경수와 인사한 뒤 나에게 다가왔다.
“탁주임은 초면인데도 아는 사람 같군요.”
“… 네?”
“창진서장님한테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요. 그 형님이랑 나랑 경간부 동기거든.”
“아…”
치률에게도 내 자랑을 한 건가.
“아무튼 반가워요.”
“경위 탁정태. 반갑습니다.”
“자, 다들 형사 업무 잘 하시는 분들이니 업무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나와 악수를 끝낸 그는 곧장 회의실 앞쪽으로 가더니.
위이이이잉-
빔 프로젝트를 켰다.
그리고는 우리를 돌아보더니.
“바로 배당된 사건 설명 시작하죠.”
“…!?”
그 말에 치헌과 경수는 물론 나도 좀 놀랐다.
아무리 광수대 업무가 형사 업무와 다를 바 없다지만.
아직 정복도 갈아입지 않았는데 곧장 사건 설명이라니.
“살인 사건입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전면 스크린에 가슴과 배를 난자당한 사체 사진이 나타났다.
“가슴 2회, 복부 6회. 피해자에게 총 8회의 자상을 입혀 살해 후 범인은 도주했습니다. 어제 일어난 사건이에요.”
오랜만에 보는 현장 사진에 나는 저절로 몰입해 화면에 집중했다.
“현장에선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 개의 지문이 나왔습니다. 사건을 담당했던 영등포서 형사들은 금방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과수반에서 지문을 감식한 결과.”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 이었다.
“‘등록되지 않은 지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이란 거죠.”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
그 말을 듣자마자 책에서 봤던 관련 사례들이 주루룩 머릿속에 생성되었다.
“실제 살아가고는 있지만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 수사에 있어선 유령 같은 사람이 범죄를 저지른 겁니다.”
“……”
“그리고 이런 유령범죄가.”
치률이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최근 한 달간 3건이나 더 발생했었습니다.”
전부 다 칼에 찔려 죽은 피해자들 사진이었다.
“다행히 이 중 한 사건의 범인은 검거를 했습니다. 잡고 보니 범인의 정체가.”
화면이 한 번 더 넘어갔다.
꾀죄죄한 얼굴의 남자 사진.
“조선족이더군요.”
“…!”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남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무런 서류 기록도 남기지 않고 음지에서 자라 제대로 된 이름도 없이 ‘들개’로 불리며 조선족 범죄조직의 칼잡이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직의 지시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외에 다른 사건 피해자들은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관련 증거 역시 찾지 못했고요.”
다시 화면은 이전으로 돌아와 피해자들의 사진.
“어제 사건을 포함한 피해자들 모두 조선족 범죄조직에 돈을 빌린 조선족 또는 한국인이었습니다. 따라서 남은 사건들 또한 ‘또 다른 들개’들이 저지른 것이라 추정됩니다. 조선족 범죄조직의 소행이라는 거죠.”
치률의 눈이 치헌에게 머물렀다.
“세 분은 광수대 강력범죄수사계 1팀에서 한 조로 근무할 겁니다. 첫 사건으로 이 살인 사건을 맡게 될 거고요.”
“……”
“그리고 이 사건 해결의 최종 목표는 범인 검거가 아니라.”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 이었다.
“조선족 범죄조직 완전 소탕입니다.”
공갈젖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