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8
8화. 입증은 CCTV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곧장 차량용 무전기를 들었다.
– “매천 둘 순마 여기 매천 하나. 경광등 끄고 현장 공착(도착)하지 말고 잠시 둘기(대기.)”
– “둘기요? 특상(특이사항, 참고할 만한 사항) 있습니까?”
– “칠팔. 일단 잠시 둘기.”
함께 있던 경수도 알아채지 못한 내용을 다른 직원들에게 무전으로 이해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대기하라고만 한 뒤 무전기를 내려놓고 우리 차 경광등도 껐다.
“신고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해야 합니다.”
“… 알겠습니다.”
경수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대답한 뒤, 잠시 후 차를 세웠다.
“여기서 50미터 정도 걸어야 합니다.”
“가시죠.”
차에서 내린 뒤 나는 앞장서 가며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그렇게 도착한 신고 장소는 관내의 한 빌라.
나는 일부러 건물 뒤로 비잉 돌아 출입문으로 간 뒤, 신고자에게 전화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부리나케 계단을 올라갔다.
“탁경위님. 신고 장소는 여기 3층이에요. 어디까지 올라가시는 거예요?”
“범인은 옥상에 있습니다.”
“예?”
아까부터 범인 타령을 하는 나를 경수는 마지못해 따라오고 있었다.
단순 소음신고 장소에 자꾸 절도범이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 모양.
“요 며칠 계속 접수된 ‘스윽 스윽’, ‘그륵 그륵’거린다는 소음 신고. 그거 위층에서 난 소리가 아니에요.”
“그럼요?”
“건물 외벽에서 난 소리입니다. 범인이 가정집 베란다에서 외벽을 따라 옥상으로 연결된 배관 선을 자르면서 마찰이 생긴 거예요.”
“…!”
고물상에서의 정황과 소음신고가 딱 합쳐졌을 때.
내 머릿속 퍼즐은 건물 옥상에서 배관을 자르고 있는 범인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옥상 문을 여니.
“거기서 지금 뭐하십니까?”
피부가 검게 그을린 장년 남자가 잘린 에어컨 배관을 둘둘 말아 챙기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나는 곧장 그에게로 가지 않고.
“선생님, 휴대폰 좀 쓰겠습니다.”
난간에 올려져 있던 그의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 “저 아까 고물상에서 만났던 경찰관인데, 녹색 옷 입고 계시던 할머니 맞죠?”
= “예, 예?”
아까 그 할머니 목소리가 맞았다.
= “집에 도착하셨습니까?”
= “집에는 도착했는데… 경찰 양반이 내 남편한텐 왜 간겨?”
= “가서 설명드릴 테니 집에 가만히 계세요.”
그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경수는 어느새 업무용 휴대폰을 들고 ‘이럴 수가…’하며 범행도구로 보이는 공업용 가위와 절단된 배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여전히 바닥에 나자빠져 있는 장년 남자에게 다가가 내가 말했다.
“선생님이 이 배관 절단하신 거 맞죠?”
“아, 아닙니다. 저는…”
“절단한 배관을 아내에게 전달해 고물상에 팔게 했고요.”
“아, 아니…”
“용의자가 범행을 부인하더라도 현장에 범죄를 행했다는 현저한 흔적이 있을 땐 범인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선생님이 계속 범죄를 부인하고 현장을 이탈하려 한다면 체포할 수 있다는 말이죠.”
“……”
“일단 할머니도 만나봐야 하니 같이 댁으로 가시죠. 순순히 가시면 수갑은 채우지 않겠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는 함께 그의 집으로 향했다.
*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예상대로 할머니의 반발이 거셌다.
“지금 우리 영감 의심하는겨? 에어컨 선 자르는 걸 당신들이 직접 본 것도 아니잖여!”
“……”
“왜 어렵게 사는 노인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여! 그러고도 너희들이 민중의 지팡이여!?”
“할머니도 범죄를 부인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왜 안 한걸 했다고 지랄들이여 이 썩을 것들아!”
할머니가 강하게 나오자 할아버지도 ‘옥상에 가보니 이미 선이 잘려 있었다.’며 말을 거들었다.
옆에 있던 경수도 막상 저들이 저렇게 나오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옥상엔 CCTV가 없었고, 할머니의 말대로 할아버지가 에어컨 선을 자르고 있는 장면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한 사람 잡지 말고 증거를 대 증거를!”
“알겠습니다. 증거를 말씀드리죠.”
하지만 범죄 입증은 CCTV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할머니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까 고물상에서 할머니가 ‘내가 신고자다.’라며 휴대폰을 보여주셨을 때, 저는 그 휴대폰 고리에 달린 사진과 휴대폰 배경화면 사진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고리에 있는 사진은 7~8세 정도의 남자 아이 사진이었습니다. 화질을 보니 최근에 찍은 것 같더군요.”
“……”
“최근에 찍었는데 아직 그 나이 대 어린 아이라면, 또 휴대폰 고리에 걸고 다닐 정도로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 아이는 할머니의 손자라고 봐야겠죠.”
“…!”
“그리고 휴대폰 배경은 단정한 검정색 옷을 입은 할머니가 30대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는 화면이었습니다. 화면 속 주변 가족들까지 모두 검정색 정장을 입고 있던 걸로 봐서…”
내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할머니가 들고 있던 사진 속 남자는 아들이라고 봐야겠죠. 사진은 아들의 장례식 사진이고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눈이 동시에 흔들렸다.
나는 그에 별 반응 없이 오른 쪽에 있는 작은 방을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아까 고물상에선 추정만 했지만 이 집에 들어오고 나니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들이 사망한 후 폐지 줍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손자와 함께 살아가고 계셨던 겁니다. 며느리도 없이요.”
작은 방엔 초등학교 교과서와 갖가지 학용품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집 그 어디에도 중년 여성의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며느리는 같이 살지 않는 것이다.
손자는 외출 중인지 집에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가 유심히 봤던 건 할머니가 하고 계신 목걸이와 팔찌, 반지였습니다.”
내가 말하자 그녀가 조심스레 자기 팔을 뒤로 감췄다.
차마 감출 수 없는 목에선 화려한 금이 번쩍번쩍 빛났다.
“그 장신구들의 디자인을 보니 출시된 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한 패물 같은 게 아닌, 적어도 아들이 사망하고 난 이후에 구입한 것들이었죠.”
“……”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어렵게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열심히 모은 돈을 사치품인 장신구에 투자했을까요?”
“……”
“손자가 기죽는 게 싫었던 겁니다.”
할머니의 고개가 점점 내려갔다.
“할머니는 자존심이 센 사람입니다. 자신도 다른 할머니 구역 선풍기를 주워와 문제가 된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까 현장에선 큰 소리를 치며 절대로 먼저 사과하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기 사람을 굉장히 아낍니다. 자기가 기죽는 것보다 자기 사람이 기죽는 것을 훨씬 더 싫어하죠.”
판례를 공부하다보면 ‘자존심’같은 감정이 중대 범죄로 번지는 경우를 생각보다 많이 보게 된다.
나는 그 사례들을 보며 특정 감정을 가진 사람이 어떤 행동패턴을 가지는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었다.
그러니 저 할머니의 특성을 파악한 건 감정적 이해가 아니라, 판례공부를 통해 저장된 서술적 정보였다.
“초등학생은 학부모가 학교에 참석할 일이 잦습니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참석하셨겠죠. 할머니는 손자가 부모 없는 아이라고 놀림 받진 않을까 걱정하며 온몸에 보석을 두르셨을 겁니다. 손자 기를 살리기 위해선 다른 부모보다 훨씬 더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 했으니까요.”
“……”
“손자 사랑은 이 옷들과 영수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옆에 놓인 빨래건조대와 탁상 위 영수증들을 가리켰다.
널려 있는 손자의 옷은 브랜드가 아닌 게 없었고, 영수증은 모두 손자의 학업을 위한 학원수강 영수증이었다.
“동네에 폐지 줍는 분들 중 유달리 돈이 많이 필요했던 할머니께서, 구하기 힘든 에어컨 배관 구리선을 며칠 연속이나 구해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배관선 절도 현장에서 할머니의 남편 분이 배관을 챙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고요.”
“……”
“이 모든 정황이 우연의 일치일까요?”
이제 완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다물고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내가 그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 말했다.
“이대로라면 할아버지는 주거침입과 절도, 할머니는 장물 운반 및 알선으로 처벌을 받을 겁니다. 만약 초범에다 죄를 인정하고 뉘우친다면 낮은 벌금형만 받고 끝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가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이었다.
“지금처럼 계속 죄를 부정하신다면 경찰이 인근 CCTV를 다 확인하고 공업용 가위의 지문까지 채취해 죄를 입증하려 노력할 겁니다. 수사력이 더 동원된 만큼 재판부는 더 중한 형을 내리겠죠. 벌금이 더 커질 수도 있고 집행유예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
“어떻게.”
내가 둘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감식반 불러서 빌라 옥상 족적이랑 지문 다 뜰까요?”
죄를 밝혀낼 때 가장 명확한 증거는 범인 스스로의 범죄 시인이다.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추궁을 통해 범인으로부터 죄를 시인하는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기소의견 송치할 수 있다.
내 질문에 그들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니.
뚝.
뚝.
닭똥 같은 눈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살짝 들고 애처롭게 날 쳐다봤다.
“우… 우리는 나쁜 뜻으로 그런 게 아니라…”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돈이 필요하셨다면 절도를 하실 게 아니라 장신구를 파셨어야죠.”
“……”
“지금 선생님들이 해야 할 건 변명이 아니라 인정과 반성입니다.”
말이 끝나고 잠시 정적 후.
갑자기 할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경찰 양반…”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으로 날 보며 통곡했다.
“내가 잘못 했어… 정말로 미안혀. 정말로…”
한 잔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