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81
81화. 그날.
정우가 들고 있던 책을 털썩 내려놓으며 말했다.
“경찰시험 지문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
그가 들고 있던 것은 경찰시험 기출문제집.
그는 얼마 전 경찰 시험을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곧장 문제집을 샀다고 했다.
은빈이 어차피 경찰이 되려면 군필이어야 하니 군대부터 다녀온 후 천천히 준비하라고 말 했지만, 그는 지금 당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며 바로 문제풀이를 시작했다.
“100kg 남자가 50kg 여자 친구의 머리를 주먹으로 스무 대 가까이 힘껏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이건 상해치사가 아닌 살인죄가 적용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살인죄가 적용되려면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도를 입증해야 해. 아마 당시 수사에선 범인의 살인 고의를 입증하지 못했을 거야. 상해의 의도로 때렸는데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 상해치사죄가 적용된 거지.”
내가 설명했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강간이나 강제추행 판례도 이상해요. 구성요건엔 분명히 폭행과 협박을 명시해놨으면서, 꽃뱀들이 성관계 몇 주 후에 고소한 강간 및 강제추행 건을 기소한 사례가 적지 않아요. 성관계 시점에 서로 사이가 좋았다는 메시지나 사진 자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관계 당시엔 강제성이 있었으나 여자 쪽에서 참고 있다가 나중에 고소를 한 것일 수도 있지. 당시 메시지나 사진은 남자의 협박과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위의 증거일 수도 있고.”
“그런 여자의 주장은 다 들어주면서 왜 그에 반대하는 남자의 주장은 들어주지 않느냐는 거죠.”
“……”
그가 계속해서 말했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정당방위 판례예요. 열 대를 맞고 한 대를 때렸다고 쌍방으로 기소가 되다니. 그럼 피해자는 계속 맞고만 있어야 한다는 건가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공격행위는 정당방위가 되기 힘들어. 특수한 상황이 되어야만 공격행위를 포함한 과잉방위가 정당방위로 인정되지.”
“그 특수한 상황이 되기 전에 맞아 죽어버리면요?”
“…?”
“아니 그 전에. 폭행을 당하고 있는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법이 허용하는 특수한 상황이 되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라는 거죠? 그게 가능하긴 한가요?”
“……”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지문들이에요.”
나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정우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법은 절대적으로 옳은 기준이 아니야. 100% 완벽한 법은 있을 수 없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득이 되는, 그 중에서도 꼭 필요한 기준들만 법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해서 사회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 그게 법의 존재 목적이야. 정우 네가 말했듯 법에도 허점이 있긴 하지만, 그 반대 측면에서 보면 법은 사회질서 유지에 엄청 큰 기여를 하고 있어. 일부 단점만 보고 규정 전체를 폄하할 수 없다는 거지.”
“그래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이해할 수 없는 거예요. 아마 제가 말한 것들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법 규정이라고 공감하고 있는 것들일 걸요?”
“……”
내가 아무리 설명한들 정우에겐 먹혀들지 않았다.
그를 보고 있자니 얼마 전 대치했던 조선족 남자들이 생각났다.
말이 통하질 않는 남자들.
“제가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정답으로 체크해서 경찰시험에 합격하는 거, 그거 정말 내키지 않아요.”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아마 나도 공채 필기시험을 준비했다면 정우와 같은 딜레마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저 경찰대에 가기 위해 정형화된 고등학교 시험만을 준비했던 것, 그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경찰대는 졸업과 동시에 시험 없이 경위에 임용되니까.
“제가 원하는 건 현장 수사라구요. 범죄자들을 잡는 거요.”
경찰이 되지도 않고 현장 수사를 하고 싶다니.
나는 대답을 않은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정우. 자꾸 떼쓰면 안 되지.”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은빈이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싫은 걸 감수할 줄 알아야지. 일단 경찰시험에 합격해야 수사도 할 수 있는 거야. 모든 걸 네 뜻대로만 흘러가게 할 수는 없어.”
“……”
“최신 판례집 받았으면 형 그만 괴롭히고 먼저 들어가. 누나는 좀 더 있다 들어갈 거야.”
그러자 정우가 곧장 나갈 채비를 했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짐을 다 챙긴 그가 가방을 둘러메고 내게 말했다.
“형, 우리 누나랑 사귄다면서요?”
“…?”
“아까 집에서 나올 때 누나가 ‘오늘 데이트해야 하니까 눈치껏 중간에 먼저 집에 가.’라고 그랬었어요.”
그 말에 은빈이 ‘야!’하며 큰소리를 쳤지만 정우는 들은 체도 않고.
“데이트 잘 하세요.”
꾸벅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
그 뒤엔 은빈이 날 멋쩍은 얼굴로 쳐다보더니.
“우리도 3분만 있다가 나가요!”
짐을 챙겨 나갈 채비를 했다.
*
잠시 후 밖으로 나오니.
“와, 눈 와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은빈은 황홀한 표정으로 내리는 눈을 보고 있다가.
슥-
내게 안기듯 팔짱을 껴왔다.
따뜻했다.
그 기분 좋은 온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얼어 있던 내 마음이 스르르 녹았다.
“정태 씨가 데이트코스를 준비했다니.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가보면 압니다.”
나는 오늘 데이트코스를 미리 다 짜놓았다.
정확히 말하면 경수가 짜주고 내가 그대로 따르는 것이지만.
“여깁니다.”
우리가 걷고 걸어서 도착한 곳은.
“엥? 극장?”
한 건물 지하에 위치한 조그만 극장이었다.
“우리 연극 보는 거예요?”
“네.”
“우와!”
경수는 내게 연극을 보라며 표 두 장을 줬다.
연극 제목은 ‘죽은 연애세포 살리기.’
나는 범죄관련 내용이 아니면 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경수는 분명 은빈이 좋아할 것이라며 강제로 표를 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나 연극 보는 거 완전 좋아하는데!”
경수의 예상대로 그녀는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어떻게 그는 은빈을 따로 만난 적도 없으면서 그녀의 취향을 잘 아는 걸까?
우리는 극장으로 들어가 예약된 자석에 앉았고, 곧 연극이 시작되었다.
“……”
전체적인 연극 총평은 ‘지루했다.’
형사사건은 물론이고 추리를 해볼 만한 그 어떤 내용도 없었다.
그저 남녀가 만나고 갈등하고 그 갈등을 극복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은빈은.
“너무 로맨틱해요.”
“히잉… 슬퍼…”
활짝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녀는 완전히 연극에 몰입해 갖가지 감정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애틋한 눈으로 ‘너무 재밌다.’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왔다.
“다음은 어디에요?”
“이쪽입니다.”
그렇게 연극이 끝난 후 우리는 다시 눈 오는 거리를 걸어.
“네컷포토?”
“사진 찍는 곳입니다.”
사진을 찍으러 왔다.
우리는 커튼을 걷고 사진을 찍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은빈은 아까보다 더 신이 나서 머리띠나 삐에로 코 같은 소품들을 마구 들고 왔다.
“이거 써 봐요.”
“……”
나는 은빈이 씌워준 하트 머리띠를 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그녀도 똑같은 머리띠를 하고 내게 폭 안기더니.
찰칵-
그대로 사진이 찍혔다.
이어서 나란히 손을 잡고.
찰칵-
다음엔 내 볼에 은빈이 뽀뽀를 하며.
찰칵-
마지막엔 그녀가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찰칵-
사진을 찍었다.
“푸하하. 정태 씨 머리띠하고 표정 뚱해있는 것 봐.”
은빈은 인쇄된 사진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
사랑에 관련된 연극을 보는 것, 머리띠를 쓰고 사진을 찍는 것.
원래라면 전혀 내키지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은빈이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다음에 또 연극을 보고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어했던 것들이 좋아지는 것.
나는 저번에 이어 다시금 그런 감정을 느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죠.”
사진관에서 나와서 우리는 미리 예약해놓은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와 여기 분위기 뭐예요? 대박.”
예약한 음식점은 고급스럽고 트렌디한 레스토랑.
이곳도 경수가 반값에 미리 예약을 해 내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눈 오는 거리가 보이는 창가자리.
자리도 이 음식점 내에서 가장 좋은 곳이다.
“오늘 너무너무 행복해요. 정태 씨, 어떻게 이런 코스를 짤 생각을 했어요?”
“……”
내가 짠 게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경수가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나는 오늘 경수가 짜놓은 코스대로 돌아다니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지만, 사실 나도 은빈만큼 기분이 좋았다.
데이트를 하며 내가 느낀 감정들만큼은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 진실이었고, 내 것이었다.
내 기분이 좋은 건지, 은빈이 좋아해서 좋은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도 오늘 무척 즐거웠다.
주섬주섬-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미리 준비한 것을 꺼내려 가방을 뒤적거렸다.
사실 오늘이 ‘그날’이 아니었으면 이런 방식으로 데이트를 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연인들 사이에서 나름 특별한 날이라고 하기에,
나도 내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은빈과의 하루를 준비해봤다.
“여기.”
“…!”
가방에서 꺼낸 것은 한 송이 빨간색 꽃.
내가 그것을 은빈에게 건네며 말했다.
“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
“……”
꽃을 주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은빈은 웃지 않고 표정을 찡그렸다.
하지만 나는 곧 알아챘다.
그것은 부정의 찡그림이 아니라.
“너무 감동이에요, 정태 씨.”
감동의 표현임을.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느리게 편곡되어 나오는 팝송.
그 음악이 은빈의 표정과 섞여들며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경수는 아직까지 크리스마스만 되면 설렌다는데.
설레는 게 이런 기분일까.
은빈은 서서히 표정을 풀더니.
“다른 선물은 없어요?”
장난스레 내게 물었다.
“꽃 외에 선물은 없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지 은빈 씨를 축하하는 날이 아니니까요.”
“아뇨 뭐 대단한 선물을 바라는 게 아니라 손 편지라든지, 그런 거요.”
“……”
그 말을 듣고 나는 좀 놀랐다.
경수가 저것마저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편지를 써주면 은빈이 정말로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손 편지도 없습니다. 할 말이 있으면 구두로 하겠습니다. 떨어져있을 때는 전화나 문자로 하면 되고요.”
나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휴대폰이 있는 시대에 편지가 웬 말인가.
내 덤덤한 대답에.
“훗, 농담이에요.”
은빈은 씨익 웃더니.
“다른 선물 필요 없어요. 오늘 데이트랑 이 꽃. 이것만으로도 저 충분히 행복해요.”
“……”
“고마워요, 정태 씨.”
다시금 아련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녀가 고마워하는 것이 고마웠다.
동시에 그녀로 하여금 고마움을 느끼게 만든 나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뿌듯함’일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내게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을 선물해줬다.
“고마워해줘서, 또 이런 감정 느끼게 해줘서 저도 고맙습니다.”
나도 은빈과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눈을 맞춘 뒤.
“정태 씨.”
은빈이 내게 물었다.
“연말에 근무가 뭐에요?”
“비번입니다.”
“오, 그럼 우리 여행 갈래요?”
“여행이요?”
“같이 새해맞이를 하는 거예요.”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좋습니다.”
제안을 승낙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 사이.
“식사 나왔습니다.”
주문한 스테이크와 와인이 나왔고.
우리는 올해 가장 맛있는 식사를 시작했다.
#
다음 날.
지하철에서 내려 지방청 건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위이이잉-
문자가 한 통 왔다.
모르는 번호.
내용을 확인해보니.
[지난 번 창진서 수사브리핑 때 질의했던 윤정수 기자입니다. 박지석 사건 수사하고 계시죠? 관련해서 얘기를 좀 나누고 싶은데, 시간되실 때 연락 한 번 부탁드립니다.]
윤정수 기자.
버팔로 게이트를 가장 먼저 취재했던 기자다.
하지만 그 뒤엔 추가 취재내용 없이 잠잠해서, 브리핑 때 내가 역으로 그에 대해 질문을 했었는데.
정수가 왜 내게 연락이 왔을까.
“어, 정태야!”
문자를 보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출근하고 있던 치헌이 날 불렀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크리스마스 잘 보냈냐?”
“네. 잘 보냈습니다.”
“데이트 잘 했고?”
“네.”
“짜식, 남자 다 됐구나.”
“팀장님은 잘 보내셨습니까.”
“나야 뭐 집에서 애랑 트리 만들고 그랬지. 귀엽게 산타 분장도 하고.”
“귀엽게? 산타 분장이요?”
“상상하지 마. 해로워.”
우리는 입김을 훅훅 내뿜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조선족 수사 이거 생각보다 길게 가지?”
“그렇네요.”
“완전 소탕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는 조선족 일당을 검거한 날부터 계속 여죄 수사를 하고 있었다.
수사를 하다보면 새로운 범죄자들을 검거하게 되었고, 그자의 여죄를 수사하다보면 또 다시 새로운 범죄자가 나왔다.
“이래가지곤 끝이 안 나. 아마 오늘 광수대장이 특단의 대책을 내릴 거야.”
자라났을 때 쳐내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