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86
86화. 다른 사람 말고.
“뭐… 뭐야? 강은영씨!?”
캐리어에서 은영이 나오자 치헌은 물론 주변에 있던 모든 직원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나는 은영을 부축한 채 치헌에게 외쳤다.
“119부터 불러주십시오! 그리고 이 쓰레기통 너머에 차가 한 대 더 있을 거예요. 그 차도 확인을 해야 합니다.”
분명 정우는 ‘그들의 차’가 있다고 했다.
“차? 무슨 차인데? 거기 뭐가 있는데?”
“뭐가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차종이 무엇인지도 잘…”
말하면서 생각이 환기되었다.
차?
조선족 피의자들, 그리고 납치.
거기에 차라면…
“… 승합차! 바로 앞에 아마 승합차가 있을 거예요! 그 차를 확인해야 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야압!!”
드르르르득득득-
치헌이 있는 힘껏 대형 쓰레기통을 밀어.
쿠구궁-!
반대로 넘겨버렸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을 타넘어 차도로 나갔다.
“!?”
정태 말대로 골목 바로 앞 갓길엔 승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순간 무언가를 직감한 치헌은 곧장 승합차 뒤쪽으로 다가가.
벌컥-!
트렁크를 열었다.
그러자.
“노… 노 노!!”
구석에 앉아 있던 50대 남자가 깜짝 놀라 외쳤다.
“즈… 즈 야오 류 워 탸오 밍쥬씽! 쏘… 쏘리! 쏘리!”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무릎을 꿇고 싹싹 비는 그.
그가 앉아 있는 이 차는.
“이런 개 씨발놈들. 여기 수술실을 차려놨구나.”
말로만 듣던 데쓰 벤. 장기적출용 이동식 수술실이었다.
#
데쓰 벤에 타고 있던 그는 중국인 의사였다.
그는 올해 6월 여행 차 한국을 방문했다가 조선족 범죄자들에게 납치를 당했으며, 총 일곱 번의 장기이식 수술을 했다고 했다.
당시 그의 발에는 차 내부와 연결된 쇠고랑이 채워져 있었는데, 아마 조선족 범죄자들에 의해 폭행과 협박을 당하며 어쩔 수 없이 수술을 감행한 듯했다.
차에선 박지석의 혈흔이 발견되었다.
중국인 의사는 박지석의 장기를 자신이 적출한 것이 맞다고 시인했고, 그가 묘사하는 수술 내용과 사체감정 결과가 일치했다.
결국 박지석을 살해하고 장기 적출한 진범들을 잡아낸 것이다.
그는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수술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현장에서 검거한 세 명의 조직원은 기존에 배림동에서 검거했던 이들과 같은 패거리가 맞았다.
그들 또한 박지석 사건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함구했다.
이전 피의자들과 같이 이들도 선불폰을 사용했으며, 폰에서는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아마 범죄관련 내용이 오가는 즉시 기존 폰을 파기하고 새로운 휴대폰을 사용하는 듯했다.
강은영은 최후 목격자가 맞았다.
그녀는 박지석 살해 직전 자신의 집에서 그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약에 취한 상태라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는데,
박지석이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갔다고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은영은 마약범죄 피의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납치·감금 피해자였기에,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후 나중에 다시 조사를 받기로 했다.
광수대장은 정말 큰일을 잘 해내줬다며 우리와 마수대 직원들을 격려했다.
조선족 피의자들을 무더기로 검거했고 박지석 살해범도 잡았으며 마약거래처까지 털어냈으니 일단 이번 사건은 정리해서 기소의견송치하고, 다른 여죄들은 별건으로 인지해 다음에 수사하자고 했다.
우리 팀과 마수대에서는 여태 검거한 피의자들과 인지한 사건들을 정리하며 연일 서류를 쳐댔다.
#
3일 뒤, 휴무 날.
나는 볼일을 보러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철커덩-
철커덩-
지하 터널을 지날 때 암흑이 되는 창.
나는 멍하니 창을 바라보며 그 까만 공간에 내 생각을 채워 넣었다.
내가 맡은 수사는 잘 진행되고 있었다.
범인들은 생각보다 빨리 잡혔고 몇몇 조직은 와해되었으며 마약 같은 추가 중대 범죄까지 들춰냈다.
역시 창진서 출신 형사들. 역시 탁정태.
조직 내 상급자들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를 칭찬했다.
[이번 역은 ···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마음이 찜찜했다.
물론 수사에서 범인을 잡는 것은 중요하다.
공소의 제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범인을 발견·확보하고 증거를 수집·보전하는 것.
그것이 ‘수사기관’으로서의 경찰 임무니까.
치이이이익-
저벅- 저벅- 저벅-
하지만 만약 범인을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피해자의 생명과 신체 안전일 것이다.
내가 광수대에 온 이후 직접 본 사체만 2구. 살해당할 뻔한 피해자 1명.
일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에 총 3명의 사람이 죽거나 죽을 뻔했다.
실로 끔찍한 일이다.
더 끔찍한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내가 모르는 큰손들의 움직임이 더 거칠어지고, 또 다시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이라는 거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아무리 형사처벌이 사후적 성격을 띤다지만.
지금은 더 현명한 수사가 필요하다.
피해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수사가 필요하다.
사람이 계속 죽어버리면 수사의 궁극적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충성! 안녕하십니까.”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현명한 수사, 예방을 위한 수사를 하려면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는지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끼익-
나는 지방청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띵-
볼일이 있는 층에 내렸다.
그리고는 계속 걸어가.
“……”
마침내 그 방 앞에 섰다.
똑똑똑-
나는 문을 두드린 후.
끼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안녕하십니까…”
당황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부속실 직원.
“이 시간엔 보고 들어오신다는 말씀이 없으셨는데, 무슨 일이신지…”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벌컥-
“앗! 그렇게 함부로 들어가시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문이 닫히고.
“……”
나는 가만히 서서 잠시 사무실을 둘러봤다.
우측 전면이 트인 넓은 창. 고풍스러운 가구들.
안쪽엔 별도의 침실과 샤워실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반들반들 거리는 나무 바닥이 끝없이 이어졌다.
아마 타 부서 사무실을 두 개 이어붙인 것 보다 이 방이 더 클 것이다.
외관만으로 어마어마한 위엄을 풍기는 곳.
이곳은 바로.
“안녕하십니까, 청장님.”
지방청장실이다.
서울지방경찰청장실이 아니라.
“… 이렇게 불쑥 찾아오시다니.”
경기북부지방청장실.
저 끝 책상에 앉은 관우가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왔다.
조금 놀란 듯한 표정.
그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물어보고 싶은 거요? 그런 건 정경감에게 전화로 물었어도 됐을 텐데요.”
“아뇨. 전화가 아니라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정환태 경감님이 아니라 유관우 청장님에게요.”
“……”
그가 의아하다는 듯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물어볼 게… 뭡니까?”
“유관우 청장님 세력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 네?”
내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경찰청장님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그 세력의 정체는 대체 뭡니까?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는 지금, 그들은 뭘 하고 있습니까?”
*
잠시 후 우리는 소파에 앉았고 부속실 직원이 차를 내어왔다.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지신 겁니까.”
그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제가 도움을 주고 있는, 동시에 제가 도움을 받고 있는 이 세력의 실체를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청장님이 저를 청장님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으니, 청장님 세력이 곧 제 세력입니다. 제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더 현명한 수사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매일매일 눈앞에 새로운 범죄가 나타납니다. 그것들의 정체는 죄다 모호하고, 불분명합니다. 이런 모호함은 범죄수사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저를 지원해주고 있는 우리 조직에서까지 이런 느낌을 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
“알려주세요. 이철성 계장과 공수훈 차장 세력에 대항하는 저희 세력이 뭔지.”
그는 잠시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 맞는 말씀이군요.”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탁주임님을 제 사람으로 들여놓고 우리 배후에 대해선 비밀로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
“질문하신 것,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가 깍지를 끼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말을 이었다.
“중대범죄수사과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네. 본청 산하 별도로 편제된 수사부서요.”
중대범죄수사과.
이름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대한 범죄를 수사하는 곳이다.
광수대의 광수대로 불리는 곳이며 선택받은 형사들만 갈 수 있다는 곳.
“맞습니다. 이곳이 누구의 지시를 받는지 아십니까?”
“경찰청장이나 본청 수사부장의 지시를 받겠죠.”
“아닙니다.”
“…?”
“B.H로부터 직접 하명을 받습니다.”
“B.H요?”
“Blue House. 청와대 말입니다.”
“…!”
놀라웠다.
경찰조직 내에 청와대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부서가 있다니.
“청와대에서 지시한 사건을 수사하고, 그 내용을 직접 청와대로 보고하죠. 때문에 중대범죄수사과는 저희 조직 내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갖습니다. 수사부장은 물론 경찰청장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특이한 지위를요.”
“……”
“저는 경정 때까지 중대범죄수사과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여전히 그 부서의 지원을 받고 있죠.”
“그렇다면 청장님 세력의 정체가…”
“맞습니다. 저희를 지원해주는 세력은 본청 중대범죄수사과입니다.”
환태가 경찰청장보다 더 위의 존재라기에 검찰이나 법원을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우리 조직 내의 부서였다니.
본청 감찰과 본청 중대범죄수사과.
이 두 부서가 기준이 되어 서로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건가.
그 사이에 버팔로 사건이 있는 것이고.
“그럼 그 세력은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겁니까?”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탁경위님이 수사하신 사건들을 ‘제대로 된’ 검사에게 배정되도록 힘을 쓰고 있죠.”
“제대로 된 검사요?”
“이정재 검사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이정재.
과거 치헌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그는 ‘경찰에 유관우가 있다면 검찰엔 이정재가 있어.’라며 정재의 청렴성을 칭찬했었다.
“이번 사건은 분명 버팔로 클럽, 그리고 그 배후들과 연계가 되어 있는 건입니다. 때문에 그들은 어떻게든 이번 사건을 축소시키고 무마시키려 들 것입니다. 경찰에서 수사를 아무리 잘 한다고 하더라도 검찰단계에 손을 써버리면 일을 망쳐버릴 수밖에 없죠. 저희는 그걸 방지하고자 탁경위님 사건을 이정재 검사에게 배정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고요.”
“……”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탁경위님이 하실 수 없는, 하지만 꼭 필요한 일들을요.”
정확한 표현이었다.
내가 할 수 없지만 필요한 일들.
“그렇다면.”
하지만 아직 궁금증은 다 풀리지 않았다.
“중대범죄수사과에서 왜 버팔로 건과 박지석 사건을 직접 맡지 않는 건가요?”
“‘중대’하지 않으니까요.”
“…?”
“아직까지 버팔로 사건은 연예인들의 성매매·마약 놀이, 박지석 사건은 조선족 범죄자들의 연예인 살인 및 장기매매사건 정도에 불과합니다. 하찮은 사건이란 게 아니라 광수대 선에서 처리가 가능한 사건이란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이 두 사건의 배후에 대해 밝혀진 바는 아직 없다.
“중대하지 않은 사건에 온힘을 퍼붓다간 일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큰 세력들 간의 다툼은 물고 뜯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어설프게 선제공격을 했다간 서로 피만 보다 끝나는 싸움이 되거든요. 승자가 없는 싸움이요.”
“……”
“확실히 이기려면 충분히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준비 과정이고요. 또 아주 잘 준비되고 있습니다.”
명확하지만 동시에 모호한 말들.
“그럼.”
나는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중대범죄수사과에서는 왜 그 준비를 유관우 청장님에게 맡긴 겁니까? 본청 직원도 아닌 타청 직원, 그 중에서도 한 지방청의 청장에게 말입니다.”
“……”
“그리고 청장님은 왜 굳이 저를 이 세력에 끌어들이신 겁니까? 저 말고도 목표가 같은 사람은 많을 텐데요.”
내 질문에 관우는 잠시 말을 않고 가만히 있다가.
“탁경위님의 모든 질문에 세세히 다 답변을 드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다시 천천히 입을 뗐다.
“중대범죄수사과에서 저에게 이 일을 맡긴 건, 제가 버팔로로 시작되는 이번 사건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
“언젠가 제가 직접 수사에 뛰어들어야 할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반드시 탁경위님이 저와 함께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
“다른 사람 말고, 탁경위 님이요.”
이대로 마무리되어선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