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88
88화.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티비 속 내 모습을 보며 정수와 만났던 그 날을 회상했다.
*
며칠 전.
“감사합니다. 전화 주셔서.”
나는 정수와 연락해 그의 차에서 만났다.
“전화 달라면서요?”
“… 네. 그래서 감사하다고…”
“박지석 사건 관련 의논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뭡니까?”
“그전에.”
내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물었다.
“갑자기 저한테 왜 연락하신 겁니까?”
“예?”
“버팔로 최초 취재 이후에도, 수사브리핑 이후에도 계속 잠잠하다가 갑자기 왜 이제야 저에게 연락을 하신 겁니까?”
“아… 그게…”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땐 제가 하고 싶은 취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상부에서 취재를 허락해주지 않았거든요.”
“……”
“버팔로, 쿠잔 클럽 모두 정말 취재하고 싶었습니다. 탁경위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성매매와 마약 관련 범죄 전문 취재 기자니까요. 그 전에는 별다른 제재가 없었는데 버팔로를 기점으로 성매매·마약 관련 사건들은 취재 허가를 잘 내주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많은 기자들이 사건 관련 의혹을 알고도 대외로 알릴 수 없어 답답해했습니다. 가장 답답했던 건 저고요.”
언론 기관에도 압력이 작용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계속 성매매·마약 사건들을 취재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박지석 사건은 허가를 내줄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살해’된 사건이니까요. 그런데 웬걸, 이번 사건도 상부에서 콕 집은 몇몇 기자가 겉핥기식 기사만 내도록 하고 자세한 취재는 제한하는 겁니다. 그때 저는 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기자가 사건을 외면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회사를 옮겼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YBC라고 적힌 사원증을 보여줬다.
수사브리핑 때까지만 해도 그는 ZBC소속이었다.
“지금 회사는 전 회사와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성향의 회사입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주된 세력의 반대 성향 회사들은 규모가 작고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죠. 힘이 떨어진다는 말이에요.”
기사에서 YBC이름을 본 것이 기억났다.
버팔로와 쿠잔 등 내가 맡았던 사건들을 그나마 대대적으로 보도하려 노력했던 곳이 바로 YBC였다.
하지만 정수의 말대로 규모가 작아 그런지 큰 이슈몰이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취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적어도 ‘기자’로서 당당하게 출근하고 일할 수 있으니까요.”
기자로서의 행복.
그도 자기 나름의 가치관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회사에 와서 제가 가장 먼저 취재하고 싶었던 사건이 전부 탁정태 경위님이 맡고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연락드리게 된 거예요.”
“잘 됐군요.”
그의 말을 다 들은 나는.
“우리, 얘기가 잘 통할 것 같은데요?”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낸 뒤 내 얘기를 시작했다.
*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박지석 살해 사건은 조선족 범죄조직원들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장기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자들로, 박지석 사건 외에도 사람을 납치 후 불법으로 장기를 적출하여 매매해 이익을 챙겼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범죄조직을 와해하고 조직원들을 검거하긴 했지만 아직 전국 곳곳에 같은 범죄를 하는 조직원들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난번 치헌이 장기매매 범죄에 관해 설명할 때.
대부분 내용은 다 이해가 되었다.
돈 되는 범죄엔 오만 사람들이 다 달려들고, 그들끼리 연계가 잘 되어 있다고.
그래서 수사가 엄청 힘들다고.
[“이들은 이익을 위해 사람을 납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실종’된 사람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이도 많지 않고 치매 등의 질병도 없는 사람이 실종이 되어 몇 달이 넘게 돌아오지 않는, 이런 일들을 단순 실종으로 처리해선 안 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장기매매 범죄를 뿌리를 뽑는 게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어버리는 것.
왜 더 노력해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시도해보지 않고 뿌리 뽑을 수 없다고 단정지어버리는 걸까.
[“여기 사진들을 잘 봐주십시오. 일단 제가 서울청 관내 실종사건들을 수합해 납치로 의심해볼 만한 실종인들을 추려낸 사진입니다. 각 사진 밑에 사건 날짜와 관할 경찰서가 있으니 서울청 경찰관 분들과 시민 여러분들은 사진을 잘 보시고 수사 및 각종 제보에 힘을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치헌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가 과거부터 조선족 사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대로 단정 짓고 마무리 지어져선 안 된다.
그냥 사건을 송치하고 만다면 이건 일선 경찰서 형사들이 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광역수사대 형사라면 조금 더 발전된 수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이에 더해 전국에 계신 경찰관 여러분들도 해결되지 않은 실종사건들을 다시 한 번씩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관내 범죄조직 현황을 확인해 장기밀매 관련 혐의를 파악하고 그 연결고리들을 모두 잘라 없애야 합니다.”]
조선족 범죄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이런 범죄가 여전히 존재함을 뻔히 알면서도 뿌리 뽑을 수 없다며 수사를 그만두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1년 수사해서 안 되면 2년을, 10명이서 수사해서 안 되면 100명을 동원해서라도 수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를 넘어 경찰 조직의 힘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언론과 국민의 지원을 받아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 여러분과 우리 경찰이 힘을 합치면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치안 정도에 다다를 수 있을 겁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하는 수사에 불필요한 희생이 생겨난다면 반드시 그걸 최소화해야 한다고.
더더군다나 그 희생이 생명의 박탈이라면,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희생을 막아야 한다고.
설령 그것이.
“… 정태 너 이거 위에 보고된 거냐?”
“아뇨. 보고 안 했습니다. 사건을 정리하고 있는 시기라 대장님이나 청장님이 허락을 안 해주실 것 같아서요. 하지만 어차피 저는 허락을 해주시나 안 해주시나 인터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따로 보고 없이 했습니다.”
“……”
조직에 반대되는 생각이라 하더라도 나는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후에 잠시 윤정수 기자의 정리멘트가 이어진 후.
[“YBC 윤정수기자였습니다.”]
인터뷰는 끝이 났다.
#
이틀 뒤.
= “아마 팀장님도 완전 깨졌을 거야.”
운전하는 동안 스피커폰으로 경수와 통화를 했다.
= “타기관, 특히 언론 보도 할 때는 엄청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오죽하면 언론예상보도라는 서류 양식이 따로 있겠냐.”
경수의 말에 따르면 내가 인터뷰를 한 후 소위 말하는 ‘내리갈굼’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왜 보고도 없이 함부로 인터뷰를 하냐며 청장은 광수대장을 털고, 광수대장은 다시 팀장을 터는 내리갈굼.
하지만 치헌이 나를 갈구지는 않았다.
그는 그전과 똑같이 날 대해줬다.
나는 어제 우연치 않게 치헌과 경수가 화장실에서 하는 얘기를 엿들었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뭘. 정태 쟤는 다음에 또 이런 일 일어나면 또 저럴 거야. 내가 뭐라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라는 거지. 그리고 뭐 상부에서 징계 주고 이런 것도 아니잖아. 정태가 한 말이 다 옳은 소리라서 그런 거야. 간부들이 곤란해지긴 했지만 정태가 딱히 잘못한 건 아니란 거지.
또 어떻게 보면 정태가 내가 못한 일을 이뤄주고 있는 걸 수도 있어. 조선족 범죄를 더 깊게 파는 거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정태한테 오히려 고마워해야하는 일인지도 모르지. 그러니 위에서 까도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야. 정태는 내 팀원이고 나는 정태 팀장이니까. 원래 이런 쿠사리 감당하는 게 팀장 하는 몫이거든.’
치헌은 그렇게 생각했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했다.
= “아무튼 인터뷰 때문에 한동안은 우리 사무실 엄청 시끄러울 거야. 혹시 다른 기관에서 전화오거나 하면 이번엔 꼭 팀장님하고 상의해서 대응해.”
= “알겠습니다.”
= “그래. 휴무 날 이런 걸로 전화해서 미안하네.”
= “괜찮습니다.”
= “아 참. 그런데 너 오늘 어디 간댔지?”
*
잠시 후.
끼익-
“정태 씨!”
“오늘은 미리 나와 있었군요.”
은빈의 집 앞에 도착했다.
큼지막한 야상 점퍼에 긴 목도리를 칭칭 감은 그녀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쏘옥 안겼다.
“잘 있었어요?”
“네.”
어느새 우리는 이렇게 안는 것이 인사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짐을 차에 실어준 뒤.
“……”
옆에 있는 정우를 잠시 돌아봤다가 말했다.
“정우랑 잠시 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응, 알겠어요. 그럼 나 네비에 주소 찍고 있을게요.”
그녀가 정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조수석에 탄 뒤.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때 골목에 쓰레기 통. 너지?”
“……”
“기울어진 경사에서 고정된 바퀴를 풀었다가 피의자들을 막고 나선 다시 잠갔어. 그거 너지?”
내 질문에 가만히 눈을 몇 번 깜빡거리던 그는.
“네.”
덤덤히 대답했다.
“옆 건물 옥상에서 아래 전체 구도를 보고 클럽 뒷길 도주로를 파악한 거고.”
“맞아요.”
“차는 어떻게 알아챈 거야?”
“그 차만 차 앞에 연락처가 없더라고요. 번호판도 흙으로 일부러 덮어 식별이 잘 안 되게 했고요. 무엇보다 본넷이 따뜻했어요. 시동을 끈 지 얼마 안 된 차량이었죠.”
클럽에서 나가면서 차까지 확인한 거였나.
“어떻게 피의자들이 그리로 도주할 거란 생각을 한 거야?”
“범죄 장소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면 보여요. 도주하는 모습이 시각화되죠.”
“……”
“그 후에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시각화 한 도주가 현실이 돼요.”
“그들의 입장에서?”
“내가 범인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보는 거요. 상상으로 범인이 되어보는 거예요.”
범인이 되어본다라.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앞뒤를 다 봐야 해요. 사건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전후 맥락을 살피는 거죠.”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이야기로 생각하고 맥락을 살피라니.
정우는 범죄 다큐멘터리와 판례를 보면서 자기만의 수사기법을 만들어낸 듯했다.
“… 위험했어. 나는 분명 집에 가라고 했어.”
“절 걱정하는 거예요?”
“……”
내가 내게 묻고 싶었다.
내가 지금 정우를 걱정하고 있는 건가?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집으로 가려면 그 골목을 지나야 했죠.”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어.”
“형이랑 저랑 목표는 같았어요. 저도 현장 수사를 해서 범인을 잡고 싶었다고요. 하지만 범인을 잡는 방식까지 형의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어요. 저는 제 방식대로 형을 도와준 거예요.”
반박할 수 없었다.
며칠 전 내가 관우에게 했던 말과 너무나 똑같아서.
“아무튼…”
나는 잠시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수고했어. 네 덕분에 범인들 잡을 수 있었어.”
“정말요?”
그제야 그가 활짝 웃었다.
“경찰이 되면 네가 원하는 수사를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거야. 시험공부 열심히 해.”
“노력해볼게요.”
“나 갈게.”
“네.”
그렇게 정우와 인사한 뒤 차에 타니.
“정태 씨! 얼른 출발해요!”
은빈이 벌써 한껏 들떠서 재촉을 해댔다.
네비게이션에 찍힌 곳은 ‘경포대’
“벨트 매세요. 출발하겠습니다.”
12월 31일.
그렇게 우리는 1박 2일 강릉 여행을 떠났다.
단 하루의 시간이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