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9
9화. 한 잔 해야지.
하염없이 우는 그들을 경수가 겨우 달래 파출소로 데리고 왔다.
사무실에 와서도 그들의 눈물은 계속 되었다.
장신구를 팔아 피해액을 모두 변상하겠다고, 손자 학교에 우리가 범죄자라는 사실이 소문나면 큰일 난다고, 한 번만 봐달라며 사정했다.
김덕규 팀장이 그들에게 말했다.
“이미 단순 소음으로 신고했던 신고자들이 배관 피해를 당한 걸 알아버린 데다, 무전으로 절도범을 검거했다고 상황실에 보고도 다 된 상황이라 돌이킬 수가 없어요.”
“서류에 어르신들 사정 잘 써드릴 테니 서에 가서 조사 성실히 받으세요. 이미 사건입력도 다 해버려서 빠꾸할 수가 없습니다.”
형사계에선 그들을 경찰서로 바로 인계해 달라 요청했고, 덕규가 그들을 한참 달랜 뒤에야 신병을 서로 인계할 수 있었다.
서에 갔다 돌아오니 덕규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노인네들. 아빠 없는 손자 한 번 잘 키워보겠다고…”
불쌍하다는 듯한 목소리.
덕규는 그들의 사정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하지만 이내 목소리를 밝게 하더니 나를 보고 말했다.
“어쨌든 절도범은 절도범이잖아? 우리 탁경위가 한 건 했구만!”
“……”
“아니지, 한 건이 아니지. 장물범까지 있으니 재산범죄 2건을 검거한 셈이야!”
덕규가 아이처럼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깨를 탕탕쳤다.
“고생했어 탁경위. 오늘 거하게 회식이나 한 번 하자고! 내가 살 테니까.”
“……”
덕규가 무려 회식을 제안했지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호흡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하다 싶었는지 그가 내 안색을 살피며 다가왔다.
“불쌍한 노인들을 잡아서 마음이 안 좋은 모양이구만. 처음엔 다 그래.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덕규는 다시금 내 어깨를 두드린 뒤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뒤엔 경수가 내 옆에 붙어 앉았다.
“회식한대요, 회식!”
“……”
그가 숙원을 이뤄냈다는 듯 소리쳐도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도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에휴, 다 이해해요. 근무 초반엔 울고불고 하는 범인들 보면 마음이 쓰인다니까.”
어깨가 떨리고 몸이 저릿저릿했다.
진정하려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리는 범죄자 잡는 경찰인데. 사정이 있다하더라도 죄가 있으면 죄를 물어야죠.”
나는 겨우 호흡을 찾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신기했다.
이정도로 강렬한 느낌이었다니.
“너무 그렇게 슬퍼할 필요 없어요. 근무하다보면 이보다 더한…”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네?”
“주체가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시험 정답을 쓰거나 토론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이 날뛰는 흥분이…”
실전에서 추리를 통해 범인을 잡는 건.
“주체가 안 되어서요.”
눈이 돌아 가버릴 듯한 쾌락이었다.
#
그날 저녁, 관내 한 삼겹살 집.
퇴근 후 팀원 7명 전원이 회식자리에 모였다.
“경수야. 일단 소맥 한 잔씩 말아봐.”
“옙!”
팀장이 지시하자 경수가 팔꿈치로 소주 밑면을 탁탁 치고는 세차게 흔들어 잔에 조금씩 따랐다.
이어서 뽕- 소리를 내며 숟가락으로 맥주 병뚜껑을 딴 뒤, 입구를 손가락으로 막고 마구 흔들더니.
치이이익-
치이이익-
세차장 물 분사기처럼 맥주를 잔에 뿜어냈다.
맥주는 거품을 내며 차올랐고 자연스레 소주와 섞여들었다.
나에게 그 장면은 하나의 예술이었다.
팀 사람들도 ‘이야-’하며 박수를 쳐댔다.
“여기 있습니다.”
경수는 팀장부터 쭉 잔을 돌린 뒤.
“탁경위님도 여기.”
나에게도 잔을 권했다.
“저는 술 안마십니다.”
“예? 왜요?”
“마시고 싶지 않아서요.”
“헉.”
내 말에 경수가 입을 탁 벌리더니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여기 지금 탁경위님 첫 발령 때문에 다들 모인 건데, 한 잔만 딱 해요.”
“싫습니다.”
“아이, 첫 회식에 첫 잔 원샷은 전국 공통 규칙이에요. 그걸 안 해버리면 분위기 다 깨져버린다니깐.”
“……”
“날 봐서라도 딱 한 잔만 해요.”
검지를 치켜세우며 간곡히 부탁하는 경수.
그를 보니 이틀 전 ‘고경사님 생각이 틀렸습니다.’라고 말한 게 생각났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걸려 마지못해 잔을 들었다.
“자 탁경위 오고 첫 회식인데, 다들 환영하는 의미에서 건배!”
“건배!”
팀원들은 호기롭게 잔을 부딪치더니 그대로 잔을 입에 대고 꺾어 올렸다.
그리고는 하나같이 ‘크- 죽인다.’를 연발했다.
나도 조심스럽게 잔에 입을 갖다 댔다.
‘음.’
나는 지금 살면서 처음으로 술을 마셔보는 것이다.
조금씩 삼킬 때마다 씁쓸하고 시원한 것이 목으로 넘어왔다.
눈을 딱 감고 술을 쭉 들이켰다.
빈 잔을 탁 내려놓을 때 드는 생각은.
‘… 괜찮은데?’
동시에 ‘와-’하는 환호가 나왔다.
팀원들 모두 나를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야, 우리 탁경위 술도 잘 마시는구만!”
“아닙니다. 술은 오늘 처음…”
“일도 잘 하고, 술도 잘 마시는 이런 복덩이가 들어올 줄 누가 알았냔 말이야.”
덕규가 호탕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동안 조용히 지냈던 팀원들도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요. 아 솔직히 우리 팀에 빠릿빠릿한 막내 순경이 하나 들어오길 바랐는데 경찰대생이 들어와서 얼마나 부담스럽던지.”
첫날 한철처럼 나에게 시기의 눈길을 보냈던 부팀장 김종민 경위.
그는 어느새 굳은 표정을 풀고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때 팀장님 생안과장하고 한바탕 했잖아요. 안 그래도 경위 많은 팀에 경찰대생 주고 엿먹이는 거냐고. 하하.”
매일 구석에서 휴대폰으로 바둑만 두던 이국진 경위.
나는 그의 목소리가 그렇게 얇은 줄 이제 알았다.
“제가 청에도 있어보고 서에도 있어봤지만 솔직히 탁경위처럼 스마트한 사람은 처음 봅니다. 경찰대생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뭔가 다른 경찰인 것 같습니다.”
경수보다 한 살 많은 임철수 경위.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입을 쭉 늘어뜨리며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아무튼 좋은 사람 들어와서 다행이네요. 우리 팀장님 인복은 진짜 좋아요.”
나이 많은 경사인 박수호가 마무리하며 빈잔을 경수에게 밀었다.
그러자 덕규도 자기 잔을 쭉 밀었다.
“인복 조오치! 자, 고경수. 이제 막내 탈출한 기념으로 한 잔 더 말아봐.”
“제가 계급이 낮은데 무슨 막내 탈출입니까?”
“어허, 오늘 술 마시고 나면 다 형 동생할 건데 계급은 무슨. 빨리 말아봐.”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절 한 번 올리겠습니다.”
“절 씩이나? 또 그거 할 셈이야?”
“한 번 해야죠. 오랜만에.”
경수는 빈 맥주잔을 끌어 모으더니 일렬로 쭉 세워 맥주를 따랐다.
이어서 맥주잔 사이사이에 소주잔을 올려 소주를 따랐다.
그리고는.
“그동안 철부지 막내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파악-!
그대로 이마를 상에 들이받았다.
상이 흔들리며 소주잔이 맥주잔으로 퐁당하고 빠졌다.
기가 막히게 1잔에 1개씩.
아까보다 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마가 벌개진 경수가 잔을 쭉 돌린 뒤 나에게도 건넸다.
“한 잔 더 하시죠.”
“아, 저는 이제 그만…”
“에헤이. 벌써 끝내면 어떡합니까. 분위기가 이렇게 달아올랐는데.”
이상하게도 아까보다 몸의 저항이 적어졌다.
분위기에 휩쓸리며 한두 모금 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우리 매천파출소 3팀을 위하여!”
“위하여!”
그렇게 나는 술을 한 잔 더 들이켰다.
“크- 아, 근데 우리 탁경위가 다 좋은데.”
이번엔 목소리가 걸걸해진 경수가 입을 열었다.
“저한테 말 놓으라는 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에, 정말?”
“나이가 열댓 살 차이 나는데, 이거 완전 계급으로 꼽 주는 거 아닙니까?”
“꼽 주는 거 맞지, 맞지.”
“갑질 아니냐고요 갑질.”
“갑질 맞지, 맞지.”
경수가 물을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팀원들이 합창을 해댔다.
한 팀 내에선 보통 계급보단 나이로 우대를 해준다고 덕규가 설명을 보탰다.
나는 왜 경수 본인이 말 놓는 걸 내가 결정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경수가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탁경위. 나 이제 탁경위한테 말 놔도 돼요?”
“물론입니다.”
“정말?”
“네.”
“그럼 한 잔 해야지.”
경수가 술을 한 잔 더 따라주었고 나는 또 잔을 비웠다.
“오케이. 이제 나 너 정태라고 부른다? 너도 나 형님이라 불러도 돼. 형님이 부담스러우면 부장님이라고 부르고.”
“부장님… 이요?”
시야가 조금씩 일그러지며 말이 느려졌다.
이게 술 취하는 느낌인가?
“그래. 우리 조직 내에선 경사를 부장이라 부르거든. 옛날에 순사부장에서 유래한 건데 어쨌든 그래. 여기 경위 선배님들은 주임님이라 부르면 되고.”
“경사는 부장님… 경위는 주임님…”
“그렇지. 아 말 놓으니 이제 좀 편하네. 역시 술을 한 잔 해야 한다니깐. 근데 정태 너 형제관계는 어떻게 돼?”
정신도 조금씩 흐려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들리는 말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형제는 없습니다.”
“아 그래? 그럼 너 엄청 귀하게 자랐겠다.”
“그렇진 않습니다.”
“엥? 부모님이 너 엄청 예뻐하셨을 거 같은데. 공부도 열심히 해서 경찰대도 가고, 얼마나 효자야.”
“부모님도 안 계시거든요.”
내말에 일순 정적이 흘렀다.
“어릴 때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부모님 얼굴도 몰라요.”
“……”
또 저 표정.
학창시절 선생님들도, 경찰대 장규석 교수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 그렇구나. 너 엄청 바르게 잘 컸다 야… 이렇게 멋진 경찰이 된 게 신기하기도 하고…”
경수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그렇다면 탁경위.”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던 덕규가 입을 열었다.
“경찰이 된 자네의 최종 목표는 뭔가?”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