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상상했던 그 어떤 순간보다 아름다운 현실.
생각하고 움직인 게 아니었다.
내 손과 입술은 생각보다 먼저 움직였다.
“…!”
내 돌발행동에 깜짝 놀란 은빈은 순간 눈을 크게 뜨더니.
“……”
다시 스르르 감았다.
그리고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은빈의 입술이 내 입술을 감쌌다가, 다시 내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감쌌다.
우리는 더 이상 영화 속 주인공들이 아니었다.
나는 나였고, 은빈은 은빈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분위기 속에서 가장 본능적인 모습으로 뒤엉켰다.
입술에 이어 혀와 혀가 만나는 순간.
나는 혀를 핥는 느낌이 그렇게 부드러울 줄 처음 알았다.
우리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지만, 그럴수록 촉감은 더 부드러워졌다.
내 서투름은 금세 자연스러워졌고, 내 본능은 그녀를 리드하기도 했다.
은빈이 먼저 내 가운 매듭을 풀었고.
나도 그녀의 가운을 벗겼다.
뽀얗고 아름다운 어깨선이 드러났다.
나는 잠시 춤추던 혀를 멈추고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몸을 바라봤다.
목선과 쇄골 어깨.
다시 어깨 쇄골 목선.
아름다웠다.
그 어떤 붓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인간만이 나타낼 수 있는 아름다운 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눈을 맞췄을 때.
쪽-
다시금 입술을 맞대고 서로를 잡아먹을 듯 춤을 췄다.
도파민이 미친 듯 뿜어져 나왔다.
내가 상상했던 그 어떤 순간보다 더 아름다운 현실이었다.
상체가 드러난 우리는 서로의 몸을 더 밀착시켰다.
그녀의 살결이 내 살에 닿았다.
말랑하고 따뜻한 푸딩 같은 것이 내 가슴에 닿았고, 그것은 무너지지 않고 포근하게 나를 잘 받아주었다.
맞닿은 심장.
우리의 심장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마구 뛰어댔다.
몸은 따뜻함을 넘어 뜨거워졌다.
그 뜨거움 속에서.
나는 과거의 어느 날처럼 또 다시 딱딱해졌다.
내 딱딱함이 그녀의 허벅지 사이 어딘가에 닿았다.
그녀는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청난 부드러움과 촉촉함으로 나를 감쌌다.
내 본능은 가본 적 없는 길을 금방 찾아냈고.
그 속으로.
“하앗-”
곧장 들어갔다.
‘…!’
흥분과 놀라움이 동시에 찾아왔다.
너무 흥분해서 놀랐는지, 너무 놀라서 흥분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그 어마어마한 감각에 압도되어, 나는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세포 하나하나, 신경 하나하나가 다 느껴지는 기분.
은빈이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섰다.
그 쾌감의 아득한 공간 속에서, 나도 점점 움직임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하아-”
“후우-”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을 찾았다.
우리는 서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예쁜 선과 리듬으로 서로를 탐욕했다.
내가 더 딱딱해질수록 은빈은 더 부드럽고 촉촉해졌다.
우리는 더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안았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입 맞췄다.
흥분이 점점 고조되었다.
이미 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되었는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더 더 흥분이 치솟았다.
더 이상 움직이면 나는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몸은 멈추지 않고 더 격렬하게 움직였다.
우리의 선이, 우리의 음악이 점점 극으로 치달았다.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우리는 서로 귀와 목에 맺힌 땀을 핥았다.
은빈은 아파하는 얼굴을 하고 좋다고 말했고.
나도 그 아파하는 얼굴이 좋았다.
우리는 입을 맞추다가 서로의 얼굴을 응시했고, 그러다가 다시 격렬하게 입을 맞췄다.
나는 본능적으로 마지막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이 감각, 이 감정, 이 쾌락의 끝이 다가왔음을.
가장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몰아치고.
가장 위대한 화가의 붓질이 마구 그려지는.
나와 은빈의 모든 감각이 극에 치달아 더 이상 인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
나는 마침내 내 안의 모든 것들을 밖으로 쏟아냈다.
“하아… 하아…”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주와 스케치가 끝이 남과 동시에.
[00:00]
새해가 밝았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태 씨.”
나를 깨우는 은빈의 목소리.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다.
“정태 씨.”
“… 네?”
“일어나요.”
창밖을 보니 아직 캄캄한 새벽.
그녀는 왜 나를 깨우는 걸까.
“일출 보러 가야죠!”
“일출요…?”
“옷 입어요. 늦겠어.”
나는 잠결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은빈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와.”
바다 가까이 다다른 나는 깜짝 놀랐다.
어제 낮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모래사장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올라서기 힘든 바위 위까지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 사람들 모두 일출을 보러 나온 겁니까?”
“그렇죠. 이쪽으로 와요.”
우리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가 앞을 잘 볼 수 있는 자리에 섰다.
은빈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곧 해가 뜰 거예요.”
은빈이 그 말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
오오-
수평선 끝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분명 예쁜 광경이긴 하지만, 이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 구경할 일인가?
“여기 있는 사람 모두 1월 1일에 뜨는 태양을 보며 새해의 기운을 받으려 하는 거예요. 올해는 원하는 일이 꼭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태양에 기도하기도 하고요.”
“……”
태양은 매일 뜨는 것이고, 지금 뜨는 태양은 어제 뜬 태양과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사람들은 무형의 시간을 열두 달과 24시간이라는 숫자의 틀에 가두어 놓고 1월 1일의 태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오! 저기 저기!”
다시금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수평선 끝에 빠알간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기도 했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도 했다.
“··· 하게 해주세요.”
“··· 찾게 해주세요.”
“··· 나게 해주세요.”
기도하는 사람들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들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태양이 자기 소원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원하는 게 이루어지길 바란다면, 기도할 시간에 더 노력하고 행동하는 게 낫지 않을까?
…
그런데 신기하게도 해가 점점 떠오르고 간절한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많이 비쳐질수록, 내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꼭 취업하게 해주세요.”
“우리 아버지 암 투병 잘 마치고 건강 찾게 해주세요.”
“뱃속에 사랑하는 내 아들 꼬물이. 별 탈 없이 잘 태어나게 해주세요.”
똑같은 태양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자신의 소원을 빌어보는 것.
이것이 사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면?
드러나 있는 현상만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게 아니라,
미지의 무언가를 바라고 이상을 꿈꾸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라면?
항상 그대로 존재하는 하늘과 바다, 바람과 햇살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늘 변하지만 우리 인간만이 생각할 수 있는 감정과 꿈, 미래와 소망이 사실 훨씬 더 위대한 가치라면?
내가 가장 바보 같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 가장 인간다운 삶의 표본이었다면.
그래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새해의 기운을 받고 한 해의 소원을 빌고 있는 거라면.
“정태 씨도 올 해 이루고 싶은 일을 빌어 봐요!”
나도 그들과 같이 소원을 빌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삶보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파도가 내 고통을 삼키듯 태양이 내 소원을 이루어줄 것임을 한번쯤 믿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눈을 감고.
“……”
난생 처음으로 미지의 무언가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일출보기가 끝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은빈 씨.”
은빈의 손을 잡고 내 쪽으로 돌려세웠다.
“… 네?”
새해의 태양에 소원을 비는 것.
생경하지만 의미 있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기분 좋은 것이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즐거움을 줬던 바로 그것.
“또 합시다.”
“… 네? 뭘요?”
“어제 했던 거. 또 하자구요.”
은빈과 내가 하나가 되었던 순간.
그 엄청난 쾌감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
은빈은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눈을 피했지만 나는 타오를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렇게 같이 서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녀가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나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이런 내 마음을 그녀도 느꼈을까.
“불 꺼요.”
나는 곧장 불을 껐고.
우리는 다시 한 번 어둠 속에서 아름다운 춤을 췄다.
#
다음 날.
“어이, 정태.”
출근 길, 지방청 정문 앞에서 치헌을 만났다.
“좋은 아침이야.”
“안녕하십니까.”
그에게 인사하고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
그가 앞을 막아선 채 멀뚱히 날 쳐다봤다.
“왜 그러십니까?”
“나한테 뭐 할 말 없냐?”
“할 말요?”
“있을 텐데.”
할 말이라니.
뭘 말하란 말일까.
업무에 대한 내용들은 다 보고했는데.
설마 강릉에 다녀온 사생활까지 보고를 하란 말인가?
“에휴 이 센스 없는 놈아.”
그가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팀장 만났으면 새해 인사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아…”
“뭐 난 됐고, 혹시라도 들어가다가 대장이나 과장들 만나면 인사 제대로 해. 간부들은 그런 기본적인 거 중요시하니까.”
“알겠습니다.”
“복 많이 받아.”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렇게 다시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치헌아!”
“어이구, 형님!”
치헌이 아는 직원을 만났는지 저기 있는 중년 남자와 인사를 했다.
“정태야 너 먼저 올라가라. 아이고 형님 지방청 계셨구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쇼.”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저쪽으로 갔다.
나는 그들이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는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새해 인사.’
스마트폰 검색창에 새해 인사라고 쳤다.
치헌은 분명 간부들에겐 인사를 ‘제대로’하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하는 걸까.
나는 인터넷 블로그에 나와 있는 설명을 읽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이제 막 정문을 통과했을 때.
“거기, 탁경위.”
누군가 나를 불렀다.
옆을 돌아보니.
“이제 출근하는가?”
기환수 지방청장이 몇몇 간부들과 함께 출근을 하고 있었다.
“네. 안녕하십니까.”
내가 그쪽으로 다가가자.
“하, 내가 연말 연초에 탁경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인터뷰 관련해서 전화가 얼마나 걸려 오는지. 내가 모임이랑 가족여행 다 취소하고 전화응대만 하고 있는 상황이야.”
대뜸 불평을 늘어놓았다.
얼굴을 보니 며칠 새에 많이 초췌해진 것 같긴 했다.
“뭐 팀장이나 대장한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론 보도는 사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본인 의견이 있더라도 우리 지방청이랑 말을 다 맞춰서…”
그가 무슨 말을 계속 쏟아내긴 했지만 나는 들리지 않았다.
벽에 있는 시계를 보니 07시 57분.
출근 시간은 3분밖에 남지 않았다.
환수의 말을 계속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
얼른 제대로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가야 한다.
“나 솔직히 그날 당일엔 엄청 놀랐고, 화도 많이 났어. 아니 내가 경찰생활하면서 우리청 직원이 단독인터뷰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건 내가 처음 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나는 그가 말하는 중간에.
“청장님.”
인터넷에서 본 대로 왼손이 오른손 위로 오도록 해서 포갠 뒤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어, 어? 자, 잠깐만 갑자기 왜 이러나?”
그대로 세배를 했다.
피의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