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92
92화. 망설이시는 그 말.
나는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
사무실 전체 전경을 관찰했다.
직원들의 표정, 사무실 분위기, 책상과 컴퓨터의 위치, 갖가지 부속품들까지.
“이다영 경사님이 누구죠?”
“전데요…?”
나는 다영의 책상으로 가 그녀의 외형, 책상에 놓인 물건들까지 쭉 훑고는 말했다.
“광수대 탁정태 경위입니다. 고소하신 사건 피해자조사 받으러 왔습니다.”
“출석 안 시키시고 직접 나오셨네요?”
“서장님 피의자 조사할 겸 피해자 조사도 같이 하려고요. 불편하십니까?”
“아뇨, 불편하진 않아요.”
“여기서 할까요?”
“뒤쪽 방으로 들어가죠.”
우리는 함께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간 후.
“성함과 생년월일을 말씀해주세요.”
노트북을 펼치고 조사를 시작했다.
“이다영. 87년 6월 2일생이에요.”
“이 부서에 근무한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3년 정도 됐어요.”
“피의자와는 따로 친분이 있습니까?”
“아뇨. 단순히 서장과 직원 관계예요.”
긴 생머리에 볼록한 이마, 쌍커풀은 없지만 큰 눈.
높은 코와 작은 입.
흠 잡을 곳 없는 몸매까지.
다영은 사람들이 말하는 미인상에 가까운 외모였다.
“다음 질문은 듣기 거북할 수 있습니다. 원칙은 여경을 대동해 질문하는 것인데, 여경 불러드릴까요?”
“아뇨, 괜찮아요.”
“피의자의 성기가 다영 씨의 음부에 삽입이 되었습니까?”
“……”
막상 물으니 당황스러운지 그녀가 말을 멎었다.
“강간죄의 구성요건에 들어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묻는 겁니다.”
“네, 삽입됐어요.”
“고소장에는 각기 다른 날 서장실, 모텔에서 각 1회씩 총 2회에 걸쳐 강간을 당했다고 되어 있는데, 2회 모두 삽입이 되었나요?”
“네.”
“매번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협박이나 폭행이 있었고요?”
“네, 두 번 모두 강제로 저를 눕혀 제 옷을 벗겼어요.”
분이 서린 목소리.
“처음 피해를 당했을 때 왜 바로 고소하지 않으셨나요?”
“그땐 너무 무서웠어요. 갑자기 서장실에 불려가 성폭행 당한 것도 무서웠고, 이게 알려지면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이상하게 돌까봐, 또 서장이 장기적으로 제 인사에 불이익을 줄까봐 무서웠어요.”
“그렇게 마음먹었다가 지금 고소하게 된 이유는요?”
“두 번이나 범행을 당했고, 같은 서에 근무하기 때문에 앞으로 또 범행을 당할 위험이 있어서요. 이제는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처벌을 하고 싶어요.”
“두 번째 범행은 모텔에서 이루어졌던데, 모텔엔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저희 부서 회식에 서장님이 오셨어요. 술을 먹다보니 금방 취하셨죠. 집이 같은 방향이라 저보고 같이 택시를 타고 귀가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택시를 탔는데, 가던 중 갑자기 ‘너무 취해서 집까지 못가겠다. 오늘은 이 근처 모텔에서 자야겠다. 거기까지만 좀 부축해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모텔로 부축해드렸는데, 방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돌변하시더니 저를 덮쳤어요.”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타자로 이전 문장을 마무리한 뒤 물었다.
“고소장은 본인이 직접 작성했습니까?”
“… 당연하죠.”
“고소 내용은 모두 사실이고요?”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벌써 끝이에요?”
“네. 사무실 돌아가셔서 같은 부서 직원 아무나 불러주시겠습니까?”
“저희 부서 직원이요?”
“네. 다영 씨 사건 관련해서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 알겠어요.”
다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안녕… 하세요.”
떨떠름한 표정의 여직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녀는 내 눈치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박미향 경위예요.”
“이다영 경사가 오동석 서장님을 고소한 거 알고 계시죠?”
“… 네.”
“그에 관해 뭘 좀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뇨.”
“… 네?”
“괜히 저한테 불똥이 튀는 게 싫어서요. 이경사가 들어 가달라 부탁해서 여기 들어오긴 했지만, 사실 이런 조사는 받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녀의 표정을 잠시 살피다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가셔도 좋습니다.”
“네.”
그녀가 목례를 꾸벅하고 방을 나갔고, 나도 곧장 노트북을 챙긴 뒤.
끼익-
사무실을 나왔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아무 소득도 없다고 생각할 만한 조사 과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음.’
이번 조사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다.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 일치했으니까.
이제 다음 수사에 바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곧장 경수에게 전화해 그를 복도로 불러냈다.
“벌써 조사 끝났어?”
경리계 사무실에서 나온 경수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네.”
“어후, 왜 이렇게 빨라? 나는 아직 한창인데. 그쪽은 뭐래?”
“조사 내용은 고소장 내용과 동일합니다. 임현미 순경은 뭐랍니까?”
“회식자리에서 술 잔뜩 먹여서 모텔 데리고 갔대. 순경이고 근무한지도 얼마 안 되서 서장이 오라고 하면 무조건 가야 하는 줄 알았대. 그리고 그 짓을 당했다는 거야.”
“이다영 경사 건이랑 비슷하네요. 이분도 부서 회식자리에서 모텔로 데려갔다는데.”
그러자 경수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서장 이 새끼 완전 개 호로새끼네. 최근에 임순경한테 다시 성관계를 요구해서 이번에 참다못해 고소한 거래. 강간은 이미 당한지가 2달이 넘었거든.”
“증거는 있답니까?”
“혹시 몰라 모텔 들어갈 때부터 켜고 들어갔던 휴대폰 녹음파일이 있대. 근데 낯부끄러워서 듣진 못하겠더라. 청에 들고 가서 여직원 통해 듣고 증거자료로 첨부해야지.”
경수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 그림이 점점 더 명확히 스케치되었다.
“주임님 차키 좀 주십시오.”
“차키? 왜?”
“이경사 갔다던 모텔에 좀 다녀오려고요.”
“아, 오케이. 시간 남으면 임순경 갔던 곳도 좀 다녀와.”
“알겠습니다.”
경수는 내게 차키를 건네준 후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고, 나는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모텔로 향했다.
“사장님.”
모텔에 도착해 카운터로 가니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맞아주었다.
“예, 혼자세요?”
“아, 저는 서울청 광수대 형사입니다. 숙박하러 온 게 아니라 사건 조사하러 왔어요.”
“예!?”
그녀가 깜짝 놀라더니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형사가 여길 왜 와요?”
“이 사람 혹시 기억나십니까? 며칠 전 여기 온 손님인데.”
내가 서류에 있던 다영의 사진을 내밀자.
“아유 몰라요 몰라. 내가 손님 얼굴을 어떻게 다 기억해요? 그리고 우리 모텔은 성매매 이런 거 절대 안 해요. 수사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
주인은 핵심을 잘못 짚고 저 혼자 제 발을 저렸다.
“성매매 때문에 나온 게 아닙니다. 다른 수사 때문에 왔어요. 하지만 협조해주지 않으시면 강제로 이 근처 CCTV 다 확인할 수밖에 없어요. 그럼 의도치 않게 이곳 성매매 범죄가 확인될 수도 있겠죠.”
“……”
“기억 안 나시면 당시 모텔 입구 CCTV를 확인해 사진만 몇 장 찍어가겠습니다.”
내 말에 여자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기더니.
“기억나요, 이 여자. 나이 많은 사람이랑 왔잖아.”
진술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불쌍하더라고. 젊은 여자가 무슨 돈이 그렇게 급해서 늙은이랑 같이 모텔에나 오고 그러는지.”
나는 굳이 사건의 내막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남자가 강압적으로 끌고 가던가요?”
“뭐 강압적 까진 아니지만, 여자 분이 마지못해 가는 것 같긴 했어요. 그날은 그랬어요.”
“한 번 봤을 뿐인데 자세히 기억하시는군요.”
“네?”
내 말에 그녀가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한 번이라뇨?”
*
모텔 주인에게 진술을 들으며 참고인 조사 형식으로 서류를 작성한 뒤, 그녀에게 허락을 구해 CCTV 화면을 동영상 및 사진으로 촬영했다.
그곳을 나와 현미가 갔다던 모텔도 들러 CCTV 영상을 확보했다.
이어서.
= “감사합니다. 서울청 인사담당 전경환 경감입니다.”
= “전경감님. 탁정탭니다. 통화 잠시 가능하십니까?”
필요한 사람을 한 명 더 수사한 후.
*
“어, 정태 왔냐?”
강북서로 복귀했다.
내 전화를 받고 경수가 1층에 내려와 있었다.
“뭐 좀 건졌어?”
“필요한 영상이랑 진술 증거 다 확보했습니다.”
“오케이. 임현미 순경이랑 부속실 직원 조사도 다 끝났어. 아까 말했듯 임순경은 당시 녹음파일 있다고 하니까 그거 기반으로 수사해서 기소하면 될 거 같아. 또 이다영 경사 서장실에서 범행 당했을 때, 부속실 직원이 밖에서 신음소리를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어. 증거 몇 개만 더 찾아내면 이경사 건도 별 어려움 없이 기소 가능할 거야.”
“……”
“너 오기 전에 팀장님이랑 같이 미리 서장실 들어가서 진술청취하려 했는데, 끝까지 묵묵부답이더라고. 그래서 곧바로 대질하려고 임순경, 이경사한테 의사 물어본 뒤에 서장실에 다 불러모아놨어. 올라가보자.”
우리는 함께 서장실로 올라갔다.
끼익-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니 방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날 쳐다봤다.
나는 별다른 말없이 그들에게 다가가며 각각의 표정과 행동을 세심히 살폈다.
다영은 아까와 똑같았다.
과하게 똑바로 뜬 눈과 곧은 자세에서 분노와 당당함이 느껴졌다.
이어 임현미 순경.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 아담한 체구의 그녀는 손을 앞으로 모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어대고 있었다.
경수와 내가 방으로 들어오자 이런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더 숙였다.
하지만 꼭 쥔 손에서 이번엔 꼭 피의자를 처벌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부속실 직원은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참고인의 자세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한 오동석 서장.
그는 의자에 등을 살짝 기댄 채 손을 모으고 자신의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얼핏 보면 아주 태연한 자세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 관련 진술을 하나도 하지 않으셨다고요?”
“……”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눈.
깍지 낀 손 사이로 불안정하게 돌리고 있는 엄지.
그리고.
달달달달달달-
카펫에 완충이 되어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저 다리 떠는 소리까지.
그는 태연한 게 아니라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긴장의 원인은 단순히 두려움이 아니었다.
‘바싹 마른 입술, 빈도가 잦은 침 삼킴. 무언가를 말할 듯 자세를 고쳐 앉다가 코를 만지며 다시 원위치.’
그는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 불안정한 행동까지 내 그림에 완벽히 맞아떨어졌다.
“할까 말까 망설이시는 그 말.”
내가 책상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셔도 됩니다.”
“!?”
“보여줄까 말까 망설이시는 그 증거, 보여주셔도 된다고요.”
그 말에 여태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고 있던 동석이 놀란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런 그를 보며.
“저도 알고 있거든요. 지금 이 방엔 피의자 1명 피해자 2명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덤덤히 말했다.
“피의자 2명, 피해자 1명이 있다는 걸요.”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체의 유·무형 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