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94
94화. 무섭고 똑 부러지는 검사.
우리는 동석과 다영을 데리고 방을 나왔다.
그들이 연행되는 모습을 본 강북서 직원들이 하나같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로비에 모여들었다.
고소인이었던 다영이 체포된 것도 의아했을 테지만, 무엇보다 동석이 체포된 모습에 놀란 것 같았다.
한 서의 서장이 수갑을 찬 모습을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 이건 경찰공무원으로서 평생 잊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이 될 것이다.
관용차에 그들을 태운 후 치헌이 말했다.
“두 분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있긴 하지만 체포 직전까지 범죄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 진술을 하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다분하다고 판단하여 긴급체포 했습니다. 지금부터 지방청 광수대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차를 몰아 지방청으로 향했다.
*
사무실에 도착한 뒤.
“정태야, 잠시만.”
동석과 다영을 기섭과 현민에게 인계한 뒤 치헌이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뇌물 생각은 대체 어떻게 한 거냐?”
경수도 따라 나와 궁금하다는 듯 팔짱을 끼고 옆에 섰다.
“고소장이 고소장 같지 않았어요.”
내가 그들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성범죄 피해자의 고소장에는 보통 억울함과 두려움, 수치스러움과 울분이 담겨 있어요. 임현미 순경의 고소장엔 그런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죠. 하지만 이다영 경사의 고소장은 마치 수사서류 같았어요. 범행이 언제 어떻게 벌어졌는지, 피의자의 죄질은 얼마나 악한지, 구성요건엔 얼마나 들어맞는지 같은 것들만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 감정의 호소는 없었어요. 그에 더해 범죄가 한 차례가 아닌 두 차례에 걸쳐 발생되었고, 발생 시점이 승진관련 특정일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아 뇌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사무실에 들어갔죠.”
나는 강북서 질서계 사무실 전경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제가 처음 질서계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단 한 명도 이경사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 동료가 없었어요. 보통 동료가 성범죄 피해를 당했다고 하면 위로하고 걱정해 줄 텐데, 전부 남 일처럼 제 눈을 피하기 바빴어요. 참고인 조사를 하려 했던 동료도 사건에 휘말리기 싫다면서 동조하는 진술 하나 없이 방을 나가버렸고요. 그 분위기를 보고 이경사가 동료들과 별로 관계가 좋지 않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래서 사무실에서 나와 모텔에 갈 때 서울청 청문에 전화해서 이다영 경사 관련 진정이나 사건 기록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가 청문 직원에게 전송받은 수사자료 사진을 내보였다.
“경사 승진 때 이의신청을 한 번 받은 적이 있더라고요. 당시에도 이경사는 심사승진을 했는데, 실적이 부족한데 어떻게 승진을 한 거냐며 다른 승진 후보가 이의신청을 했었어요. 청문 직원 말로는 그때부터 ‘몸을 팔아 승진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답니다. 이경사가 서장실이나 과장실에 불쑥불쑥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땐 소문으로 끝났지만 이번엔 범죄로 밝혀진 거죠.”
“……”
생각해내는 과정은 간단했는데 말로 하니 좀 복잡했다.
설명하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경수는.
“와 정태 너는 봐도봐도 기가 차네. 하이고 턱이야.”
벌리고 있던 입을 오므리고 엄지로 턱 마사지를 해댔다.
“크, 역시 정태 데리고 있어야 수사할 맛이 난다니까.”
치헌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목 긁는 소리를 했다.
“좋아좋아. 들어가서 서류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자.”
그렇게 치헌과 경수는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
나는 그들을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스스로에게 좀 놀랐기 때문이다.
고소장에서 그 안에 담겨있는 억울함의 유무를 판단한 것.
질서계 사무실에서 동료들의 표정으로 다영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읽어낸 것.
게다가 동석에게서 망설임을, 현미에게서 부끄러움을 읽어낸 것.
이 모든 것들은 다 ‘감정’에 관한 것들이었다.
아주 조금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제 수사과정에서 보여지는 현상뿐만 아니라.
“……”
사람 내면의 감정까지 읽어내고 있었다.
#
쩝쩝쩝-
늦게까지 조사가 이어져 우리는 사무실로 저녁식사를 배달 시켜 먹었다.
메뉴는 소머리 국밥.
아삭-
이제 기가 완전히 죽어 조심스레 깍두기를 씹는 다영.
그녀는 뇌물조로 성행위를 했음을 인정했다.
관계를 가진 횟수는 총 7번.
그녀는 현미가 동석에게 추행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무서워하기는커녕 동석의 습성을 자신의 승진에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접근했다고 했다.
그것 외에는 팀장도 계장도 과장도 아닌 그녀가 단독으로 서장실에 들어가 신음을 내지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쩝쩝쩝-
서장 동석은 별다른 반성의 기색 없이 맛있게 국밥을 먹어댔다.
그의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다영, 현미 말고도 수많은 여경들에게 추근댄 흔적들이 나왔다.
놀랍게도 다른 경찰서 중년 여경 중에는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경도 있었다.
단순히 추근댄 것, 합의하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형사처벌 사안이 아니기에 서류엔 참고사항 정도로만 기록했다.
[서울청 광역수사대 탁정태 경위의 인터뷰 이후로 전국에서 조선족 범죄자들이 계속해서 검거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검거된 조선족 피의자는 13명, 되찾은 장기 실종인은 2명으로…]
밥을 먹으면서 시청하는 TV 뉴스엔 최근 이슈들이 흘러나왔다.
[장기매매 범죄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와 함께 박지석 사건에 대한 여론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그를 살해한 조선족 피의자와 그 배후세력에 대한 의혹인데요. 배후 세력으로 지목된 고위공무원 및 언론사 기자는 ‘허무맹랑한 모함’이라며 의혹을 일축했습니다.]
“저 배후 의혹 받는 고위공무원에 경찰간부들도 포함돼 있잖아.”
치헌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며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범죄자랑 결탁했다는 거, 저게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그 경찰간부 새끼들 패 죽여야 돼. 성범죄 하거나 뇌물 받은 새끼들보다 더 악질이라고 저게.”
“커헉! 케겍!”
‘간부새끼’ 소리에 밥을 잘 먹고 있던 동석이 크게 기침을 해대며 밥알을 뱉어냈다.
“씹새끼들 저것도 선배라고 자기 부하들한텐 경례받고 하겠지.”
“크흐억!”
“명예 팔아서 조직 더럽히는 새끼들은 어디 CCTV 없는 데 가서 반 죽여 놔야 하는데 말이야.”
“케켁…”
사레가 들렸는지 계속 기침을 해대던 동석은 물을 마시고 겨우 진정하더니.
“……”
치헌의 눈치를 한 번 보고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제1야당 새 원내대표로 이호중 의원이 선출됐습니다. 이의원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그렇게 계속 뉴스를 보고 있는데.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감사합니다. 서울청 광수대 1팀 변기섭 경사입니다.”
기섭은 전화를 받더니.
“예!?”
깜짝 놀라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가볼게요.”
전화를 끊자 치헌이 곧장 그에게 물었다.
“뭔데? 뭔 일 났어 또?”
“우리가 송치했던 조선족 애들 수감되어 있는 구치소 있잖아요. 거기서…”
기섭이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살인 사건이 났답니다. 피의자 중 한 명이 죽었대요.”
*
기섭과 현민이 사건을 마무리해 동석, 다영을 유치장까지 보내기로 하고.
나와 치헌, 경수는 곧장 관용차에 올라타 구치소로 향했다.
“서울청 광수대에서 왔습니다.”
도착해 직원의 안내에 따라 피의자 및 목격자를 모아놓았다는 방으로 들어가니.
“…?”
방에 있는 건 피의자와 목격자뿐만이 아니었다.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 둘.
그들이 우리를 돌아봤다.
이 시간에 정장을 입고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온 사람들.
그 사실 만으로 나는 이들이 누군지 특정할 수 있었다.
검사와 검찰수사관.
그중 검사로 보이는 자가 치헌 앞으로 다가왔다.
“남부지검 이정재입니다.”
“!!”
말로만 듣던 청렴검사의 표본 이정재검사였다.
관우가 이번 조선족 사건을 이정재 검사에게 배당시키려 노력하고 있다더니.
정말 이 사건을 맡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건이 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고.
나는 곧장 그의 외형을 빠르게 훑었다.
‘40대 초반. 키는 중간정도. 떡 벌어진 어깨와 늠름한 풍채. 날렵한 눈과 다부진 턱. 고집 있어 보이는 반무테 안경.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셔츠와 타이.’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무섭고 똑 부러지는 검사’의 이미지에 딱 맞는 외모였다.
“반갑습니다. 서울청 광수대 장치헌 경감입니다.”
그는 치헌과 인사한 후.
“고경수 경위입니다.”
경수와 인사한 다음.
“탁정태 경위입니다.”
나와도 악수를 했다.
“당신이 탁정태 경위군요. 티비에서 볼 때랑 느낌이 또 다르네요.”
“……”
“잘 부탁합니다.”
인사를 끝낸 그가 뒤돌아 수감자 중 한 명을 일으켜 세우며 치헌에게 말했다.
“피의자는 저희가 바로 구속해서 데리고 가겠습니다. 혹시 목격자 진술 받아서 저희 사무실로 팩스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수사관과 함께 방을 나갔다.
정재가 데리고 나간 피의자 이름은 리자헌.
이 방의 다른 수감자들과 같이 우리 팀이 수사했던 인물이다.
구치소 직원의 말에 따르면 금일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수감자들 간 패싸움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리자헌이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했다고 했다.
피해자는 곧장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사망했다고.
사람들이 마구 뒤엉켜 식당 내 CCTV에는 정확한 범행 장면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방에 남은 6명의 수감자가 목격자.
교도관은 범행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방 몇 개만 쓰겠습니다. 바로 조사 들어가려고요.”
“알겠습니다.”
치헌이 직원으로부터 각기 분리되어 있는 세 개의 공간을 안내받은 후 이쪽을 돌아봤다.
“얘들 다 사무실로 데려갈 순 없으니 각각 한 명씩 맡고 참고인 진술조서 받자. 나는 얘 할게. 경찰 조서 받을 때도 내 담당이었어. 경수 너는?”
“저는 오관. 쟤부터 할게요.”
“오케이. 정태 너도 하나 맡아서 바로 조서 받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치헌과 경수가 각자 분리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선족 수감자 조서를 받기 전에.
“저기.”
교도관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를 잠시 방 밖으로 부른 후 조용히 물었다.
“혹시 패싸움이 일어났던 당시 현장에 투입되셨습니까?”
“네. 뒤늦게 투입되어서 수감자들을 뜯어말렸습니다. 말리고 진정이 되었을 땐 이미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요.”
“당시 보고 들었던 것들 중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으면 전부 말씀해주십시오.”
“특이한 거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현장에 막 투입되던 당시 가족이 보고 싶다고 절규하는 소리를 듣긴 했어요. 아마 목소리가 리자헌 목소리 같긴 했는데…”
“가족이 보고 싶다고요?”
“정확히는 ‘내 아는 약 안 먹으면 죽소. 아를 델고 갔으믄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은 전해줘야 할 것 아임까!’ 뭐 이런 식으로 말했던 거 같아요.”
“음.”
나는 그의 진술을 머리에 새기고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서류를 한 장 건넸다.
“말씀하신 내용 여기 자필진술서 한 장 써주시겠습니까? 다 작성하고 나서는 맨 밑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조사하시는 동안 써놓겠습니다.”
그 뒤엔.
“정춘봉 씨. 이쪽으로 오세요.”
노트북을 들고 수감자 중 한 명과 함께 빈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와 마주앉아 물었다.
“식당에서 정확히 뭘 봤습니까?”
눈깔 돌믄 바로 손모가지 날려버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