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95
95화. 눈깔 돌믄 바로 손모가지 날려버림다.
별일 아니라는 듯 평온한 표정.
춘봉이 눈을 느릿하게 껌뻑거리며 말했다.
“형사님도 아시지 않슴까. 리자헌이 오수를 목 졸라 죽였슴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목을 졸랐죠?”
“리자헌이 오수 왼다리를 잡아채 엎어뜨리고는 뒤를 잡고 오른팔로 초크를 걸어 목을 졸랐슴다.”
타인의 죽음. 그것도 같이 활동하던 조직원의 죽음 앞에서 이토록 태연하다니.
수시로 장기적출을 일삼던 그들에게 이제 생명의 박탈은 아무런 감정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식당에서 패싸움은 뭐 때문에 일어났습니까?”
“서로 힘자랑 하다가.”
“… 예?”
“니 힘이 세니 내 힘이 세니 말싸움하다가 붙어버린 검다. 원래 오수는 오수파 보스였는데 우리 청현파 밑으로 들어온 놈임다. 전부터 서열 문제로 티격태격 했었는데, 큰형님 오른팔인 리자헌이 살살 심기를 건드리니 폭발해버린검다. 그래가이고 둘이 언쟁을 하면서 치고 박다가, 나중엔 우리 아들이랑 원래 오수파였던 아들이 죄다 달려들어 개싸움이 된 검다.”
“힘자랑하다가 패싸움을 하고, 거기다 사람까지 죽였다고요?”
“우리 아들은 놀면서 헤헤거리다가도 눈깔 돌믄 바로 손모가지 날려 버림다. 몇 년 전에 팔씨름하다 장도로 양쪽 귀 잘라버린 얘기 뉴스에서 못봤슴까? 우리아들 얘김다.”
“……”
판례에 사소한 이유로 큰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들이 많이 있지만.
이들은 그런 판례 속 인물들보다도 훨씬 기괴한 사고방식을 가진 듯했다.
자르고 죽이는 걸 그저 놀이로 여기는 듯한 느낌.
“그 손가락도 힘자랑하다 잘린 겁니까?”
내가 마디 하나가 잘려나간 춘봉의 약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이거는 우리 형님에 대한 충성심의 표심다.”
“충성심의 표시요?”
“내가 당신을 확실히 받들어 모시겠다, 뭐 그런 걸 보여주려고 자른검다.”
남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도 함부로 하는 건가.
“혹시.”
내가 노트북에 다음 질문을 작성하며 물었다.
“피해자가 소리치는 건 못 들었습니까?”
“소리치는 거요?”
“자기 애는 약 안 먹으면 죽는다고, 애를 보고 싶다고 소리치는 거요.”
“……”
내 질문에 춘봉이 표정을 굳히며 잠시 말을 않더니.
“그런 소리 못 들었슴다.”
다시 덤덤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패싸움 당시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기 어떻게 된거냐믄…”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을 더해 춘봉의 조서작성을 마친 뒤, 다음 수감자의 조서까지 작성 완료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아까 그 큰 방에서 잠시 기다리니.
“어, 다 끝났냐?”
“하, 하루 종일 키보드 쳐대려니 진이 다 빠지네요.”
치헌과 경수도 서류작성을 마치고 나왔다.
“진술 내용이 뭡니까?”
내가 그들에게 묻자.
“피의자랑 피해자랑 서로 힘자랑을 하다가 패싸움이 붙었대. 그 과정에서 피의자가 피해자 왼다리를 잡아채 넘어뜨리고는 뒤에서 오른 팔로 초크를 걸어 목을 졸랐다는데?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뒤에도 계속 졸랐대.”
“오, 제 참고인들도 정확히 그렇게 진술하던데. 힘자랑하다 패싸움하고, 넘어뜨려 뒤에서 팔로 목을 졸랐다고. 두 참고인 다 똑같이 대답했어요.”
똑같은 내용으로 대답했다.
“피해자가 소리치는 건 못 들었답니까?”
“소리치는 거? 그런 진술은 없었는데. 보고 들은 거 다 말하라고 했는데 그런 말은 없었어.”
“제 쪽도 그런 말은 없었어요.”
내가 치헌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조선족 범죄조직원들이 충성심 표시를 위해 손가락을 자르기도 합니까?”
“어. 좀 무식한 놈들은 처음 조직에 들어올 때 그런 짓을 하기도 해. 봐봐 여기 애들 몇 명도 잘려 있잖아.”
치헌이 교도관을 따라 수감실로 돌아가는 수감자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춘봉 외에도 약지가 잘린 자들이 몇 명 더 있었다.
“생각보다 자기 보스에 대한 충성심이 높나보네요.”
“얘들은 그냥 짐승새끼라고 보면 돼. 무리의 대장에겐 철저히 고개를 숙이고 자기 먹고사는 일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다 하지.”
이어 치헌이 기지개를 쭉 키며 말했다.
“하아- 이제 다 끝났다. 어차피 사건은 검찰에서 할 거고, 피의자 범행 인정하는 데다 목격자들 진술까지 일치하니 사건은 쉽네. 얼른 사무실 복귀해서 팩스 보내고 일 마무리…”
“숨겨진 게 더 있어요.”
“…?”
내 말에 치헌이 쭉 펼쳐들던 팔을 내려놓으며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뭐가 더 숨겨졌다는 거야? 무려 6명의 목격자 진술이 정확히 일치하잖아. 이건 엄청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사건이라고.”
“목격자들 진술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 무슨 소리야?”
인상을 찌푸리는 치헌과 경수.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그들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다.
“그 진술은 정확히 일치하기 힘들어요. 정확히 똑같은 장면을 봤다고 해도 각자가 본 각도, 집중하고 있는 대상, 갖고 있는 가치관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주장이 나오기 마련이에요. 예를 들어 칼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치면 누군가는 칼에, 누군가는 피에, 누군가는 피해자의 표정에 집중해요. 그래서 각자의 방식으로 오염된 진술을 내놓죠.”
“……”
“심지어 어떨 때는 사실과 전혀 다른 진술을 늘어놓기도 해요.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한 중대범죄를 눈앞에서 목격하면 엄청난 충격을 받거든요. 보고 들은 건 각도와 가치관에 따라 오염되기도 하지만 충격에 의해 오염되기도 해요. 종합하면 중대범죄에 대한 목격 진술은 오염될 소지가 매우 많고, 따라서 여러 명이 완벽히 일치하는 진술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아무리 조선족 범죄자들이 살인을 놀이로 여긴다지만.
사건 당시 아예 충격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다.
게다가 춘봉과 달리 감정에 약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의자가 피해자 왼다리를 잡아채 넘어뜨리고는 뒤에서 오른 팔로 초크를 걸어 목을 졸랐다’며 6명의 목격 진술이 완벽히 일치했다는 건.”
각자의 가치관과 충격을 무시한 채 같은 진술이 나왔다는 건.
“진술이 조작됐다는 거예요.”
“!?”
“그냥 그렇게 말하기로 약속된 진술이라는 겁니다.”
#
다음 날.
어제 있었던 구치소 살인사건 추가 수사는 이정재 검사 쪽에서 맡아서 하기로 했으며, 필요시 우리 팀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목격자들의 참고인 조서를 팩스 보내면서 ‘약속된 진술 같다.’는 의견을 첨부하니 ‘참고해서 수사하겠다.’는 짤막한 답변이 왔다.
아직 아무 증거 없는 내 생각에 불과하니 ‘그들의 진술이 거짓임이 확실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휴.”
경수가 내 책상 앞을 지나가다 멈춰 섰다.
“또 박지석 사건 CCTV 보고 있어? 눈 안 아프니? 배당받은 거 쳐내는 것만 해도 피곤할 텐데 좀 쉬엄쉬엄 해.”
그가 한숨을 내쉬며 내 어깨를 주물렀다.
나는 사건 사이사이 틈이 나는 대로 박지석 사건 CCTV를 돌려보고 있었다.
“구석에 이건 또 뭐야.”
경수가 모니터 한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수 전과기록이랑 주거지 이전 목록은 왜 살펴보는 거야?”
“죽은 피해자가 그동안 어떤 범죄를 했는지, 어디 살았는지 좀 보려고요.”
“이제 검찰 넘어간 사건이야. 남 일이라고 남일. 지금부턴 우리가 백날 수사 해줘봐야 검찰 좋은 일시키는 거 밖에 안 돼. 필요하면 그쪽에서 지휘 내려올 거야. 그때 하면 된다고.”
그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때.
벌컥-
“하 참. 요새 왜 이런 사건들만 들어오는 거야?”
치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왜요? 이번엔 또 무슨 사건입니까?”
“저번에 왜 무단결근한 경찰관 있다고 했었잖아. 내가 막 정태가 유행시킨 거 아니냐고 했었던.”
“네네, 기억나요.”
“하…”
치헌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그 경찰관, 변사체로 발견됐대.”
*
잠시 후, 달리는 관용차 안.
“변사체 발견 장소는 하남에 있는 야산 저수지인데, 경찰관 실종접수를 서울청에서 해놔서 일단 우리도 병원 들렀다가 현장 가봐야 해.”
변사체는 자연사나 병사 외의 요인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말한다.
따라서 죽음의 원인이 사고인지 재난인지 자살인지 범죄인지 등을 밝혀내야 한다.
현재로선 사망 원인은 물론이고, 서울에서 피해자가 사망하고 하남으로 옮겨졌는지, 하남에서 사망했는지 알 수 없다.
범죄로 사망했을 경우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며, 발생지가 어디인지에 따라 관할이 결정된다.
사체는 부검을 위해 서울 쪽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하여 나와 치헌, 경수는 병원으로 가는 중이고, 기섭과 현민은 피해자 유족을 만나러 갔다.
“뭐 보통 저수지에서 죽은 건 자살일 확률이 높아. 하지만 경찰관이 피해자인 사건이니 좀 면밀히 조사 해봐야 해. 이런 건 언론에 바로 보도되기 때문에 신속히 수사해서 지방청장 거쳐 본청까지 보고도 빨리빨리 이루어져야 해.”
열심히 설명하는 치헌에게 내가 물었다.
“피해자 소속이 강북서 형사과라고 하셨죠?”
“응 어제 갔던 강북서.”
“이름이 뭐라고 했죠?”
“이형준. 계급은 경장.”
이형준.
기억났다.
분명 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서장 체포에 직원 사망까지. 강북서가 아주 제대로 난리구만.”
그렇게 한참을 달려 병원에 도착했다.
“이형준 형사 변사 건 때문에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우리는 병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끼익-
“안녕하십니까.”
곧장 부검의를 찾아갔다.
“서울청 광수대 장치헌 경감입니다. 부검 결과 나왔습니까?”
“네, 방금 다 끝냈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서류를 훑어보며 계속 말했다.
“저희가 쭉 살펴봤는데요. 일단 사망한지는 약 일주일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일주일.
피해자가 무단결근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했다.
“그리고 폐에서 플랑크톤이 발견됐어요.”
플랑크톤.
물속에 떠다니는 작은 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익사체의 장기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런데 폐에서만 나왔어요.”
“…?”
“위, 심장, 간 등에선 나오지 않았죠. 식도로는 물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거예요. 물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호흡이 멎었다는 겁니다.”
“…!”
“게다가 보통 익사체의 기관지엔 거품이 일어나있기 마련인데 거품도 없어요. 기관지가 깨끗합니다.”
“그 말은…”
“사인이 익사는 아니란 얘기죠.”
“!!”
치헌과 경수가 놀라서 미간을 찡그렸다.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는데 익사가 아니라면…
“게다가 우측 팔과 어깨, 갈비뼈에 골절이 발견됐어요.”
“골절이요?”
“누군가 둔탁한 것으로 피해자를 충격했고, 피해자는 우측 팔을 들고 그것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까지 상세한 사건 내용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됐든 이 사건…”
부검의가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에요.”
연결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