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97
97화. 오직 이 장면만이.
나이는 40대 중후반. 퉁퉁한 몸과 거뭇거뭇한 피부.
그 남자는 수갑을 찬 채 눈치를 보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기섭이 그를 의자에 앉히고는 치헌에게 말했다.
“거주지가 서울이더라고요. 집에 떡하니 있길래 잡아왔습니다.”
“죄는 인정하고?”
“네. 사고 장소에서 사람 친 거 맞다네요. 너무 놀라서 피해자가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고, 그냥 정신없이 도망쳤답니다. 자수할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대요.”
“그렇구만. 하남서 교통조사계는 연락됐고?”
“네. 그쪽 직원들이 저희 사무실 와서 피의자 데리고 간답니다. 미리 연락해놔서 곧 올 거예요. 제가 잠시 데리고 있다가 인계하겠습니다.”
“인계하기 전에.”
내가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다.
“제가 이분과 잠시 얘기 좀 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나는 그를 내 책상 앞 의자로 옮겨 앉게 한 뒤 마주 앉아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윤진호입니다.”
“사고당시 상황 기억나십니까?”
“정확히 다 나지는 않고… 몇몇 장면만 기억납니다.”
“당시 상황을 기억나는 대로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진호는 눈을 껌뻑껌뻑하며 몇 차례 눈치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산 위쪽에 공사하는 곳이 있어 그 길에 제 차를 포함한 화물차가 몇 대 다닙니다. 그땐 사방이 깜깜한 밤이었습니다. 저는 평상시와 같이 운행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서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튀어나오는 겁니다.”
“비틀거리면서요?”
“네. 술 취한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는다고 밟았는데… 이미 인지했을 때는 늦은 상황이었죠.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충격 후 피해자가 어떻게 된지는 못 봤습니까?”
“눈을 질끈 감았다 떴는데… 눈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제가 속도를 그렇게 빨리 내며 달린 건 아니지만 차 자체 무게가 워낙 무겁다보니 아마… 멀리 튕겨 날아갔을 겁니다…”
“사고 후에는 왜 구호조치 없이 도주하셨습니까?”
“당시 너무 놀랐고 또 두려웠습니다. 주변에 CCTV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 순간 나쁜 마음을 먹고 도망쳤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울먹이는 소리로 바뀌었다.
“저희 집안이 넉넉한 형편이 아닙니다… 얼마 안 되는 제 벌이로 아내와 아들 딸 네 식구가 입에 겨우 풀칠을 하고 삽니다. 그런데 제가 차로 사람을 치고 처벌을 받으면 곧장 직장을 잃게 되고, 그럼 그때부터 우리 식구들은 배를 굶어야 합니다… 그런 게 두려워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도망쳐버렸습니다…”
“……”
“하지만 그건 못된 마음이었죠.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또 이렇게 금방 잡힐 줄 알았습니다.”
“금방 잡힐 줄 알았다고요?”
“현장에 피해자 일행이 있었으니까요.”
“!?”
“도주하고 나서 사이드미러로 봤습니다. 피해자 뒤에 한 명이 더 있었다는 걸요. 하지만 저는 악셀에서 발을 떼지 않고 도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가족을 봐서라도 선처를 부탁드립…”
“선처는 피해자 유족이랑 판사한테 바라시고요. 사이드미러로 본 그 남자 인상착의가 어떻게 됩니까?”
“……”
내 냉정한 대답에 진호가 울음을 뚝 그쳤다.
“어, 저… 정확히 기억은 안 납니다. 남자였던 것 밖에는…”
“집중해서 떠올려보세요! 당시 상황을 시각화해보란 말입니다.”
“시, 시각화… 어, 그게…”
그때.
끼익-
“안녕하십니까. 하남서 교통조사계에서 나왔습니다.”
하남서 직원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가 진호를 가리키며 치헌에게 물었다.
“이분입니까?”
“네, 맞습니다.”
“검거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희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네, 수고하십시오.”
그렇게 사무실을 나가려던 그들을.
“잠시만요.”
내가 붙잡고 말했다.
“현장에 피의자와 피해자 외에 한 명이 더 있었습니다.”
“… 예?”
“이에 대한 수사도 필요합니다. 이 사건, 단순히 교통사고 사망사건이 아닐지도 몰라요. 피의자 진술 및 주변 CCTV 통해서 단서 및 증거 찾아보시고 진전 있으면 저희 쪽으로도 연락 주십시오. 저희도 힘써서 수사하고 있겠습니다.”
“……”
다른 부서 직원. 그것도 타청 직원을 지휘하듯 말하는 것.
이는 듣는 당사자에게 언짢을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쏘아붙이듯 얘기하는 내 태도에 당황한 탓이었을까.
“… 알겠습니다.”
교통조사계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뒤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치헌이 내게 다가왔다.
“아까부터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누군가 피해자를 저기까지 끌고 가서 차에 치이도록 만들었다고 하질 않나, 단순 사망사건이 아니라고 하질 않나.”
“팀장님도 들으셨잖아요. 피의자가 제 3자를 목격했다고.”
“그건 당황해서 잘못 본 거일 수도 있잖아. 또 실제로 봤다고 해도 그 사람은 목격자에 불과해. 하남서에서 조사하면 그만인 사안이라고.”
“잘못 본 게 아닙니다. 또 단순히 목격자도 아니에요. 분명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가 아니면 누가 피해자 차량을 사고지점으로부터 10km 밖까지 옮겼겠습니까?”
“…!”
“그가 진범이에요. 피해자가 차에 치여 죽도록 만든 진범이요.”
내 말에 치헌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그 진범이란 놈이 피해자를 저까지 끌고 간 놈이고, 그놈이랑 화물차 운전자랑 공범이란 얘기야?”
“아뇨. 화물차 운전자는 과실로 피해자를 충격한 게 맞습니다. 스키드 마크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피해자가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차를 미처 제동하지 못하고 사고를 낸 거예요.”
“그럼 네가 말한 진범이 피해자를 도로 쪽으로 밀기라도 했단 거야?”
“그것도 아닙니다. 그저 진범의 과실로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거예요.”
“… 무슨 소리야? 둘러말하지 말고 그냥 정태 네가 생각하는 당시 상황을 쭉 다 말해봐.”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의 치헌.
옆에 있는 경수와 기섭, 현민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까 말씀드렸듯 이 사건은 자살이 아닌 타살입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차에 뛰어든 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런 상황을 만든 거예요. 정말 피해자를 죽게 만든 진범은 따로 있다는 얘깁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하남의 산길에서 차에 치인 뒤 저수지로 떨어져 사망한 상황. 이건 여러모로 ‘이상한 상황’입니다. 자살에도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지만 마찬가지로 타살에도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죠. 범인이 피해자를 진즉 죽이려 했다면 굳이 저기까지 가서 피해자가 차에 부딪히는 상황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더라도 ‘너무 어렵게 죽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지. 사실 살인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저렇게 어렵게 죽일 필요는 없지. 조용하고 깔끔하게 죽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많으니까.”
“따라서 피해자가 차에 치여 사망한 건 진범도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
“예기치 못하게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거죠.”
내가 설명할수록 궁금증이 더 커지는 듯한 치헌과 경수의 표정.
“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을까. 이를 유추하기 위해 피해자가 사건 현장으로 가게 된 장면을 머릿속으로 재현해봤습니다.”
머릿속 조각들이 자리를 빠르게 찾아갔다.
“하남서 직원들이 수사한 대로 피해자는 자기 차를 타고 사고 장소까지 왔을 겁니다. 하지만 운전을 하지는 않았어요. 운전은 진범이 했고 피해자는 조수석에 기절해 있었을 겁니다.”
“운전은 진범이 했다고? 게다가 피해자는 기절?”
“여기 하남서 직원이 보내온 피해자 차량 사진을 보십시오.”
나는 피해자 차가 있는 현장 사진을 내보였다.
“운전석 시트를 보시면 상당히 앞으로 당겨져 있습니다. 신장 190cm에 몸무게 100kg가 넘는 피해자가 도저히 운전할 수 없을 정도로요.”
“아…”
“다른 사람이 운전했다는 겁니다. 그가 진범인 거죠.”
“음, 그래 운전은 다른 사람이 했다고 치고. 피해자는 왜 기절을 해 있었다는 거야?”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피해자는 하남 쪽으로, 그 중에서도 이 산길 쪽으로 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쪽으론 연고도 없고 갖고 있던 사건 중에 하남에 관련된 사건도 없었죠. 만약 피해자가 제정신이었다면 이 방향으로 운행하는 운전자를 만류했을 겁니다. 아니, 그 전에 정신이 있었다면 운전대를 내주지도 않았겠죠. 당시 피해자는 운전을 할 수도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차를 모는 운전자를 말릴 수도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던 거죠.”
“특수한 상황이라면, 술에 만취한 그런 상황을 말하는 거야?”
“술이 아니라 GHB 같은 약에 취했을 겁니다.”
“GHB!?”
그 말에 치헌은 놀라 크게 눈을 뜨며 물었다.
“납치 같은… 상황이었다는 거야?”
“네.”
“그렇게 운행하던 와중에 피해자가 의식이 들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거고?”
“맞습니다.”
이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치헌과 경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물차 운전자는 분명 피해자가 비틀거리며 도로로 튀어나왔다고 했어요. 부검의가 혈중알코올농도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 않았으니 술에 취한 건 아닐 겁니다. 약일 확률이 높아요. 특히 GHB 같은 약물은 인체에 들어간 지 6시간 정도만 지나도 완전히 분해되어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GHB일 확률이 높습니다.”
지난 조선족피의자 여성 살인사건에선 피해자의 입 주변과 현장 바닥에서 GHB를 검출했다.
GHB는 인체에 들어가면 금방 분해되어 검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물뽕이 범죄에 많이 악용되는 것이다.
“비틀거릴 정도로 약에 취한 피해자가 직접 운전을 했을 리는 없으니 운전석엔 다른 사람이 있었고, 피해자는 조수석에 쓰러져 있었던 게 맞습니다. 운행 중에 갑자기 의식이 든 거죠. 위험을 감지한 피해자는 곧장 차에서 내려 도주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화물차에 치이게 된 겁니다.”
“음… 좋은 추측이긴 한데, 그 가정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너무 부족한 상황이야. 일단 지금으로선 현장에 제 3자가 있었다는 증거도 화물차 운전자의 진술 하나밖에 없다고.”
치헌의 말대로 아직 내 가정에 대한 증거는 빈약하다.
현장에서 발견된 스키드마크와 피해자의 점퍼 조각 외엔 그 어떤 물증도 발견된 게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 곧 하나 둘 씩 증거가 나올 겁니다.”
나는 내 추론이 확실하다고 믿고 있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시각화해봤을 때 오직 이 장면만이 모든 단서에 부합하니까.
그때.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사무실 전화가 울렸고.
“네, 광수대 1팀 고경수 경위입니다.”
경수가 전화를 받았다.
그가 몇 차례 응답을 하더니.
“팀장님.”
치헌을 돌아보고 말했다.
“피해자 차량 감식결과 나왔답니다.”
그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