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opaths are good at investigating RAW novel - Chapter 99
99화. 해결점.
“오수가 두목의 지시 없이 경찰을 납치하는 중대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을 겁니다. 대답하세요. 왜 경찰을 납치하라 지시한 겁니까? 혹시 사주를 받은 겁니까?”
“……”
“애초에 식당에서 패싸움 따윈 없었을 겁니다. 오수는 왕청현 씨에게 대들다가 죽임을 당한 거에요. 그 후에 조직원들을 시켜 리자헌을 범인으로 몰고 자신의 범죄를 은폐한 거죠. 가족이 보고 싶다고 소리친 죄밖에 없는 오수를 왜 죽였습니까?”
“……”
점점 표정이 구겨지곤 있지만 여전히 대답을 못하는 청현.
그의 표정에서 여러 가지 정황이 읽혔다.
“가족의 행방에 대한 얘기를 발설하면 안 되는 거였군요.”
“…!”
“오수의 가족을 데리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정보가 퍼지니까요. 그래서 난리치는 오수를 입을 막으려 죽여 버린 거예요.”
“……”
“왕청현 씨도 함구하고 있는 걸보니 당신의 가족도 그들의 손에 있나보네요.”
“!”
그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뜸과 동시에.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내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켜보니 모르는 번호.
= “여보세요?”
= “탁정태 형사님? 저 남부지검 이정재입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왜 대장인 치률이나 팀장 치헌을 거치지 않고 나한테 직접 전화를 했을까.
= “어떻게 아신 겁니까?”
= “… 네?”
= “목격자들의 진술이 거짓이라는 거. 어떻게 아셨냐구요.”
= “…!?”
= “저희 쪽에서 구치소 내 CCTV를 모두 확인해 본 결과 목격자 중 세 명은 범행을 목격할 수 없는 각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제 내 심증뿐만 아니라 물증으로도.
= “게다가 부검 결과를 보니 팔로 목을 조른 게 아니랍니다. 넓은 천으로 조른 거예요. 구치소 내에서 구할 수 있는 넓은 천은…”
내가 짚었던 추론이 현실이 되고 있었다.
= “수형복 밖에 없습니다. 당시 식당 내에서 상의를 벗고 있었던 수감자는…”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 다시 이었다.
= “청현파 두목인 왕청현. 그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 “……”
= “그리고 피해자가 범인을 깨물었는지 피해자의 입술에 혈흔이 있었는데, 그 피의 주인도 왕청현으로 밝혀졌습니다. 지금쯤 아마 팔이나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을 겁니다.”
나는 가만히 말을 들으며 붕대 감은 청현의 손을 응시했다.
= “이 사건, 처음부터 다시 다 수사를 해야 합니다. 일단 제가 구치소 가서 왕청현을 데려올 테니 광수대 1팀이 목격자 진술 다시 한 번 받아주실 수 있겠…”
= “이미 받고 있습니다.”
= “… 예?”
= “왕청현도 지금 제 앞에 있고요.”
= “…!?”
= “왕청현, 제가 데리고 검으로 들어가겠습니다.”
*
우리는 정재의 말을 참고해 참고인 재조사까지 끝냈다.
현장을 볼 수 없는 각도에 있었다던 참고인들은 끝까지 범행을 목격했다고 우겼다.
남부지검 검찰조사관에게 영상자료까지 받아 보여줬을 땐 그 기세가 좀 누그러지긴 했지만 진술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이후 남부지검에 도착해 내가 왕청현을 정재에게 인계했을 땐.
“제가 더 알아야할 게 있습니까?”
그의 눈빛에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신뢰가 느껴졌다.
같은 사건을 맡으며 이제는 서로 진심으로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나는 수사하며 내가 알아낸, 그리고 내가 그리고 있는 장면들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정재는 내용 일부를 메모까지 하며 내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신병과 내용을 인계하고 지방청으로 복귀하기 위해 관용차로 돌아온 후.
“팀장님.”
내가 치헌에게 물었다.
“국내 조선족 범죄조직원들의 가족은 보통 어디에 거주합니까?”
“한국에 같이 사는 경우도 있고 중국에 있는 경우도 있지.”
“중국에요? 그럼 가족과 떨어져서 산다는 말입니까?”
“어. 조선족들은 사실 귀화한 애들 빼고는 다 중국 애들이야. 중국 내 여러 소수 민족 중에 하나지. 중국에 사는 게 이상한 게 아니란 얘기야.”
“오수 가족관계를 조사해보니 아내와 아들이 있다고는 나와 있는데 국내에선 거주지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럼 중국에 있는 건가요?”
“아마 그럴 거야. 원래 중국에 가족이랑 함께 거주하다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국에 혼자 오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 다 같이 불법 체류하다가 가족만 걸려서 추방되는 경우도 있어. 그럼 국내에 혼자 남게 되는 거지.”
“오수는 사망 직전에 자기 아들을 누군가가 데려갔다고 했습니다. 중국에 거주 중인 아들을 누가 데려갔을까요?”
“흠, 국내 범죄를 중국 본토에까지 연계하는 건 좀 오버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만약에 데려갔다면…”
그가 잠시 말을 흐렸다가 다시 이었다.
“중국 흑사회 애들이 데리고 갔겠지.”
“흑사회요?”
내가 묻자 치헌이 반쯤 몸을 돌려 날보고 말했다.
“네가 하도 오수 샅샅이 뒤져대길래 나도 옛날에 내가 조사했던 자료들 좀 훑어봤지. 국내 조선족 범죄조직 중에선 애초에 한국에서 생겨난 조직도 있지만 중국에서 건너 온 조직도 있어.”
“아…”
“흑사회는 중국 내 각종 범죄조직을 통틀어 부르는 말인데, 오수 자료를 살펴보니 이놈은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 룽징이라는 곳에서 활동하는 뱀파 제1행동대장 출신이더라고.”
말이 막힘없이 나오는 걸 보니 치헌은 그동안 오수 뒤를 캐는 나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따로 자료조사를 많이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오수가 들어간 청현파 왕청현은 뱀파 두목의 오른팔이야. 그러니 오수가 처음부터 머리를 숙이고 왕청현 밑으로 들어간 거야. 국내에선 오수가 오수파를 만들어 먼저 활동하고 있긴 했지만 본래 조직 서열을 거스를 수 없었던 거지.”
“그럼 오수의 가족을 데려갔다는 이들은…”
“뱀파의 윗대가리들이겠지.”
치헌의 말을 들으며 순간 머릿속 퍼즐판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다.
새롭게 생겨난 퍼즐 조각들이 어지러이 그 위를 날아다녔다.
“그런데 뱀파의 간부들이 왜 한국의 일에 개입했을까요?”
“실제론 한국 세력이 개입한 것일 수도 있어.”
“…?”
“중국 흑사회랑 연계된 국내 세력 말이야.”
“…!”
그렇게 치헌의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끼익-
지방청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사무실로 올라가던 중.
“저도 아까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봤는데요.”
이번엔 경수가 입을 열었다.
“뱀파의 간부들이 오수의 가족을 데려갔다면, 아마 오수에게 무언가를 협박하려고 그랬겠죠?”
“그렇겠지. 어떤 지시를 꼭 이행하라거나 그런 거 아닐까?”
“그럼 처음부터 가족을 볼모로 데려가진 않았을 거 같은데요. 조직 내 모든 조직원에게 그런 식으로 지시를 내릴 리는 없을 테니까요.”
“음…?”
“평소엔 지시를 잘 이행해오던 오수가 갑자기 어떤 지시를 거부했고, 이를 꼭 이행시키기 위해 가족을 볼모로 잡은 거 아닐까요?”
“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그 지시는 최근의 지시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지시는 오수도 거부할 만큼 께름칙한 일이었고요.”
“그럼 그 지시가…”
“이형준 형사 납치였던 거죠.”
벌컥-
그렇게 우리는 사무실에 도착했고.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딸깍- 딸깍- 딸깍-
이전에 보던 CCTV 영상들을 다시 돌려봤다.
치헌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뭐야. 실컷 오수 사건 물어보더니, 사무실 오자마자 보는 건 박지석 사건 CCTV네?”
“오수 사건 때문에 보는 겁니다.”
“… 뭐?”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 치헌에게 내가 설명했다.
“팀장님 말씀대로 중국 흑사회가 국내 불상의 세력과 손을 잡고 오수에게 어떤 지시를 내리고 압박을 가한 거라면, 그리고 고주임님 말씀대로 그 지시가 최근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저희가 집중해야 할 사건은 이형준 형사 사건이겠죠.”
“그런데 왜 박지석 CCTV를 보고 있냐는 말이야.”
“이형준 형사 사건에 대한 조사는 파볼 만큼 파봤습니다. 화물차 운전자를 찾고 피해자 차량에서 오수 DNA까지 특정해 추가 수사를 했지만 그 배후에 대해 더 밝혀진 건 없었죠. 구치소 내 다른 조선족 범죄조직원들도 모두 함구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이럴 땐 다른 사건에서 연계점을 찾아야 합니다.”
“… 그 연계점을 찾을 수 있는 사건이 박지석 사건이란 거야?”
“네. 더 정확히 말하면 ‘버팔로’고요.”
“…!”
“전에도 말씀드렸듯 이형준 형사는 질서계 근무 당시부터 버팔로 사건에 관한 수사를 계속 해왔습니다. 살해 시점과 계기를 봤을 때도 버팔로와 연관이 되어 있을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이전 버팔로 관련 수사 건인 박지석 사건을 좀 더 파보고 있습니다.”
“……”
치헌이 조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국내 범죄를 중국으로 확대함에 이어 다른 사건에까지 연계시키는 게 과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는 이내 탁한 표정을 풀고 옅게 웃었다.
“정태 네가 그렇게 집중하는 덴 이유가 있겠지. 여태껏 한 번도 네가 헛된 노력을 한 적은 없으니까.”
“……”
“경수랑 내가 구치소에서 받은 진술들 정리할 테니까 너는 너 할 거 계속 집중해서 해. 우리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하고.”
“알겠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제대로 집중해서 CCTV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사건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전후 맥락을 살피라.’는 정우의 말을 되새기면서.
나는 틈틈이 해오던 대로 박지석 사건 관련 범행시간으로부터 앞뒤로 30분 씩 시간을 더 설정한 뒤 모든 CCTV를 차례대로 훑어봤다.
박지석은 강은영의 집에서 나온 뒤 데쓰벤에 납치되어 벤 안에서 장기적출 작업을 당하며 사망했다.
박지석 이동경로에 더해 데쓰벤 이동경로에 있는 CCTV까지 모두 살펴보려니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했다.
치헌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지만 팀원들 모두 각자 일을 맡고 있어 분담을 하기도 껄끄러운 상황.
나는 CCTV 열람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먼저 모니터에 CCTV화면 네 개를 동시에 띄웠다.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모든 것들을 숫자와 도형, 색깔로 구분했다.
그렇게 구분한 뒤 네 개의 화면을 빠르게 번갈아 보며 ‘다른 리듬’을 찾아보려 했다.
특이점을 리듬으로 찾는 것이다.
집중력이 급속도로 올라갔다.
모니터 내에 각종 모양과 색깔, 숫자가 정신없이 뒤엉켰다.
하지만 난 그 사이의 순서와 리듬을 모두 캐치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움직임도 놓치는 것 없이 모두 눈에 담았다.
그렇게 완전히 집중을 하고 있으니.
“정태. 퇴근 안 하냐?”
“……”
벌써 퇴근 시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다.
모니터 속 움직임은 모두 캐치하고 있었지만 현실의 감각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순간만큼은 나는 영상 속에 존재했고, 나도 하나의 도형이자 색깔이었다.
“오늘은 같이 야근 못해줘. 와이프 모임 있어서 애 보러 들어가야 돼.”
“저도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
어느 순간 사위가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모두 나간 모양.
집중력이 더 올라갔다.
이제 눈을 이리저리 굴릴 필요가 없었다.
네 개의 화면은 하나의 도화지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움직임을 읽어내기 위해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다.
딸깍- 딸깍-
나는 영상 배속을 더 높였다.
‘공남-416, 공남-330, 영북-275, 영북-198…’
영상이 넘어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이제는 박지석과 데스벤이 서울시내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그들과 함께 움직인 차량, 사람, 지나간 건물.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신들린 듯 빠르게 영상을 열람한 끝에.
‘……’
드디어 모든 영상 열람을 마쳤다.
시계를 보니 23시 57분.
원래라면 한 개의 팀원 전체가 일주일 정도를 열람해야할 양의 영상을 혼자서 7시간 정도 만에 다 봐버린 것이다.
“후우…”
다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마와 등은 땀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찾은 특이한 리듬의 주인공은.
‘13번 검정색 네모.’
풀어서 말하면 ‘검정색 SUV 중 영상에 13번째로 나온 차량’이다.
이 차는 내가 본 영상 절반 이상에 노출이 되었다.
다시 말해 박지석과 데쓰벤, 둘의 이동 경로와 거의 같은 경로로 계속 이동을 했다는 말이다.
분명 이 차에 무언가 있다.
나는 차량 번호판이 잘 나오는 영상을 찾아 번호를 조회해봤다.
그랬더니.
‘…!?’
드디어 의미 있는 무언가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촤르르르르-
분명 형준의 수사 서류에서 봤던 것이었다.
서류 뭉치를 빠르게 넘기며 찾아보니.
‘!’
맞았다.
구석에 별도로 표기된 이곳.
이곳이 박지석 사건의 해결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해결점은 오수와 이형준 형사 사건의 해결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끼익-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타닥-
‘??’
천장의 불이 다 꺼졌다.
“누구… 십니까?”
내가 고개를 돌려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 내 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