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100)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99화(100/176)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99화
외신(外神)
아우터 갓(Outer Gods)
태고부터 수많은 우주를 창조해 온 절대적인 존재들.
이타림
[……한때는 우리 세계의 ‘신’도 그들 중 하나였나이다.]언젠가 베르와 나눴던 대화가 수호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애초에 이 지구가 속해 있는 세계를 창조한 신 또한 이타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존재라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죽음’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은 실로 처참했다.
천사들의 반란
신의 사도로서 태어난 천사들은 어느 날 진실을 깨닫고 말았다.
자신들이 섬기던 신은 선하지도 옳지도 않았으며, 그저 창조와 파괴를 즐기는 잔학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달은 천사들은 결국 신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고, 성공했다.
[그렇게 신은 결국 죽었나이다. 그것도 자신이 창조한 천사들의 손에 의해.]다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신이 없는 세계.
주인이 없는 땅.
이 세계에 잔존하는 막대한 마나는 그야말로 먼저 줍는 자가 임자가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저 머나먼 차원에 흩어져 있던 외신들, 다른 이타림들이 눈치채고 말았다.
[그때부터 외신들이 우리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지요.]처음엔 선착순 싸움이었다.
관건은 누가 먼저 도착해서 이 땅에 깃발을 꽂느냐.
이곳에 누가 살고 있든.
이곳에서 죽은 이타림이 창조한 것이 무엇이든.
모조리 파괴하고 먹어 치우면 되는 지극히도 간단한 달리기 경주였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예상치 못한 변수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변수가 바로…….
[우리들의 왕, 바로 소군주님의 아버님이시지요.]이 땅의 신은 죽었으나, 그 죽음 자체를 다스리는 새로운 왕이 이곳에 있었다.
가장 위대했던 광휘의 파편이자, 그림자 군주 성진우.
즉, 수호의 아버지가 대군을 이끌고 우주에 나가 이타림의 군대를 막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바야흐로 ‘외신 전쟁’의 서막이었다.
[우리의 전쟁은 더없이 치열했고, 끝도 없이 지속되었나이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이 전쟁의 승패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저쪽은 끝도 없이 창조를 반복하는 존재였고, 이쪽은 아무리 죽어도 다시 몸을 일으키는 불사의 군대였으니까.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싸우고 또 싸울 뿐.
[그러다 그 팽팽한 균형을 깨기 위해 이타림 측에서 다른 수를 시도했나이다.]바로 우회.
성진우가 지키고 있는 앞문이 너무 단단해서 도저히 뚫을 수 없으니, 멀리 빙 돌아서 뒷문을 공략하기로 한 것이다.
[그곳이 바로 지구.]사실 지구는 이타림 입장에선 가장 맛없는 구역이었다.
다른 차원들에 비해 잔존하는 마력이 너무 약해서 먹을 것이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뚫고 들어갈 허점이 많은 곳이기도 했다.
그렇게 지구를 타깃으로 정한 이타림의 사도들은 그 즉시 지구로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해 차원의 벽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뜩이나 불완전했던 차원의 틈새가 제멋대로 꼬이기 시작했고, 지구에 우후죽순 게이트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게이트에서 지구를 침략한 이들은 의외로 이타림의 군대가 아닌, 차원 난민들이었다.
군주 전쟁에서 패배한 뒤 갈가리 찢겨 떠돌던 죽은 군주들의 종족들이 지구를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에 이타림의 사도들이 암약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이런 형태였나.”
수호는 섬뜩한 눈빛으로 광혈폭군을 노려봤다.
미스트 번.
죽은 인간을 심지 삼아 활활 불타오르는 화염 마수.
그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죽은 악마의 시체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미스트 번과 명백히 다른 점이 있긴 했다.
인간으로 만든 심지는 금방 불타 버려 재가 되지만, 악마로 만든 심지는 인간에 비해 월등히 견고했다.
화르륵!
수호의 검에 잘려 나간 목 위로 화염이 일렁거리며 얼굴 비슷한 형체가 생겨났다.
그 모습은 마치 화염의 마수가 ‘악마의 시체’라는 전신 갑옷을 입고 있는 듯한 형상이었다.
[참으로 달팽이 같은 놈이로고.]베르가 가소롭다는 듯 혀를 찼다.
“폭군왕이시여!”
“폭군왕이시여!”
사방에서는 광혈폭군의 등장에 악마들은 너나없이 덜덜 떨며 엎드려 절을 했다.
마치 사이비 교주를 만난 광신도들 같은 열띤 분위기.
하지만 정작 광혈폭군은 그런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지금 이곳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절을 하지 않는 수호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흥미롭군.”
이윽고 흥미로운 시선으로 수호를 바라보던 광혈폭군의 입이 열리며 기괴한 울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마 이런 곳에서 너 같은 놈을 발견할 줄이야.”
꿀꺽.
그 말에 수호는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내 정체를 눈치챘나?’
이타림의 사도에게 이쪽에 그림자 군주의 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건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유일한 약점이니까.’
수호는 무언가 알아차린 듯한 광혈폭군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사용하는 힘의 정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이타림’에게 드러난다면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지는 자명한 일이었으니까.
설마 이런 곳에서 이타림의 사도와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기에 수호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크흐흐!”
광혈폭군은 입가를 길게 찢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설마 아직까지 살아 있는 악마 귀족이 있었을 줄이야!”
……으음?
순간 긴장하고 있던 수호의 표정에서 맥이 탁 풀렸다.
베르도 마찬가지인지, 수호의 그림자 속에서 작게 속삭였다.
[크흠. 아무래도 지금 소군주님께 볼칸과 에실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그런 것 같나이다. 차라리 잘된…….]그때였다.
광혈폭군의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놀랍구나. 심지어 군주의 힘을 이어받은 후계자라니.”
[……!]“……!”
그 말에 수호와 베르의 눈이 동시에 부릅떠졌다.
파밧!
수호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놈을 베어 버릴 태세를 갖췄다.
머릿속에선 이미 놈을 최대한 빨리 죽일 방법 13가지를 떠올렸다.
[소군주님! 놈을 여기서 무조건 죽여야 합니다! 놈을 여기서 놓쳤다간 소군주님의 정보가 적진에 새어 나갈 수도 있……!]그때였다.
“대체 어떻게 악마족이 송곳니 군주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거지?”
[끼엑?]“어떻게 알았지? 감이 좋은 놈이군.”
[……소군주님?]광혈폭군의 물음에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수호였다.
수호는 그림자 밑에서 베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광혈폭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를 바보로 아는가? 네 몸에서 그렇게 짐승의 냄새가 풀풀 진동하는데 모를 수가 없지.”
[짐승들의 왕, 송곳니 군주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광혈폭군을 주시합니다.]멀리서 라칸의 혀 차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었지만 수호는 뻔뻔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리고 당당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네 말이 맞다. 나는 송곳니 군주의 힘을 이어받은 악마 귀족이지.”
“과연 그랬군. 크하하. 좋구나, 좋아! 설마 이런 변방에서 너 같은 놈을 발견하게 될 줄이야!”
그 당당한 모습이 먹혔는지, 흡족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광혈폭군이었다.
그 웃음소리가 콜로세움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악마들은 더더욱 몸을 움츠렸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수호는 자신의 몸에 그레이를 강신시킨 상태였다.
또한 볼칸의 뿔을 머리가 아니라 손에 들고 있긴 했지만, 에실처럼 자신의 뿔을 무기화시킬 수 있는 악마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웠다.
‘좋아. 가까스로 정체는 숨겼다.’
[이, 이래도 되는 거 맞아?]회심의 미소를 짓는 수호에게 에실의 어이없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했다.
전투 중에 퀘이나 베르의 모습이 밖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다행히 광혈폭군은 거기까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대체 무슨 계획인 건데?]볼칸의 뿔 속에서 에실이 속삭이자, 수호는 오히려 그 말을 고스란히 광혈폭군에게 돌려주었다.
“그래서 너는 대체 무슨 계획이지?”
수호는 자신이 진짜 악마 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더없이 도도하고 거만한 눈빛으로 광혈폭군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 말에 광혈폭군은 가소롭다는 듯 수호를 쳐다봤다.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들어온 놈이었나?”
“잔말 말고 이런 변방에서 노예들까지 부려 가며 지옥철을 모으는 이유나 말해.”
이곳엔 수많은 악마들이 노예로 부려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광산에서 지옥철을 캐는 것뿐이었다.
그토록 많은 지옥철을 모아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 이유로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설마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건 아니겠지?”
에실이 말한 적 있듯이 악마계에서 무기를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지옥철이었다.
마기에 물든 지옥철은 단순히 단단할 뿐만 아니라, 마기에 가장 잘 반응하는 광석으로 상당한 마력 증폭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한 수호의 물음에 광혈폭군은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두 팔을 벌려, 이 넓은 콜로세움의 악마들을 가리켰다.
“자! 보이느냐? 이미 이곳은 완벽하게 내 지배하에 있다.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여긴 고작해야 파편화된 악마계에 불과하지.”
이곳을 굳이 변방이라 부르는 이유.
차원의 틈새에는 여기저기 흩어져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악마계가 수없이 많았고, 이곳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나는 이놈들을 훈련시켜 그 모든 악마계들을 전부 정복할 생각이다. 그리고…….”
수호를 바라보는 광혈폭군의 표정이 더욱 짙어졌다.
“다른 차원까지 전부 내 발아래에 둘 것이다. 죽이고 또 죽여서, 모조리 먹어 치울 것이다.”
그랬다.
광혈폭군, 아니 이타림의 사도는 이곳을 시작으로 악마들을 이용해 악마계를 손아귀에 넣는 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차례차례 다른 차원계까지 정복하다가 결국…….
‘지구까지 손을 뻗겠지.’
이타림의 사도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게 된 수호는 미간을 가늘게 좁혔다.
한편 광혈폭군은 더없이 사악한 기세를 끌어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곤 그 기세를 수호를 향해 집중시켰다.
“그래서 바로 너 같은 놈을 찾고 있었다.”
“나 같은?”
“그래. 너 같은 악마 귀족의 육체를 갑옷으로 입는다면, 나는 또 얼마나 강해질까? 크흐. 상상만 해도 짜릿하군.”
황홀하다.
악마 간수장의 몸을 갑옷처럼 입고 있는 광혈폭군은 이미 수호의 육체를 손에 넣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것은 결코 허풍도 착각도 아니었다.
콜로세움을 가득 채운 악마들이 전부 그의 노예였으니까.
하지만 이 압도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도…….
‘베르.’
수호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베르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런 놈들과 계속 싸워 오신 건가? 혼자서?’
[그렇나이다.]베르는 진중하게 대답했다.
[왕께선 언제나 홀로 싸우셨지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그리고 지금 이 순간조차도…….
수호의 아버지 성진우는 여전히 고독하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아무도 다다를 수 없는 저 머나먼 우주의 끝자락에서.
‘……그렇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호.
그 눈빛이 고요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엄청 심심하시겠어.”
그러니까…….
“직접 만나러 가야겠다.”
솔직히 가 봤자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뿐인 아들이 되어서는, 타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버지의 어깨 정도는 주물러 드리러 가야 하지 않겠어?
“……가면서 선물도 좀 바리바리 싸 들고 가면 더 좋겠지.”
수호의 시선이 위압감을 뿜어내는 광혈폭군에게로 향했다.
그래, 선물.
선물이다.
일단은 이 앞에 있는 잔챙이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