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161)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160화(161/176)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160화
쿵.
“자, 이게 전부 길드 창설에 필요한 서류다.”
“……많네요.”
수호는 자신의 앞에 수북하게 쌓인 서류들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수호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유진호는 씨익 웃으며 가장 위에 있는 서류 뭉치를 집어 들며 설명했다.
“서류가 많을 수밖에. 네가 설립하게 될 길드는 이미 시작부터 대형 길드나 다름없거든.”
“스케빈저 길드 때문인가요?”
“그래. 스케빈저 길드는 이미 ‘메아리 숲의 샘물’을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수익의 절반이 고스란히 네 길드의 수입으로 잡히겠지. 그런데 서류가 적을 리가 있나.”
유진호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템 : 메아리 숲의 샘물’
빙하 던전의 아이스 엘프들에게서 얻은 그 해독 포션은, 스케빈저 길드의 여러 검증을 통해 그 효력이 입증되었다.
수호 입장에서야 이미 아이템 정보를 봤기 때문에 그 효과를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헌터들에게 돈을 받고 팔기 위해서는 다소 번거롭더라도 그런 검증 절차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게 해독 포션으로서의 가치가 확인되자, 그 직후 스케빈저 길드는 본격적으로 해독 포션 사업을 시작했고.
벌써부터 세간의 반응은 뜨거웠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독을 사용하는 마수를 사냥할 때는 해독 스킬을 가진 헌터가 필수였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헌터를 동료로 두고 있는 건 아니었고.
그런 상황에선 결국 번거롭더라도 방독면을 착용한 채 전투에 임해야 했다.
혹은 전투 후에 협회 측 힐러를 찾아가서 해독을 받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해독 포션만 있으면,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호는 스케빈저와의 계약으로 인해, 앞으로 메아리 숲의 샘물을 판매한 수익금의 절반을 넘겨받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초대형 계약은 무조건 길드 간에만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원칙.
“즉, 성수호 씨의 길드는 설립과 동시에 미국의 초대형 길드와 긴밀한 협력 업체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저희 아진 소프트가 중간에서 조율하며 관리 감독을 해야 해서 삼자 계약서도 필수…….”
“네. 그래서 어디서부터 사인하면 되죠?”
익히 알고 있던 사항이었기에, 수호는 변호인의 설명을 귓등으로 흘리며 펜을 집어 들었다.
그래도 유진호 덕분에 복잡한 계약서와 서류 절차들은 다 해결했으니, 이 수많은 서류에 직접 서명만 하면 길드가 창립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호가 열심히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유진호가 갑자기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수호를 쳐다봤다.
“그보다…… 길드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 하나 남아 있을 텐데.”
“그게 뭐죠?”
그 표정에 수호의 눈빛도 진지해졌다.
고모부 유진호는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아버지와 가장 가까운 동료였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라면 대체 무엇일까.
유진호가 진지하게 물었다.
“길드 이름은 정했냐.”
“아.”
난 또 뭐라고.
김 빠지는 대답에 수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동안 워낙 바빠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두꺼운 서류들이 완성되려면, 가장 상단에 길드명을 적어 넣어야 했다.
“음. 그냥 솔플 길드라고 하죠 뭐.”
“자, 잠깐!”
“……?”
갑자기 크게 당황하는 유진호의 반응에 수호는 어리둥절했다.
유진호의 표정이 굉장히 복합적이었던 것이다.
이걸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유진호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참나. 누가 형님 아들 아니랄까 봐.’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그리운 기억이 떠오른 유진호였다.
옛날에 성진우도 길드 이름을 대충 솔플 길드라고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왜요? 이상해요?”
수호의 물음에 유진호가 되물었다.
“……왜 그 이름으로 하려는 거냐?”
“뭐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까요. 앞으로도 길드원을 더 뽑을 생각도 없고요.”
“그 말은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너 혼자 싸우는 건 아니잖냐. 그림자 병사들도 있고.”
“음.”
“무엇보다 너무 촌스럽단 말이다! 나중에 길드 이름이 알려질수록 여러 곳에 노출될 텐데!”
듣고 보니 과연.
논리정연하고 필사적인 유진호의 설득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어쩌면 지금부터 평생을 함께하게 될지도 모르는 길드였다.
길드 이름에는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의미를 담는 것이 옳았다.
‘그래서 ‘솔플’을 택한 건데…… 그 의미가 잘 와닿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라.
수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우진 길드’는 어때요?”
“우진?”
어감을 되새겨 보던 유진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마 그거 형님의, 네 아버지의 이름을 거꾸로 한 거냐?”
“네, 그렇기도 하고 다른 뜻도 있어요.”
“무슨 뜻이지?”
“우주(宇宙)의 우(宇), 나아갈 진(進).”
수호는 자신의 목적을 되새겼다.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함께 성장할 길드에 붙여 주고픈 이름.
“둘이 합쳐서 ‘우주로 나아가다’라는 뜻의 우진(宇進)입니다.”
“…….”
이어지는 수호의 대답에 유진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는 반드시 아버지가 계시는 우주로 나아갈 거니까요.”
……그렇게 우진 길드가 창설되었다.
* * *
길드를 만들고, 수호는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에 나섰다.
막상 길드장이 되어 보니, 길드가 없을 때와 있을 때는 차이가 컸다.
의외로 길드장이 C급 헌터라는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요소는 어차피 길드원을 모집할 때나 필요한 일이지, 공략할 던전을 선점하는 데 필요한 건 결국 ‘돈’이었다.
그리고 수호는 이제 돈이 많았다.
“10억.”
“……!”
“일단은 10억으로 최대한 등급이 높은 던전들 위주로 선점해 줘요, 형.”
“아, 알았어. 아니!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진짜 오랜만에 그림자 던전 밖으로 나온 임도균은 갑자기 부자가 된 수호의 모습이 적응이 안 됐다.
하지만 돈을 버는 것이 어렵지, 쓰는 게 뭐가 어렵겠는가!
“그리고 다음 달에 스케빈저에서 들어올 돈이 이번 달보다 훨씬 많을 테니까, 그것도 감안해서 미리 예약도 좀 해 주고요.”
“넵!”
힘차게 대답하는 임도균.
그런 그의 움직임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수호는 눈치챘다.
‘빠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직접 임도균을 던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봤더니 확실해졌다.
“으아악! 나, 나는 왜 데려온 거야!”
임도균의 역할은 짐꾼.
수호가 그림자 병사들과 사냥한 마수들을 사이를 뛰어다니며 마정석을 채취하는 일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던전 공략이 전부 마무리된 후에 해도 상관없었다.
아니면 구태여 임도균을 시킬 필요 없이 그림자 병사들에게 맡겨도 됐고 말이다.
하지만 굳이 이번에 임도균을 직접 데리고 들어온 이유가 있었다.
“……오. 진짜 잘 도망치네.”
수호는 감탄했다.
암무트는 임도균에게 줄곧 달리기만 시켰다.
그 결과, 임도균의 하체는 극한까지 단련되었고, 지금도 자신에게 덤벼드는 중급 마수들에게서도 잘도 도망쳐 다니는 중이었다.
‘마력은 여전히 E급이지만, 근력 자체가 월등히 높아졌어. 이 정도면…… 혼자서 D급 마수 이상도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달리기가 빨라졌다고, 공격력까지 높아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임도균의 손에 좋은 무기를 들려 준다면 어떨까?
‘가령 활이라든가.’
물론 헌터용 활은 마력 화살이 기본.
따라서 아무리 좋은 활이라도 그게 E급 헌터의 손에 들려진다면, 공격력이 매우 형편없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한 발이라도 제대로 쏠 수나 있을까?
‘하지만 마력 화살이 아니라면 어떨까?’
“도균이 형, 이거 들어 봐요.”
“응? 아니, 네?”
엉겁결에 수호가 건넨 활을 손에 든 임도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길드장님, 이건 왜요? 나 마력량이 부족해서 이런 무기는…….”
“알고 있으니까, 일단 시위나 한번 겨눠 봐요.”
“……?”
임도균은 이해는 안 됐지만 순순히 수호의 말을 따랐다.
쭈우욱-
그렇게 그가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미노, 형상 변환.”
“……?!”
슈와아아악!
임도균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수호와 전투 중이던 그림자 미노타우로스가 자신에게 달려와, 한 줄기 검은 화살로 변한 것이다.
[미노 Lv.1]형상 변환 – 화살
“히, 히익…….”
[음무우우우!]“이, 이거 뭐야. 무서워.”
임도균은 갑자기 자신의 활에 검은 그림자 화살이 불길하게 일렁거리는 모습에 두 손을 달달 떨며 수호를 쳐다봤다.
“수, 수호야? 아니, 길드장님? 이, 이거…… 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요. 앞으로 날아가겠죠?”
“그, 그렇겠…….”
“자, 한번 쏴 봐요.”
“…….”
수호의 재촉에 임도균은 눈을 꾹 감고, 그림자 화살촉의 방향을 저 무섭게 생긴 마수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툭.
손을 놓는 순간.
[음무우우우-]쿠와아아아아아아아-!
“히이익?!”
그의 손을 떠난 검은 빛줄기가 마치 대포알처럼 거대한 마수의 몸통에 커다란 구멍을 뚫고 지나갔다.
그 모습을 멍하게 쳐다보는 임도균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뭐긴 뭡니까.”
수호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턴 형도 어엿한 우진 길드의 전투원이라는 말이죠.”
“……길드장님.”
그 말에 수호를 쳐다보는 임도균의 눈빛이 고요하게 일렁였다.
E급 헌터.
전투가 아닌 채굴꾼이나 해야 마땅한 최약체 헌터.
그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나는 약하다.’
아니.
언제나 약했다.
그렇기에…….
‘항상 도망만 쳤다.’
무서운 마수들에게서.
그리고 미스트 번으로 변해 자신을 죽이려 했던 어머니에게서.
그리고.
‘그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게서도.’
어머니.
아직도 임도균은 잠에 들면 늘 ‘그날’의 꿈을 꾸곤 했다.
항상 그 꿈속에서는 어머니였던 마수를 아무렇지 않게 죽여 버리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자신은.
-으아아악!
-도, 도균아……!
……겁에 질려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리고 도망을 치고 있었다.
그렇게 그 꿈이 끝날 때까지 영원토록.
임도균은 끝도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기 위해서.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인생은 늘 도망만 치고 있었다.’
각성 후에 달리기 스킬이 생긴 것?
그 또한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고, 당연한 이유였다.
‘나는 약하니까.’
각성을 했어도, 고작 E급.
자신은 여전히 S급 헌터인 아버지처럼 강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지금 임도균은, 엄청나게 강한 마수를 단숨에 죽인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뒤늦은 흥분으로 덜덜 떨리는 두 손.
물론 착각할 생각은 없었다.
이 힘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성수호가 임시로 빌려준 능력의 발현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없었던 용기가 샘솟는 기분이었다.
“……수호야.”
임도균은 진지한 눈빛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중요한 비밀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내 아버지는 사실…….”
“아, 사신 길드장 임태규 씨라고요? 알고 있어요.”
“임태…… 뭐? 어, 어떻게 그걸?!”
경악하는 임도균의 모습을 수호는 어처구니가 없어 하며 쳐다봤다.
“뭘 어떻게야? 닮아도 너무 닮았잖아요. 그것도 몰라보면 한국대 미대 합격증 반납해야지.”
“…….”
“아무튼 그걸 드디어 말하는 거 보니까, 이젠 좀 용기가 나나 보네요?”
“뭐?”
턱.
수호는 의아해하는 임도균의 어깨 위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눈을 빛냈다.
“그럼 이제 형네 아버지한테 형이 직접 연락 좀 해 줄래요?”
“무, 무슨 연락을?”
“안 그래도 요즘 계속 빌려준 무기 돌려 달라고 연락이 오거든요. 하핫.”
“……응?”
빙하 던전에 가기 전에 임태규가 수호에게 빌려줬던 A급 무기.
‘사신의 활(모조품)’은 어머니와 함께 떠난 아이스 엘프 시르카가 들고 가 버려서 이제 없었다.
아무리 수호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다 해도, 그래 봤자 고작 10억이었다.
메아리 숲의 샘물이 아무리 불티나게 팔린다고 해 봤자, 판매가 시작된지 고작 며칠밖에 안 지난 것이다.
그러니 그 비싼 A급 무기의 가격을 치를 돈은 아직 없었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아버지랑 화해도 좀 하시고. 혹시 가능하면 상급 던전 좀 넘겨줄 수 있냐고 부탁도 좀…….”
“…….”
더없이 환하게 웃는 수호의 건치 미소를 보며, 임도균의 표정에서 감동이 빠르게 식어 갔다.
* * *
그리고 그 시각.
“……차차!”
시르카는 하늘을 향해 사신의 활(모조품)을 겨누며 차해인을 다급히 부르고 있었다.
촤악!
그 말에 차해인도 무거운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저건 설마…….”
회색 눈보라.
그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