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29)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29화(230/260)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29화
유진호의 계획은 거시적인 의미에서 우진철의 목표와 상당히 흡사한 부분이 있었다.
‘우진철이 협회를 만들어 헌터들을 하나로 묶겠다면, 나는 돈으로 묶는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모의 훈련 프로젝트는 헌터들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일이었다.
특히나 헌터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대형 길드의 수장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 대표님, 우리 길드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해도 될까요?”
“나도 참여하고 싶네. 혹시 베타 테스트에 인원 제한이 있다면, 일단 나부터 먼저 해 보고 싶어. 내 데이터라면 얼마든지 넘겨 드리지.”
그렇게 현무강을 시작으로 다른 S급 헌터들도 강한 호기심과 흥미를 드러냈다.
사실 S급 헌터들이야말로 마음껏 훈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자신들이 훈련이랍시고 있는 힘껏 힘을 드러냈다간 온 일대가 쑥대밭이 되고 마는 탓이다.
요컨대, 천재지변급 민폐다.
중국을 방랑하며 제멋대로 온 사방에 검기를 뿌려 댔던 류즈캉이 괜히 미친 노인네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다.
그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S급 헌터들은 유진호 대표가 내건 요구 조건을 기꺼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얼마든지 응원해 주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늙은이가 말려서 뭐해? 잘 다녀오시게.”
“나도 찬성. 마동욱 할배보다 힘이 센 신입인데 알아서 잘하겠지.”
“아니, 그래서 내 질문엔 언제 대답해 줄 거야? 인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니까?”
S급 헌터들이 적극적으로 수호를 중심으로 모여들며 친근함을 드러냈다.
“모두 감사합니다.”
임태규가 조금 귀찮게 굴긴 했지만, 어쨌든 수호는 유진호 덕분에 만장일치로 S급 헌터들 다섯의 찬성표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진철 협회장과 마찬가지로, 가상 훈련 프로그램을 완성시킨 유진호의 목표 또한 성진우나 성수호의 전투에 다른 헌터들이 힘을 보태 주길 원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나중에 인류가 마주하게 될 진정한 공포를 미리 맛보여 주기 위해서지.’
지난 시대의 기억이 다 사라진 S급 헌터들을 보며 유진호는 씁쓸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2년 전에 우진철이 처음 이 기획안을 가져왔을 때만 해도, 유진호는 지난 시대의 기억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우진철과 손을 잡았었다.
하지만 수호 덕분에 모든 기억이 돌아온 순간부터, 유진호는 더더욱 회사의 총력을 다해 나혼렙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했다.
기획의 방향성이 처음보다 훨씬 뚜렷해진 것이다.
‘훈련인 건 맞지만, 사실상 대피 훈련에 가깝다.’
-무엇을 상상하시든 그 이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자신의 이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이들은 아직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니, 기대해도 좋다.
자신이 만든 게임은 난이도가 어마어마하게 높을 테니까.
‘아무리 S급 헌터라도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압도적인 난이도를 구현해 놨으니까.’
그러니 그 앞에서 한없이 절망하고 좌절하기를.
자신들의 무력함을 철저히 깨닫고 그저 살아남기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기를.
그런 강력한 경고를 모든 인류에게 던지기 위해, 유진호는 아예 노골적으로 게임 속에 제한 시간 안에 속수무책으로 도망치기에 바쁜 생존 퀘스트까지 구현해 놓은 상태였다.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입니다, 진우 형님.’
오늘따라 유독 성진우가 보고 싶어진 유진호였다.
그는 씁쓸한 표정이 되어, 이곳에 모인 이들이 전부 기억하지 못하는 이전 시대의 기억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용제와의 전투가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당장 도망치라던 성진우의 경고를 무시하고 코웃음 쳤던 국가들이 지구상에서 지워졌던 그날의 참상을.
‘……무지는 용감하다.’
그렇다.
인류는 무지했다.
원래 아는 것이 너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법.
그렇기에 그들은 무지함에서 오는 만용을 부렸다.
성진우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히려 용제의 군단과 직접 싸워 보겠다며 만용을 부렸던 수많은 헌터들과 국가들.
그 뒤로 이어진 그들의 처절한 절규와 절망, 헛된 죽음들.
유진호는 그 모든 절망적인 광경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미리 경험하게 해 주겠다.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외계의 침략자들을 상대로 인류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그리고 그 공포의 실체가 인류에게 진짜 닥쳐왔을 때.
‘이번에는 모두가 군말 없이 도망치기를.’
성진우와 성수호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이번만큼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기를.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진철과 자신이 기획한 ‘프로젝트 : 나 혼자만 레벨업’의 진정한 목표였던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그런 날이 절대로 오지 않는 것이겠지. 그럼 이 게임은 끝까지 단순히 재미있는 게임으로만 남을 수 있을 테니.’
유진호는 자신의 이런 속마음을 꿈에도 모르고, 너도나도 나혼렙 게임의 클로즈 베타 테스트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S급 헌터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 주었다.
자신을 향해 간절한 표정을 짓는 현무강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현무강 대표님, 정 그러시면 직접 베타 테스트에 참여해 보시겠습니까?”
“예? 정말 저희 길드도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현무강의 표정이 급격히 환해졌다.
하지만 유진호는 뒤끝이 길다.
현무강 개인에게는 악감정이 없지만, 부하 관리를 잘못해서 수호를 위험하게 한 죗값은 결코 싸지 않다.
“예. 원하신다면 현무강 대표님께 제일 먼저 체험할 기회를 드리지요. 어차피 게임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S급 헌터들의 데이터도 필요하니까요.”
“감사합니다, 유 대표님!”
다시 말하지만, 무지가 용감이다.
장담하는데 이제 현무강은 누구보다 먼저 극악의 난이도를 체험하고 절망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뒤끝이라면 베르도 유진호 못지않았다.
[키에에엑! 설마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까 네가 말한 소환수 추가 룬석을 당장 바치지 못할까!]“……!”
현무강은 갑자기 자신의 앞에 불쑥 얼굴을 드러내고 불호령을 내리는 검은 그림자를 보며 깜짝 놀라 뒷걸음을 쳤다.
‘이럴 수가?! 이 내가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하다니!’
흉흉한 기세와는 반대로 앙증맞은 크기의 소환수였지만, 본능적으로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르는 더더욱 위협적인 표정으로 현무강의 멱살을 잡고 협박했다.
[고작 두 마리뿐이지만, 우리 소군주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알거라!]“드, 드리겠…… 아니, 누가 이 소환수 좀 제발…….”
다짜고짜 수호의 작고 소중한 소환수에게 멱살을 잡히게 된 현무강은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댔다.
지금 상황적으로 이 작은 손을 뿌리치기가 굉장히 애매했던 것이다.
그때 구원자가 나타났다.
청룡 길드의 S급 헌터 서지우.
중요한 얘기가 다 끝나자, 처음 등장할 때부터 베르에게 관심을 보였던 서지우가 베르를 가리키며 수호에게 말을 건 것이다.
“성수호 헌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당신도 나와 같은 재각성자라며? 저 소환수는 재각성 전부터 있던 애야? 그럼 지금은 전투계로 재각성한 거고? 새로 생긴 스킬은 뭐야? 어떤 변화가 있었지?”
아까부터 계속 참고 있었지만, 서지우는 수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았다.
“하핫. 내 질문이 너무 많아서 미안해. 사실은 이번 신입이 재각성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너무 반가웠거든.”
갑자기 서지우의 질문 세례를 받게 된 수호는 현무강을 협박 중인 베르를 슬그머니 한 손으로 뜯어내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안 그래도 저도 궁금했습니다.”
[키에엑……!]“다행이네! 그럼 우리 서로 같은 처지끼리 대화 좀 나눠 볼까? 사실 그렇잖아? 말로는 재각성자들이 종종 생겨난다곤 하는데, 실제론 마력 측정기 오류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데 당신이나 나처럼 S급으로 갑자기 확 강해진 경우는 처음 보거든.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면 측정 오류일 확률도 없고 말이야.”
“…….”
한 번 기회를 잡자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내는 서지우였다.
하지만 수호 입장에서도 궁금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내 경우엔 레벨업 시스템 때문에 재각성자라고 핑계를 댄 거지만, 진짜 이 사람은 어쩌다 재각성을 하게 된 거지?’
심지어 서지우는 재각성을 하면서 외모까지 젊어진 특이 케이스.
여러모로 수호 입장에서도 서지우가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수호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서지우는 자잘한 질문보다 가장 중요하고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봤다.
“아, 맞아! 그럼 이것부터 대답해 줄 수 있을까? 혹시 당신도 재각성 순간의 기억이 있어?”
“재각성의 순간이요?”
“응. 나에겐 정말 중요한 문제야.”
수호가 되묻자, 신나서 떠들던 서지우의 눈빛은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했던 재각성의 순간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말을 잇는 것이었다.
“혹시 성수호 당신도…… 나처럼 익면증에서 깨어난 사람이야?”
“……익면증이요?”
“익면증이라고?!”
서지우가 내뱉은 한마디는 수호보다 오히려 옆에 있던 유진호에게서 더욱 격렬한 반응이 튀어나오게 했다.
유진호는 상대하고 있던 다른 S급 헌터들을 물리치고 곧장 서지우와 수호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서지우 헌터! 방금 그 말이 사실입니까? 당신이 익면증에서 깨어난 사람이라고요?”
유진호의 심각해진 표정을 보며, 수호는 요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익면증’이라는 현상을 떠올렸다.
‘익면증’
최후의 수면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증세는, 지구 전역에 뚫린 게이트들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공기 중에 섞여든 마나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갑자기 갑자기 잠에 들어서 며칠, 몇 달이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사회적 현상을 뜻했다.
학계에서 ‘익면증’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그 전까진 익면증에 빠진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마력과 관련된 현상이라는 사실을 통계 내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고.
이에 심각성을 느낀 의료계에서는 뒤늦게 마정석을 이용한 생명 유지 장치를 개발해서 그들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생명만 간신히 붙들어 두고 있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던 수호는 서지우의 말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물었다.
“익면증에서 깨어났더니 재각성을 했다고요? 제가 알기론, 익면증은 체질적으로 마나 부적응자들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알고 있는데, 서지우 헌터님은…….”
“맞아. 나는 이미 헌터로 각성해서 활동하던 중에 익면증에 걸린 케이스야. 반응을 보니까, 성수호 당신은 나와는 다른 케이스인가 보구나.”
수호의 반응에 서지우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야. 그날 ‘그곳’에 나와 함께 있던 내 동료들 모두가 마나 적응력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익면증에 빠졌으니까. 하지만 잠에서 깨어난 건 나 혼자뿐이지.”
“그곳이 어디입니까?”
“이중 던전.”
……!
서지우의 말에 수호와 유진호의 표정이 급변했다.
다시 현무강을 협박하기 위해 슬그머니 밖으로 나오고 있던 베르조차도 표정이 돌변했다.
지금 이 순간 이 셋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중 던전이라면, 설마 공허 게이트인가?’
‘설계자의 유산이 또 있을 리 없는데?’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베르는 장담할 수 있었다.
서지우가 동료들과 들어갔던 이중 던전은 과거에 성진우가 들어갔던 이중 던전, 카르테논 신전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들어갔다가 익면증에 걸렸다는 헌터들은 대체 무슨 일을 당한 거란 말인가?
유진호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예전처럼 지금 시대에서도 익면증에 걸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때도 스스로 깨어난 사람은 진우 형님의 어머니와 우리 아버지뿐이었던 걸로 아는데…….’
정작 그 구체적인 이유까진 알지 못하는 유진호를 대신해서 수호가 서지우를 향해 본질적인 질문을 했다.
“익면증에서는 어떻게 깨어나신 겁니까?”
“으음. 의료진에게도 그때 똑같이 대답하긴 했는데, 사실 나도 모르겠어. 그냥 어쩌다 보니 깨어났다는 대답이 고작이었지.”
“이유를 전혀 모른다고요?”
“그래. 그래서 내가 오히려 당신에게 묻고 싶었던 거야. 당신도 나와 같은 일을 겪었다면, 아직도 잠들어 있는 내 동료들을 잠에서 깨어날 방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서지우를 보며, 수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재차 물었다.
“그럼 혹시 잠을 자는 동안, 무슨 꿈 같은 건 안 꾸셨습니까?”
“……꿈?”
“예. 제 경우엔 재각성의 계기가 ‘꿈’이었으니까요.”
수호는 자신의 경험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대답해 주었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춘기 때 아버지 때문에 꾸게 된 꿈속에서 지금의 레벨업 시스템을 받아들인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꿈이라…… 그래, 무슨 꿈을 꾸긴 했지.”
수호의 물음에 서지우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자신이 익면증에 걸려 끝도 없는 잠에 빠져 있는 동안 보았던 아득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검은 바다.”
“바다요?”
“응. 끝도 없이 펼쳐진 검은 바다. 육지는 어디에도 없고, 물만 있는 거대한 바닷속에서 나는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었어.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해야 시체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뿐이었어.”
서지우는 그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소름 끼친다는 듯이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러다 가까스로 뭔가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광룡들의 왕, 파멸의 군주가 슬며시 입꼬리를 올립니다.]“그때, 내가 매달린 건 그 검은 바다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거대한…… 나무였어.”
그 순간 수호는 용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다.
“……세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