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31)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31화(232/260)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31화
인간이 마나에 과도하게 노출될 때 일어나는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 마나에 적응해서 이능력을 각성하거나.
둘. 마나에 둔감해서 아무 일도 없거나.
셋. 마나에 적응 못하고 죽거나.
여기서 세 번째가 바로 ‘익면증’이었다.
영혼을 잃고 죽음에 이르는 현상.
만약 생명 유지 장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본래 마나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요컨대, 익면증이라는 건 일종의 유체이탈.
동시에 의학적으로는 뇌사 상태와 비슷해서, 천만다행히도 생명 유지 장치를 사용하면 육체가 죽지 않게끔 시간을 끄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그 상태에서 다시 영혼이 육체로 되돌아올 확률은, 뇌사 상태의 환자가 정신을 차릴 확률보다 100배 이상 낮았다.
그런데 수호는 이 익면증과 매우 비슷한 현상을 하나 더 알고 있었다.
바로 미스트 번.
마나 부적응자들이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안개를 오랫동안 흡입하면, 그들은 결국 육체가 불타오르며 미스트 번으로 변해 고통스럽게 죽어 간다.
이 현상은 익면증과 원리가 아주 흡사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마나의 속성.
외신들이 원하는 건 침략이었고.
그들은 지구를 내부에서부터 미스트 번을 점점 증식시켜 이쪽 차원을 깡그리 불태워 버릴 생각이었는지, 푸른 안개라는 지독한 독을 지구로 흘러드는 마나에 섞어 보냈다.
그래서 푸른 안개를 직접적으로 흡입한 마나 부적응자들은 익면증보다 더 심각한 상태, 즉 영혼만 죽는 것이 아니라 육체까지 불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굳이 외신들이 아니더라도, 인간들을 강제로 죽이고 싶어 하는 놈들은 사실 또 있었다.
“……그게 바로 ‘악몽의 꽃봉오리’다.”
안타레스는 수호와 베르의 협박 때문에 수십 년은 폭삭 늙어 버린 듯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애초에 사후의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건 세계수뿐만이 아니다. 그 안에 둥둥 떠다니는 갖가지 영혼들을 양분 삼아 별 해괴한 잡초들이 자라고 있지.”
그 말에 수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영혼을 양분 삼아 자라는 잡초가 있다고? 그럼 그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되긴. 어차피 이미 죽은 상태인데 잃을 게 더 있을까. 그냥 영체에 남아 있는 양분을 조금 빼앗기고 다시 둥둥 떠다니겠지. 물론 잡초들이 워낙 여러 가지라, 좀 더 욕심이 많은 놈들은 아예 영혼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풀도 있긴 하다.”
“영혼에 기생…….”
수호의 옆에서 서지우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안타레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바로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악몽의 꽃봉오리는 훨씬 적극적인 놈이다. 아예 그놈들은 직접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서, 살아 있는 생명체의 몸에서 직접 영혼을 뽑아 가는 놈들이니까.”
“왜, 왜죠?”
서지우는 어느새 안타레스에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제법 흡족한지 안타레스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아무래도 그편이 다른 잡초들에게 이리저리 양분이 빨리고 너덜너덜해진 영혼들보단 훨씬 싱싱할 테니까. 잡초 주제에 미식가인 거지.”
“……!”
그 말에 서지우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수호가 물었다.
“그럼 그 악몽의 꽃봉오리라는 놈에게 걸리면, 그 대상이 각성자라도 익면증에 걸린다는 말이야?”
“그래. 오히려 각성자인 편이 더 좋을 거다. 그놈들 입장에선 양분이 많은 영혼일수록 맛도 좋고, 훨씬 오래오래 빨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
이쯤 되니 서지우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조각조각 기억나는 꿈을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 검은 바닷속에서 자신이 했던 노력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의식이 멍한 상태로 본능에 따라 허우적거렸을 뿐.
그러다 진짜 엉겁결에 세계수의 뿌리에 걸려 부딪쳤을 뿐이었다.
“내, 내가 그때 세계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이제는 거의 시체 같은 얼굴이 되어 버린 서지우가 중얼거리는 말에 안타레스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어찌 되긴. 잡초 대신 세계수에게 먹혔겠지.”
“……예엣?!”
“뭐?”
예상치도 못한 발언에 이번엔 수호조차 눈이 커졌다.
“왜 놀라지?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느냐. 사후의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건 세계수만이 아니라고. 세계수야말로 그곳에서 가장 큰 잡초다. 그것도 절대자가 직접 심은 빌어먹을…… 잡초지.”
뭔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안타레스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눈치챈 베르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절대자가 직접 심은 잡초라…….]“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
여기서부터는 수호도 이미 베르에게 들어 아는 얘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관점이 다른 이야기였다.
광룡들의 왕, 파멸의 군주 안타레스는 이 우주의 시작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으니까.
“태초에…… 우리의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가 있었다.”
“…….”
안타레스는 눈을 반개하며 아주 오랜 기억을 회상했다.
지금도 여전히 용제의 겉모습은 작고 귀엽게 생긴 라그나였으나, 그의 깊은 눈빛만큼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연륜이 느껴졌다.
“절대자는 이 우주를 창조하면서 세계수를 사후의 바다에 심었고, 그 목적은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세상의 균형?”
내막을 전혀 모르는 서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면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베르에게서 지배자들과 군주들 사이의 전쟁을 들은 적이 있기에 깨닫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세계수의 열매에서 지배자들의 병사가 태어난다고 했던가.”
“그래. 바로 그 빌어먹을 열매들 때문이다!”
빠드득.
그때를 떠올리며 안타레스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바로 그 세계수의 열매 때문에 우리 군주들과 지배자들의 전쟁은 절대로, 절대로! 끝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우리 쪽이 우세해지기라도 하면, 세계수가 순식간에 열매를 까서 놈들의 병력을 늘려 놓았으니까!”
“…….”
진심으로 분노하는 용제의 모습을 보며, 수호는 베르가 외우주에서 처음 돌아왔을 때 자신에게 보여 줬던 환상을 떠올렸다.
그 태초부터 영원토록 이어졌다던 치열한 전쟁을 말이다.
“우리는 그 전쟁 속에서 지배자들의 군대와 수도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승리와 패배를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끝도 없는 희생이 발생했지만, 전쟁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절대로 끝나서는 안 됐다. 애초에 절대자의 유일한 즐거움이 바로 그 목적도 없는 전쟁을 구경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추가 기울면, 절대자는 강제력을 부여해 전쟁의 균형을 다시금 팽팽하게 맞췄다.
바로 세계수를 이용해서.
“세계수의 양분이야 차고 넘쳤다. 전쟁 중에 죽어 간 영혼들이 고스란히 사후의 바다로 흘러가 세계수에게 힘을 주었으니까. 그리고 절대자에겐 세계수에 맺힌 열매로 하늘의 병사들을 창조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절대자가 죽는 바람에, 더 이상 세계수에서는 하늘의 병사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나이다.]베르는 더 길어질 것 같은 이야기를 중간에 끊어 내며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소군주님, 지금 이러는 와중에도 여러 우주에서 외신들의 병력이 점점 많이 모여들고 있나이다. 반면에 지배자들의 병력은 줄면 줄었지 더 충원할 방법이 없지요. 이게 다 세계수가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베르에게 사후의 바다를 떠도는 인간들의 영혼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세계수가 영혼들을 양분 삼아 성장해 열매를 맺는 일은 태초부터 지속되어 온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결국 우주의 순환이었고, 이 세상을 유지시키는 근본 원리였으니까.
하지만 하필이면 그 균형이 깨진 순간에 외우주의 침략을 받게 된 건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아버지의 군단은 어떤데?”
[물론 왕께선 든든히 버티고 계십니다. 이타림의 병사들을 죽이고, 그들의 그림자를 병사로 추출해서 병력을 충원하고 계시니까요. 하지만 그래 봐야 잡졸들만 늘어날 뿐, 격이 높은 이타림의 사도들은 그림자 추출이 불가능하나이다.]“군주들처럼 추출할 그림자가 없다는 말이군.”
[예. 그래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불리한 건 우리입니다. 그렇다고 세계수가 다시 열매를 맺게 할 방법도 없지요. 그 능력은 오직 이타림만이 지니고 있고, 애초에 외우주의 이타림들이 우리를 침략하는 가장 큰 목적도 바로 세계수니까요.]“그렇겠군. 우리 우주의 모든 영혼을 양분으로 빨아 먹고 자라난 세계수야말로, 외신들에겐 가장 영양가 높은 음식일 테니까.”
“……?”
슬슬 대화의 흐름이 서지우가 알고 있는 정보의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한가득인데,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는 복잡한 표정.
하지만 수호는 서지우의 그런 궁금증을 일일이 해결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보단 서지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서지우와 함께 익면증에 빠진 서지우의 동료들을 깨어나게 하는 것에 집중했다.
‘어차피 생명의 신수를 만들면 다 해결될 일이다. 그리고 그 재료인 세계수를 찾으려면 사후의 바다에 가야 하고.’
수호는 안타레스에게 물었다.
“그럼 네 말은 결국, 그 악몽의 꽃봉오리라는 걸 이용하면 사후의 바다에 갈 수 있다는 말이지?”
“그래. 악몽의 꽃봉오리는 살아 있는 자의 영혼을 꺼내서 사후의 바다로 끌고 가니까. 하지만 사후의 바다에 가는 건 성공하더라도, 되돌아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거다. 이 여자가 경험했던 것처럼 그 넓은 바다에서 세계수를 찾을 때까지 떠돌아야 할 테니까. 어쩌면 영원토록.”
“자,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일단은 상황이 복잡하니까 순서대로 하나씩 해 볼까. 서지우 헌터님?”
“……아, 어?”
“예전에 동료들과 함께 익면증에 걸리셨다는 그 이중 던전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까?”
“아니,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야.”
“공략하신 겁니까?”
“아니. 애초에 그 던전을 공략한 뒤에 그 안쪽에서 우연히 이중 던전을 발견한 거였어.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갔다가 익면증에 빠져 잠들어 있는 걸 후발대가 발견해서 구조해 왔고.”
“그 후에 게이트가 닫힌 거군요.”
“응. 이미 던전은 공략되었으니까 게이트가 닫힌 거지. 이중 던전과는 무관하게.”
나중에 익면증에서 깨어난 뒤 묻기로는 이중 던전 안에는 어떠한 몬스터도 없이 텅 비어 있었고, 서지우를 비롯한 동료들만이 익면증에 빠진 채 쓰러져 있다고 했다.
“흠, 그렇군요.”
수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시 서지우를 보며 부탁했다.
“그럼 그 게이트가 열렸던 위치만 저에게 알려 주시겠습니까? 직접 가 봐야겠습니다.”
“직접 가 보겠다고? 이미 게이트는 닫혔는데?”
“예. 게이트가 닫혔어도, 혹시나 이중 던전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
[그 이중 던전이 공허 게이트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시는 거군요.]“맞아.”
베르의 말에 수호는 확신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북한 공략을 국민 여론이 허락해 주기 전에 잠깐 들러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