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37)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37화(238/260)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37화
살면서 식물이 징그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던가.
꽃. 잎. 줄기. 열매.
상상만으로도 싱그럽고 아름다운 초목들.
생명력이 넘치는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런 건 악마계를 침략한 틈새의 주민들과는 완벽히 무관한 표현이었다.
끼에에-!
식물도 식물 나름.
자신들의 넝쿨을 뒤틀고 배배 꼬며 인간의 흉내를 내기 위해 안달이 난 잡초들의 모습은 명백히 징그러웠다.
께께껙껙!
놈들의 구조는 일종의 화분과 비슷했다.
놈들의 머리에 쓴 해골바가지가 거꾸로 뒤집힌 화분이라면, 그 아래 줄기줄기 뻗어 나온 수많은 보랏빛 줄기식물들이 문어처럼 바닥을 기어다녔다.
그런데 막상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그 줄기들이 서로 엮이고 꼬이며 두 팔과 다리를 어설프게 흉내 내며 바닥에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악마들은 께름칙한 기분을 느끼며 놈들을 공격했다.
“틈새의 주민들이 우리를 흉내 낸다!”
“막아! 못하게 해!”
왜일까.
시련이 시작된 순간부터 악마들은 본능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불쾌함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지금의 이 역한 기분은 지성이 있는 악마들이나, 지성이 없는 악마들이나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애초에 이상한 일 아닌가.
악마들은 애초에 ‘틈새의 주민’이라는 이름 자체를 모르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놈들을 본 순간에 본능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깨달은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놈들 뭔가 이상해…….’
에실은 누구보다 그러한 사실을 가장 불길하게 여기고 경각심을 느끼고 있었다.
악마들에게 ‘본능’이라는 감각은 생존과 직결되는, 결코 무시해선 안 되는 감각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기억에도 없던 정보가 갑자기 떠올랐다는 건 악마들의 피, 혹은 영혼에 새겨져 있는 정보라는 건데…….
“끄아악……!”
“……!”
“모두 조심해! 이놈들에게 닿으면 마나를 빨아먹힌다!”
하지만 길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때마침 가장 선두에서 틈새의 주민들과 맞붙은 악마들이 당황하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몸을 휘감은 보랏빛 넝쿨들이 그들의 마나를 쭉쭉 빨아먹은 것이다.
“비켜라!”
쫘자작!
때마침 악령의 갑옷으로 무장한 악마 기사들이 기세 좋게 앞으로 튀어 나가, 악마들을 휘감은 넝쿨들을 거침없이 찢어발겼다.
하지만 넝쿨들은 집요했다.
끼껙!
뜯겨 나간 넝쿨들이 허공에서 뱀처럼 방향을 꺾어 악마 기사들의 몸을 휘감았다.
“……어딜!”
천만다행이다.
그들이 입은 악령의 갑옷은 틈새의 주민들에게 닿아도 마나를 빨아먹히지 않도록 막아 줬다.
수호의 명령에, 하르마칸이 특별히 악마들을 위해 개량해 준 갑옷이 톡톡히 제 역할을 해 준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더더욱 집요하게 움직여, 기어코 악령의 갑옷의 좁은 틈새를 찾아내 콱! 하고 뾰족한 가시 촉수를 쑤셔 박았다.
“이, 이놈들이……!”
악마 기사들은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놈들을 다급히 뜯어내고는 에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에실 님! 조심하십시오!”
“이놈들이 마나만 빨아먹는 것이 아니라, 가시 촉수로 이상한 독을 주입합니다!”
실로 모기 같은 놈들이었다.
아니, 모기와 거머리의 불쾌한 점만 합쳐 놓은 놈들이었다.
넝쿨에 닿거나 스치기만 해도 마나가 빨려 나가고.
가시에 찔리면 정체불명의 독이 침투한다?
“빌어먹을 놈들이군. 나도 간다!”
철커덕!
때마침 에실도 악령의 갑옷을 착용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죽어!”
쐐애액- 콰직!
에실의 손에서 쏘아져 간 악마의 창이 놈들의 해골을 꿰뚫고 박살을 내 버렸다.
그러자 그 해골통을 화분처럼 자라나고 있던 넝쿨들이 힘을 잃고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걸 확인한 에실이 쩌렁쩌렁 명령을 내렸다.
“머리가 약점이다! 머리를 노려라!”
에실의 말에 악마들이 서로 흩어져 싸우고 있는 동족들에게 전파했다.
“모두 머리를 노려라!”
“해골이 약점이다!”
그 명령에 따라 악마들은 득달같이 놈들의 머리통을 박살 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갑옷을 입으면 몸에 닿아도 마나가 빨리지 않는다! 데스나이트들이 앞장서고 가시만 조심해!”
“무슨 독인지 모른다! 절대 가시에 찔리지 마라!”
콰직! 퍼걱! 쩌적!
악마들의 공격에 해골들이 속절없이 깨져 나간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약점을 알아냈다 한들, 전투의 양상은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애초에 압도적인 물량 차이가 컸다.
차원의 균열을 통해 끝도 없이 흘러드는 놈들의 숫자가 에실이 거느린 악마들보다 월등히 많았다.
에실은 이를 악물었다.
‘악마들을 더 모았어야 했다……!’
분하다.
이곳이 예전의 악마계였다면, 지금처럼 물량에서 밀리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재 악마계는 갈가리 찢겨 차원의 틈새를 떠돌고 있었고, 그 파편화된 차원의 조각들에 흩어져 있는 악마들을 전부 규합했다면……!
‘이놈들 하나하나는 약하다. 그런데 많아도 너무 많아. 이렇게 많은 놈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거지?’
“끄헉……!”
치열한 전투 속에서 결국 첫 사상자가 나오고 말았다.
“끄르륵…….”
넝쿨에 휘감겨 마나를 모조리 빨아먹힌 악마가 입에서 거품을 물고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 순간.
끼께껙! 끼히힛!
돌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악마 하나를 잡아먹는데 성공한 해골에게서, 아니 잡초에게서 흘러나온 명백한 웃음소리.
“……!”
그 순간 에실은 목격하고 말았다.
틈새의 주민들, 저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마주한 순간부터 내내 느끼고 있던 꺼림칙함의 정체를.
슈와아악-
갑자기 해골을 중심으로 넝쿨 식물들이 올올이 휘감긴다.
그 형상이 마치 뼈대 위에 근육을 만들어 내는 것 같더니, 이내 ‘온전한 육체’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맙소사.”
그 놀라운 광경에, 에실을 비롯한 모든 악마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래.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다.
악마들을 흉내 내듯이 넝쿨을 엮어 팔다리를 만들어 낸 꺼림칙한 놈들이…….
악마 하나를 통째로 빨아먹은 순간에…….
“크힛! 키히힛!”
그 이름 모를 잡초는 비로소 ‘악마’가 되었다.
* * *
“……여긴 악마계인가?”
균열을 통해 이중 던전에 들어온 수호는 눈앞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마수들을 보며 황망하게 입을 열었다.
용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저 차원의 틈새일 뿐이다.”
“그럼 이 악마들은 대체 뭐지?”
“뭐긴. 악마들을 잡아먹고 스스로가 악마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한 틈새의 주민들이지.”
“……!”
용제의 말처럼, 지금 그들의 앞에는 보랏빛 악마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틈새의 악마] [틈새의 악마] [틈새의 악마]…….
그들의 머리 위에는 명백히 악마라고 표기되어 있는 이름표가 떠올라 있었지만, 그 알맹이는 여전히 넝쿨 식물로 이루어진 잡초들이었다.
하지만 해골바가지에 기생하는 문어 같았던 놈들이, 이곳에선 넝쿨을 올올이 엮어서 스스로 근육을 만들어 내고 과학실에나 있을 법한 인체 모형처럼 변해 있었다.
아니, 크기나 형태 면에서 인간이라기보단 악마의 형상에 가까웠다.
뿔이 달린 놈까지 있었으니까.
문제는 이게 단순히 형태만 흉내 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칭호 : 악마 학살자’ 버프가 효과가 발동합니다.] [악마형 몬스터를 상대할 때 모든 능력치가 40% 증가합니다.]“진짜 악마로군.”
수호의 눈이 번뜩였다.
악마들을 상대할 때만 적용되는 칭호 효과가 발동되었다는 건, 이 잡초들이 진짜 악마라는 증거였다.
“악마를 잡아먹고 악마가 되었다고?”
“그래. 보아하니 차원의 틈새에 흩어져 있던 악마계의 파편들이 이놈들에게 침략당했나 보군. 요컨대, ‘오염’된 거다.”
틈새의 악마들을 보는 안타레스의 시선에는 불쾌한 티가 역력했다.
“말했듯이, 틈새의 주민들은 절대자가 만들다 버린 찌꺼기다. 그래서 이 잡초들은 항상 무언가가 되기를 갈구하지.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게 바로 악마들의 영혼이다.”
그다음에 이어질 말은 수호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설마 악마들의 영혼은 죽어도 사후의 바다에 갈 수 없어서인가?”
“아니, 순서가 조금 다르다. 애초에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 영혼들은 사후의 바다를 떠돌다가 세계수의 양분으로 쓰인다. 그것이 순리…….”
끼히힛! 끼르륵!
대화가 끊기며 갑자기 전투가 시작되었다.
틈새의 악마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사방에서 덤벼 오기 시작한 것이다.
“뒤는 내가 맡겠습니다!”
사방이 뻥 뚫린 탓에 서지우가 수호의 후방을 맡았다.
그에 수호는 앞에서 덤벼드는 틈새의 악마들을 향해 볼칸의 뿔을 휘둘렀다.
화르륵! 쿠와앙-!
그런데 앞서 싸웠던 잡초들과는 반응이 사뭇 달랐다.
앞서 싸웠던 ‘??’라는 이름의 잡초들은 수호의 화염에 속수무책으로 불타 버렸는데, 틈새의 악마들은 그 공격을 피해 내거나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우기까지 했다.
“대응 방식이 진짜 악마들과 똑같군.”
신기하긴 한데, 그뿐이었다.
[‘스킬 : 흑염의 폭풍’을 사용합니다.]쿠와앙!
[틈새의 악마를 처치했습니다.] [틈새의 악마를 처치했습니다.] [틈새의 악마를 처치했습니다.]…….
전투가 점점 치열해지자, 용제 안타레스는 짧은 날개를 펼치고 떠올라 수호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근엄한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갔다.
“먼저 세계수에 대해 말해 줘야 할 것 같군. 세계수는 죽은 영혼들을 양분 삼아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그 열매에선 새로운 영혼이 태어나지. 그 열매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열매에서 태어나는 것이 바로 지배자들의 병사들이며, 다른 열매들에서는 네가 익히 아는 수많은 종족의 영혼이 태어나게 되지.”
“환생?”
“글쎄. 어떤 표현을 써도 무방하겠으나, 세계수 안에서 정확히 어떤 작용들이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죽은 영혼이 한 번 양분이 되었다가 새로 태어나는 거니까, 그게 같은 영혼인지는 누구도 확인할 방법이 없지. 뭐, 아무튼.”
안타레스는 틈새의 악마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말했듯이, 사후에 바다에 빠진 영혼들 중에선 세계수에게 먹히기 전에, 잡초들에게 먼저 붙잡혀 먹히는 영혼들도 꽤 많단 말이지. 그걸 우리는 ‘마나가 오염되었다’고 표현한다.”
익숙한 표현에 수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마나가 오염되었다?”
“그래. 세계수의 역할 중에는 죽은 영혼을 정화시키는 일도 있다. 그런데 세계수를 거치지 않고 잡초에게 걸리면, 영혼이 오염되어 버리지. 그럼 그 영혼은 다시는 사후의 바다로 돌아오지 못한다.”
끼히힛!
끼께께껙!
“……그리고 바로 이놈들처럼 악마가 되어 버리는 거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찌꺼기들이 드디어 정체성을 갖게 되는 순간이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때마침 수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마나가 오염되어 추출이 불가능합니다.] [마나가 오염되어 추출이 불가능합니다.]방금 자신이 죽인 틈새의 악마들의 사체 위에 떠올라 있는 메시지들을 보며 수호는 진실을 깨달았다.
‘그래. 항상 궁금했지.’
악마들과 싸울 때마다.
그들의 영혼이 추출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수호는 그게 참 궁금했다.
-대체 왜 안 된다는 거지?
-어째서 악마들의 영혼은 추출할 수 없는 거지?
생각하면 할수록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짐승형 마수들, 벌레형 마수들, 그 외에도 수많은 종족의 영혼과 악마들의 영혼은 대체 무엇이 얼마나 다르길래.
뭐 얼마나 대단한 차이점이 있길래.
죽음마저 지배하는 그림자 군주의 권능이 먹히지 않느냔 말이다.
-마나가 오염되었다고? 대체 ‘무엇’에 오염된 건데?
오염의 뜻이 ‘독’이라면 해독하면 될 문제고.
오염의 뜻이 ‘더러움’이라면 또 얼마나 더럽단 말인가.
애초에 마령족인 하르마칸이 좋아하는 빌런들의 영혼 또한 악한 영혼일진대, 여지없이 그림자 병사로 추출이 되지 않던가.
-그런데 왜 악마들만 유독 추출이 불가능한 건데?
하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고 만 것이다.
대체 악마들의 영혼은 무엇에 오염되었는지.
“잡초들은 집요하단 말이지. 한 번 찜한 먹잇감은 절대 포기하지 않아.”
용제 안타레스의 말을 들으며 수호는 떠올리고 말았다.
“악마들의 영혼은 사후의 바다에 갈 수 없다. 이미 그들은 세계수의 양분이 아니라 잡초들의 양분이거든.”
악마계.
태초부터 지금까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살아온 악마들.
“모든 악마들은 원래…… 틈새의 주민들이었군.”
아무래도 에실이 기다리던 시련의 정체는…….
누가 진짜 악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를 가리는 증명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띠링!
수호의 앞에 한 줄의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