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40)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40화(241/260)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40화
순백의 세상.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어느새 수호의 몸은 이곳에 서 있었다.
이젠 수호도 이 상황이 익숙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바란의 뿔’이 나타난 순간.
그 뿔을 손에 잡는 순간.
당연히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죽은 군주들을 위한 제사장’
예외가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수호가 만났던 대부분의 죽은 군주들은 수호에게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내려 주었다.
그들이 수호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제사.
자신들의 힘을 적합한 계승자에게 물려주는 것.
그 중요한 행사를 주관하는 자로 수호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일까?
어째서 수호인 걸까.
대체 어찌하여 그들은 그 중요한 제사장의 역할을, 자신들을 죽인 그림자 군주의 아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을까.
-그야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최근에 용제 안타레스가 이런 수호의 의문에 답을 내려 주었다.
아무래도 안타레스는 다른 군주들과는 달리, 항상 수호의 곁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잡담을 나눌 기회가 많았다.
-이젠 너밖에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용제는 씁쓸한 표정으로 수호에게 군주들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래라면, 군주가 죽으면 그 종족의 제사장의 주관하에 차기 군주의 계승식이 이뤄지게 된다. 하지만 때에 따라, 제사장이 없어도 저절로 힘이 계승되기도 하지. 그게 바로 ‘순리’니까.
그 ‘순리’라는 걸 누가 정했냐면, 당연히 지금은 죽고 없는 ‘절대자’였다.
태초에…… 절대자는 거대한 어둠의 힘을 나누어 여덟 명의 왕을 창조했고, 그게 바로 ‘태초의 어둠’이라 불리는 군주들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품고 있던 ‘태초의 어둠’은 자연히 다음 후계자를 찾아서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지금 이 우주에는 그 절대자가 죽고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만든 법칙 또한 단단히 고장이 난 것 같았다.
-……얼마나 망가졌냐면, 뭣도 아닌 네놈 따위가 무로 돌아간 우리들의 영혼을 다시 깨워 낼 수 있을 정도로 망가진 것이지.
-끼에에에엑! 감히 그딴 망발을……!
용제의 말에 베르가 발광하긴 했지만, 용제는 수호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궁금했다. 수호가 어쩌다 이런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용제는 베르의 분노를 받아 주며 계속 설명했다.
-물론 네 아비가 절대자가 창조한 여덟 개의 태초의 빛, 여덟 명의 광휘의 파편 중 하나임과 동시에 9번째 군주이긴 하지. 한 몸에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그림자. 그게 바로 네 아비다. 하지만 그런 그림자 군주 또한 동격인 군주들의 영체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단 말이다.
그런 게 가능했다면, 이미 군주들은 진즉에 그림자 병사로 전락했을 테니 말이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용제는 수호가 품고 있는 힘의 정체를 극도로 경계했다.
-그 ‘알 수 없음’ 스킬이라는 걸 주의하는 게 좋을 거다. 아무리 봐도 그 힘은 네 아비가 물려준 힘이 아닌 것 같으니까.
심지어 저절로 발동하는 패시브 스킬이라서 더더욱 위험하다고, 용제는 누누이 경고했다.
수호 또한 그의 조언을 귀담아들었으나, 아무리 대비한다 한들 소용없었다.
애초에 이름조차 모르는 스킬인 것을.
그 사실 또한 알고 있기에, 용제는 마지막으로 딱 한 가지만 수호에게 명심시켰다.
-하나만 명심하거라. 모든 군주들이 너에게 호의적이진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했듯이. 특히 그중에서도 악마왕 바란은…….
[악마들의 왕, 백염의 군주가 당신을 주시합니다.]‘……네가 바란이군.’
수호는 눈을 들어 순백의 땅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왕족이나 입을 법한 호화스러운 갑주를 걸치고 있는 악마가 한 명 서 있었다.
푸른빛이 감도는 악마.
그의 부릅뜬 두 눈에 담긴 노골적인 증오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사실 수호는 이런 상황 또한 익숙했다.
돌이켜보면, 용제뿐만 아니라 벌레들의 왕 퀘레샤와 만났을 때도 이러했었다.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향한 복수심.’
사실 당연한 일 아닌가.
용제 때처럼 후계자에게 힘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만 없다면, 얼마든지 자신을 죽인 이의 아들에게 그 복수심을 표출해도 되는 문제니까.
하지만 수호는 이미 용제에게 들어서 바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란은 자신의 아버지인 성진우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를 죽인 존재는 바로 전대 그림자 군주 아스본.
애초에 성진우가 젊었을 때 악마성에서 죽였던 ‘바란’은 진짜가 아닌 복제품이었고, 진짜 악마왕 바란은 아주 오랜 옛날에 아스본을 배신하고 그에게 처형당한 군주였다.
그 말은 결국, 여기 있는 바란은 애초에 ‘성진우’를 만나 본 적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이만한 증오를 드러낸다는 건 결국…….’
수호는 이를 악물었다.
쿠르릉! 콰르릉!
메마른 하늘에 번개가 친다.
이는 바란의 분노이자, 증오의 표출.
꽈르릉! 쿠르릉! 쾅쾅!
하늘에서 내리꽂는 천둥벼락이 바란을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점점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 순백의 세계를 가득 물들일 기세로.
수호는 이런 광경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어머니 차해인.
차해인이 ‘악마왕의 장검’을 들고 이타림의 사도를 처치했을 때 말이다.
그런데 그때보다 훨씬 더 어마무시한 뇌전의 기운이 바란의 몸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천재지변의 중심에서…….
바란이 핏발 선 눈으로 수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특히나…… 수호의 가슴 쪽.
그 안에 숨겨져 있는 힘의 정체를 가늠하기 위해.
[악마들의 왕, 백염의 군주가 당신에게서 ‘용제의 심장’을 발견합니다.]‘젠장.’
결국 이렇게 되나.
수호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속으로 용제를 욕했다.
[하등한 인간이여, 하나만 묻겠다.]드디어 바란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대답을 원해서 하는 질문이 아니었다.
[네놈은 아스본의 후예인가, 아니면 안타레스의 후예인가.]그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너의 안에서 그 둘의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는 거지?]‘하나만 질문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잘 살펴보면 다른 군주들의 가호도 느껴질…….’
[말이 길군.]‘…….’
사실 수호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 영적인 세계에서 대화 따윈 시간 낭비라는 걸.
[악마들의 왕, 백염의 군주가 당신이 용제 안타레스의 계승자임을 눈치챕니다.] [악마들의 왕, 백염의 군주가 안타레스의 만행을 떠올립니다.]……아주 친절하게도 현재 바란의 속마음을 시스템 메시지가 수호에게 일일이 알려 주고 있었으니까.
[악마들의 왕, 백염의 군주에게 아스본을 배신하라고 부추긴 존재가 바로 광룡들의 왕, 파멸의 군주 안타레스라는 기억이 떠오릅니다.]악마왕 바란에게 있어 복수의 대상은 총 두 명.
그림자 군주 아스본과 용제 안타레스였고, 하필이면 그 둘의 힘을 물려받은 이가 바로 수호였으니까.
그렇기에 수호는 대답 대신 자신의 마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 세계에선 그림자 병사를 소환할 수 없으니, 홀로 바란과 싸워야만 했다.
화르륵!
용제의 심장이 끓어 오른다.
수호의 전신이 용제를 닮은 흑염에 휘감긴다.
그 모습이 곧 바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대답이었으니…….
바란의 두 눈이 번쩍 커졌다.
[역시 그렇구나! 이노옴-!]그 순간.
――――――!
‘……?!’
그는 한 줄기의 벼락이 되어 수호에게 쏘아져 나갔다.
[악마들의 왕, 백염의 군주가 ‘스킬 : 백염’을 사용합니다.]‘이 무슨……?!’
당황할 틈도 없었다.
투쾅-!
미리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미처 반응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
일직선으로 뻗어진 한 줄기의 섬광에 수호의 몸은 반대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크아아-!]수호에게 돌진한 바란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그 안에서 상어처럼 생긴 흉악한 이빨들이 수호의 머리통을 통째로 씹어 삼켰다.
콰작!
수호는 가까스로 고개를 틀어 그 공격을 피해 냈으나, 대신 어깨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고작 1초도 지나지 않은 찰나.
그 짧은 시간에 수호는 그에게 얻어맞고 어깨를 물어뜯겼다.
콰지지지지지직-!
‘끄그그극……!’
수없이 점멸하는 시야.
어깨를 통해 어마어마한 뇌전이 수호의 몸을 관통했다.
말 그대로 벼락 맞은 고통에 정신이 날아갈 것 같았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콰직! 콰직! 콰직!
바란은 그야말로 악마처럼 수호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그의 살과 뼈를 씹어 삼킬 기세로.
‘끄아악……!’
수호는 이를 악물고 그 모든 고통을 견뎌 내며 반격을 시도했다.
[‘스킬 : 강체술’을 사용합니다.] [‘스킬 : 거인의 갑옷’을 사용합니다.] [‘스킬 : 흑염의 폭풍’을 사용…….]쿠와아아앙!
모든 스킬을 총동원해서 바란에게 맞섰다.
하지만 바란은 그 모든 공격을 피할 생각도 없이 고스란히 몸으로 맞았다.
그러고도 히죽 웃었다.
[크흐흐흐! 좋구나, 좋아! 너는 이런 맛이구나!]‘……!’
그 광기 어린 모습에 수호의 눈이 커졌다.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고통을 느끼기에 비로소 즐거운 것이다.
[악마의 삶이란 곧 투쟁이지!]그렇다.
그는 바란.
악마들의 정점에 이르렀던 자.
피와 살이 튀는 잔혹한 투쟁 속에서 비로소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악마라는 족속이라면.
특히나 그중에서도 바란은 누구보다 가장 많은 악마를 잡아먹었던 진정한 포식자였다.
꽈르릉!
투콰쾅쾅!
수호와 바란의 치열한 격돌이 순백의 세계를 광기로 물들였다.
가아아아아아아아악-!
바란의 입에서 번쩍이는 백염의 불꽃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수호도 기감을 최대로 확장하며 맹공격을 펼쳤다.
‘쉽지 않다.’
용제와의 전투 때는 아버지의 환상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현실은 그 이상이었다.
수없는 공방 끝에 바란은 수호의 살점을 질겅질겅 씹으며 꿀꺽 삼켰다.
그리고 무엇을 깨달았는지 활짝 웃으며 수호를 바라보았다.
[크하하! 이제야 알겠다! 어째서 하등한 인간 따위가 이렇게나 강해졌는지!]그는 비로소 수호의 몸에 새겨져 있는 힘의 근간을 깨달았다.
[이건 환족들이 쓰는 주술의 맛이구나! 환계의 주술사가 우리 악마족의 성장법을 인간의 몸으로 흉내 낸 건가? 어쩐지 내 영체를 누군가가 뜯어 간 느낌이 있더라니!] [악마들의 왕, 백염의 군주가 레벨업 시스템의 제작 원리를 깨닫습니다.]‘뭐?’
이번만큼은 수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시스템 메시지가 평소답지 않게 미주알고주알 떠든다 싶더니.
그 시스템의 재료가 설마……?
[크흐흐. 환계에서 이런 사술을 연구할 놈은 하나밖에 없지. 대주술사 칸디아루! 그놈은 항상 요그문트를 제치고 환계의 군주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놈이었으니까!]바란은 수호와의 전투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무의 세계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자신의 영체에 정체불명의 상처가 나 있었던 것이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영체를 강제로 뜯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데 수호의 피와 살을 직접 먹어 보고 나서야, 비로소 확신이 들었다.
이런 짓까지 하면서 죽은 군주의 영체를 연구하고 싶어 할 놈은, 환계의 영원한 2인자 칸디아루뿐이었다.
[그래, 그놈의 주술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그래도 기껏해야 내 영체를 뜯어 가서 내 복제품이나 만들었을 놈이, 얼마나 더 욕심을 낸 거지? 아예 악마족의 성장 방식을 통째로 하등한 인간에게 적용시켜?]숨겨진 진실을 깨닫자, 바란은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마령들의 왕, 환계의 군주 요그문트.
그 바로 밑에서 항상 요그문트의 자리를 노리고 있던 대주술사 칸디아루.
그가 결국 전쟁의 승패가 기우는 순간에도, 스스로의 격을 성장시키기 위해 별 시도를 다 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네놈이렷다?]바란은 새삼스럽다는 시선으로 수호를 다시 보았다.
더 정확히는 수호의 안에 새겨져 있는 악마들의 성장법, ‘레벨업 시스템’을.
아니.
생명체를 죽이고, 그 영혼의 양분을 빨아먹고 무한히 성장하는 ‘틈새의 주민’들의 성장 체계를 말이다.
히죽.
그 사실을 깨닫자, 바란은 수호를 보며 흉악하게 입맛을 다셨다.
[궁금하군. 네놈이 지금까지 섭취한 양분을 내가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파직!
침이 고인 그의 이빨에 전류가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