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61)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61화(262/269)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61화
휘오오-
얼음꽃의 환상이 포레스를 지우고, 이번엔 실라드가 기억하는 아주 오랜 기억들을 수호의 눈앞에 그려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갓난아이였다.
[저게 나다.]그것은 어른 엘프의 품에 안겨 곤히 잠들어 있는 아주 어린 시절의 실라드였다.
[그리고 내 어머니다.]그리고 그 뒤에는 하늘 높이 자라난 엘븐우드가 불길하게 나뭇가지를 꿈틀대고 있었다.
그 평화로 위장한 흉측한 괴물을 지그시 노려보며 실라드는 낮게 읊조렸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엘프들은 이미 엘븐우드에게 사육당하고 있었다.]그리고 이 기억은 실라드가 죽어서조차 여전히 품고 있는 아주 아픈 기억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엘프들이 체감하는 사계절은 1년이 아니었다.
어느 땐 짧았고, 어느땐 수십 년이나 계속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끝은 있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평화도 반드시 겨울이 찾아왔다.
풍요롭던 땅이 점점 메마르고, 낙엽마저 떨어진 앙상한 숲속에 혹한의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수확의 해’는 갑자기 찾아왔다.]꺄악-
도, 도망쳐-!
[겨울은 항상 갑작스럽지.]수확의 해.
엘븐우드가 그동안 사육해 온 엘프들을 추수하기 시작한 어느 날.
[……나는 아직 어렸다.]그 환상을 지켜보던 수호는 실라드의 표정을 보았다.
실라드는 쓰린 눈으로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있었다.
휘아악!
혹한의 눈보라.
그 얼어붙은 설원 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생생했다.
아직 갓난아기였던 자신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허겁지겁 도망치는 어머니의 긴박한 얼굴.
그 따뜻한 품속에서, 어머니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던 자신의 어린 눈망울을 실라드는 바라보았다.
그리고.
푸욱-
-끄윽……!
……그 흉측한 가시뿌리에 등이 꿰이는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자신의 아이를 다른 엘프의 손에 넘겨주던 어머니의 덜덜 떨리는 손길을.
-너, 너라도…….
……그렇게 타락귀들에게 붙잡혀 다시 엘븐우드로 질질 끌려가던 어머니의 마지막 음성을.
다른 엘프의 품에 안겨 점점 멀어져 가는 자신의 아이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던 그 처연한 눈빛을.
흐릿해지는 시선으로도 마지막까지 아이를 향해 벙긋거리던 그 실낱같은 목소리를.
-살아…….
[……너라도 살아라.]그 모든 것들이 실라드의 기억 속에선 여전히 생생했다.
죽어서 영면에 빠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영원토록.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다.]휘오오-
환상 속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실라드.
그렇게 부모를 잃고, 다른 생존자들의 품에 맡겨져 가까스로 살아남은 갓난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동시에 그 모든 참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 버린 어린 엘프는, 그 모든 절망을 기억한 채 다른 어른들과 함께 새로운 마을에 순조롭게 정착하게 되었다.
새로운 터전.
새롭게 싹을 틔운 엘븐우드의 울타리 안에서.
실라드는 점점 자라나 소년이 되었고.
청년이 되었다.
친구들도 생겼다.
그중에는 포레스도 있었다.
실라드는 그렇게 친구들과 정령술과 사냥술을 익히고, 마을의 수호자 자리를 놓고 서로 경쟁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평화였다.
화창한 날씨.
싱그러운 풀내음.
그 모든 순간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에서도, 실라드의 친구들은 단 한 번도 실라드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예 웃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실라드의 어머니는 그저 살라고 했을 뿐, 어떻게 살라는 말은 해 주지 않고 떠났으니.
[그거 아느냐.]실라드가 수호의 곁에서 읊조렸다.
[때로는 피가 튀는 전쟁터가 비참한 평화보다 낫다.]실라드는 험악한 눈빛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끄아악!
또다시 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평화는 끝났고.
엘프들이 죽어 갔다.
생존자들은 허겁지겁 도망쳤다.
-어찌하여!
그들 중에 포레스가 울부짖고 있었다.
-어찌하여 우리는 매번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포레스도 나와 같았다.]포레스도 실라드처럼 저번 마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갓난아이 출신이었다.
반복되는 겨울의 비극을 경험한 엘프.
[우리는 늘 억울했다. 왜 항상 우리 엘프들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지. 어찌하여 우리들은 이 지독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지.]눈보라 속에서 원독에 차 부르짖는 포레스의 모습을 바라보며, 실라드의 안광에 고요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나는 남았다.]실라드는 포레스와는 다른 선택을 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마을 한가운데서.
그 시리고 춥던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오로지 실라드만이 그 자리에 남아 무기를 쥐었다.
[억울했다. 그래서 다짐했다. 더는 반복하지 않기로.]독기에 찬 표정으로 엘븐우드를 올려다보는 실라드를 향해 수많은 가시뿌리들이 덮쳐왔다.
얼음 바닥을 뚫고.
눈보라를 뚫고.
[어차피 나의 끝이 정해져 있다면, 최소한 죽을 자리는 내가 선택하기로.]슈왁! 촤악!
타락귀들도 덤벼 왔다.
한때는 같은 마을의 식구였던 얼굴을 뒤집어쓴 악귀들.
아직 그릇을 차지하지 못한 굶주린 정령들.
그 모든 적들을 상대로.
아니, 세상 모든 것들을 상대로.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슈와악-!
그어어어어어!
그 자욱한 눈보라 속에서.
실라드는 쉴 새 없이 싸우고 또 싸웠다.
모두가 도망친 그곳에서, 오직 실라드만이 홀로 남아 싸웠다.
[밤낮없이 싸웠다. 굶주림도 잊었다. 애초에 눈보라 속에선 시간의 흐름 따윈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우뚝.
[어느새 아무도 나를 공격하지 않더군.]휘오오-
모든 적들이 사라져 있었다.
시리고 춥던 겨울.
그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오직 실라드 혼자만이 오롯이 황량한 설원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실라드는 뒤늦게 무언가를 발견하곤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실라드의 곁에서 그 환상을 지켜보던 수호 또한 그 모습을 발견하고 입을 벌렸다.
‘……엘븐우드가 얼어 죽었군.’
[그래. 어처구니없지 않느냐?]수호의 말에 실라드는 실소를 터뜨리며 대꾸했다.
[그 대단한 엘븐우드가 얼어 죽어 버린 것이다.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나보다도 훨씬 빨리. 고작 추위 따위를 못 버티고. 고작 추위 따위…….]고작 그 정도였다니.
하염없이 중얼거리는 실라드의 얼굴에는 허망함과 비웃음, 원통함 따위가 뒤범벅된 무언가가 떠올라 있었다.
달리 보면 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그극……
그렇게 가까스로 생존한 실라드는 상처투성이인 몸을 끌고 얼어붙은 엘븐우드로 다가갔다.
그리고 미친 듯이 그 얼어붙은 나무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목적 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의 분이 풀릴 때까지.
콰쾅! 쾅! 콰장창!
몇 날 며칠이고.
계속해서.
엘븐우드가 산산조각이 날 때까지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더군. 그래서 얼어붙은 땅을 다 파내고, 그 아래 숨어 있는 모든 잔뿌리들마저 다 뽑아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놈의 모든 뿌리들을 씹어 삼켰다.]질겅질겅.
엘븐우드의 잔해를 억지로 씹어 삼키는 실라드의 표정은 이미 반쯤 미쳐 있었다.
어찌 제정신일 수가 있을까.
오랜 전투로 혹사된 전신은 만신창이였고.
그의 상처에 난 핏물은 혹한의 눈보라에 의해 성에처럼 얼어붙어 피부가 쩍쩍 갈라져 있었다.
어찌 보면 타락귀보다도 훨씬 참혹한 모습이었고,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하지만 실라드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미 그에겐 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혹한조차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까짓 추위 따위를 못 버틴 엘븐우드를 평생토록 비웃기 위해선, 자신은 더더욱 쓰러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도 계속 그 마을에 남기로 했다. 애초에 떠날 이유가 사라졌으니.]그리고 자신이 추위를 피해 그 땅에서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자신은 엘븐우드를 비웃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도 컸다.
[그래서 그냥 눌러앉았다. 춥긴 해도, 살다 보니 장점도 많더군.]장점은 무슨.
춥긴 더럽게 추웠다.
하지만 엘프들은 환경에 적응하는 종족이었으니…….
[나는 그렇게 ‘최초의 아이스 엘프’가 되었다.]최초의 아이스 엘프.
그렇게 혹한의 추위에서 살아남은 실라드가 차기 군주가 된 것은 그보다도 한참 후의 이야기.
지배자들과 군주들의 전쟁에서 당시의 엘프들의 군주가 죽고 나서야, 실라드는 비로소 차기 군주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그는 여전히 어렸고, 젊었으며.
따지고 보면 엘븐우드에게 제대로 복수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가 해낸 업적은 고작해야 엘븐우드가 얼어 죽을 때까지 버틴 것에 불과했으니.
그는 결심했다.
[언젠가 반드시 엘프들의 군주가 되어, 모든 엘븐우드들을 찾아내 뿌리채 뽑아 버리기로. 그리고 결국 해냈지. 나는 군주가 되자마자 눈에 띄는 모든 엘븐우드를 뽑아 버렸다.]당연히 그에 반발하는 엘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군주가 된 실라드의 결정은 절대적이었으니, 모든 엘프들은 엘븐우드가 사라진 혹한의 땅에 점점 적응하며 아이스 엘프가 되어 갔다.
그리고 그 시작점이 바로, 실라드가 살아남은 최초의 설원.
엘븐우드가 죽은 혹한의 땅 위에 재건한 최초의 마을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엘븐우드를 잃은 엘프들은 너무나도 연약했다.
구심점을 잃은 정령들도 더 이상 엘프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더 이상 그들은 친구가 아니었으니, 서열 정리가 필요했다.
-나에게 복종해라. 미천하고 비겁한 정령들아.
혹한의 군주가 된 실라드는 모든 엘븐우드를 뽑아낸 뒤, 자신을 피해 흩어지는 정령들을 본격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정령들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잡아서 얼려 버리면 그만 아닌가.]실라드는 그렇게 일일이 사로잡은 정령들을 향해, 자신의 모든 원한을 담아 저주를 퍼부었다.
-정령들이여, 얼어붙어라. 혹한의 추위 속에 갇혀 영원히 고통받아라.
그 저주는 혹한에서 살아남은 최초의 아이스 엘프, 실라드의 모든 원한이 담긴 정령술이었으며.
-너희가 내 동족들을 그렇게 만들었듯이, 너희 또한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무한한 세월을 살아가리라.
동시에 그것은 여태껏 그들이 죽은 엘프들의 시체들을 농락하며 타락귀로 만들었듯이.
그들 또한 영원히 얼어붙은 감옥에 갇힌 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모습이 되어 실라드의 노예가 되는 저주였다.
그어어어어!
그렇게 탄생한 거대한 얼음 거인들이 실라드 앞에 벌벌 떨며 굴종을 맹세했다.
그들이 울부짖는 포효는 그 안에 갇혀 버린 정령들의 비굴한 절규였고.
[아이스 골렘]그 감옥의 이름을, 수호는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철학자의 글귀를.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이 순백의 세상에서 죽은 실라드를 처음 만났을 때.
실라드가 보여 주었던 잊힌 시간대의 환상을 떠올렸다.
그 환상 속에서 실라드는…….
성진우의 심장에 얼어붙은 칼날을 쑤셔 박은 채 더없이 잔혹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여기까지인가, 인간이여? 그렇다면 너는 볼 수 없겠구나. 우리의 군대가 이 땅에 도착하는 순간을. 그때가 되면 너희 인간들의 시체가 산을 만들고, 피가 강을 이룰 것이다.
그것은 설인들의 왕이자, 혹한의 군주가 된 실라드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저주였으며.
-그러나 네가 나고 자란 이 나라는 다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은 내가 직접 얼려 영원히 고통받게 만들 터이니.
동시에 그것은 실라드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누구보다 가장 처절하게 이해하고 있는 ‘실존’하는 지옥이었다.
-……그들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무한한 세월을 살아가게 되겠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로 무한한 세월을 살아가게 된 타락귀들.
아니.
엘븐우드와 정령들에게 사육당한 끝에 모든 것을 빼앗겨 버린, 엘프들의 삶 그 자체.
-……그렇게 죽음 속에서 끝없이 나를 증오해라.
자신들이 직접 겪어 온 지옥을 떠올리며, 실라드는 그렇게 죽어 가던 그림자 군주를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다.
-……그것 또한 나의 즐거움이 될 테니.
그리고 그것만이 자신을 구하고 죽어 간 어머니의 미소와 자신의 곁에서 원통하게 스러져 간 동족들의 죽음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제사였으니.
-어찌하여! 어찌하여 우리는 매번 이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어느새 환상은 서럽게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포레스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실라드는 슬픈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 또한 저리 억울했었다. 다른 놈들에게도 우리 엘프들이 살아가는 지옥을 겪게 해 주고 싶었다. 이미 죽어 버린 동족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그것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실라드는 포레스의 다음 기억을 보며 안광을 번뜩였다.
[……포레스, 이 녀석은 나와는 다른 방법을 찾은 것 같구나.]스스로의 힘으로 겨울을 버텨낸 실라드.
같은 하이엘프면서도, 수없이 반복되는 겨울을 피해 몇 번이고 피해 도망치던 포레스.
이 둘의 운명은 확연히 다른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실라드는 결국 군주가 되어 당당히 적들과 맞서 싸웠고, 끝까지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음을 맞이했다.
그 결말이 비록 패배였음에도, 그는 기어코 제 손으로 직접 그 위대한 그림자 군주의 심장에 칼날을 쑤셔 박는 과업을 이룩한 전사였다.
그러나 포레스는 달랐다.
-불쌍한 운명을 타고난 피조물이로구나.
……!
불현듯 얼음꽃의 환상 속에서, 울부짖던 포레스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
순간, 실라드와 수호의 눈이 동시에 번뜩였다.
성흔!
머리 위에 황금빛의 성흔이 광륜의 형태로 떠올라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포레스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얼굴은 성흔이 뿜어내는 눈부신 빛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왜냐면 이 모습은 포레스의 기억이었기에.
포레스는 감히 저들이 뿜어내는 성스러운 빛에 짓눌려 고개를 들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가 본 것은 있었다.
-우리가 조금 도와줄까?
그것은 그들의 입가에 떠올라 있던 잔혹하리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였고.
절망하던 자신에게 다정하게 내밀던 그들의 손길이었다.
그리고 그 손은, 대답조차 듣지 않고 주저 없이 포레스의 두 눈을 뽑아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