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o Leveling: Ragnarok RAW novel - Chapter (263)
나 혼자만 레벨업:라그나로크 263화(264/269)
나 혼자만 레벨업 : 라그나로크 263화
시르카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몇 년 전.
‘차차’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르카가 꾸는 꿈은 그 내용이 뭐든 절대로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색’.
시르카의 꿈은 언제나 하얀색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세상은 항상 새하얗기에 그러한 세상밖에 모르는 탓이었다.
휘오오오오-
혹한의 눈보라.
순백의 설원.
그 시린 눈밭 위를 맨발로 뛰어다니며 수많은 정령과 사투를 벌여 온 투쟁의 삶.
그것이 시르카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였기에.
하지만.
‘그날’부터였다.
-시르카! 큰일났어!
-마을에 정령들이 쳐들어왔다고!
평생 그렇게만 지속될 것 같던 시르카의 세상이 변하기 시작한 건.
-정령들이 폭주했다!
-모두 무기를 들어!
메아리 숲의 정령들이 폭주해서 마을을 덮쳐 온 어느 날.
그 끝도 없이 밀려오던 정령들을 상대로 몇 날 며칠을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며.
곁에서 하나둘씩 죽어 가던 늙은 엘프들의 모습을 보며, 시르카 또한 자신의 죽음을 각오했던 어느 날.
슈와아아악-!
-하늘을 봐!
-하늘에서 괴물이 내려온다!
-용이야!
아아, 대체 어째서…….
어째서 불행은 이처럼 한꺼번에 닥쳐오는 것일까.
눈보라를 뚫고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비룡의 모습을 목도한 순간.
아마도 시르카는 그런 막막한 절망감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절망감이 찬란한 희망으로 돌변한 것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 거대한 비룡의 위에 타고 있던 한 인간이 바닥에 내려서는 순간부터.
-여긴 어디지?
눈보라 속에서도 곧장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 상황부터 파악하는 그 인간의 전신에 일렁이던 그 어마어마한 마력을 보면서부터.
그리고.
-얘, 내가 무기가 없어서 그러는데, 뭐든 좋으니까 무기 좀 빌려줄래?
상황 파악이 끝난 걸까.
시르카는 다짜고짜 자신에게 다가와 손을 내미는 그 인간에게 엉겁결에 무기를 넘겨주고 말았다.
자신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여분의 단검을 두 자루나.
-단검이라…… 어쩐지 그립네.
그러자 그 인간은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단검 두 자루를 역수로 쥐어 보며 살포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슈와아악!
그 인간이 본격적으로 머릿결을 휘날리며 ‘검무’를 추기 시작한 것은.
-키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그 바로 뒤에서 거대한 비룡이 사납게 포효하며 그 인간과 함께 정령들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그날.
마을은 가까스로 평화를 되찾았다.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에 의해.
그런데 그 이방인은 전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에게 계속 오지랖을 부렸다.
-안 되겠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네부터 좀 챙겨야겠어.
정말이지…….
다시 돌이켜봐도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다들 괜찮니? 다친 애들은 전부 이쪽으로 모여! 그리고 거기 너!
-나, 나 말이야?
-응, 너. 마을에 혹시 붕대나 약 있으면 좀 가져와 줄래? 그리고 다들 밥은 먹었니? 옷은 또 왜들 이렇게 춥게 입었어? 안 추워?
……참나.
정작 본인이 제일 춥게 입었으면서.
갑자기 나타나서 자신들을 구해 주고는, 찬바람이 스미는 옷깃을 단단히 여며 주는 그 꼼꼼한 손길이라니.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눈물이 났다.
새삼 이렇게 또다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깨우친 안도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그날부터였다.
그 오지랖 넓은 이방인이 ‘차차’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마을에 눌러앉게 된 것은.
차차는 그렇게…….
가까스로 살아남은 어린 엘프들의 곁에 남아 그들의 가족이 되어 주었다.
때로는 검술 스승으로서.
-시르카! 허리! 자세를 더 낮춰! 무게 중심이 낮아야 넘어지지 않아!
-무게 중심이 뭔데?
-아, 거기부터 설명해야 하나…….
전술과 전략,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때로는 어머니처럼.
-애들아, 밥 먹자!
-우와아아-!
-시르카! 또 먼저 먹으면 혼난다! 친구들이랑 다 같이 먹어야지!
-싫은데! 이미 머그어따냠.
여전히 시리고 추운 혹한의 눈보라 속에서 따뜻한 밥과 포근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었다.
그리고…….
-이야, 우리 시르카! 머리 땋았더니 너무 멋있어졌네! 이러면 전투 시에도 시야 안 가리고 좋지?
-헤헤. 응!
-엘프들의 머리카락은 참 신기해. 어떻게 이리 예쁘고 찰랑이는데도 활줄로 써도 될 정도로 튼튼하고 질기지?
-에헴. 부럽지? 조금만 기다려. 내 머리가 더 자라면, 내가 직접 차차를 위한 활을 만들어 줄게.
-어머, 고마워라. 그럼 나는 보답으로 내 머리카락으로 팔찌를 만들어 줘야겠다.
-팔찌는 뭐하러? 그딴 건 전투에 쓸모도 없잖아.
-너무해.
-으히히. 농담이야.
……혹한 속에서도 환하게 웃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시르카.
그렇게 시르카는 차차 덕분에 자신이 평생을 갇혀 살던 그 시리고 추운 겨울의 세상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색깔을 배울 수 있었다.
그 색깔은 따스함.
아마도 봄이라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이런 색깔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르카.
그리고.
아까부터 묘하게 차차의 목소리를 닮은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너도 이미 자격은 충분해.
두근.
차차와 닮았으나, 묘하게 낮은 울림의 음성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니 일어나라.
일어나라고?
무슨 말이지?
그 음성이 행복한 꿈을 꾸고 있던 시르카에게 닿았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깨닫는 것이 있었다.
휘오오오오!
……!
자신이 지금 또다시 그날처럼, 굶주린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노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휘아아아아악!
차차가 나타나기 전처럼, 마을을 침략하던 수많은 정령들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그 순간 가장 먼저 치밀어 오르는 건 그날 느꼈던 본능적인 두려움.
그다음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자신을 항상 올곧게 바라보며 웃어 주던 차차의 미소였으니.
-일어나서 네가 직접 저 정령들을 지배해.
……!
다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시르카의 용기를 일깨웠다.
그날처럼.
-군주가 되어라.
……번쩍!
그 말에 본능적으로 눈을 뜬 시르카의 시야에 차차를 닮은 수호의 얼굴이 보였다.
시르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긴 어디?]‘일어났으면 무기부터 꺼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다시 앞을 보며 돌아선 수호의 넓은 등 뒤로 검은 그림자가 길게 펼쳐졌다.
후와아아아악!
[‘스킬 : 군주의 영역’을 사용합니다.]그리고 그 너머에서 정령들을 사냥하고 있는 실라드를 주시하며 시르카를 향해 외쳤다.
‘정신 바짝 차리고 앞을 봐! 전대 혹한의 군주가 직접 정령들과 싸우는 방법을 보여 주잖아! 나보단 네가 직접 보고 배워!’
[……?!]시르카는 깜짝 놀랐다.
그 말대로였다.
슈와아악!
죽은 군주가 저 앞에서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며 정령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안 돼. 불가능해. 나는 아직…….]저 어마어마한 기세를 감히 따라 하기엔 자신의 역량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불가능은 개뿔!’
팡!
-아윽?!
갑자기 수호의 손바닥이 날아와 시르카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자, 시르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익숙한 손맛!
이 고통은 차차에게 검술을 배우면서 수도 없이 맞아 본 차차의 손맛이었다.
동시에 횟수로 따지면 수호가 훨씬 더 많이 맞아 본 어머니의 손맛이기도 했다.
수호는 말했다.
‘걱정 말고, 나만 믿고 따라와. 요령은 이미 내가 익혔으니까.’
[뭐? 저 힘은 네가 다루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힘일 텐데 어떻게?]‘그러니까 요령이라 했잖아.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써먹으라고. 자, 간다!’
[자, 잠깐……!]휘아아악!
수호는 다짜고짜 시르카를 끌고 앞으로 뛰어들었다.
엉겁결에 시르카는 굶주린 정령들의 소용돌이 속에 뛰어들고 말았고, 그 곁에서 수호가 히죽이며 말했다.
‘자, 무기부터 꺼내.’
[……얼음나무의 창.]쩌저저적!
순순히 수호의 말에 따르는 시르카의 손에 서리가 생겨나 얼음나무의 창이 길게 뻗어났다.
그렇게 손에 무기가 잡히자, 시르카의 몸은 본능적으로 차차에게 배운 움직임을 따라 정령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좋아. 잘 싸우네.’
[이런다고 될 리가……!]‘그럼 지금부터다. 요령을 가르쳐 줄 테니.’
수호의 눈이 번뜩였다.
[‘스킬 : 강체술’을 사용합니다.]슈와악!
순간, 수호의 두 주먹, 두 팔을 따라서 검은 기운이 휩싸였다.
시르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본능적으로 눈치챈 것이다.
저 힘이 일반적인 스킬이 아니라는 사실을.
저 단단하고 강인한 검은 기운이 수호의 어깨 위까지 타고 올라 거대한 갑옷을 걸친 모습이 되었다.
수호는 그 거대한 손을 뻗어 정령 한 마리를 낚아채고 그대로 터뜨렸다.
콰앙!
그렇게 정령 하나를 짜부라뜨려 폭발시킨 수호가 시르카를 돌아보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것이 힘이다. 강체의 군주가 사용했던 힘이지.’
[어, 어떻게 그 힘을 네가……?!]‘배웠어. 너도 지금부터 배워.’
콰직! 콰앙!
수호가 또다시 정령들을 움켜쥐고 터뜨렸다.
‘여기서 하나 더.’
[‘스킬 : 거인의 갑옷’을 사용합니다.]후와아악!
수호의 전신이 갑옷으로 둘러싸였다.
이것은 일반적인 스킬이었으나, 시르카는 이미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이었다.
‘시르카.’
수호가 묻고 있었다.
‘실라드는 갑자기 닥쳐온 혹한과 맞서 싸워 군주가 되었다. 그럼 너에게 혹한이란 무엇이지?’
그 물음에 답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시르카에게 추운 겨울이란 그 무엇도 아니었다.
실라드가 갑자기 닥쳐온 혹한과 싸웠다면, 시르카에게 혹한이라는 건 그저 태어난 순간부터 눈에 보인 모든 것들.
밤도 낮도, 그저 하얗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콰직!
시르카가 내뻗은 얼음나무의 창이 자신을 노리는 정령을 찔렀다.
……그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직 어리고 나약하다.
저 대단한 전대 군주 실라드처럼 모든 정령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단언하노니,
[최소한 내 손길이 닿는 정령 정도는…….]쩌정!
얼음나무의 창에 찔린 정령이 얼어붙었다.
[지배한다.]쩌저적!
그렇게 한 마리씩.
시르카는 자신을 노리고 소용돌이치는 굶주린 정령들을 하나하나 찔러서 얼리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이아아아-
그 정령들의 비명과 절규 속에서.
시르카의 창끝을 따라, 시르카가 죽인 모든 정령이 서릿발처럼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형상은 수호가 몸소 보여 준…… 거대한 갑주의 형태.
쩌정!
순간, 시르카의 두 눈에 냉혹한 위엄이 서렸다.
[정령기갑](精靈機甲)
쩌저적!
그러자 그 갑옷이 시르카가 죽인 정령들의 숫자만큼 점점 영역을 넓히며 시르카의 전신을 휘감았다.
마치 수호가 직접 보여 준 강체술과 거인의 갑옷처럼.
그 결과, 시르카는 자신보다 두세 배는 더 큰 거대한 갑주로 자신의 몸을 둘러쌌다.
그리고.
콰득!
얼음정령들로 뭉쳐진 거대한 주먹을 앞으로 뻗어 또 하나의 정령을 움켜쥐고 터뜨렸다.
수호가 보여 준 것처럼.
‘그래, 잘하네. 우리 엄마한테 배웠으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그 모습에 수호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맙소사.]반면에 저 앞에서 정령들을 사냥하고 있던 전대 군주 실라드의 눈이 경악으로 휘둥그레 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이어 실라드의 눈에 대견함이 차올랐다.
[뭐, 시작으론 나쁘지 않군.]정령술이 아닌 정령 지배.
그 첫발을 다른 것도 아닌 강체의 군주가 사용하던 기술을 흉내 내서 성공시키다니.
[아니, 더없이 훌륭하다.]그렇다.
역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
보이느냐, 포레스여!
정령술이 아닌 정령 지배, 단순히 그 수준을 떠나서 정령들을 고작 무기와 갑옷을 만드는 재료 따위로 소모시키는 저 위엄 있는 모습을 보아라.
저 어린 엘프가 고작 추운 겨울을 피해 도망쳤던 하이엘프 따위보다 훨씬 군주답지 않은가!
[으허허허!]진심으로 기뻐하며 실라드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띠링!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자신의 제사장에게 크게 감사를 표합니다.] [설인들의 왕, 혹한의 군주가 자신의 제사장의 활약에 경의를 표합니다.]‘음?’
갑자기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수호는 실라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실라드가 더없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그림자 군주의 아들이여.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나는 원래 너를 보자마자 죽이려 했었다. 하지만 너의 어머니를 보고 말았지. 나의 어리고 약한 부족들 곁에서 어머니가 되어 준 그림자 군주의 반려를.]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느꼈던 실라드의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끝까지 지키다가 죽어 갔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나는 너의 어미에게 감사해서, 너를 죽이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콰직!
실라드는 또 하나의 정령을 찢어 죽이면서도, 시선만큼은 여전히 수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맙구나. 나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어서.]띠링!
[‘혹한의 후예’를 동료로 영입하시겠습니까?](Y/N)
그 순간, 수호의 눈앞에 또다시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퀘스트까지.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하지만 실라드의 부탁이 무엇인지, 수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내 후예를 잘 부탁한다.]씨익.
그 말과 함께 검은 갑옷과 정령의 갑주를 입은 수호와 시르카가 동시에 눈을 빛내며 정령을 움켜쥐고 터뜨렸다.
콰쾅!
‘그럼 뒤로 빠져. 지금부터 정령들은 전부 우리가 먹는다.’